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292) - 중원을 돌아보며 새긴 것들
숱한 굴곡의 역사를 지닌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여러 곳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들었다. 그중 통 큰 덕담은 우리 교회 목사님이 새해 첫 예배에서 인용한 야베스의 기도(역대 상 4장 10절)였다. 우리 식탁에도 적혀 있는 야베스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새해에 모두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높여서 안팎에서 밀려오는 환난을 이기고 크고 작은 걱정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소서.
섣달그믐에서 새해벽두에 걸쳐 중국의 태항산 일원을 다녀왔다. 첫 기착지는 산동성의 칭다오, 인천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세모의 일몰을 지켜보았다. 가도 가도 광활한 지평선인 평원을 여섯 시간 달려 요성지역에서 그믐밤을 맞았다. 호텔의 국영TV는 송년특집으로 '성세종명(盛世鐘鳴), 기복오주(祈福五洲), 신사로(新絲路, 새로운 비단길), 중국몽(中國夢, 시진핑 시대의 중국비전)'을 수차례 반복하며 중국의 각 지방과 서울과 파리의 표정도 화면에 담는 등 중국과 세계를 한 묶음으로 연결하여 지구촌이 하나임을 일깬다.
만선산 깊숙한 곳에 오래전부터 자리잡은 소수민족촌
2014년 정월 초하루, 아침 7시 40분에 요성을 출발하자 곧 바로 새해의 첫 일출을 지평선에서 맞이한다. 버스가 두 시간을 달려 이른 곳은 하북성 경계, 한 시간 쯤 더 달리니 하남성에 들어선다. 오후 2시에 도착한 첫 목적지는 하남성 신향시의 휘현에 있는 천계산, 일명 회룡(回龍)이라 불리는데 노자가 은거한 도교의 발상지이자 자연풍광이 빼어난 태항산의 한 봉우리다. 푸른 산, 맑은 물, 흰 구름, 오랜 나무들이 천애절벽의 기암괴석과 함께 높고 큰 산자락이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한 폭의 장대한 그림처럼 멀리 찾은 순례자를 압도한다. 정상에 올라 풍류도인 노자의 마음을 엿보고 천고의 암벽 지층에 숙연하며 이육사의 광야를 떠올렸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떄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안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산의 정상부근에 이르는 9km의 S자형 바위터널은 이 지역 공산당 간부가 지역주민과 당료들의 힘을 모아 건설한 농촌자조사업의 수범사례로 꼽히기도.
다음날 찾은 휘현 지방의 만선산은 항일전쟁 때 100만 팔로군이 칩거한 산중요새이자 유명영화 촬영지로 또 다른 산세를 자랑하고 임주 인근의 태항대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고봉준령, 천애절벽이 멀리 찾은 일행들로 감탄을 연발케 한다. 도화곡이라 이름 붙은 계곡을 한 시간 넘게 걷는 코스가 일품이고 수십km에 이르는 산자락을 자동차로 휘돌아 보는 환상선의 절경이 현란하다.
태항산 일원을 둘러본 후 저녁 식탁에서 시선(詩仙) 이백이 태항산을 돌아보며 읊은 시 .행로난(行路難)'을 낭송하며 일행들과 태항산을 돌아본 소회를 되새겼다.
行路難
李 白
金樽清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
停杯投箸不能食,拔劍四顧心茫然.
欲渡黄河冰塞川,將登太行雪滿山.
閑來垂釣碧溪上,忽復乘舟夢日邊.
行路難,行路難,多歧路,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 값이 十千 냥 옥반에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어치라.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먹지 못하고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아득하다.
黃河를 건너려니 얼음이 내를 막고 太行산에 오르려니 눈이 하늘을 가린다.
한가로이 시냇물에 낚싯대 드리우다 홀연히 배를 타고 서울 가기 꿈꾼다.
살아가기 어려워라, 살아가기 어려워라. 갈림길도 많았거니 지금 어디 있는거냐?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뜻 때가 오리니 높은 돛 바로 달고 滄海를 건너리라.
*앞부분의 金樽清酒, 玉盤珍羞는 춘향전에 나오는 金盞美酒는 千人血이요 玉盤佳肴는 萬姓膏라는 글귀의 출처로 여겨지고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는 지난 해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할 때 인용한 구절이다.
노자가 즐겨 본 천계산 풍광
우리를 안내한 조선족 가이드 태항산의 배후도시인 임주는 최근에 급격하게 성장한 신흥도시인데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유래한 지역이고 휘현은 본초강목을 쓴 이시진의 태생지라고 설명한다.
*우공이산
옛 중국 북산에 90살에 가까운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살고 있어서, 항상 교통의 불편함을 겪었다.
이에 우공은 가족들과 사방이 700리나 되는 이산을 옮기기로 결정을 내린 후 산의 흙을 파고, 삼태기와 광주리로 나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지수라는 사람이 우공을 비웃자, 우공은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고, 아들은 손자를 낳아서 이 일을 해간다면, 언젠가는 저산이 평평해 질 날이 오겠지" 라고 했다.
이에 감동한 천제가 두산을 삭동과 옹남으로 옮겨 놓게 했다는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우공이산이다.
태항산에 이어 찾은 곳은 산동성의 성도(省都)인 제남과 경제도시 청도, 2001년에 둘러본 두 도시와 주변 지역은 10여년 사이에 크게 발전하고 변하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제남의 면모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하는 일행도 있다. 산동성은 인구가 1억이 넘고 중국농산물의 수십%를 생산하는 곡창지대인데 제남은 황하유역의 물류도시로 청도는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한 경제도시로 세계를 향하여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국몽의 현장이기도 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청도에서 발행하는 교민신문 칭다오저널에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및 해상 실크로드 구축 중'이라는 제하에 중국 정부와 민간 각 분야에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축과 국가 간 유대를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또 향후 중국 대륙에서 각광을 받을 산업분야로 스모그 오염제거 등 클린 환경산업, 한 자녀 정책폐지에 따른 육아산업, 생활수준향상에 따른 각종 서비스업이 부상할 것과 반도체산업을 집중 육성할 것을 전망한다.
이를 돌아보며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도 지경을 넓히고 걱정을 더는 일에 유심할 것을 깨친 것이 새해벽두 대륙탐방에서 얻은 소득이라 하겠다.
여행 중 외교부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고 위급상황 시 영사콜센터로 전화 주십시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한 호텔은 전광판에 '한국인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O호텔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네온과 함께 침대 위에 꽃 한 송이 올려놓아 먼 길 찾은 손님을 정중히 맞는다.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늦은 밤에 도착하니 침대머리에 여섯 살 손녀가 써놓고 간 카드가 반가이 맞는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에게 사랑해요 많이많이 멋있는 할아버지, 사랑해요.'
가족끼리 사랑하며 공동체는 협력하고 나라는 평안을,국가 간에는 선린우호가 증진되는 새해이기를.
*천계산에서 노자를 마음에 담고 내려와서인가, 자다가 깨어나니 힘들고 어려운 세상사 지나고 보니 거품이라, 티격태격, 아옹다옹 할 것 없는 가벼운 것들인 것을.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의 도통은 사리지고 일상이 다시 똬리를 트는구나. 여태껏 마음먹은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도다. 금년은 말의 해, 벽두부터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큰 땅을 돌아보았네. 각 분야에서는 주마가편(走馬加鞭)과 견마지로(犬馬之勞)로 큰일을 이루고 어른들은 노마지지(老馬之智)로 큰 덕을 베풀었으면.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도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