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의 거장 William Klein을 만나다
윌리엄 클라인의 사후 첫 회고전 <DEAR FOLKS>
<뮤지엄 한미>, 전시기간 2023.5.24-9.17
<뮤지엄 한미> 삼청본점에서는 2023년 해외작가 기획전으로 20세기 시각예술의 새 흐름을 선도한 William Klein(1926-2022)의 사후 첫 대규모 회고전 <DEAR FOLKS>를 열고 있다.
클라인은 현대사진을 비롯한 현대 영상미학의 시발점에 선 예술가다.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영화, 책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종래의 규칙과 금기, 한계를 내던진 그의 작업은 전대미문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특질로 기존 시각예술의 전통과 미학의 판도를 전복시켰다.
전시는 1950년대 초기 회화부터 기존의 기하학적 추상이 가진 정형성을 탈피하기 위해 시도한 포토그램, 야외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첫 사진작업, 현대사진의 도화선이 된 <뉴욕>을 비롯한 도시 거리사진과 사진집들, 1960년대 레트리즘 회화, 1955년 『보그』와 협업으로 시작한 패션사진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와 장편 극 영화, 1990년대 밀착 프린트 작업까지, 작가 작업생애의 주요 작품 130여 점과 자료 40여 점을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영화제작자에 이르기까지 윌리엄 클라인은 책과 잡지, 텔레비전 화면과 대형 영화관 스크린까지 모두를 호령했다. 그의 시선과 카메라는 언제나 군중을 겨냥했고, 언어와 이미지로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손길 닿는 당대의 각종 표현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인류를 향한 부드러운 호소인 <DEAR FOLKS>라는 전시제목은 그의 풍자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인간적 면모를 십분 투영한 서신인 한편, 일평생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 속에 있고자 했던 작가의 작업세계를 압축한다.
약 50년의 예술활동을 정리한 이번 전시를 통해 세간에 가장 비타협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와 사상, 인간군상을 한 프레임 안에 아우르고, 냉소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재치 있고 인간미 넘치는 클라인의 유연한 예술세계를 한층 깊이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시장은 1층과 지하층에 걸쳐 황홀한 추상, 흑백의 몬드리안, 뉴욕, 도시의 사진집, 레트리즘 회화, 패션, 페인티드 콘택트, 영화 등 총 8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라인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클라인의 대표작 한 점과 작가메모가 먼저 나를 설레게 했다. 오래된 인물흑백사진 위에 붉은 페인트로 어지럽게 그려넣은 수평수직의 선과 X표식들. 사진인가 그림인가? 아니면 그래피티 벽 낙서인가? 한마디로 파격이었다.
“나는 항상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에 반대로 행했다. 표현주의자들이나 피카소에게 끌리기보다는 결국 레제와 함께 했다. 나는 그다지 기술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사진가가 되었다. 기계를 사용하면서 기계가 형편없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에게 사진을 찍는 일은 한번도 사진인 적 없는 것을 찍는 일과 같았다. 영화의 경우도 종종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관람객을 압도하는 진입통로의 붉은 글씨 <DEAR FOLKS>와 우측 벽면을 가득채운 흑백 한자어 建設,建設,建設! 낮섦과 친숙함이 묘하게 교차되는 순간이다.
첫 번째 방은 ‘황홀한 추상’이다. 1947년 21살의 윌리엄 클라인은 파리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그곳에서 미니멀리스트이자 추상화가인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를 만났고 스위스 작가 막스 빌(Max Bill 1908-1994)의 수학적 원리를 적용한 구성이 특징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바우하우스의 라슬로 모흘리나지(Laszlo Moholy-Nagy 1895-1946)가 쓴 글을 읽고 ‘건축, 타이포그라피,일상친화적인 디자인, 영화와 사진’모든 것을 가르치는 프랑스판 바우하우스를 꿈꾸었다.
1950년에는 페르낭 라제(Fernand Leger)의 아틀리에에서 잠시 일하면서 받은 영향으로 경계없는 예술을 꿈꾸며 거리로 나섰다. 클라인은 카메라 없이 암실에서 만들어진 사진 추상작업을 하면서 다시 한번 건축적 응용에 대한 갈망을 품었다. 이 다양한 버전의 추상작업들은 1952년부터 1961년까지 15회에 걸쳐 이탈리아 잡지 『도무스』의 표지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 섹션 ‘흑백의 몬드리안’을 보자. 1952년, 아직까지 전문적인 사진가이기 보다는 빛을 그리는 화가로서 사진을 다룬 클라인은 네델란드의 발헤렌 섬을 방문한다. 이 섬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이 자주 방문하던 장소였다. 그곳의 농가에 잠시 머무르게 된 클라인의 눈에 이 네델란드 화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수직의 선으로 둘러싸인 크고 평평한 파사드(Facades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들어왔다. 그 순간 클라인은 카메라로 촬영한 후 망설임없이 암실에서 화면을 자르고 반전시켜 공간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표현했다. 그는 여전히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명확한 선과 기하학적인 구조를 추구했다.
1954년 『보그』의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만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돌아온 클라인의 가방에는 35mm 소형카메라와 두 개의 렌즈가 들어 있었다. “나의 미학적 기준은 뉴욕 데일리 뉴스 신문이었다. 인정사정 없는 레이아웃과 요란한 헤드라인으로 난폭하고 무례하며 거칠고 잉크가 번져 있는 타블로이드 같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으며, 이런 책이야 말로 뉴욕에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군중과 거리를 두지않고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 거리 속 사람들과 함께 했다. 클라인은 밀집된 현대의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명성을 쫒기 보다는 개개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그의 사진은 피사체도 모르는 사이에 포착한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사진들이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직접 접촉하여 찍은 것이다.
“나는 사진의 입자와 콘트라스트, 암부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기존의 사진구성을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재구성했다. 카메라를 야수처럼 흔들며 혹사시켰다. 내가 보기에 정갈하고 정교한 기술은 뉴욕에 어울리지않았다. 내 사진들이 일간지 마냥 시궁창에 쳐박혀 나뒹구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출판한 뉴욕 사진집의 성공은 로마, 모스코바, 도쿄 세 도시의 사진집까지 이어졌다. 1961년에는 출판사의 초청으로 일본을 찾았고, 그곳에서 밤잠을 설치며 사진작업에 몰두했다. 도쿄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미스터리는 그곳에서 머무는 내내 그를 긴장시키고 설레게 했다.
그는 네오-다다, 아방가르드한 모습을 즐겨 찍었고,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도시의 각종 간판에서 보이는 조형적 잠재력을 사진에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에서 이시도르 이주(Isidore Isou 1925-2007)의 주창으로 시작된 레트리즘 문화운동(The Cultural Movement of ‘Lettrism’)은 말의 뜻보다는 소리의 시학, 의성어, 글자가 들려주는 음악에 귀 기울이기를 제시한다. 대부분 대형 사이즈로 그려진 클라인의 레트리즘 회화들은 클로즈업으로 찍은 뉴욕, 로마 또는 도쿄의 간판을 연상시킨다. 체계적으로 잘라낸 듯보이는 단어들은 주어진 의미에 종속되지않고 간판으로서 자체적으로 기능하는 문자의 조형력을 드러낸다.
패션분야에서 일하는 사진작가들은, 심지어 왕성히 활동한 작가들조차도 정작 패션 자체에는관심이 없다고 종종 말하는데 클라인도 마찬가지였다. 1955년부터 1965년까지 10년간 『보그』와의 길고도 유익했던 협업이 이루어졌다.
그는 점차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잇슈를 반영했고, 거울을 통해 여성의 신체를 분열시켜 늘리거나 모델 주변사람들의 얼굴을 지워 그 정체성을 없애는 등 패션 이미지 자체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섹션은 페인티도 콘택트와 영화 부문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페인티드 콘택트’ 연작은 회화와 영화, 사진을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종합예술이다. 1990년대부터 계속해서 만들어낸 페인티드 콘택트는 40년간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이어온 아티스트가 자신의 아카이브를 돌아보고 재검토해서 내놓은 결과물들이다. 최근까지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사용해온 콘택트 시트는 필름 하나로 찍은 모든 사진을 한 장으로 보여주는 밀착인화지를 말한다.
작가들은 보통 콘택트 시트에 빨간색 유성연필로 뽑을 사진을 o 또는 X로 표시한다. 클라인은 이 관례를 차용하고 확장시켜 보통 3장의 사진을 하나의 시퀀스로 묶었다. 또한 클라인이 그린 밝은 색의 선들에서 회화와의 관계가 드러나며 초기작업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형상을 소환시킨다.
클라인의 작품세계가 회화와 사진 그리고 영화의 순으로 발전되어 왔다면 이 모든 탐색 끝에 등장한 페인티드 콘택트는 이 다양한 표현방식들 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Mister Freedom>, <Muhammad Ali, the Greatest> 등 픽션과 다큐멘터리, 단편과 중편, 장편으로 구성된 약 21편의 영화를 통해 클라인은 20세기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정리/임윤식)
*이곳에 올린 작품들은 필자가 전시장에서 직접 촬영한 것으로서, 조명시설 영향 등으로 원본 작품에 비해 이미지 질감이나 톤 등이 현저히 떨어지며, 작품에 따라서는 크롭한 사진도 있음을 밝혀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