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신약신학」에서 예수의 윤리는 제자도의 삶이라고 단정하고, 사랑의 실천이 제자의 도라고 간파했다. 그는 구약의 율법과 구전을 예수께서 거부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라 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사랑은 심지어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사랑은 단순히 감정상의 표현이거나 말의 표현만이 아니라 행동의 표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제자도로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모든 소유의 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예수께서 부자들에게는 신랄하게 말씀을 하셨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애정 어린 태도로 대하신 이유가 된다. 예수께서 이러한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그의 제자도가 빈부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경제관념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편 갈라 대우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복음서에서는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이를 통해 제자도의 내용을 좀 더 분명히 밝혀 보자. 예수께서 세운 사랑의 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원수 사랑의 계명이고(마 5:44; 눅 6:27. 이는 산상설교의 중심 테마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다(막 12:28-34).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고 부유한 자들을 저주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이것은 진정 엄청난 선언이다. 일상적 상식을 뛰어넘는 실현불가능의 윤리이기에 차라리 그것은 상징이라고 해석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원수 사랑의 윤리는 산상설교의 구조적 내용을 분석해보면 좀 더 그 뜻이 밝혀진다.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7장 29절까지의 산상설교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본문은 전통적 해석에 대한 도전(대당명제, 5:21-48)과 바리새파의 의로움을 비판하고 도전하며(6:1-18), 제자들이 지켜야 할 새로운 의로움(6:19-7:27)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 본문의 설교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라고 그들을 세상으로 파견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설교가 단순히 불가능의 윤리도 아니고 상징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제자들이 감수해야 될 기본적인 요청이요, 마음가짐인 것이다.
또한 사랑의 윤리는 사랑의 이중계명이라 불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첫째는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막 12:28-31). 이는 사랑의 본질을 치우침이 없이 간파한 사랑의 대강령이었다.
제자도의 내용에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자기희생’이다. 제자가 실천해야 할 사랑의 길은 바로 자기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은 동시에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며, 십자가를 지는 길이고, 주를 따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는 고난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마가복음 8장 27절에서 10장 45절까지는 구체적으로 예수의 길이 십자가 고난의 길이며, 누구든지 그의 제자가 되려면 승리가 아니라 고난이 제자들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본문이다. 마가복음에는 제자의 도를 절대 추종(막 8:34-35; 10:28, 38), 무소유(막 6:7-13; 10:21), 섬김(막 9:35; 10:43-45; 12:38-40), 사랑(막 12:30-31)으로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예수의 제자도는 사랑의 실천이라 할 수 있고, 그 사랑은 위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고 옆으로는 이웃에 대한 사랑(심지어 원수에게까지 사랑)이며,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곧, 제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 모든 사람이 그를 예수의 제자인 줄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요 13:34-35; 14:15). 또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포기의 정신을 가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체 복음서에서 말하는 제자도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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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볼 때 자기희생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의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합당한 제자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참 제자도의 실천적 의미는 부귀와 권력을 타협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해 낮음과 가난을 택하는 것에 있으며, 동시에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와 함께 하는 것이 곧 제자도를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제자의 도는 마땅히 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의 사랑과 정신과 무관한 일은 결코 제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가 예수의 제자들이 모인 곳이라면, 우리 모두는 제자도의 실천적 의미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제자도의 의미를 망각하지 않고 실천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삶의 현장에서 제자도의 실천적 의미는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할 우리 모두의 몫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2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