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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ato srahato sammāsabuddhassa.
디가 니까야 주석 서문
장(藏삐따까, Piṭakā)p573~
48. 그리고 여기서 다 적용되어 나타나는 [삐따까]에 대해서는
삐따까(藏)의 의미에 능통한 자들은 말하기를
삐따까는 교학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을 한데 모아서
율 등으로 세 가지 라고 알아야 한다.
교학(pariyatti)은“삐따까(藏, 聖典)에 전해 내려온다고해서 [받아들이지] 말라.”(A.i.189)는 등에서 ㉠빠따까를 설하셨다. “그때 그 사람은 꾸달라 삐따까(바구니)를 가지고 올 것이다.”(A.ii.198~199)라는 등에서는 어떤 ㉡그릇을 뜻한다. 그래서‘삐따까의 의미에 능통한 자들은 말하기를 삐따까는 교학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제‘이러한 것을 한데 모아서 율 등으로 세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라는 것은 방금 설명한 두 가지 뜻을 가진 삐따까라는 단어와 함께 합성어를 만들어서 교학의 입장에서는 위나야(율)와 그 ㉠빠따까(藏, 성전) 라는교학의 측면과, 이런 의미를 담는 ㉡그릇이라고 해서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律藏)라 한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경(숫딴따)과 그 삐따까라고 해서 숫딴따 삐따까(Suttanta Piṭaka, 經藏)라 하며, 아비담마(논)와 그 삐따까라고 해서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ṭaka,論藏)라 한다. 이것이‘율 등으로 세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49. 이와 같이 안 뒤에 다시 이 삐따까들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능숙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가) ①가르침과 ②교법과 ③설명의 구분에 따라
삼장에 대해서 적절하게 밝히고
(나) ①공부지음과 ②버림과 ③심오함을 밝힌다.
(다) 교학에 따른 구분에는 ①성취와 ②재난이 있나니
비구가 얻는 것을 따라 그 모두를 분석할 것이다.
50. 이제 이것이 [이 게송에 대한] 예시와 해설이다.
(가) 이들 삼장은 순서대로 [①가르침의 측면에서는 ] 보호와 인습적 표현과 궁극적 의미의 가르침이며, [②교법의 측면에서는] 죄과에 따라서, 수순에 따라서, 법에 따라서 설한 교법이며, [③설명의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단속과, 사견(邪見)을 풀어버림과, 정신 ∙ 물질의 분석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한다.
[①가르침의 측면] : 이 가운데서 율장은 보호를 하실 수 있는 세존께서 보호를 많이 설하셨기 때문에 보호하는 가르침(āṇā-desanā)이라한다. 경장은 인습적 표현에 능숙하신 세존께서 인습적 표현(vohāra- desanā)을 많이 설하셨기 때문에 인습적 표현의 가르침이라고한다. 논장은 궁극적 의미에 능숙하신 세존께서 궁극적 의미를 많이 설하셨기 때문에 궁극적 의미의 가르침(paramattha- desanā)이라고한다.
51. [②교법의 측면] ; 첫 번째인 율장은 많은 죄과(罪過)를 범한 중생들에게는 그 죄과에 따라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죄과에 따른 교법(yathāparādha-sāsana)이라고 한다. 두 번째인 경장은 여러 의향과 잠재 성향과 기질과 성벽을 가진 중생들에게는 수순에 따라서 여기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수순에 따른 교법(yathānuloma- sāsana)이라고 한다. 세 번째인 논장은 법들의 더미(dhamma-puñja)일 뿐인 것에 대해서 나니 내것이니 하는 인식을 가진 중생들에게는 법에 따라서 여기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법에 따른 교법(yathādhamma- sāsana)이라고 한다.
52. [③설명의 측면]; 첫 번째인 율장은 [몸과 말에 수반되는] 부차적인 행위와 반대되는 여러 가지 단속을 여기서 설명하셨다고 해서 여러 가지 단속의 설명(saṁvarāsaṁvara-kathā)이라 한다. 여러 가지 단 속이란 사소한 단속과 중대한 단속이니 여러 가지 업이라는 어법과 여러 가지 과일이라는 어법과 같다고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인 경장은 62가지 사견(邪見)과 반대되는, 사견을 풀어버리는 것을 여기서 설명하셨다고 해서 사견을 풀어버리는 설명(diṭṭhi-viniveṭhana-kathā)이라 한다. 세 번째인 논장은 감각적 욕망 등과 반대되는 정신 ∙ 물질의 분석을 여기서 설명하셨다고 해서 정신 ∙ 물질의 분석에 대한 설명(nāmarūpa-pariccheda-kathā)이라 한다.
53. (나) 그리고 삼장의 각각에 대해서 ①세 가지 공부지음과 ②세 자기 버림과 ③ 네 가지 심오함을 알아야 한다.
[①세 가지 공부지음의 측면;] 율장에서는 높은 마음을 공부 짓는 것 [增上戒學, adhicitta-sikkhā]을 설하셨고, 경장에서는 높은마음을 공부짓는것[增上心學, adhicatta- sikkhā]을, 논장에서는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는 것[增上慧學, adhipañña- sikkhā]을 설하셨다.
[②세 가지 버림의 측면;] 그리고 율장에서는 위범(違犯)을 버리는 것(vītikkama-ppahāna)을 설하셨나니 계는 오염원들의 위범하는 성질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경장은 얽매임을 버리는 것(pariyuṭṭhāna-ppahāna)을 설하셨나니 삼매는 얽매임과 반대되기때문이다. 논장은 잠재성향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장은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버림(tadaṅga- ppahāna)으로 [오염원을] 버리는 것을 나타내고, 나머지둘은 각각 억압(vikkha-mbhana)으로 [오염원을] 버림과, 근절함(samuccheda)으로 [오염원을] 버림을 나타낸다.
그리고 율장은 나쁜행위[惡行]에 기인한 오염원을 버림(duccarita-saṁkiesa-ppahāna)을 나타내고, 경장은 갈애(taṇhā)에 기인한 오염원을 버림을, 논장은 견해(diṭṭhi)에 기인한 오염원을 버림을 나타낸다.
54. [③ 네 가지 심오함의 측면;] 여기서 이 [삼장의] 각각에 대해서 ㉠ 법과 ㉡ 의미과 ㉢ 가르침과 ㉣ 꿰뚫음이라는 네 가지로 심오함(gambhīrabhāva)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 법이란 성전(tanti)기고 ㉡ 의미(attha)란 이 성전의 의미이다. ㉢ 가르침(desanā)이란 마음으로 구분하는 성전의 가르침이다. ㉣ 꿰뚫음(paṭivedha)이란 성전과 성전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如實]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삼장에 대한 법과 의미와 가르침과 꿰뚫음이다. 마치 토끼 등이 큰 바다에 뛰어들기 어렵듯이, 우둔한 지성을 가진 자들은 여기에 뛰어들기 어렵고 확고하게 서기 어렵다. 그러므로 심오하다. 이와 같이 이 각각에 대해서 각각 네 가지로 심오함을 알아야 한다.
55.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다. ㉠ 법이란 원인(hetu)이다. “원인에 대한 지혜가 법에 대한 무애해(法無碍解)이다.”(Vbh.29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의미란 원인의 결과(hetu-phala)이다. “원인의 결과에 대한 지혜가 뜻(attha)에 대한 무애해(義無碍解)이다.”(Ibid)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가르침이란 개념(paññatti)이다.” 법에 따라 법을 담론하는 것(dhammābhilāpa)과 동의어이다. 혹은 순서대로, 역순으로, 요약을 통해서, 상세하게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 꿰뚫음이란 관통(abhi-samaya)이다. 이것은 세간적인 것에도 속하고 출세간적인 것에도 속한다. 이것은 대상을 통해서, 그리고 미혹하지 않음을 통해서 꿰뚫는 것을 말하며, 의미와 어울리는 법들에 대해서, 그리고 법과 어울리는 의미들에 대해서, 그리고 개념의 길과 어울리는 개념들에 대해서 깨닫는 것(avabodha)을 말한다. 여기저기에서 설하신 이런 저런 모든 법들의 고유한 특징(salakhaṇa)이라 불리는 고유성질(sabhāva, 自性)을 전도됨이 없이 꿰뚫어야 한다는 말이다.
56.이제 이들 삼장들 가운데서 무엇이든지, 그것이 ㉠ 법에서 생겼거나 ㉡ 의미에서 생겼거나 간에, 듣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뜻은 그것이 듣는 사람들의 지혜로 향할 때에 비로소 알아지게 된다. 이렇게 듣는 사람의 지혜로 향해서 [법이나 의미가 알아지도록] 그 뜻을 밝혀주는 것이 ㉢ 가르침이다. 여기서 ㉣ 꿰뚫음이란 전도됨이 없이 깨닫는 것인데, 이러한 모든 법들의 고유한 특징이라 불리는 고유성질을 전도함이 없이 꿰뚫어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 능숙함[善]이 쌓이지 않아서 통찰지가 부족한 자들은 마치 토끼 등이 큰 바다에 뛰어들기 어렵듯이 여기에 뛰어들기 어렵고 확고하게 서기 어렵다. 그러므로 심오하다. 이와 같이 이 각각에 대해서 각각 네 가지로 심오함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이
‘가르침과교법과설명의구분에따라
삼장에대해서적적하게밝히고
공부지음과 버림과 심오함을 밝힌다.’(§49)
라는 이 게송이 설하는 의미이다.
57. (다)교학에 따른 구분에는 ① 성취와 ② 재난이 있나니
비구가 얻는 것을 따라 그 모두를 분석할 것이다.(§49)
라고 하였다. 여기서 삼장에는 세 가지 교학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 가지 교학이란 ㉠ 뱀의 비유 ㉡벗어나고자 함 ㉢창고지기가 됩니다
58. 이 가운데서 ㉠ 잘못 거머쥐고[把握] 배우는 것을 비난 등의 원인이 되나니 이것은 뱀의 비유(alagaddūpamā)이다.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거머쥔다면 그 뱀은 되돌아와서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쓸모없는 인간들은 법을 배우나니 ∙∙∙ 그들은 법을 배우고서 통찰지로써 자세히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써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므로 정려하는 즐거움[禪悅]을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논박하는 업적과 이런 저런 학설을 쏟아내는 업적을 위해서 법을 배운다. 궁극의 의미(attha)를 위해서 법을 배우는 그런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 법들을 잘못 거머쥐었기(파악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덕이 없고 괴로움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거머쥐었기 때문이다.”(M22/i.133~134)
59. ㉡ 잘 거머쥐고(파악하고) 『계온품』등을 완전하게 이해하고자 하여 배우는 것은 비난 등의 원인이 되지 않나니 이것은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함(nisssaraṇatthā)이다.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에게는 그 법을 잘 거머쥐기(파악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덕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거머쥐었기(파악했기) 때문이다.”(M22/i. 134)
60. ㉢ 그런데 [고성제인] 오온을 철저히 알고( pariññā) [집성제인] 오염원을 버리고(pahīna) [도성제인] 도를 수행하고(bhāvita) 확고부동함을 꿰뚫고(paṭividdha) [멸성제인] 소멸(열반)을 실현하여(sacchikata) 번뇌가 다한 자는 오직 전통을 수호하고[성자들의] 계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삼장을] 터득한다. 이것이 창고지기가 됨(bha ṇḍāgārika-pariyatti)이다.
61. [① 성취(sampatti)에 대해서]; ㉠ 율에 대해서 잘 도닦은 비구는 게의 구족을 의지하여 세 가지 영지(靈知, tevijjā, 三明)를 얻는다.위에서 말한 것은 이것을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경에 대해서 잘 도닦은자는 통찰지의 구족을 의지하여 네 가지 무애해[四無碍解, catuppaṭisambhidā]를 얻는다. 위에서 말한 것은 이것을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 논에 대해서 잘 도닦은 자는 삼매의 구족을 의지하여 여섯 가지 신통지[六神通, chaḷabiññā]를 얻는다. 위에서 말한 것은 이것을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이와같이이들에대해서잘도닦은자는순서대로분류되는성취를얻게된다.
62. [② 재난(vipatti)에 대해서] ; ㉠ 그러나 율에 대해서 잘못 도닦은 자는 허락된 편안함과 접촉하는, 덮고 입는 등의 감각접촉을 다른 것에도 다 적용하여서, 금지된 것들에 대해서도 비난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진 자이다. 그래서 그는 “세존께서 장애가 되는 (antarāyka) 법들이라고 설하신 그것을 그대로 따라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세존께서 법을 설하셨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M22/i.130)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나쁜 계행을 가지게 된다.
㉡경에 대해서 잘못 도 닦은자는 “비구들이여, 네 가지 인간들이 있다.”(A.ii.5)라는 등에서 의도하신 것 을알지 못하면서 잘못파악한 자이다. 이것을두고 세존께서는‘그대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비공덕(apuñña)을 생기게 하는구나.”(M22/i.133)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해서 그는 삿된 견해를 가지게된다.
㉢ 논장에 대해서 잘못 도닦은 자는 법에 대한 생각(dhammacinta)을 지나치게 치달려서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혼란을 얻게 된다. “비구들이여, 생각을 하여서 그가 미치거나 혼미하게 되는 그런 네 가지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해서는 안된다.”(A.ii.8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삼장에 대해서 잘못 도 닦은 자는 차례대로 각각 ㉠나쁜 계행을 가짐(dussīlabhāva)과 ㉡삿된 견해를 가짐(micchādiṭṭhitā)과 ㉢마음의 혼란(cittakkhepa)이라는재난을 얻게 된다.
63. 이것이 이제
교학에 따른 구분에는 성취와 재난이 있나니
비구가 얻는 것을 따라 그 모두를 분석할 것이다.(§57)
라는 이 게송에 대한 뜻을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삐따까(藏)에 대해서 안 뒤에 이런 것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을 세 가지로 알아야 한다.
붓다사 사낭 찌랑 띳타뚜(3회)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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