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공동선>에 실렸던 글입니다.
일상으로 이루어가는 공동선
‘세상에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스승은 바로 곁에 있다.’
언젠가 내가 생각해 낸 말인데,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내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스승이 되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런 스승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데 텔레비전도 그 중 하나이며, 내가 스승을 만나도록 잘 도와주는 프로그램은 다큐나 일상에 관한 것이다. 그중 최근에 두 어 차례 방송된 빙초산에 관한 프로그램은 우리 모두를 깨어나게 해주는 신선한 것이었다. 한국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초에 관한 내용인데 ‘빙초산은 식초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중국집이나 치킨 집 혹은 횟집에서 흔히 만나는 식초가 사실은 희석시킨 빙초산인데 미국과 유럽에서는 식용이 아니라 독극물로 분류되어 있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천연식초(현미식초, 사과식초, 감식초 등) 대신 빙초산으로 만든 합성식초를 사용하는 이유는 값도 저렴하지만 손님들이 깔끔하고 톡 쏘는 진한 맛을 원하기 때문이며, 음식이 쉽게 상하거나 변질되지 않고 오래간다는 점 때문이다.(절임무, 단무지, 반찬류, 쥐포, 오징어포, 오징어채, 냉면용 가오리무침 등)
2. 원래 빙초산은 곡물이나 과일을 식초로 만든 후에 증류하여 초산 성분만 99% 추출하여 제조해야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가격이 비싸지고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예 이런 발효과정을 생략하고 석유를 정제하여 빙초산을 얻는다.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빙초산은 거의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얻는 것이다.
3. 식용 빙초산은 공업용 빙초산에서 중금속만 제거한 것인데 공업용빙초산은 섬유 염색제, 제초제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빙초산이 식용으로 등록은 되어있지만 진짜 먹어도 되는지 그 안전성은 의문이다.
4. 이렇게 빙초산으로 만든 합성식초는 알레르기나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고, 피부에 닿으면 화상, 안구 장애를 일으키며, 인체의 점막조직에 염증(위염)을 일으키거나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빙초산은 엄연하게 따지면 우리가 조리할 때 마음껏 쓰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초(양조식초)와는 엄격하게 다른 성분의 것이다.
검색을 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옮겨보았다. 선택은 오롯이 나 자신의 몫이다. 삶의 어려움은 대부분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알고 있지만 잘 안되는 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몰라서 못했다는 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설명을 안 해줘서 몰랐다면 설명을 해 줘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공동선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식초에 관한 방송을 통해 내가 만난 두 사람의 스승은 서울의 윤홍철님과 장흥의 장유환님이었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비용절감과 고객의 입맛 맞추기를 위해 빙초산식초를 쓰고 있는데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천연식초를 사용하고 있었다. 치킨가게를 하는 윤홍철님은 쉽게 사서 쓸 수 있는 빙초산식초 절임무 대신 이틀에 한 번씩 비싼 천연식초로 직접 담근다. 기왕에 담그면서 무 뿐 만 아니라 양파 당근 등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재료를 함께 넣음으로써 단골고객들은 그 맛에 반해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귀찮은 일을 마다않는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우리 집을 찾아주시는 고마운 고객들에게 인체에 해가되는 음식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1회 졸업생이라는 난곡초등학교에 가보고 싶다.
장유환님은 대대로 전수해온 막걸리 식초로 바지락무침을 만드는 식당 주인이다. 그렇게 해야 좋은 맛이 난다는 것을 알기에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좋은 막걸리를 확보하여 빙초산식초 대신 막걸리식초를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고, 그 맛을 알아차린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편리성과 수익성을 포기한 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마다않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삶이 가장 기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이런 일을 기쁘게 실천하는 분들을 ‘일상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스승들이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늘 초청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고속버스인데, 거기서도 ‘일상의 스승’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몇 분을 소개하고 싶다.
출발 직후, ‘안전벨트를 매고 휴대폰은 진동으로 하라’는 빤한 안내멘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님께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안내를 하고 있었다.
“고속으로 운행을 하다보면 피치 못할 위험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를 위해 귀찮으시겠지만 안전띠를 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순간이 와도 위험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휴대폰도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니 꺼둘 수는 없겠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가다보면 옆 사람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진동으로 해 두시고 통화를 하실 때도 작은 소리로 짧게 마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따스하고 정감어린 말씨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안전띠를 매거나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으면서 모두들 싱글거리고 있었다.
간단한 음향장비와 악기를 들고 다녀야하는 내게 짐은 떼어낼 수 없는 혹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짐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과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날도 평소처럼 짐을 싣기 위해 기사님께 수하물 칸을 열어달라고 청했다.
“괜찮으시면 위에 실으시지요. 승객이 꽉 찼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오늘처럼 승객이 많지 않을 때는 곁에 두고 가시는 것이 더 맘 편하지 않겠어요? 아래쪽보다는 안심도 되고 가시다가 필요한 것을 꺼낼 수도 있구요. 오르고 내리실 때 불편하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공손하고 사려 깊은 기사님도 있었다. 나보다는 한참이나 젊은 사람이 그랬다. 기쁨 가득한 해맑은 얼굴과 명찰 이름(금호고속 박상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어느 가을날 남쪽에서 만난 산들바람 같은 감동 한 자락이다.
“잠시 이곳 휴게소에서 쉬었다 갈랍니다. 내리셔서 바람도 좀 쐬시고 가볍게 운동도 쪼깐(좀) 허십
시다. 우리가 이라고 다니는 것도 다 살자고 하는 것인디, 모다들 힘을 냅시다. 15분간이지만 좋은
휴식이 되기 바라것습니다요.”
말씨가 얼마나 정겨운지 잘 알고 지내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 모두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엷은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려 휴게소로 향한다. 약속된 15분 후에 버스로 돌아온 기사님은 자상한 표
정으로 모두 잘 탔는지를 살핀 다음, 다시 한 번 안내를 하신다.
“잘들 쉬셨습니까? 죄송하게도 사고여파로 많이 늦어졌읍니다만,
막히지만 않으면 도착지까지 1시간 5분 정도가 소요되겄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허니께 안
전띠는 꼭 매시고요. 장거리 여행으로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응께 가능하면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함께 노력헙시다잉~.”
정말 감동이다. 느리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찌나 정겨운지 여행에 지친 심신을 평안히 달래어 준
다. 그 평안함을 자장가 삼아 잠시 잠이 들었다 깨었더니 벌써 도착하였는지 모두들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는데 기사님은 문 옆에 서서 일일이 인사를 하신다.
“편안들 허셨습니까? 안녕히 잘 가십시오. 저를 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언젠가 또 뵙겄습니다잉~.”
넉넉하고 편안한 웃음으로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고 다시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을 즈음 기사님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차고지로 움직이며 닫히는 앞문 틈으로 기사님의 얼굴과 함께「중
앙고속 권덕순」이라는 이름표가 보인다.
텔레비젼이나 인터넷에서는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는 뉴스나 기사거리들이 매 순간 쏟아져 나오
고 있다. 어떤 때는 세상이 이대로 망해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도 있
고 알아도 막을 수 없는 필요악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내 이익과 편의를 위해 다
른 사람을 해치는 나쁜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원죄가 있다
면 아마도 ‘이기심’일거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자
신의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윤홍철님, 장유환님, 박상완님, 권덕순님, 이 밖에 이름을 기억하
지 못하는 수많은 ‘일상의 스승’들께 동시대에 태어나 나와 함께 지구별에 살고계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 한 곡 들려드리고 싶다.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김용택 시 / 김정식 곡 「짧은 해」)
첫댓글 맞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 한 분 한분이 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