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종을 친다는 말을 듣고 몰려든 듯 합니다. 종 주위로 한켠에는 범종 제작과정을 담은 사진이 일렬로 배치되어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고요, 또 한켠에는 성덕대왕신종 모형이며 종소리 녹음 테이프를 파는 곳도 있습니다. 종 모형은 우리같은 학생이 사기에는 턱없이 비싸보입니다. 대신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녹음 테이프를 단돈 1,500원에 주고 삽니다. 행사시간이 다가오고.. 종각 앞은 인산인해로 발디딜 틈도 없고 잘 안보이고 해서 박물관건물로 올라갑니다. 여기서도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행사가 시작되자 한복을 점잖케 차려입으신 경주박물관장님이 연설을 하시고 뒤이어 경주시장이 연설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말은 없는지 지름와서는 단 한마디도 기억에 나지 않는군요. 기껏해야 에밀레종을 칭찬한다거나 다시 쳐서 기쁘다는 내용정도일까요? 어쩌면 제가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데 소홀해서 일까요? 어느덧 10분 정도 씩의 연설이 끝나고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분들이 종앞에 절을 합니다. 그리고 종앞에 앞서섰던 유지분들 부터 시작해서 일반시민분들까지 각각 하얀 꽃을 종 앞 받침대에 정중히 엊어 놓습니다. 한 어린이가 꽃을 놓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아무래도 종을 친다는 데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면 에밀레종은 이미 하나의 종이 아닌 우리의 정신적 지주들 중의 하나가 된 듯 합니다.
이런 과정이 끝나고 여기있는 분들 모두가 기다렸을 타종이 시작됩니다. 먼저 신라 고대의상을 입으신 두 남자분이 천천히 타종기구를 종으로 끌어당기는가 싶더니 "광~~~~~~~~~~~~~~~~~~~~ ~~~~~~!"하는 종소리가 장중하게 흘러나옵니다. 긴 여운이 바쁜 일상에 찌들렸을 우리의 마음을 씻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밀레종에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여념이 없군요.
점점 치면서 종을 치는 강도가 높아지는지 종소리가 더욱 진해집니다. 진중함과 장중함이 함께 배어나오는 듯 합니다. 종소리에 맞추어 옷을 곱게 차려 입으신 한 여자분이 종소리에 맞추어 사뿐사뿐 광목을 휘두르며 춤을 추어봅니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오셨던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에밀레 종소리를 사랑하시는 분 같습니다.
어떤 분은 종소리를 자신의 전화기로 친구에게 전해 들려줍니다. 종소리가 울리는 때 만큼은 모두들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합니다. 그 옛날 신라시대 봉덕사에서 첫소리를 울렸을 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겠지요. 한편으로는 아이를 에밀레종의 제물로 바쳐야 했던 슬픈 전설이 생각납니다. 한편으로는 이 종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부담을 져야 했던 백성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됩니다.
종을 치고 여운을 느끼고 다시치고 하는 모습이 20여분동안 15차례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종을 치는 순간 만큼은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들입니다. 작년 2001년도에도 이맘때 쯤 쳤다고 하니 1년만에 치는 종이로군요. 그래서 10여년 전만해도 아침에 조용히 종소리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신비한 종소리에 대한 추억을 나누어가질 수 밖에요.
종을 다 치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갑니다. 이 후로는 경주박물관에서 풍물놀이가 치러지고 한켠에서는 다도(茶陶) 체험이 한창입니다. 전통에 맞추어 차를 마시는 자리인데 다기 앞에는 작고 먹음직스러운 떡이 몇개 놓여 있습니다. 떡은 차를 마시다 보면 출출해지기 때문에 하나씩 먹게 되는 것이죠. 차가 다이어트의 효과도 있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게 됩니다.
난 경주박물관에 놓여져 있는 야외 문화재들을 둘러봅니다.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고선사지 탑이죠. 감은사지탑과 같은 장중함이 돋보입니다. 거기다가 한층 더 무게있는 모습이로군요. 여기서 박물관 직원인 듯한 분이 학생들에게 이 탑을 감은사지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은사지는 문무왕이 죽으면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유언을 남긴 후 신문왕이 문무왕의 뼈를 뿌린 대왕암 근처에 만든 절입니다.
박물관 실내전시장은 1주일전에 이미 다 둘러봤고.. 실외전시장에는 제자리를 잃은 석탑이며, 석불, 석탑동이 등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마치 박물관이란 모습은 자리를 잃은, 집은 잃은 문화재들의 집합소라고나 해야할까요? 누군가 박물관은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까 성덕대왕신종 앞은 한창 사물놀이로 신나는 모습들입니다.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고요.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 장난치는 아이들, 싸우는 아이들, 벌받는 아이들, 어릴때 한 번쯤은 겪었을 듯한 초등학생들의 모습입니다. 한편 정문 맞은편 잔디밭에 일렬로 서있는 석탑몸체에 새겨져 있는 부처님의 모습은 온화한 웃음으로 답사길을 반겨주는 듯 합니다.
이젠 경주박물관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러 나가니 정류장이 어딘지 영 알수 없군요. #1332(부산-포항)타러 가야 할텐데 버스는 여러대 지나가고.. 물어 물어 허무하게도 경주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1번 좌석버스(1050원)에 몸을 싣고 불국사역으로 갑니다. 기차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 11시55분이라고 짐작을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15분이 소요되고 시간도 좀 남습니다. 불국사역은 그야말로 아담한 역입니다. 차 시간을 보니 11시 58분 이로군요. 타는 사람은 2명이로군요. 입장권을 취급을 않한다고 하는군요.
한가한 플랫홈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일은 항상 생각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마침 박준규님과 통화를 해보니 아까 불국사역 스템프찍고 포항을 거쳐 영천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통화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저 멀리서 #1332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군요. 입석으로 가야 하는 상태, 출입난간에 문을 연채로 앉아 가봅니다. 통일호에서 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죠. 경주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자리가 나지만 역시 사람들은 많은 상태, 경주역을 벗어난 열차는 형산강을 건너고 경주시내를 지나 천천히 포항으로 향합니다. 안강지역에서의 평야와 논을 끼고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철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벼를 베기전이라 황금빛으로 빽빽히 채운 논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 없습니다. 저 한켠에는 벼를 베고 있어 가을은 결실의 계절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보기에도 정겨운 안강역을 지나고 어느새 오른쪽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우리열차는 4차선 도로의 차들에게 앞자리를 내줍니다. 효자역을 지나 포항역에 도착합니다. 1시 도착!
#1316(포항-동대구)까지는 1시간 45분이 남아있지만 어디 보러 가기에는 여의치 않은 시간인 듯 합니다. 포항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팜플랫을 하나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겠군요. 표지에는 호랑이의 모습이 우리나라 지도 모습을 하며 표호를 울리고 있고 꼬리에 포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호미곳, 죽도시장, 보경사, 등대박물관, 내연산, 구룡포항 피데기.. 한번 포항도 샅샅이 보고 싶습니다. 물론 포항제철소 하면 빼 놓을 수 없지요.
길을 건너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3000원이라는 가격에 든든함, 식사를 마치고 40분정도 남았는데 표를 사러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군요. 에드몬슨 승차권을 사보니.. 가격이 크게 써져있고 승차권 앞면에 00역 발매뒤에 번호가 안나와 있습니다. 학생할인이라 2할이라는 붉은 글씨가 승차권 가운데 표시되어 있고.. 신형에드몬슨의 등장입니다.
여기서 동대구역에서 탈 #240승차권을 미리 발권합니다. 동대구역에서 발권할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개찰구 앞에는 정마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 통일호 수요가 꽤 많은 편이로군요. 출발 20분전에 객차의 자리를 모두 차지한 상태로군요.
14:45분 #1316열차가 출발합니다. 아까왔던 형산강을 지나 안강을 지나다가 잠을 깨보니 나원역을 지나고 있군요. 중앙삼각선과의 분기역이라 역규모는 꽤 되지만 수요는 역시 재미를 못보는 역입니다. 경주에서 기관차를 돌려 붙이느라 상당시간 정차하고 반대방향으로 돌아오는 4400호대 기관차의 모습은 특대형에 비해 앙증맞은 모습입니다.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니 잠이 쏟아 지는군요. 졸다가 깨다가.. 반복을 하고.. 잘 졸지 안으려서 애를 쓰지만.. 영천, 하양을 지나 동대구역에 도착합니다.(17:03)
바로 건너 서울행 홈으로 냅다 뛰고 #240열차가 이어 들어옵니다. 마침 내가 타고 온 #1316은 #1317로 바뀌어 특대형 기관차가 입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탑승열차.. 항상 그렇듯이 잠에 빠지게 되더군요. 그래도 지천에서 김천까지는 되도록이면 잠으 이겨봅니다. 낙동강의 모습도 있고 경부선 간이역들의 모습들도 아름답기 때문이죠. 지천, 신동..
오늘의 여행도 열차에서 잠을 이루며 마칩니다. 요새 부쩍 여행중에 잠이 는것 같습니다. 안좋은 현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