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교단사(敎團史)
무릇 불교의 종파는 비록 그 목적하는 바는 같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과 근기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기 때문에, 인도에서 상좌(소승)·대중(대승)의 2부가 마침내 본말(本末)을 합해서 20파로 나누어졌듯이, 중국에 와서는 13종으로 갈리었는데, 이것이 대체로 한국에서 답습되었던 것이다.
한국불교의 종파개설(宗派開設)을 그 성립 순서에 따라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열반종(涅槃宗) : 열반경(涅槃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하여 법신상주(法身常住)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가르침을 펴는데, 한국에서는 보덕(普德) 화상이 창립한 종(宗)이다. 화상은 고구려 반룡사(盤龍寺)에 있었는데, 보장왕이 도교(道敎)에 기울어짐을 보고, 하룻밤 사이에 방장(方丈)을 날려 백제의 완산 고달산(현재 전주 고대산)으로 옮겨 왔다고 전한다.
② 율종(律宗) : 남산종(南山宗)이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도선에 의해 창설되었고, 보살의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수지함으로써 성불의 인(因)을 삼는 종(宗)이니, 한국에서는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립되었다. 율사가 선덕여왕의 칙명을 받고 제자인 승보(僧 ) 등 10여 명과 당에 들어가(636년) 청량산 문수보살의 상 앞에서 기도하고 종남산 운제사(雲際寺)에 머물다가 8년만에 돌아와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승니(僧尼)의 기강 숙청에 애썼다.
③ 화엄종(華嚴宗) : 화엄경(華嚴經)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수나라의 두순(杜順)에 의해 성립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원효(元曉)와 의상(義相) 두 조사(祖師)가 각각 파를 달리하고 있다. 원효는 진덕여왕 4년(650년), 의상과 함께 당으로 가던 중, 밤중에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목을 축였더니 날이 밝아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자 구역을 느낀지라 문득 깨닫기를 '마음이 나매 가지가지 법이 나더니 마음이 없어지니 해골이 둘이 아니로다. 여래 대사께서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뿐이라고 하신 말씀이 어찌 나를 속인 것이랴.' 하고 드디어 구법의 길을 중지하고 되돌아와서 분황사(芬皇寺)에서 주술과 교화에 진력하였으므로 해동종(海東宗)·원효종(元曉宗)·분황종(芬皇宗)·원융종(圓融宗)이라 일컫는다. 한편, 의상은 당에 들어가서 지엄(智儼)에게 화엄교의를 배우고 법성게(法性偈)를 지어 종지를 이어받고 돌아와서는 경상북도 순흥군(榮州) 부석사(浮石寺)에 머물었으므로 화엄종(華嚴宗)·의상종(義湘宗)·부석종(浮石宗)·의지종(義持宗) 등으로 일컫는다.
④ 유가종(瑜伽宗) : 법상종(法相宗)이라고도 하는데 세친(世親)의 유식론(唯識論)을 의지 삼아 당의 자은(慈恩) 대사에 의해 창설되었다. 한국에서는 진표(眞表) 율사에 의해 창립되었다. 율사는 본래 완산주(全州) 출신으로서 금산사(金山寺) 숭제선사(崇濟禪師)에게서 선계산(부안 변산)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나아가 미륵보살상 앞에서 삼칠일 기도를 한 끝에 보살의 설법을 듣고, 다시 금산사로 돌아와서 미륵상을 만들어 모시어(776년), 그곳으로써 근본도량을 삼고 법상종지(法相宗旨)를 드날렸다.
⑤ 법성종(法性宗) : 진여법성(眞如法性)이 연(緣)을 따라 만유제법(萬有諸法)을 일으킨다는 이치로서 종지를 삼는 것이다. 중국불교에는 따로 독립된 종의 이름을 세운 바가 없었으나, 굳이 말한다면 화엄종·천태종·진언종 등 실대승종(實大乘宗)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라 이후 고려에 걸쳐 종(宗)만은 있었음이 분명하나, 원효대사의 해동종이 그것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여 그 역사가 분명하지 않다.
⑥ 신인종(神印宗) : 진언종 계통이나 한국에만 있는 종의 이름이다. 즉 신인이란 말은 범어의 문두루(文豆屢:mudra=印·印相·結印)를 옮긴 말이므로 문두루종이라고도 하는데, 명랑(明朗) 대사가 개창하였다. 대사는 일찍 당에 들어가 법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용궁(龍宮)에 들어가 신인의 비법을 배웠다고 전한다.
⑦ 총지종(總持宗): 진언종 또는 밀교와 마찬가지로 중국 진언종은 인도의 선무외(善無畏)를 조사로 하여 창립되었다. 법신인 대일여래의 내증(內證)의 경계를 열어 나타냄을 종지로 한다. 한국에서는 진언 곧 다라니를 외는 것을 수행방법으로 하므로 지념종(持念宗)이라고도 하는데, 혜통(惠通) 화상에 의해 계승·수립되었다. 화상은 일찍이 출가하기 전에 한 마리의 수달을 잡아서 가죽은 벗기고 뼈만을 숲속에 버렸다. 다음 날 다시 가 보니 뼈만 옛 동굴로 돌아가 새끼들을 껴안고 있는지라, 그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출가했다. 후에 당에 들어가 선무외 화상을 섬기기 3년만에 법을 이어받고 돌아와서 종(宗)을 열어 비법을 드날렸다.
⑧ 소승종(小乘宗) : 구사종(俱舍宗) 또는 성실종(成實宗)의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소승종은 종조(宗祖)는 물론 유종(有宗=俱舍宗), 공종(空宗=成實宗) 간에 그 어느 것인지조차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⑨ 정토종(淨土宗) : 염불종(念佛宗)이라고도 하는데,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을 믿고, 그 이름을 일컬음으로써 극락정토에 다시 난다고 설한다. 중국에 있어서는 동진(東晋) 시대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에서 혜원(慧遠) 법사를 중심으로 결사되었던 백련사(白蓮寺)가 그 효시(嚆矢)이다. 한국에 있어서는 신라 경덕왕 때에 발징(發徵) 화상이 개종하여 염불로써 정토발원의 수행을 했다고 하나 뚜렷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⑩ 삼론종(三論宗) : 용수(龍樹)의 중론(中論)·12문론(十二門論)과 제바(提婆)의 백론(百論)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구마라습을 초조(初祖)로 함.
⑪ 섭론종(攝論宗) : 무착(無着)의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소의로 하고 진제(眞諦)를 초조로 함.
⑫ 지론종(地論宗) : 화엄경의 십지품(十地品)을 주석한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소의로 하며, 혜광(慧光)을 초조로 하는데, 이상의 셋은 한국에 있어서는 그 역사적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⑬ 선종(禪宗) : 양무제(梁武帝) 원년(520년)에 중국에 들어온 달마(達磨) 대사에 의해 개종되었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불타를 이룬다.'는 것을 종지로 한다. 한국에 선종이 전해 온 것은 신라 헌덕왕때부터로 9개 파의 거의가 중국에 들어가 법을 배워 왔다.
⑭ 천태종(天台宗) : 법화경(法華經)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중국의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에 의해 세워졌다. 한국에서는 고려 의천 대각국사에 의해 수입되었다. 국사는 본래 화엄종의 승통(祐世僧統)이었으나 선종 2년(1085년)에 몰래 송나라에 들어가서 불법을 두루 배우고 돌아와서는 국청사(國淸寺)를 지어 천태종의 근본도량을 삼고 크게 종풍을 떨쳤다.
이상이 한국불교의 종파 개설이다. 그런데 흔히 한국불교를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고 말하고, 또는 대각국사 이후에는 오교 양종이라고도 총칭하는데, 무릇 불교의 종파는 크게 나누어 선·교 양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창하던 불교가 고려의 국운과 더불어 쇠퇴되더니, 이조에 와서는 일관된 숭유배불의 정책에 의하여 마침내 비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즉, 태종 6년까지는 조계(曺溪)·천태소자(天台疏字)·천태법사(天台法事)·총지(總持)·남산(南山)·화엄(華嚴)·도문(道門)·자은(慈恩)·중도(中道)·신인(神印)·시흥(始興) 등, 11종파이던 것을 다음 해에는 조계·천태·총남·화엄·자은·중신·시흥의 7종파로 줄였고, 다시 세종 6년에는 선·교 두 종으로 통합해서 내려오더니, 이조 말기에 와서는 그 구별조차 희미해져서 '선교양종'(禪敎兩宗)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단일종이 되었고, 일제 말기에는 이를 다시 조계종(曹溪宗)이라고 고쳐 일컫더니 해방 후,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정화 성명으로 비구·대처간의 분규사태를 몰고 오게 되어 조계종·태고종으로 나누어졌다. 아무튼 한국불교의 조계종은 파벌간의 조그마한 이해관계를 떠나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 앞에 단합하여 대중을 위해 가르침을 베푸는 자세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