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단들의 횡포에서 성경진리를 수호하며, 기독교 본연의 사명수행에 유익한 목회를 위하여 발간하는 홍보용 월간지인 '이단분별의 제자화로 교회 보호 위한 목회와 진리수호'의 창간호의 글입니다.
......................................................
윤석전씨는 베뢰아파 사람인가?
<베뢰아 김기동씨와 윤석전씨 설교 유사성 연구>
1. 집필동기
2 . 윤석전 씨는 회개하였는가?
3. 김기동 씨와 동일한 설교를 하게 되는 배경
4. 김기동 씨의 설교 방법적 측면에서의 유사성
5. 베뢰아파 설교 유사방법 사용하는 윤석전씨
6. 설교요지, 제목에서 드러난 윤 씨의 베뢰아 사상
7. 김기동 씨 설교 내용의 측면에서 유사성
맺 음 말
1. 집필동기
기독교한국침례회(이하 기침) 소속 목회자 윤00, 오00, 지0, 양00, 김00, 도00, 최00, 박00 목사님을 중심으로 총 40명의 목사님이 2001년 2월에 원세호 박사님의 홈페이지 <원세호 박사의 성도의 영적승리>를 운영하여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집사인 필자를 고소하였습니다.
고소대리인은 원세호, 원문호 목사님을 고소하기 위해 받아 놓았던 위임장을 이용하여 해가 바뀐 2001.2월에 와서 필자를 고소했다고 변명하나 위임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신 분들이 다수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총지휘하는 기침이대위 박00 목사님은 고소인들에게 6개월 동안이나 고소하였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고 있다가 필자에 의해서 고소의 건이 고소한 목사님들에게 알려지자 2001년 7월에 서둘러 고소인으로 등재된 목사님들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사실 기침이대위 위원장 김00 목사님이나 작년도 총회장 이셨던 양00 목사님이 고소인으로서 고소의 진행을 전혀 모르는 것이 본인 전화의 확인에서 비로소 알게 되자 당혹스러움이 역력했습니다. 이에 고소를 위임한 사실이 없음이 전화의 대화에서 확인되고, 이 정황에 10여명은 취하하고 빠져나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이래서 불가불 위임장 변조의혹 혹은 위임장 월권 사용 의혹이 있어서 내용증명으로 사본을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이는 사실을 들어보지 못한 고소인들에 대한 위임장 오남용 월권행위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찌 친고죄에 해당하는 고소를 본인들이 모르다니 말이 됩니까? 이 사건의 문제는 윤석전 씨와 함께 고소인으로서 39명이 등재되어 있으나 자신도 모르게 고소인의 명의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들은 윤석전 씨를 건전한 목사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는 확신이 되어 본 고소 사건을 계기로 기침 교단을 비롯하여 한국교회와 전 세계교회를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예방하는 공익을 위하여 베뢰아의 사상과 윤석전 씨를 비교하여 알릴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번 연구를 통해서 윤석전 씨와 김기동 씨의 교리가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깊게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비교연구가 베뢰아 교리에 물든 사상을 교회에서 정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되어 검토된 부분 중 극히 일부분만을 교회의 보호를 위하여 서술합니다.
2 . 윤석전 씨는 회개하였는가?
윤석전 씨가 베뢰아 사상을 버린 목회자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교회를 계몽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윤석전 씨와 김기동 씨를 비교연구하기 위해 김기동 씨의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베뢰아의 교리가 얼마나 성경에서 이탈하였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 이라는 김기동 씨의 설교요약을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예수님에 대한 신성모독의 차원이 도를 넘어 섰다는 것입니다. 윤석전 씨는 이미 지상을 통해서 6개 교단이 규정한 이단의 집단 베뢰아 10기생으로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도 불법하면 지옥가야 한다' '예수는 요셉이 한대서 30년 동안 뜯어먹고 산 철면피한 인간이라는 등의 최악의 신성모독을 할 뿐만 아니라 이는 성도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씨 측은 11년 전에 고쳤다는 변명으로 그가 설교한 테이프를 회수하여 폐기한 사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2001년 7월 24일 전 연세중앙교회 비서실 송석찬 목사를 고소 관련하여 만났을 때 송 목사님 자신은 베뢰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윤석전 씨가 망원동에서 목회 할 때 자신이 전도사였는데, 윤석전 씨가 자신이 행한 설교 녹음 테이프를 교인들에게서 모두 회수해서 폐기시키라고 하여, 자신도 자세히 묻지 않고 그냥 폐기했는데, 그 때 자신이 그 테이프 내용을 들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당시에 윤석전 씨가 취한 자신의 설교녹음 테이프 회수하여 폐기한 조치가 목회 초기에 잘 해보려고 멋 모르고 베뢰아 테이프를 몇 개 듣고 행했던 것을 돌이킨 것이라 했으나 과연 그 것이 돌이킨 증거가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윤석전 씨가 베뢰아 김기동씨 테이프 몇 개를 들어 본 정도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테이프 몇 개를 들어본 정도로 그 설교를 동일한 사상의 내용을 담아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자신의 말로 강력히 주장할 정도의 수준에 있게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에 윤석전 씨 메시지는 베뢰아 사상 전체를 꽤 뚫어 볼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을 강력하게 설파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윤석전씨 자신이 테이프 몇 개 들어본 정도의 수준으로 연속해서 베뢰아 사상을 담은 설교를 자기 것처럼 주장했다는 것이 사실이니 멋모르고 잘해 보려고 했다는 변명은 윤석전 씨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그 것은 바로 매우 경솔한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뢰아의 교리는 정통 기독교의 성경적 교리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 것을 목사의 신분으로 분별하지 못했다는 그의 변명은 자신의 신앙적 수준이 어떠한지를 대변할 뿐이라는 것이 그의 메시지에서 더욱 확연해집니다. 그는“처음 집회시간부터 우리는 신학에서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얘기만 다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렇기에 얘기도 여러분들이 그대로 믿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멘. 성경 그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 이예요. 성경을 이탈하지 않았어요. 새소식을 받아드릴 줄 아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받아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해요. 거듭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소식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할렐루야! 다같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윤석전 1987.7.9 집회자료; 1980.5.15 개척;A.p.83)
이렇게 윤석전 씨가 주장한 메시지가 베뢰아의 사상으로 윤석전 씨는 '신학에서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얘기'를 베뢰아의 교리로서 풀어가고 있을 정도였고 이것을 '거듭남'과 연결시킬 정도라면 윤석전 씨의 사상적 기반은 이미 초기 때부터 베뢰아의 교리로 철저히 무장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윤석전 씨는 당시에 자신의 설교를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교인들로 듣게 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이 이해하고 습득한 베뢰아의 교리에 입각한 설교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강한 확신과 그 것을 반드시 전해야 하겠다는 충동이 수많은 테이프를 복사하여 나눠주게 하였고, 이는 베뢰아 의식화 실천교육의 일환이라 생각됩니다.
넷째로 생각해 볼 문제는 윤석전 씨가 자신이 설교했던 녹음 테이프를 모두 회수하여 폐기한 것을 베뢰아 사상을 버린 것으로 볼 수가 있을까요? 당시 연세중앙교회 신도들은 윤석전 씨가 행했던 베뢰아의 교리를 설교 테이프로 보관하고 반복해서 들었고 이웃에게도 소개를 했을 것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교인들을 사랑한다면 베뢰아의 사상이 담긴 설교에 영향 받은 교인들에게 무엇이 베뢰아 교리였는지를 알리고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인을 성경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증거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윤석전 씨가 회개나 사과하지 정황증거입니다. 그가 테이프를 회수하여 폐기한 것은 자신이 주장했던 베뢰아의 교리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구체적으로 사과의 5대 조건을 따르지 않고, 그저 임기응변으로 입과 글로만 미봉하고, 그는 돌연 교리적인 사과를 안 했다니, 이 열매는 건전한 목사로서 7-8시간을 기도하는 분의 열매가 아니므로 그는 한국교회를 기만한 것입니다.
3. 김기동 씨와 동일한 설교를 하게 되는 배경
본인이 연구한 결과 윤석전 씨는 베뢰아 10기생에 걸맞게 과거와 현재도 여전히 김기동 씨의 베뢰아의 핵심교리를 사상적 기반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유사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김기동 씨의 경우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설교 스타일을 부흥사 형에서 교사형으로 바꾸었고, 윤석전 씨는 80년대, 90년대의 김기동 씨의 부흥사형 설교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씨는 이단 논쟁시 베뢰아 측에 테이프 몇 개를 들어 본 정도라고 변명해 왔으나 그가 베뢰아 10기생임이 '월간' 현대종교 천명옥 기자의 글, 이민희 목사의 고백으로 탄로가 났습니다.
"이민희 목사(49. 변화산교회 담임)는 충남 홍성군 구항에서태어나 6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하던 그는'극락도 없는데 중들이 남의 돈을 착취하는 것처럼 목사가 사회의 기생충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30세의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밝히고있다. 87년 방배 총회신학교를 졸업한 이 목사는 그 해 87년 4월 월계동 예장중앙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연세중앙교회 담임 윤석전 목사와는 방배총신동기이며 같은 동향출신이어서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성락교회 김기동씨의 베뢰아아카데미 10기생으로 윤석전 목사와 함께 3개월간수학한 적이 있다." [613개의 '법도'주장하는 인천변화산교회 이민희 목사]
<천명옥 기자> 월간 현대종교 99년 5월호 P32~45
(자료출처 : http://www.daeyangchurch.or.kr/change.html 부산대양교회 홈페이지-김상석 목사 )
윤석전 씨가 김기동 씨와 동일한 설교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김기동 씨를 닮는 것이 하나의 목표처럼 여기지는 분위기가 베뢰아를 배우려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있었습니다. 김기동 씨가 80년대를 베뢰아 교리로 풍미(風靡)하였을 당시 김기동 씨의 베뢰아 수강자들 사이에서는 김기동 씨의 헛기침 소리하나까지 모두 받아 적어 , 김기동 씨의 것을 통째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려는 경향에 그가 설교시 강조할 때 음조가 목에서 쇳소리처럼 찢어지듯 높았던 말투, 그가 예로 들었던 비유, 그의 숨소리, 그가 증거 구절로 채택한 성경구절 그의 축사행위 등 모든 것을 닮는 것이 하나의 목표처럼 여기지기도 했습니다.
둘째, 설교 모방에 배경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김기동 씨는 베뢰아를 2년 동안 수학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설교를 모방하도록 자신의 설교 요지가 담긴 책인『태초에 말씀이』등을 증정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베뢰아를 졸업하고 나가는 사람들은 그 책을 중시하며 자신의 목회에 그대로 적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김기동 씨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주장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것은 베뢰아 김기동 씨의 입장에서 볼 때에 베뢰아 교리를 선전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일이었으며, 베뢰아 측의 시각에서 볼 때에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며, 베뢰아를 수학한 사람은 윤석전 씨의 설교를 듣게 되면 즉시 베뢰아의 김기동 씨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4. 김기동 씨의 설교 방법적 측면에서의 유사성
김기동 씨는 베뢰아의 강의를 통해 초신자들은 처음에 전혀 메시지를 들어 이해하지 못하고, 혼신을 다해 설교하는 모습을 보면 설교자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게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 신자들이 1-2년을 지나면, 말씀을 들을 줄 알게 되며, 그 것이 몇 년이 흐르면 목사의 인격으로 교인을 교회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라고 목회자의 설교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김기동 씨가 사용하는 설교의 방법적 측면과 청중의 변화 과정을 서술하는데 이를 통해 윤석전 씨와 비교하면 그 유사성을 곧 발견할 것입니다.
첫째, 설교에는 내용도 있어야 하지만, 신도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목회자의 진실을 보여야 하는데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전달하는 열성과 열정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김기동 씨는 적용하여 그의 80년대와 90년대에 설교에서 그는 사력을 다해 외치는 부흥사형 설교를 실천했습니다. 김기동 씨의 저술『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신다 』에 나오는 설교의 제목 중에 [마지막 유언하듯 설교하라]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사력을 다해서 진 액을 짜 주는 듯한 설교를 하여 자신의 진실(?)을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 것을 보는 이들은 그의 설교가 100% 옳은 것으로 여기며,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확신이 없는 청중은 어떤 종교집회 같은 대중모임에 참석하여 들은 말이 연설자가 강한 확신 속에서 이 것만이 길이라고 강하게 목숨을 내걸 듯이 부르짖게 되면 그 분위기에 쉽게 설득을 당하여 그 것을 사실로 믿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것이 얼굴이 없는 군중, 청중의 나약한 감정적 측면이므로 이렇게 연약한 사람의 속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둘째, 김기동 씨의 독특한 설교 방식은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탄력을 받아 빠르고 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것을 필자는 [증기기차 운전법]으로 지칭합니다.김기동 씨의 표현대로 하자면 기차가 처음 출발할 때는 칙…. 폭…. 칙…. 폭…. 하다가 점차로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칙칙폭폭. 하듯이 그렇게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기차가 달리는 모양으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질주하게 되어,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하고, 여세를 몰아 교인들을 통성 기도를 시키는 모양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기동 씨는『설교 실천론』을 통해 설교의 형태를 [본문설교] [강해설교] [제목설교]로 구분하였고, 주일설교에 사용하는 방식은 [제목설교]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제목설교로서 [증기기차 운전법] 방식으로 주제에서 벗어나 신행 교육훈련과 교리교육 등을 섞어서 하다가 다시 본 궤도인 [제목]으로 돌아와 종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셋째,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펴고 청중을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설교의 정점에 다다르면서 쉴새없이 자신의 교리를 퍼 붓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청중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가 쏟아내는 말을 퍼 담기도 힘들어집니다. 그에게서 쏟아지는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받아 양동이에 채우기 위해서 어떠한 더러운 불순물이 섞였는지를 알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설교를 들을 때는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전달되는 교리를 분석할 틈이 없게 됩니다. 오직 유사하게 형용사를 바꾸어 계속되는 말들과 동일한 맥락으로 강조되어 나열되는 언어의 파편들을 자신의 귀와 자신의 마음으로 검증할 겨를이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보통은 이렇게 되면 청중들은 아멘! 아멘!은 많이 외쳤는데 나중은 무엇에 아멘! 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으나 김기동 씨의 설교 제목과 설교 시간에 자신이 받은 속이 빈 감동(?) 기분만은 쉽게 잊지 못하는 매력에 사로잡힙니다.
넷째, 김기동 씨의 설교는 보통 [제목설교]로서 예를 든다면 예수로 시작하라와 같은 기차의 궤도를 먼저 형성해 놓고 있습니다. 기차는 그 위에서 달리기만 하면 되는데, 결국 종점 역시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궤도에서 잠시 이탈을 하였다 하더라도, 다시 본 궤도에 들어오면 [제목]입니다. 이것을 계속하다 보면 제목을 여러 각도에서 비슷한 말로 설명하게 되고 신조어 특수 베뢰아 용어 등과 함께 반복적으로 강조된 [제목]이 감동(?) 기분과 함께 머리에 각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섯째, 그러한 방식으로 설교를 들은 마음은 이미 쏟아 부어진 감동의(?) 언어들로 가득차게 되고 속사포같이 쏘아진 그 말들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청중은 설교자의 거친 숨소리를 함께 느끼며 호흡이 동조되고 그의 헛기침 소리까지 성령의 감동으로 생각됩니다. 설교자는 수많은 청중 앞에 홀로 중심이 되고 모든 조명기구가 그를 비추고 TV 화면이 그를 중심으로 확대하여 잡아가며 함께 자리에 앉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신도들이 아멘하는 열광의 모습을 보며 마음에 감동(?)인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여섯째, 설교 마무리가 되어 갈 때에 김기동 씨는 주를 위해 목숨 바쳐 살기로 작정하시기 바라는 등의 말로 권하거나 내 평생 주를 위해 영원한 작품을 남기리라! 등의 다짐을 3차례 정도를 하도록 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통성기도 시간에 설교자가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기도를 유도하게 되며 신도들은 열심으로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후에 진행되는 찬송가를 잘 선정 그 분위기를 엮어 가는데 여기서도 설교자는 박수소리에 맞춰 손을 들어 박자에 맞추며 흔들며 찬송하게 됩니다.
일곱째, 설교자를 본 받으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신도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신도들은 열정적인 현장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김기동씨 같은 카리스마적 설교자를 동경하게 되어 자신도 그렇게 헌신적이고(?) 멋진(?)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신학교를 간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신도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단설을 들었다면, 신도들은 메시지를 검증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동경하는 표본을 본 결과 자신의 욕심에 끌려 양의 옷을 입은 노략질하는 이리의 속성에 이끌려 이단자에 명령에 따르는 도구나 수단을 위한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변화는 예수님의 인격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단 집단에서의 어떠한 변화가 성령 사역의 결과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며, 이는 악령의 임함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여덟째, 이러한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는 도둑이라도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 더욱 멋진(?) 삶인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비성경적 설교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을 내 팽게 치는 변화(?)된 삶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될 수도 있으나 결국 그는 이단설의 주인공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그의 명령을 듣고 집단행동도 함께 하는 사람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이렇게하여 '명령복종형 기계적 인간'으로 인격의 3요소가 사로잡혀 그에게 맹종하는 도구가 됩니다. 현재도 여전히 김기동 씨나 윤석전 씨를 추종하는 목회자들 역시 동일한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고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으로 자리 매김을 할 것입니다.
5. 베뢰아파 설교 유사방법 사용하는 윤석전씨
윤석전 씨의 설교는 상기한 김기동 씨의 설교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사료되며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윤석전 씨는 김기동 씨의 방식과 유사하게 온 힘을 기울여 열변을 토하는 방법을 더욱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차가 출발하여 정점에 이르렀다가 한 정류장에 쉬었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는 듯한 구도를 띠고 있습니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김기동 씨의 설교 방식과 유사한 면으로 윤석전 씨는 김기동 씨의 [증기기차 운전법] 방식을 자신에게 맞게 부흥사형으로 잘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윤석전 씨와 김기동 씨 비교에서 김기동 씨 보다 윤석전 씨를 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목숨을 내 걸고 교인을 사랑하여 설교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김기동 씨와 유사한 발성의 호흡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절정의 시간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으면, [절v ~~~쩡의 시간!] , 백 프로 압도하시고, 백 프로 지배하셔서는 [백v ~~~프로 압도하시고, 백v~~~프로 지배하셔서] 백이라는 한 마디의 호흡을 다 뱉지 않고 반쯤 소리를 낸 후 v에서 숨을 갑자기 멈추고 ~~에서 휴식기를 갖고는 이내 '프로'(%) 지배하셔서'라고 말하는 강조의 표현이 특이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김기동 씨가 사용하고 있는 강조의 방법으로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셋째,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한정적 어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만이 예수만이 피만이 등의 표현법은 김기동 씨가 자주 사용하는 강조들인데, 그러한 방법을 윤석전 씨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넷째, 인과 관계나 문장 전환하는 표현방식의 유사성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하였으니, ~이다'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김기동 씨가 "세상에 말씀을 보내셨으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방식을 많이 사용, 윤석전 씨는 "그가 우리를 지으시고 기르시고 사랑하셨으니, 그의 은혜는 실로 큰 것이다." 등의 같은 표현의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요한복음1장 4절의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등과 같이 성경에서 많이 표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을 자신의 설교 요지에 권위를 주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설교요지, 제목에서 드러난 윤 씨의 베뢰아 사상
김기동 씨의 주보에는 당일에 설교 요지가 예수님의 생애를 본 따서 33줄로 실리게 됩니다. 이 것과 유사하게 윤석전씨 역시 설교 요지를 중시하며 김기동 씨의 베뢰아 강의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보에 기록된 요지를 보면, 이 설교 요지가 고작 아무리, 오래 가야 약 오륙 분이면 읽을 수 있어요. ~ 이 오륙 분 자리 이 것을 가지고, 어떻게 1시간을 설교를 하나, 아니 3시간을 하면 왜 못하나! 아니 10시간을 하면 왜 못하나! 아니 100시간을 하면 왜 못하나! 왜 못하나!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그리고 말할 수 있도록 체험을 주셨기 때문이라 이 말입니다. 윤석전씨 설교 [2001.4.29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
김기동 씨는 설교 시 성부의 속성을 맨 앞에서 소개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속성을 소개해야 한다.『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실천원리』김기동 저11쇄 ( 2000.2.20) p.355 ) 김기동 씨와 윤석전 씨 설교의 요지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등으로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제일 먼저 표현하는 방식으로 윤석전 씨도 설교요지를 시작하는데, 여기에서도 베뢰아 교리가 다수 표현됩니다.
김기동 설교요약
<보혜사 성령> 본문 : 요 3:1~5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가 예수를 보내사 구주가 되게 하셨으니
윤석전 설교요약
(2001.6.11)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 본문 : 요 3:l~5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시다.
아버지란 말은 본질이란 말인데,
김기동 씨 베뢰아의 교리 중에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성부=본질, 성자=본체, 성령=본영이라고 주장한 사실은 매우 유명한 내용인데, 윤석전 씨는 설교요약에서 "아버지란 말은 본질이란 말인데," 라고 베뢰아 김기동 씨의 교리를 2001년 6월에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베뢰아의 교리를 돌이켰고 모두 고쳤다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윤석전 씨의 설교 제목을 살펴보면 김기동 씨가 자신의 책 『설교 실천론』 또는『교회성장을 위한 설교학』등에서 언급된 형태의 제목설교를 하고 있는 것으로 그 많은 부분이 명령형이나 권유형으로 표현되어 이것 역시 김기동 씨의 설교 제목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교 제목 상 유사할 수 있지 않느냐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윤석전 씨의 설교 내용에서 베뢰아 김기동 씨의 베뢰아 핵심교리를 담고 있으며, 그 설교제목 자체가 김기동 씨가 설교한 내용 가운데 나왔던 특수 베뢰아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에 그러한 변명은 또 하나의 거짓말만을 지어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이 내용은 부록에 실려 있습니다.)
7. 김기동 씨 설교 내용의 측면에서 유사성
여기서는 김기동 씨의 설교와 윤석전 씨의 2001년에 설교한 내용 중에 사상과 교리적 유사성이 있는 부분으로 비교 연구된 수많은 부분에서 빙산의 일각인 일부를 계몽의 차원에서 싣습니다.
1) 성령 훼방죄 설교
성령 훼방 죄에 대해서 김기동 씨가 자주 사용하는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12장, 히브리서 6장, 10장 그리고 사도행전 5장 등인데, 이 말씀을 일반 성도들에게 성령충만과 배신 방지를 위해 동일한 방식으로 윤석전 씨도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김기동 씨
"그는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번 비췸을 ~ 또 10장 26~27절에도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 당연히 받을 형벌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는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사도들도 성령만은 훼방하지 말라 했습니다."『율법과복음』김기동 목사지음(2판 2000.7.20) p.133.
② 윤석전 씨
"그는 마태복음 12장 29절 ~ 성령을 말로 거역하면~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 10장 26절로 29절에 ~다같이 ~크게 좀 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죄! ~하나님과 원수되는 생각을 다 유산시키고, ~히브리서 6장 4절로 6절에~한번 비췸을 얻고~우린 성경의 말씀이지 내 말이 아닙니다. 믿어지시면 아멘 합시다!" 2001.5.20 엡 4:25-32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로다의 유사한 설교
이 부분은 김기동씨 설교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사상적 체계를 형성하게 되는 밑거름으로 삼고 있는 윤석전 씨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① 김기동 씨
"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곤고한 자란 비참한 자라는 뜻입니다. 참혹한 인생, 부패한 인생으로도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부패한 인생이로다. 이 부패한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했습니다."『율법과 복음』김기동 목사 지음(2판 2000.7.20) p.143.
② 윤석전 씨
"이 말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나는 참혹한 사람이로다! 나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로다! 이 말은 나는 비참하고, 참혹하고 내 스스로 나를 구제할 능력이 없는 자로다! " 2001.5.13 엡 5:15-21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3).성령은 성도를 변호하는 분이 아니고 예수 변호사이다.
이 것은 김기동 씨의 특수한 주장으로서 보혜사를 변호사라는 한가지 뜻으로 설명하고 있는 베뢰아 성령론의 핵심교리인데, 윤석전씨 역시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① 김기동 씨
"성령은 예수를 변호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보혜사는 변호사와 같은 말인데, 그 대상은 성도가 아니라 예수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이 신자들을 변호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주님을 변호하십니다. ~ 성령이 예수를 변호하시고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들도 성령에 의해서 예수를 변호합니다."『율법과 복음』김기동 목사 지음(2판 2000.7.20) p.168~169.
② 윤석전 씨
"성령만이 예수를 소개하는 변호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변호를 성경께 ?긴 줄 아시기 바랍니다. ~너희보고 증거하라가 아니라 성령이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성령만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분명하게 변호해 주시는 절대적 변호잡니다." 2001.5.27 성령은 예수의 변호자(행1:1~8)
4) 하나님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성령이시다'는 것은 성부가 성령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윤석전 씨나 김기동 씨나 보통 하나님이라고 표현할 때는 성부를 지칭하는 말들로, 설교 요지의 맨 처음은 성부하나님의 속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성부가 성령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윤석전 씨는 수 차례에 걸쳐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지적을 받아 왔는데, 베뢰아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① 김기동 씨
"하나님은 영이시라 할 때의 영이란 말은 성령을 말합니다. 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은 곧 성령이시라는 말입니다."『성령을 알자 』김기동 목사 저, p.160.
"하나님은 거룩한 영, 다시 말하면, 죄가 전혀 없으시고, 아주 신령하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그리고 거룩한 영이십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영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2001.5.13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5-21)
5) 성자의 이름은 본래 성부의 이름이었다
이 부분은 김기동 씨가 발견하였다는 진리(?) 중에 귀신론과 더불어 가장 크고 자랑스러워하는 베뢰아 <하나님의 의도신학> 중의 <하나님의 이름신학>으로 명명되는 베뢰아 핵심교리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이에 의해 요한복음 17장의 아버지의 이름은 성자의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윤석전 씨의 인용문에서 요한복음 11장이라고 말한 것은 요한복음 17장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인용된 설교의 내용은 윤석전씨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성부이름을 성자에게 주었다'와 '성령의 이름도 예수이다'라는 베뢰아 핵심 교리인 하나님의 이름신학 교리가, 결국 자신의 사상적 체계를 숨길 수는 없는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전 씨는 이것도 헌신을 강조하다가 나온 실수였다고 변명할 것인데, 진리를 수호해야 할 정상적인 기침이대위 라면 어떠한 자세를 취할지 그 사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① 김기동 씨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그 영광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전하였고 또 하늘에 가실지라도 예수 이름을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이 예수 이름으로 세상에서 보전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26절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히브리서강해 ①』2판 김기동 목사 지음, p.21.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을 아버지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공유하신 이름, 우리를 구원하신 이름,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예수 이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자 』김기동 목사 지음, p.82.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요, 아들의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아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이름이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하나님을 알자 』김기동 목사 지음, p.83.
② 윤석전 씨
"요한복음 11장 11절로 12절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가 저들을 이 땅에 계실 때에, 내 이름으로 보존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있지 아니하고,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버지께로 가옵는 것은, 저들을 이 땅에서 데려가고자 함이 아니라,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들을 누가 보존합니까?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성령으로 저들을 보존하야 주시옵소서! ( 아멘! ) 성령께 딱 ?기시고 가셨다 이 말이여! 이제는 성령은 여러분 속에 직접 들어가셔서, 전 삼고 여러분의 인격을 관리하시고, 믿음을 관리하신다 이 말이여! ~~내 영혼을 , 아버지 하늘 나라고 말씀으로 진리로 보존하야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자기 이름으로 우리를 보존해 달라고 말씀하시듯이 , 성령의 예수의 이름으로 보존 받기 원하시면 아멘합시다! (아멘!)" 2001.6.01 금요철야 성령으로 살아야 할 영혼(롬8:12~17)
맺 음 말
윤석전 씨는 그의 사상적 기반인 베뢰아의 교리를 주장한 부분에서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2001년이 된 현시점에서 살펴보아도 그는 교리적으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김기동 씨를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하고 동일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과거에 한국교회와 최삼경 목사 앞에 성명서나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단대책위원회에서 사과문이나 그가 11년 전에 모두 고쳤다는 것은 베뢰아의 교리적 바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남기 위한 기만적 행동이었을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씨는 베뢰아 김기동 씨의 설교제목, 설교요약 등을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현재도 실천하고 있으며, 설교의 형태 역시 김기동 씨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설교내용에서도 베뢰아 교리의 기반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전 씨의 설교로서 표현되는 전체의 사상은 베뢰아의 사상으로 뒤 덮혀 있으며, 현존하는 설교자 중에서 이처럼 베뢰아 교리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는 사람이 윤석전 씨 말고는 정통교단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윤석전 씨는 베뢰아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주장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적되면 사과문을 낼 지는 모르지만 그의 사상적 기반을 완전히 회개하였다는 증거가 없는 한, 정확한 사과의 실체가 없는 한 그를 건전한 목사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베뢰아의 사상을 기반으로 설교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윤석전 씨와 김기동 씨에 대한 비교를 모두 완료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확보된 자료를 통해서 김기동 씨와 윤석전 씨의 설교 내용을 중심으로 연구되는 부분을 펴낼 예정입니다.
윤석전씨는 본 글에서 제시한 자료와 같이 2001년도에도 변함 없이 베뢰아 교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는 적반하장으로 이단성을 지적한 사명 자들을 명예훼손으로 1차 고소, 2차로 윤 씨 측은 40명의 고소인 명단을 만들어 필자를 고소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본다면 고소인들의 명예에 오히려 누가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2001년도에도 회개치 않은 윤석전 씨, 베뢰아 핵심 이단설에 사로잡힌 그와 함께 고소인으로 자신도 모르게 등재되었던 분들의 명예 회복과 권리유린은 어떻게 보상 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바른 시각과 공익을 위하여 바르게 공의로 판단할 때요,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