JTBC <세 개의 전쟁>과 ‘늙어갈 용기’
1.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점점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3년간 전 세계에 비극적 죽음과 생존의 위기를 가져왔음에도 위기는 멈추지 않고 연이어서 강도를 높이며 인류 절멸의 공포를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JTBC는 2023년 인간의 멸종을 가져올지 모르는 거대한 위협을 <세 개의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첫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핵전쟁의 위험이며, 둘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북아 지역의 공포이다. 이러한 공포의 중심에는 대한민국도 있다. 마지막으로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변화의 파괴현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후위기’ 속에 전 세계가 하나로 단합하여 문제를 해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실제적 이행에는 조금도 진척되지 않고 오히려 강대국의 탐욕과 패권에 대한 야망 때문에 위기가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2. 지구 온난화의 위협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 현상에서 실감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위험성을 북극 영구 동토층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준비한 일명 ‘노아의 방주’라는 식량 종자 저장소에[ 주변 땅이 녹은 물이 스며들었고, 항상 얼음에 덮여있던 땅이 녹으면서 동토에 숨었던 메탄이 폭발하여 거대한 싱크홀이 여기저기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싱크홀 현상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더 큰 문제는 땅이 녹으면서 땅 속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메탄의 분출을 가속화시키고, 메탄의 분출은 더 빠르게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더구나 동토의 해빙은 그 속에 숨겨졌던 수많은 고대의 바이러스를 해방시켜 어떤 치명적인 질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다.
3. 그럼에도 인간의 탐욕은 지구의 파멸에 대한 심각한 위기에 전혀 대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 지구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의 민족적 야심과 그것을 이용하는 권력자의 야합으로 시작되었고, 전쟁이 가져온 위기는 그동안 진행된 유럽의 탈탄소 정책을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 중단되었던 석탄 발전소가 다시 가동되고 급박한 문제에 의해 미래의 심각한 과제가 중단되었다. 동북아의 위기 또한 국제적 패권경쟁 속에서 우리의 생존 공간을 파괴하는 심각한 불행으로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4. 이런 전세계적 위험에 대한 리포트는 개별적 인간에게는 거대한 무력감만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친환경 실천하자’라는 공익광고의 방송이 무의미하게 인식될 정도로 현재 대한민국의 정책은 위기에 대한 대처에는 전혀 적절한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충동적이며 과시적인 최고 권력자의 발언은 위기에 대한 국가의 무지를 심각하게 증언한다. 현재 대통령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타인에 대한 공헌을 막는 나쁜 성향, 즉 명예욕, 자만심, 시기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전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만심 강한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을 파괴적이며 남을 폄훼하는 성향이 강할 뿐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대부분 타인에게 전가한다고 하면서 이들의 성향을 ‘가치절하 성향’, ‘반대적 콤플렉스’라 규정했다.
5. 전 세계적 위기는 점차 증폭되고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탐욕으로 사로잡혀 있는 지금, 개별적 인간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자유와 선택이 주어져있을까? 현재의 사태에 대해 공격하고 불평하면서도 불만 그 자체로 시간을 보내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런 현실에서 눈을 돌려 자신에게 만족과 순간적 쾌락을 주는 즐거움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특정 선동가(정치가, 종교가, 사상가)를 추종하는 종교적 광신으로 자율적 사고를 포기한 채 인식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세상에 대해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갈 것인가? 사실 무엇 하나 쉬운 선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적 위기 속에서 침묵하거나 도피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고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심각한 지구의 위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정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6.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일본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늙어갈 용기>에서 아들러 심리학에 기초하여 병이 나고 나이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용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들러는 병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 대해서 “죽음이나 병을 두려워하는 것도,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지내기 위한 구실을 찾는 사람들이 벌여놓은 인생의 거짓말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라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내세운 구실거리를 ‘인생의 거짓말’이며 인생의 과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힘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7. 즉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병과 나이듦, 그리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제라는 것이다. 인생의 과제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면해서 용기있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개인이 그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가능하다는 용기를 내면 못 이룰 게 없다고 보았으며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싸워야하는 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용기는 자신의 과제를 넘어 ‘공동체적 감성’을 통한 ‘타인에 대한 공헌’으로 연결될 때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진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타자에게 공헌을 하지 못한다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8. 새해 벽두에 방영된 JTBC의 <세 개의 전쟁>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커다란 무력감까지 동반하는 위기였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권력이 만들어가는 공포와 불안이기 때문이다. 이때 아들러 심리학에 기초한 <늙어갈 용기>를 읽은 것은 조금은 위안이 된다. 어떤 어려운 과제도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은 없다는 점, 병도, 늙음도, 죽음까지도, 생에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용기’의 강조는 분명 우리가 대처해야 할 문제와 과제에 대해 작은 ‘용기’를 부여하는 말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주문으로 외우는 ‘아타락시아(평정)’처럼 ‘용기’는 남아있는 시간과 맞서야 할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인지 모른다. ‘용기’를 잃지 않음으로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 가지 덕목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한다. 절제, 용기, 지혜. 이것이야말로 ‘용기’와 함께 병행되어야 할 우리의 삶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일지 모른다.
첫댓글 - 나이듦에 대한 현실과 삶에 관한 생각을 이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있다. 무한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정리하는 시간에 대한 충고...... 공동체의 변화와 개인의 역할...... 일어나는 사건의 뒤를 쫓아가기에도 벅차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불확실한 미래........ 인간이기에 해야 하고,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