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출근하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똑같은 일상의 한 굴레에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할 때 그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굉장한 행동은 아니었다. 승용차를 타고 출근을 하거나 버스를 이용해서 직장에 나가는 것이나 아니면 걸어서 일터에 간다는 것의 공통점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간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시간과 경제적인 면이다. 대부분 나는 카풀을 이용해서 출근을 한다. 방학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면서 아니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신발을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을 것을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걸어서 출근을 해 보자는 나의 심산이 들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참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식사를 하면서 피식 웃었고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샀으나 그것은 내가 스스로 좋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누르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신발장에 누워있던 운동화를 꺼냈다. 적당하게 줄을 메고 집을 나섰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것이 춥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외곽도로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도로 옆에 좁은 보행자를 위한 도로가 나 있다는 것인데 폭이 아주 좁아서 안전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사차선 도로를 건너서 혼잡한 도로를 피해 조금 돌아간다고 생각이 되지만 논둑과 제방 옆길을 걷기로 했다. 아직 봄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무채색 행렬 속에서 초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원한 바람과 초록의 꿈틀거림 그리고 흙 냄새를 즐기며 콧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시장(牛市場)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보았다. 한창 번창했던 시절에는 하루 장에 수 백 마리의 소가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흉가처럼 방치되어있었다.
제방을 따라 걸었다. 몇 년 전에 예당저수지에서 방류한 물로 말미암아 많은 농경지가 침수되고 집이 물에 잠기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때 모 방송국에서는 생중계방송까지 했었는데 사실 그 위험성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방 위로 물이 넘치고 도로까지 침수되었을 때 자연의 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방을 지나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정확한 길이는 몰라도 삼 사백 미터는 넘을 듯한 다리를 건널 때 제방 바로 아래에서 흑염소 두 마리를 보았다. 참 우스운 것은 흑염소의 집이 회색의 컴퓨터 책상이었다는 것이었다. 컴퓨터용 책상이 재활용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왜 그리 우스운지 한참 웃었다. 다리를 건너서 사차선도로옆길을 가는 데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들로부터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갓길을 따라서 걸으면서 특별하게 딴전만 피우지 않으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오가 삼거리에 오니 땀이 배어드는 것을 느꼈다. 땀이 난다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등산을 할 때만큼의 시원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나의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건물들을 지나면서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그 곳 부 터는 이차선 도로로 이어졌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지만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차선으로 확장이 되면 자동차가 속도를 높여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더 커지리라 생각을 했다. 소방서를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니 과수원이 눈에 들어왔다. 과수원을 바라보면서 톡톡거리는 가을 햇살을 머금은 빨간 사과가 생각이 났다. 작년 가을 우체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가을 사과의 향기에 푹 빠졌던 생각이 났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사과가 많이 생산되기에 즐겨 먹는데 그 사과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제 FTA(자유무역협정)의 국회 통과로 칠레산 과일이 물밀 듯이 우리 시장을 점유하면 당장 사과를 수입하지 않는다 해도 포도 등 값싼 다른 과일이 들어와 그 소비의 증대로 말미암아 사과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우리 지역의 사과나무가 과수원에서 뿌리째로 뽑혀져 나갈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 않아도 사과과수원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사과나무를 뽑고 배나무를 심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마저 뽑아낸다고 하니 농촌 현실이 참 암담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교문을 들어서니 집에서 출발한지 1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5.5Km 정도가 되는데 빠른 걸음으로 걸은 것이 아니어서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이 되었다. 교무실에 들어서서 걸어서 왔다는 말을 하자 선생님들이 대단하다는 말을 했다. 사실 그것이 대단한 것은 아닌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걷기가 생활화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매일 6Km를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오늘 한 시간 동안 걸은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 좋은 아침을 열 수 있게 해주었다. 앞으로 바쁘지 않은 시간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걸어서 출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서 마시며 열린 창문을 통해서 불어오는 봄을 재촉하는 바람결에 아침을 흘려보내고 있다.
200402171010
첫댓글 방금 국장님처럼 둑방길을 산책 했는데,오랫만에 걸으니 기분이 한결 시원 해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