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의 부족장 아홉 명이 백성들을 구지봉에 모아 놓고 흙을 파헤지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바구니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 알이 여섯 개가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황금바구니를 열어 보니 잘 생긴 아이들이 태어나 있었고 가장 큰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김수로왕이 되었다. 이후 수로왕이 나이가 들어 신하들이 결혼 걱정을 하자 왕은 ‘하늘이 정해준 왕비가 멀리서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어느 날 붉은 돛을 단 배가 바다에 나타났고 그 배에는 16세의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타고 있었다. 공주는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왔는데 신선이 먹는 대추를 구하고 하늘나라의 복숭아를 얻은 후 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수로왕과 허왕옥의 로맨스이다. 이야기대로라면 혼수품 중에 대추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추는 중국계와 인도계로 나뉘는데 ‘신선이 먹는 대추’라는 신비감으로 포장된 건국신화일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인도계 대추를 최초로 먹은 사람은 김수로왕이 될 수 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대추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사》「식화지」고려시대 명종 18년에 ‘밤, 잣, 대추나무 재배를 적극 권장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재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3000년 전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고 대추의 한자어인 조(棗)는 가시(棘) 자를 아래위로 붙인 것으로 나무에 가시가 많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신선이 먹는 과일이라고 하여 대추를 신성시 하였다.
한나라 무제는 곤륜산의 신선 서왕모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역에서 생산되는 귀한 포도주와 옥문(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으로 지금의 간수성 둔황시)에서 생산되는 대추를 준비하였는데 희귀한 술과 안주의 대명사이다.
대추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에 좋은 식품이라는 내용이 많다.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라는 것은 대추가 얼마나 좋은 과일인지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한 농부가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바둑을 두고 있는 신선들이 준 대추를 몇 알 먹고 바둑 구경을 하다가 마을로 돌아 왔더니 200년의 세월이 흘러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유일한 여성 황제인 당나라 측천무후는 80세가 넘도록 장수한 이유가 매일 대추를 먹었기 때문이며 청나라 서태후 역시 매일 대추를 먹고 70세가 넘도록 검은 머리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또한 ‘대추나무 방망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어려운 일을 잘 견디어내는 단단하고 모진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대추는 옛날부터 제사나 혼인 등에 빠지지 많고 들어가는 과일이다. 밤, 감과 함께 삼색과실의 하나로 우리와 친숙하다. 조상님을 모시는 제사상에 맨 앞줄을 차지하는 것이 대추, 밤, 배, 감이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므로 임금을 뜻하고 밤은 한 송이에 세알 즉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을 배는 씨가 여섯 개로 육조판서를 감은 씨가 여덟 개로 팔도 관찰사를 의미하여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기원한다는 속설이 있다.
《세종실록》에는 궁중의 각종 제례와 혼례의식에 대추가 쓰인 기록이 있고《숙종실록》에는 흉년이 든 해에는 대추 한 섬의 값이 쌀 20석이나 되니 공물을 줄여 받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금도 결혼식 폐백 때 신부의 치마폭에 시어머니가 대추를 던져주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다. 또한 태몽으로 대추나무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고 제사를 지낸 뒤 대추를 먹어야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예로부터 대추나무는 민속신앙으로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대추나무로 만든 방망이를 문에 걸어 둔다든지 부적이나 도장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벽조목이라 하는데 천둥과 벼락의 힘으로 귀신을 쫒아 낸다고 하여 도장이나 염주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단오 날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낸다고 하여 줄기가 둘로 갈라진 곳에 돌을 끼워주거나 도끼나 낫으로 줄기를 이리 저리 쳐서 상처를 주는 것인데 가지를 벌려 햇빛을 잘 받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려는 것도 있지만 광합성을 한 영양분이 뿌리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작용으로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위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오래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며 늙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한방에서는 대추가 여러 가지 약재를 조화롭게 하고 독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팔방미인으로 쓰인다.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칼슘·인·철분 등의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생대추는 비타민 C 함량이 높고 말린 대추는 미네랄 성분이 많다.
최근에는 대추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추석 무렵이면 대추가 익기 시작할 때이다. 집집마다 한두 그루는 꼭 있었고 몇 알 따서 깨물면 그 맛에 반하여 주머니가 불룩해 질 때까지 비축해 놓는 욕심도 부렸었던 추억이 있는 것이 대추다.
우리나라의 산자락이 높은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어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되었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왔던 대추하고는 맛도 크기도 다르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 졌고 경제적인 부담도 적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공기도 건조하고 감기도 조심하게 되면서 따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 되었다. 대추차 한잔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대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장수’와 ‘젊음’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에는 0.81명으로 감소하였다. 세계 217개 나라 중 가장 빠른 감소폭을 가지고 있는 반면 노령화율은 치솟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2023년 12월 2일자 칼럼에서 ‘한국은 사라지는가?’라는 제목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출산율 0.7명을 언급하면서 한 세대 200명이 다음세대에 70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14C 유럽의 흑사병 발생 당시 보다 더한 인구감소라고 지적하였다. 혹자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출산에 대한 인식을 지적하지만 출산율 하락은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소득, 교육, 주택문제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어른들이여! 대추차 한잔 하면서 고민 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