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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주거양식을 간직한 양동마을과 향단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생활상과 주거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전통마을 189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뒷산인 설창산에서 뻗은 구릉이 '勿(물)'자 형상을 하고 있으며, 구릉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
양반가는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서민들의 집은 언덕 아래에 자리해 있다.
이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으로, 150여 가옥에 360여 채의 건물과 15개의 정자가 있다.
양동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큰 기와집이 향단이다.
지붕의 선이 고래등처럼 웅장한 향단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언적이 벼슬을 할 때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사임하려고 하자,
경상감사 벼슬을 하면서 효도도 할 수 있도록 중종 임금이 하사한 집이다.
두 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 구조가 '興(흥)' 자 처럼 생겼다.
원래는 99칸이였으나, 일부가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56칸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민가, 서백당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월성 손씨 종가인 서백당이다.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쓰라는 뜻을 지닌 당호이다.
이 집은 이언적의 외할아버지인 손소가 성종 15년(1484)에 지었다.
지은 지 520년이 넘었으니,민가로는 고려시대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지은 온양 맹씨 행단 다음으로
오래되었다.
서백당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좋은 터에 자리 잡은 집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응집된 터가 바로 이곳이란다.
집터를 잡아준 풍수가는 이 집에서 위대한 인물 셋이 태어난다고 예언했다.
그런데 이미 2명이 태어났고, 1명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월성 손씨 종부가 살고 있는데, 나머지 한 인물은 외손에서 나올 수 없다 하여
시집간 딸은 서백당 머릿방에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서백당에서 태어난 2명의 걸출한 인물은 손소의 아들인 손중돈과 손소의 외손자인 이언적이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에 모두 11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 중에서 가장 출중한 인물로 월성 손씨 집안에서는 손중돈을 꼽고, 여강 이씨 집안에서는
이언적을 꼽는다.
손중돈은 이조판서와 우참찬 등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청백리에 선정된 인물이다.
손중돈은 김종직의 제자인데, 이언적은 외삼촌인 손중돈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연유로 길재에서 시작된 영남학파가 김숙자, 김종직을 거쳐 손중돈,이언적,이황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한다.
동방 5현으로 꼽히는 이언적의 무첨당
이언적이 살았던 집은 서백당 바로 앞 산자락 너머에 있는 무첨당이다(보물 제 411호).
무첨당은 날렵한 지붕 선이 날아갈 듯 펼쳐진 별당이다.
누마루가 있고, 대청마루와 온돌방이 있다.
주로 남자들이 손님을 맞았던 공간인데, 안채와 사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훗날 흥선대원군이 무첨당을 찾아와 죽필로 '좌해금서'라는 글을 남겼고, 지금 그 편액이
대청마루에 걸려있다.
'좌해금서'는 영남의 풍류와 학문이 이곳에 있다라는 뜻으로 양동마을을 칭찬하는 말이다.
[여행정보]
맛집
우향다옥(054-762-8096) 백리향식당(054-762-7110) 초원식당(054-762-4436) 딱실매운탕(054-762-0449) 청정식당(054-762-6151) |
숙박
옥산모텔(054-762-9500) 네델란드여관(054-762-60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