頭陀草冊十四 / [雜著]
■ 미호설(媚狐說,아첨하는 여우)
澹軒 李夏坤(1677년(肅宗 3) ~ 1724년(景宗 4)
狐,媚獸也.恒媚於虎,虎悅其媚,以其啗之餘啗之,狐利其啗,益媚虎.
여우는 아첨하는 동물이다. 항상 호랑이에게 아첨하였는데 호랑이는 아첨하는 것을 좋아하여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을 먹고록 하였기 때문에 여우는 그 먹을것을 이롭게 여겨 더욱 호랑이에게 아첨하였다.
一日進言于虎曰稱吾君者.皆曰山中王,王固尊也.王之上又有帝焉者,其尊莫尙焉.吾君盍稱帝,以示尊乎百獸也.
하루는 호랑이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우리 임금을 일컫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산중의 왕이라고 말하는데 왕은 진실로 높기는 하지만 왕의 위에 또 황제라는 칭호가 있습니다. 우리 임금께서는 어찌하야 황제라고 부르도록 하여 백수중에 가장 높음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虎曰辭,麒麟仁於我,未聞其帝也.狻猊勇於我,亦未聞其帝也,王於我足矣,而帝以何德堪之.
호랑이가 말하기를, ”그만 두어라 기린은 나보다 어질지만 그를 황제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자는 나보다 용맹하지만 그를 황제라 부르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하였다. 왕이면 나는 만족한다. 내가 무슨 덕으로 황제칭호를 감당하겠느냐?
狐又進言曰:麒麟雖曰仁,勇不及吾君.狻猊雖曰勇,仁不及吾君.夫仁與勇,吾君兼之矣.然則夫二者,烏足以望吾君也哉.以吾君之德之全,而不以帝,而孰帝焉.
여우가 또다시 진언(進言) 하기를 “기린이 비록 어질다고 하지만 용맹은 우리 임금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사자가 비록 용맹하다고 하지만 어짊은 우리 임금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과 용은 우리 임금이 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둘이 어찌 우리 임금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임금의 덕이 온전하신데 황제가 안된다면 구가 황제가 되겟습니까?
虎於是乎悅,遂稱爲山帝.百獸聞之,率往賀焉.虎於是乎益以狐爲愛我而尊我也.
호랑이가 이에 기뻐하여 마침내 산제(山帝)라고 칭탁하고, 모든 짐승에게 통지하여 와서 축하 하도록 하였다. 호랑이가 이에 더욱 여우가 나를 사랑하고 높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又稱狐曰山相,輒遇物不食,盡以啗狐.夫狐之媚虎,由乎利虎之啗而已,使虎乃曰愛我也尊我也.狐可謂善媚也耳矣.
또 여우를 재상으로 삼아 음식이 있을때마다 먹지 않고 모두 여우에게 먹게 하였다. 대체로 여우가 호랑이에게 아첨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얻어먹는 이로움 때문일 뿐이었는데 호랑이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고 나를 높인다.” 라고 말하도록 하였으니 여우야 말로 아첨을 잘 한다고 말할만 하다
● 李夏坤,1677년(숙종 3) ~ 1724년(경종 4) / 향년 47세
조선후기「춘경산수도」.「산수도」등을 그린 화가이며 평론가이다.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 호는 담헌(澹軒) 또는 계림(鷄林).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손자이며, 당시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의 맏아들이다.
[활동사항]
1708년(숙종 34) 진사에 올라 정7품직인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와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고향인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에 힘썼으며 소장한 장서가 1만권을 헤아렸다. 성격이 곧아 아첨하기 싫어하고, 여행을 좋아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여행하였으며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각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녔다.
그의 교유관계 중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이병연(李秉淵,1671~1751)과 서예와 문장으로 유명한 윤순(尹淳,1680~1741), 화가였던 정선(鄭敾,1676~1759)과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의 교유는 특히 주목된다. 특히 그의 문집 중에 윤두서의「자화상(自畵像)」과 『공재화첩(恭齋畵帖)』에 대한 기록, 정선의 여러 그림에 대한 화평, 당대 및 중국의 화가들에 대한 평 등이 있어 평론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작 중「춘경산수도(春景山水圖)」(간송미술관 소장)는 복사꽃이 핀 봄풍경을 연두와 분홍의 담채를 써서 묘사한 것으로, 필치는 세련되지 않으나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을 보이며 정선의 초기 작품과 연관을 보여준다. 이밖에 「산수도(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전한다. 문집으로는『두타초(頭陀草)』1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