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멜로 김대우 감독. 청소년 관람불가)
북카페 작업하러 왔다가 그제 보다 만 영화 <인간 중독>을 마저 보았습니다.
영화를 끊어서 보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건 끊어도 되더라고요. 한 발 늦게 보는 영화라 감상평도 익히 알고 있더랬습니다.
송승헌의 멜로 진입 성공작, 여주인공 임지연의 어설픈 연기, 감정의 온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조여정의 연기는
훌륭했으며, 월남전이 그 배경이고 남자 주인공이 월남전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씬이 없다는 점,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송승헌은 악몽을 꾸지만 귀여운 정글을 혼자 걸어 가는 정도. 그리고 멜로에 어울리는 비현실적인 식스팩. 오히려 그
구릿빛 식스팩으로 인해 송승헌은 군인 같지 않았습니다, 모두 동의하는 내용이고요.
여주인공 종가흔은 화교입니다.
원인결과식 단순말투를 구사하고 있어요.
- 그 날 일이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재밌어서 그랬나 봐요.
- 그 말 너무 좋아요. 숨이 안 쉬어진다는 말. 저도 그랬거든요.
- 대령님 손 너무 좋아요. 밥 먹으면서 잡고 싶었어요.
말투만큼 얼굴표정도 단조롭습니다. 그녀는 13살에 자신을 거두어준 집 아드님, 현재의 남편, 에게 다락방으로 끌려가
성추행을 당하는데요, "옷을 벗기고 내 몸을 거칠게 만졌어요." 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다음 대사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녀에 대한 루머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서 엄마는 도망갔는데 어린 애(그녀)가 보름동안 시체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아남는 방법으로 감정의 과정을 걷어내 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묘한 것은 도망갔던 엄마가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오지요, 그녀의 삶에 개입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엄마에게 아주 격렬하게 증오심을 드러내는데요, 마치 다른 영화가 삽입된
것처럼 이질적이었습니다. 감정의 과정을 걷어내버린 사람이라면 저런 태도가 가능할까, 하는 느낌.
그녀는 남편의 상사인 대령에게 연모의 감정을 갖는데요, 이로써 '감정의 과정'에 대한 연습이 시작됩니다.
과정을 연습하는 그녀는 아직 결론을 낼 수 있는 용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린 송승헌에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릴 정도로 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게, 죄는 아닙니다. 생존이 삶의 목적인 사람에게는요.
송승헌은 꽤나 중독이 잘 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담배를 줄기차게 피워대지요. 의사가 알콜은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리고 그녀의 결핍을 알콜로 채우는 것으로 보아서 알콜홀릭도 의심됩니다. 월남전 트라우마로 술과 담배에 의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중독이 잘 되는 성격이기 때문에 군인이 되고 월남전에 참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에 중독되어 있던 대령 앞에 아름다운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인질이 되고 총알에 맞아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합니다. 감정의 과정을 걷어낸 그녀에게 어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감정의 온도가 비슷한 둘은 급격하게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죽음의 반대편에 삶이 있는 것처럼 대령의 세포는 하나하나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끊임없는 예스노 작업은 대령을 미치게 합니다.
대령님을 사랑하지만 멈춰야 한답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너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상상을 그렇게도 많이 했답니다. 물론 사랑을 나누지요. 그러다가 이제는 진짜로 헤어지자고 합니다.
그녀의 예스노 작전은 송승헌을 더욱 중독시킵니다.
모르는 것에는 중독되지 않습니다. 격렬했던 정사의 기억은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핍된 상태는 늘 중독된 상태를 유지하지요.
인간 중독의 마지막은 가장 끔찍하여 그를 파멸시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고 아주 비참한 삶을 살다가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대령이 그녀를 사랑한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질 수 없어서 중독이 가능한 인간, 감정의 과정이 없으므로, 절정, 결말도 없어 늘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데에 중독되어 있던 대령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건,
자신을 파괴해 줄 여자를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해네요^^ 올 해에도 다채로운 사랑의 감정 느끼는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우...와...
가질 수 없어서 중독이 가능한...
급 궁금하네요~~ ^^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건 무엇이든 간에 충분히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또 우리는 중독을 즐기니까^^; 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복도 듬뿍요 ㅎㅎ
@동그리 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영화 봤어요. 여자들의 판타지인가?
싶으면서도 한 며칠 송승헌이 아른 아른~ ㅎㅎ
동네 언니들 말로
"그런 남자는 없어! 얘야. "
하던 얘기가 퍼뜩 떠오르기도 하고 ...
사랑에 자기를 온전히 내던지는 여자는 있어도 남자는 없더라는.
팔랑귀 하하는 헷갈리지만...
영화는 자꾸 떠오르는 맛이 있네요. ㅎㅎ
내가 아는 동그리님 맞나요? 맞다면 반가워요~! 이 영화 개봉때 보고... 참... 송승헌이 분한 주인공이 너무... 맥락없이 여자에게 빠져드는 것 같아 공감이 힘들었는데요~ 리뷰를 읽다보니... 이렇게 논리적인 영화였나? 하는 새로움이 생기네요~^^
서로 각자의 추억만큼^^;; 보는 거니까요. 톰의 정원 반가워요~~~ 잘 지내지요?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움은 여전하구요?^^ 유난히 힘들고 길게 느껴졌던 한 해였는데.. 갔네요. 새해에는 멋진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기를, 건강하시구요~~~
@동그리 흠...힘든 일이 있었나요? 동그리님은 씩씩하고 거침없이 부드러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나야 뭐... 휴우... ㅎ ㅠ 올 해는 정신 좀 차려보려고요.(맘 먹는다고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요) 동그리님,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톰의 정원 참으로 선량하신^^ 톰의 정원~ 감사해요. 개인사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힘들었던 한 해였기도 했지요. 현재진행형이지만요ㅠㅠ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나중에 반갑게 만나요!
본 지 좀 오래 됐지만 그때의 감정은 기억이 나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기는 간절함. 그것이 영원할지 궁금했고 진짜일지 궁금했는데... 마지막 송승헌의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그것이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더랬습니다. 여배우도 너무 매력있었던, 제목도 매우 인상적이었던 잼난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
저도 그 장면에서 눈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중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뒤로 갈수록 중독되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볍게 보았는데 뒤로 갈수록 묵직해지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