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어원 및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감(empathy)은 독일어 Einfühlung이라는 말에서 왔고, 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Robert Vischer이다. Einfühlung은 독일 미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상담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에 있다.
공감은 그리이스 말 empatheia에서 왔다. empatheia의 em은 ‘in’, ‘into’, 그리고 ‘within’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라틴어의 pathos는 ‘고통’, ‘열정’을 뜻한다. 미국에서 공감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Titchener가 그의 저서 「Elementary Psychology of the Thought Processes」(1909)에 이 말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Titchener는 공감을 “마음의 근육(the muscles of his mind)을 움직이는 것”이라 하였다.
empatheia의 어원에서 볼 때 empathy(공감)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열정을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이동식은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 하였고, 동양적 의미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서양의 공감에 해당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서양의 상담 및 심리치료 영역에서 공감의 개념은 인간중심주의 접근의 Rogers와 현대정신분석학의 자기심리학자 Kohut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치료적 동인으로서의 공감
공감의 치료적 역할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것은 공감을 치료적 도구로 보느냐 아니면 치료 그 자체로 보느냐이다. 여기서는 인간중심접근에서의 공감의 치료적 역할과 정신분석에서의 공감의 치료적 역할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중심접근에서는 공감의 치료적 공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원리를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막혀있었거나 적절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내담자의 경험과정에 상담자가 공감을 하게 되면, 내담자의 경험과정은 다시 흐르게 되고 교정되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내담자에게 열려있지 않은 경험 영역은
그 영역에 대한 자기 공감의 상실이나 부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자를 통하여 내담자가 충분히 이해 받고 수용 받게 되면,
이전에 외면해 왔던 자신의 경험들과 접촉하게 되고 이를 수용하게
되면서 신비스러운 자기 성장의 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공감이 유익한 또 다른 점은 내담자가 그들 자신과 관계하는 방식을 학습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공감적 이해는 경험과정과 삶의 이야기를 재작업 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지만, 특히 아동기에 적절한 공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고통에 처해 있는 내담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의미 있는 타인들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한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에 공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경험에 공감하는 방식은 내담자가 그들 자신의 경험과 공감적으로 관계하는 방식으로 내재화된다. 이는 상담자에게 사랑 받은 내담자가 드디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치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중심 접근에서의 공감은 자기에게 힘을 북돋우는 원리(self-empowering principle)에 근거하고 있고, Rogers는 공감
그 자체가 치유적 인자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중심 접근에서 공감의 치유적 역할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담자의 경험에 상담자가 공감했음을 표현하게 되면, 내담자는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되고 자신에게 더욱 진실해진다. 즉 상담자의 공감은 내담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수용하게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를 촉진하기 위한 상담자의 과정 목표는 내담자의 경험을 수용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탐색과 발견을 통한 학습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가기 두려워하는 곳을 가도록 격려하며, 이를 통하여 내담자는 자신의 내적 경험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관계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자각이 확장된다. 여기서 상담자의
과정 목표는 탐색의 촉진자, 탐색의 동반자, 공동-탐색가(co-explorer)가
되는 것이다.
한편, 고전적인 정신분석에서는 공감을 일차적인 치유적 요인으로 보기보다는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enabling)으로 보았다. 즉 고전적인 정신분석에서는 치유적 동인이 되는 것을 해석으로 보았고, 공감은 해석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배경 변수로 보았다.
그러나 현대정신분석학의 자기심리학자들은 공감 그 자체가 치유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본다. 공감과 관련된 대표적인 자기심리학자가 바로 Kohut인데, 초기에 Kohut는 공감을 대리적 내성(vicarious introspection)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공감은 단지 자료수집(data gathering)을 위한 방식이며, 이론형성(theory building)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방식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초기에 Kohut가 해석을 위한 자료 수집 방법으로서 공감의 사용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발표한 그의 논문에서 그는 “임상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삶에서 공감이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며, 넓은 의미에서 치료적이다”라고 기술한 것을 볼 때, 그가 공감에 대하여 Rogers와 매우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여 갔음을 알 수 있다.
Kohut는 치유적인 치료는 자기와 자기 대상(self object)간에 공감의 길을 여는 것, 특히 좀 더 성숙한 성인 수준에서 자기와 자기 대상간의 공감적
조율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Kohut에 의하면 사람은 발달 과정에서 자기 대상의 요구가 있다. 이 요구는 마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평생 산소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평생 요구되는 것이다.
특히 유아기에 돌보는 이의 공감적 실패는 유아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며, 아동기의 공감적 실패는 자기구조화 과정의 결손을 초래하게 만든다. 따라서 치료란 발달 초기에 충족되지 못했던 자기 대상의 요구를 공감적 이해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 충족은 내담자의 자기 결손을 보수(repair)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담자들은 상담자의 계속되는 공감적 관계 속에서 어렵지만 그들 자신의 경험을 처음으로 버틸 수 있게 되고, 상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버텨주는 것을 자신 속에 내재화하는 것을 통하여 마침내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버틸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까지 확대된다.
이상에서 볼 때 Rogers와 Kohut 둘 다 공감 그 자체를 치유적인 인자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상담 경험을 통하여 볼 때 필자도 Rogers와 Kohut의 견해에 동의하는 바이다. 공감은 어떤 이론이나 기법이 될 수 없고 하나의 체험이며 상담자로서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자로서의 끊임없는 수련만이 내담자의 마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