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월 일.원명정사 법문.
47.대주 혜해 선사
대주 혜해선사가 처음 마조를 참예하니
마조조사께서 이르기를 “어느곳에서 왔느냐?"하니
대주스님이 이르기를 “월주 고을의 대운사에서 왔습니다."하자
조사께서 이르기를“여기에 와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가?"하니
대주스님이 이르기를“불법을 구하려고 왔나이다."하니
조사께서 이르기를“자기 집에 갈무리한 보물을 팽개치고 다른 곳으로 헤매고 와서 무엇을 하려느냐? 나의 이 속에는 한 물건도 없거늘 무슨 불법을 구하는고?”하자
대주스님이 드디어 예배하고 묻기를“어떤 것이 바로 惠海의 자기 집에 갈무리한 보물이나이까?”하니
조사께서 이르기를“곧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곧 너의 보물 창고에 일체가 모두 갖추어져서 다시 작아서 부족함이 없으며 사용함에 마음대로 할것(自在)이거늘 어찌 밖을 향해서 찾고자 하느냐?"하자 대주스님이 그 말아래 아는것(알음알이)으로 말미암지 않고 스스로 본심을 알아 뛸 듯이 기뻐하며 예배로 사례를 하였다.
강설: “네 스스로 갖추고 있는 것이 본래 원만하여 임의자재하게 쓰는 것이거늘 어찌 밖을 향해 찾고자 하느냐?"하는 말씀아래 스스로 본심에 계합해 깨닫게 되어 법희가 뛸 듯이 기뻐 절을 올려 감사함을 올렸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환희용약의 법희열이 스스로 발현되게 된 것이다.
대주선사가 이르기를“몸과 말과 뜻이 맑아 깨끗해지면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이 출세한 것이라 하며 身口意가 청정하지 못하면 이것을 부처님이 떠난(멸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강설: 중생의 身口意가 청정하면 바로 그서이 곧 부처인 것이요, 佛의 출세라고 이름하는 것이나, 身口意가 청정하지 못하면 佛性이 가려져 발현되지 못하므로 떠난(滅度)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P450의내용 추가 76.대주선사)
대주선사가 어떤 승이“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으니 사께서 이르기를“부처의 쓰임을 하는 것은 바로 부처의 성품이요, 도적의 씀을 짓는 것은 바로 도적의 성품이요, 중생의 씀을 짓는 것은 중생의 성품이라. 自性은 형상이 없어서 작용함에 따라 이름을 세우나니 그러므로 경(금강경)에 이르시기를‘일체의 현성이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이 있다."하셨느니라.
또 승이 묻기를“설할 것 없는 이것을 이름하여 설법이라 하셨으니 선사께서는 어떻게 체달하여 아시나이까?"
사께서 이르기를“반야의 바탕(체)이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것이 있음이 없기에 이것을 이름하여 설할 법이 없다하며 이것을 이름하며 설법이라 하는 것이니라."하셨다.
강설: 불성은 형상이 없는 진공묘유(반야)하여 본래 둘이 없으나 작용에 따라서 부처와 범부와 도적의 쓰임이 되어 나누어져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본성은 둘아닌 것이다.
법이 상이 없어 설할 것이 또한 없으나 거짓으로 비유로써 설함으로 설해도 설함이 없는 실다운 것이 없는 것이라 하며 이름하여 설법은 실다움도 없고(無實) 헛됨도 없다(無虛)하나 理와 事가 일치되므로 眞實不虛라 하는 것이다.
48.분주 무업 국사
분주(무업)선사가 이르기를“만약에 한 터럭만치라도 범부와 성인의 식정의 생각(집착 분별심)이 다(없애)하지 못하면 당나귀의 태와 말의 배속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라."하였다. 백운단이 이르기를“설사 한 터럭만한 범부와 성인의 정념이 깨끗이 다한다 할지라도 또한 당나귀의 태와 말 뱃속에 들어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라."하였다.
강설: 분주선사의 말씀에 백운단 선사께서 “설사 정념이 다할지라도 축생으로 태어남을 면하지 못할것이라."한 이 도리는 여래선과 조사선의 격외도리를 알아야 바르게 이를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강해한 스님이 白雲守端 선사는 무업선사와는 반대로 “범성의 정념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驢胎馬腹에 들어가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앞의 말보다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운운했는데 알지 못하고 잘못하는 말은 하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P404의내용 추가 65.무업 국사)
무업국사가 제자 혜음 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성품이 큰 허공과 더불어 수명이 같아서 나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모든 경계가 본래 스스로 비고 고요해서 한 법도 얻을것이 없거늘 迷한 자는 알지 못하여 곧 경계에 미혹함이 되는 것이니라. 한번 경계에 미혹함이 됨이 유전(윤회를 받음)하는 것이 다함(끝)이 없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마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요 조작으로 인한 것 아닌 것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꺾거나 파괴할수 없는 것이니라. 모든 법(만법)이 그림자와 같고 꿈과 같아서 곧고 실다움이 있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경(법화경)에 이르시기를 ‘오직 한가지 일(작용할줄 아는 것:묘유반야)만이 진실함이 있으며 나머지 둘(경계와 법)은 곧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느니라. 항상 일체가 공함을 깨달아서 한 법도 마땅히 알음알이(분별심)가 없는 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이 쓰는 마음이 머무는 것이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수)행하라.
말씀을 마치시고 고요히 돌아가(열반)셨다.
장군죽비: 마지막 열반의 말씀으로 남기시기를 보고 듣고 아는 자성이 빈 허공같이 항상하며 생멸이 없으며 일체만유도 그 본성이 또한 그러하며 한가지도 실다운 것이 없어 영원히 가질것이 없거늘 미혹한 자들이 그런 환과 같은 경계에 끄달려 집착하므로써 업신의 윤회를 받게 되는것인즉 이 본성인 마음만이 실다운 것으로 만든것도 없앨수도 없는 것이라, 이것도 있음(相)이 없이 있는 것이라 영원불변의 실상이므로 일체가 본성이 공하고 필경 공한 실다움이 없음을 밝게 깨달아 분별 알음알이를 짓지 않으면 그것이 제불의 머묾이요 작용임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라 하시고 천화하셨다 한 것이다.
50. 서산 양 좌주
서산 양 좌주(강백)가 24본(종) 경론을 강의하다가 하루는 마조선사를 방문했는데 마조께서 묻기를“말을 들으니 대덕이 경과 론을 매우 잘 강한다고 하니 맞는가?”하니
좌주가 이르기를“그렇습니다(不敢:감당키 어렵다는 겸손)."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무엇을 가지고 강의했는가?"하니
좌주가 이르기를“마음을 가지고 강의 했습니다."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마음은 연출자(工伎兒)와 같고 뜻은 연극을 화답하는 것(연기자)과 같으니 어찌 그런 경론을 講하는 것을 아는가?"하니
좌주가 이르기를“마음이 이미 講함을 얻지(알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자
마조께서 멈추었다 이르기를“바로 허공이 講을 하느니라."하셨다.
강설: 마조선사가“허공이 곧 강의를 한다."한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일러보시오! 어찌 허공이 강의 한다 하는가?
“보이지 않는 물이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좌주가 소매를 떨치고 나가자 마조께서 좌주를 부르니 좌주가 고개를 돌리자 마조께서 이르기를“이것이 무엇인가(이뭣고)?"하자 좌주가 이로써 크게 깨달아서 문득 절을 하고 감사를 드리니 마조께서 이르기를“이 둔한 아사리(낮춤)여! 어째서 예배를 하는가?"하니 좌주가 곧바로(直) 온 몸에 땀을 흘리며 절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이르기를“내가 일생동안 공부한 것을 장차 더한(나은) 삶이 없다고 여겼더니 오늘 마조의 한번 물음을 입어서 평생의 공부가 얼음 녹듯이 녹아버렸도다."하였다.
그 뒤로는 이에 강함을 놓고 곧바로 서산으로 들어가서 묘연히 소식이 없었다.
강설: 좌주가 지금까지 자기가 깨쳐서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 했었으나 이제야 참으로 깨쳤음을 보인 것이다.
51. 영묵선사
영묵스님이 청원 행사선사의 법을 이은 석두선사에게 가서 이르기를“한마디 말이 서로 계합하면 곧 머무르고 서로 계합하지 못하면 곧 가리다."하자 석두선사가 기대앉으니 영묵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석두선사가 불러 이르기를 “상좌여!"하니 영묵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석두선사가 이르기를“태어남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러 단지 이놈이거늘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 무엇 하려는가?"하는 선사의 말아래 크게 깨달았다.
강설: 영묵선사가 기대앉은 것은 말이 아닌가?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린다는 것은 계교함을 이르는 말이다. 영묵스님이 깨달은 바를 일러보라?
“돌사자가 포효를 하도다."
52.석공 화상
석공화상이 옛날에 사냥꾼으로 사슴을 쫓다가 마조가 계시던 암자 앞으로 지나가다가
마조에게 묻기를“사슴이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까?"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하니
이르기를“사냥꾼입니다."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그대는 하나의 화살로 몇 마리를 맞추는가?”하니
이르기를“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춥니다.”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그대는 잘 맞출 줄 모르는구나!"하니
이르기를“화상은 잘 맞추십니까?"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잘 맞추니라"하니
이르기를“화상은 화살 하나로 몇 마리를 맞춥니까?"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나는 화살 하나로 한 무리를 다 맞추니라”하니
이르기를“모두(피차) 다 생명인데 어째서 한 무리를 모두 맞추십니까?"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그대가 이와 같음을 안다면 어찌 스스로 맞추지 않는가?"하니
이르기를“만약 제가 가르침대로 스스로 맞춘다면 곧 바로 손 쓸 것이 없겠나이다."하자
마조께서 이르기를“이놈이 많은 겁 동안의 무명이 오늘에 몰록 쉬었도다."하자
석공이 당장에 활과 화살을 던져버리고 마조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강설: 화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맞춘다면 한생명을 뺏고 화살하나로(한마디 법문) 모두를 맞추면 일체를 크게 죽여 크게 살리는 도리인 것이다.
이 뜻을 모르는 석공이 모두가 생명인데 필요이상 살생을 그렇게 많이 하는가? 하는 반문에 피차가 죽임이 살생인줄 알아, 상대의 목숨을 뺏는 것이 죄됨을 안다면 피차일반인 자기는 스스로 왜 쏘지 못하는가?(즉 스스로를 죽일 줄 모르는가?)하시는 말아래 깨달은바 있어 답하기를 그렇게 되면 손쓸 것이 없다).하자 “만겁의 어두움(미혹의 무명)에서 몰록 끊어진 도리를 지금 깨달았도다."고 인정하시자 출가하게 되었다 하는 것이다.
마조의 법문은 일체 중생심을 모두 죽여 크게 살리는 격외선지인 것이다.
여기서 ‘죽임’이라는 것을 말을 쫓아 생명의 죽임으로 살피면 어리석을 개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 암두선사(덕산 선감선사의 법제자)의 회하에 있었는데 하루는 암두선사께서 묻기를 “네가 이 속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느냐?” 하니
석공이 답하기를 “저는 이 속에 있는 소를 기르고 있나이다”하자
암두선사가 이르기를 “너는 소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니
이르기를 “한번 풀을 쫓아 떨어져 가면 문득 코뚜레를 잡고 돌아옵니다” 하자
암두선사가 이르시기를 “소를 잘치고, 잘 치도다” 하셨다.
강설: 牧牛行(목우행)은 보임의 뜻이다.“잘치고 잘치도다” 라고 한 말씀은 긍정한 것이다.
석공스님이 법을 펴 제도 할 때는 항상 옆에 활을 두고 누가 법을 물으면 활쏘는 시늉을 했다.
어느날 三平이란 스님이 석공선사를 참방하여 법을 물었다. 그때도 석공스님은 평소에 늘 쓰던 솜씨로 활을 들어서 쏘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三平스님이 가슴을 제쳤다.
그러자 석공화상이 이르기를 “평생에 다만 하나를 맞추었도다.”하였다.
三平선사는 太巓禪師의 시자로 있다가 도가 열린 분으로 韓退之도 三平선사로 인해 깨달았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退之가 태전선사에게 발심해서 귀의했다. 한퇴지가 태전선사에게 묻기를“제가 조주자사로 일이 많아서 공부하기가 어려우니 가장 간편한 법문을 일러 주십시오”하니 태전선사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계셨다.
그때 삼평이 사자로 옆에 있다가 그것을 보고 주장자로 상을 꽝꽝 세 번 쳤다. 그러자 태전선사가 삼평에게 “네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하고 물었다.
삼평이 “먼저는 정으로써 변하고 그 뒤에는 지혜로 움직입니다”(先以定動 後以智扰)라고 하였다.
먼저는 정(진공본성)이 작용으로 변하고 그런 다음에는 지혜로써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때 한퇴지가 깨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