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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 옛날, 그 드라마" 라는 주제를 정하면서 무엇을 첫번째로 할까, 고민을 잠깐 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드라마가 바로 MBC <전원일기> 였습니다. 무려 22년 2개월이나 TV 전파를 타면서 'MBC 드라마' 의 전통이 되었던 이 드라마라면 "그 옛날, 그 드라마" 라는 주제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아마, 노인이 되신 분들이나 지금 제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나 드라마 <전원일기> 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전원일기> 를 챙겨 봤든, 챙겨 보지 않았든 22년의 세월 속에서 꼿꼿이 살아있던 <전원일기> 의 '명성' 은 드라마라는 존재 자체를 뛰어넘은 하나의 고유명사였으니까요.
1980년 10월 21일이었지요. 이 작품이 시작된 때가 말입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주제로 처음 방송을 타기 시작했을 때 <전원일기> 의 극본은 차범석 씨가, 연출은 이연현씨가 맡았었습니다. 연기자도 나무랄데가 없어서 당대 최고의 '커플' 이었던 최불암-김혜자 콤비 뿐 아니라 이제는 고인이 되신 정애란 선생님, 고두심, 유인촌, 김용건, 박순천, 김수미 등이 이 작품에 출연했었습니다. 아마 이 배우들은 <전원일기> 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리 오래 이 작품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단 한명의 이탈도 없이 이들은 22년 동안 <전원일기> 를, 더 나아가 농촌과 안방극장을 꿋꿋이 지켜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마치 '자석에 끌려오는 것처럼' 촬영을 했다고 하니 <전원일기> 는 이 배우들에게 일터인 이전에 생활이었던 셈입니다. 이들이 지금처럼 회당 몇 백, 회당 몇 천을 받는 스타들이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겠죠. "단 한번도 인기를 위해 연기를 한 적이 없다." 던 김수미의 말처럼 인기가 아니라 진정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일기> 에 이 대단한 배우들이 출연했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축복입니다.
22년 동안 배우들은 한 자리를 지켰지만 연출과 작가는 참 많이 바꼈더랬죠. 이연헌, 김한영, 이관희, 이은규, 강병문, 권이상, 이대영, 조중현, 김남원, 정문수, 오현창, 장근수, 최용원 등이 모두 이 작품을 거쳐간 연출자들이고 작가도 차범석을 시작으로 김정수, 박예랑 등 10여명의 작가들이 <전원일기> 를 만들어 왔습니다.
평일 시간대에서 일요일 오전대로 시간이 바뀌면서 시청률도 많이 떨어지고 그래서 pd 들 사이에선 <전원일기> 가 '수건돌리기' (수건을 잡으면 빨리 다음 사람한테 넘겨야 이득인 것처럼, 전원일기도 빨리 넘기는게 상책이라서) 로 비유되기도 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일기> 의 제작진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에게는 '한국 최장수 드라마' 와 함께 했다는 명예로운 훈장도 함께 남을테지요.
특히 <전원일기> 를 10여년간 이끌어 온 김정수 작가의 기개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MBC 에서 알아주는 거물 작가이자 언제나 인생에 대해서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는 김정수 작가는 <전원일기> 와 함께 보낸 10년을 '생애 최고의 순간'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답니다. 그녀가 작품을 맡았을 때가 <전원일기> 의 전성기였음은 아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테구요. 최근작 <누나> 를 끝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텐데 하루라도 빨리 그녀의 좋은 드라마를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어도 자극과 자극을 달리는 요즘 드라마 사이에서 김정수의 드라마는 안온한 휴식처가 될 테니까요.
70~80년대 도시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 중에 농촌의 자식이 아니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겁니다. 드라마 <전원일기> 는 그들에게 드라마 이상의 '고향' 같은 존재였고, 삭막한 도시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 같은 맑고 깨끗함을,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순수함과 따뜻함을 소유한 작품이었을거예요. 그것이 바로 <전원일기> 가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2년의 세월을 관통해 <전원일기> 는 '박수칠 때 떠나라' 는 첫회의 제목처럼 정말 드라마틱하게 '박수칠 때' 떠나는 현명함을 보였습니다. 낮은 시청률로 고전할 때에도 출연료를 삭감하면서까지 드라마를 만들었고, 작품이 휘청거릴때는 방송국 높으신 분들과 담판을 지을 정도로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배우들은 <전원일기> 가 끝날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없듯이 ‘전원일기’의 종영은 내 삶의 ‘이별연습’ 이라고 생각한다." 라구요.
배우들의 말처럼 <전원일기> 는 그렇게, 정말 우리네 인생처럼, 방송국을 떠났습니다. 인간을 그렸고, 인생을 그렸고, 삶을 그렸고 그렇기에 감동하고, 전율하고, 공감했던 드라마 <전원일기>. 어렸을 때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보던 드라마를 이제는 훌쩍 큰 지금 아련히 추억합니다. 그 옛날, 그 드라마 그 첫번째 이야기, <전원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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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푸근한 고향생각나는 드라마였는대 아쉽드라구요
전통있는 드라마였는디,,속상합디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