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개발에 앞장서 온 농협
경남 고성군 고성단협 조합장 조 경 문
지도자의 힘으로 자립기반 구축
고성단협은 경남 마산시 서남방 약 40km 지점인 고성읍에 소재하고 있으며 읍 소재지라는 지역여건 때문에 농가 호수는 총 호수 5,178호의 37%에 불과한 2,157호로 농촌 소재의 단협과는 달리 주민 상호간의 협동심이 빈약했고 진주, 마산, 삼천포, 충무 등의 도시를 끼고 있어 경제권이 분산되어 농업활동이 어려운 곳이었다.
더욱이 이 지역은 인접도시 양곡상인들의 고리채와 춘궁기의 장리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1961년도에 이 마을에 리동조합이 조직되었으나 조합원수 150호 정도로 규모가 영세하고 주민의 참여의식이 부족해서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당시 고성중학을 졸업하고 농사일을 돕던 조경문씨는 동민들에게 근면, 성실한 인품을 인정받아 1961년 23세로 송학동 동장에 임명되어 부락 내 30여명의 청장년들을 규합 무학청년회를 조직하여 마을안길 확장, 공동우물 설치, 지붕개량, 담장 개보수, 하수구정비 등 마을 환경개선을 추진하여 젊고 의욕적인 마을지도자로 높은 신망을 얻었다.
그 후 1972년 조 경문 씨는 고성읍내 11개 영세 리동조합이 통합되어 새로 발족된 고성단위조합 조합장으로 선임됨으로서 고성읍 전체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새로 발족된 고성단협은 읍 단위로 규모만 커졌을 뿐이지 인수자산이라고는 과거 11개 리동조합이 군조합에 불입한 출자금 백만 원 뿐이었다. 읍 단위조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자본임을 안 조 조합장은 우선 사비 150만원을 들여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그동안 새마을운동에 앞장서 일해 온 다섯 명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관내 유지들을 찾아가 출자를 권유하는 한편 관내 전 농가를 찾아다니며 출자의 필요성을 계몽한 결과 당년 말에는 15,000천원의 출자금을 조성해서 사무실 건물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합의 면모가 갖추어지자 다음 단계로 인접도시 양곡상인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이 지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5,000가마 규모의 백미 판매사업을 실시하였다. 즉 추수기에는 조합에서 쌀을 제값으로 매입하여 생산농가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한편 단경기에는 적정가격으로 판매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보장하여 줌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여세로 73년부터는 이용고 배당으로 소금 4,000가마를 구입, 조합원당 2가마씩을 현물배당 해 주었으며 출자배당도 해줌으로써 농민이 조합을 믿고 따르며 조합과 더욱 밀착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크게 신망을 얻은 조 조합장은 아직도 고리채에 시달리는 조합원에게 저리의 영농자금을 지원하여 생산의욕을 북돋아 주기 위해 상호금융조성에 더욱 큰 힘을 기우렸고 이를 위해 전 직원을 2개 반으로 나누어 1개 반은 내근 반으로 1개 반은 외근 반으로 하여 밤늦게까지 조합원 농가, 우시장, 각 급 학교, 은행 및 마을 1조금고 등에 출장토록 하여 현장에서 입출금 수속을 해주는 등 최대한의 편리를 제공하는 한편 농협에서 실시하는 각종 교육이나 행사 때에도 근검, 절약하는 저축 정신을 심어 주는 등 농민의 의식구조 개선을 통한 지속적인 저축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 결과 예수금은 해마다 크게 늘어 78년도에는 12억5천만 원으로 도시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의 실적을 올리게 되었으며 이 자금은 농가당 평균 50만원 꼴의 영농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난의 근원이었던 고리채가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관내 3개 금융기관 중 제일 높은 예금을 유치하게 되어 고성지역 경제권의 핵심체로의 기능을 다하게 되었다.
소득사업 추진
이와 같이 조합 사업이 확대되자 이를 바탕으로 한 소득개발 사업을 계획하고 먼저 1개 마을에 벼 시범영농단지를 조성하여 협동영농 실천으로 식량을 증산하고, 마늘, 맥주 맥 등 경제작물의 답리작 재배로 소득원을 다원화하였다. 그리고 지역특화 작목으로 비육우 및 양돈 등을 확대 입식하는 한편 3개 마을에는 부업단지를 조성하였다.
즉 관내 대평 마을에 30ha의 벼 영농단지를 조성하고 각종 자재와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육모, 모내기 병충해 방제 등의 영농작업을 협업영농으로 실시하는 등 전력을 기우린 결과 76년도에는 10ha당 700kg의 소출을 내어 도내 최고의 다수확 상을 받기도 하였다.
경제작물 재배에 있어서도 맥주회사와 맥주 맥의 계약재배를 실시 225호의 농가에서 93ha를 답리작으로 재배하여 경지 이용 율을 높이고 연간 77백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마늘 역시 답리작으로 재배하여 100ha의 면적에서 60톤의 마늘을 생산 5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기후가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이라는 지역 특성에 따라 소득 작목으로 확대되는 양파재배로서도 4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 바 있다. 또한 한우 비육 사업이 이 지역 주민에게 가장 적합한 소득사업이라는 판단 아래 73년부터 조합직영사업으로 40두 규모의 비육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비용절감, 일손 돕기 등의 이점이 있는 협업 비육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상호 신뢰할 수 있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7~8호의 농가단위로 관내 5개 마을에 비육우 작목반을 조직하고 축산지도원과 함께 각 지방의 우시장을 돌아다니며 비육에 알맞은 300kg내외의 소를 공동구입하여 주고, 자급사료 생산의 장기적인 안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20ha의 임야를 개간, 개량초지를 조성하고 이 지역에서 다량 생산되는 고구마 줄기를 사료로 이용케 하였다. 배합사료는 전량 농협을 통해 공동구입해 줌으로서 사료비를 절감하고 작목반당 30두 규모로 3개월 동안에 두당 70~80kg까지 증체시켜 연간 3회전으로 계통출하토록 하였다.
이와 같은 협업 비육 사업은 관내 5개 마을에 파급되어 현재 710호의 농가가 비육우 등 2,200두의 한우를 사육, 연간 2억 7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77년부터는 조합 특별지원 사업으로 관내 480호 영세농가 중에서 100호의 농가를 선정, 한우 배내기 사업으로 암소 1두씩을 지원해 주어 영세농가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성농협의 성공사례는 널리 알려져 전국 비육농가의 시범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고성단협은 양돈 사업으로 우량모돈 100마리를 입식하여 종돈 장을 설치하고 매년 1,000두의 새끼돼지를 생산 관내 농가에 염가분양해 주고 돈사 설치와 자돈 구입을 위한 자금 지원, 사료 공급, 축산지도원의 철저한 사육관리 지도로 관내 480호의 농가에서 4,500두를 2회전 이상 사육하여 78년에는 450만원의 큰 소득을 올려 참여농가 호당 90만원의 소득을 가져다주었다. 이밖에도 죽림이 우거진 송학동을 비롯한 3개 마을에 부업단지를 조성하여 자재와 자금 등 생산 및 판매의 일괄지원으로 연간 54만개의 통발을 생산 9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단지별로 수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여 관내 불우학생들을 위한 고등공민학교에 연간 100여만 원씩의 시설 및 운영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새마을사업 종합개발 사업추진
77년도부터는 우수 단협으로 선정되어 새마을소득 종합개발 사업에 착수, 첫 사업으로 39ha의 경지정리를 실시하고 한해 상습지인 관내 기월리에는 17ha의 논에 집수암거를 설치 생산기반을 정비 확충하였다.
생산시설로는 기계이앙을 위한 육묘시설과 비육우 협업축사 5동을 비롯 320두 분의 일반축사를 건립하였고, 유통시설로서 각각 100평 규모의 창고와 종합판매장 1동씩을 건립하여 관내에서 생산된 각종 농산물의 저장 판매 등 유통개선에도 힘을 기우려 78년에는 비육우, 미곡, 맥주 맥 등 모두 4억 3천만 원의 농축산물을 계통출하 하였다.
특히 농번기의 일손부족에 대처하기 위해서 농기계 종합 서비스센타를 마련하고, 트렉타, 이앙기, 수확기 등 대형농기계를 확보, 벼농사의 기계화를 추진하였으며 78년에는 시범사업으로 10ha의 논에 농기계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32℃의 온실에서 발아된 묘를 비닐하우스에서 영농부장 책임 하에 육묘하고 단협의 이앙기로 하루 4,000평의 논에 모를 심어 20인 몫의 일을 해내는 동시 작업과정별로 농기계 활용 교육을 실시하여 지역민에게 농업기계화의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수확기가 되면 콤바인에 의해 수확, 탈곡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 일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은 모두 농협에 맡기고 남는 시간은 축산이나 경제작물, 재배 등에 활용할 수 있어 농업기계화의 전망을 밝게 해 주고 있다. 또한 새마을 소득종합개발사업을 통한 문화 복지사업에 3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여 80동의 농촌주택을 표준주택으로 개량하였으며, 120호 농가에 상수도 시설을, 35부락에 앰프시설을 설치하였다.
복지사업의 일환으로는 영세조합원, 자녀 중에서 매년 학업성적이 우수한 15명의 각 급 학교 학생을 선발하여 초등학교 학생은 2만원, 중 고등학교 학생은 3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하여 이들의 향학열을 높였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고성읍 농민들은 의욕적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협동단합하여 자립농협을 육성하고 소득사업과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한 결과 78년에는 관내 2,157호 전 농가가 호당 평균 1,980천원의 소득을 올려 앞서가는 고장으로 발전하였으며 고성단협의 78년도 총 사업 취급액은 36억 1천8백만 원으로서 고성읍 전체 경제활동의 구심체가 되고 있으며 출자와 예수금을 통한 자금조성 금액이 13억4천만 원, 조합 경영수지는 6천만 원으로 2천5백만 원을 조합원에게 출자금 배당을 해주고 있다.
대망의 80년대를 바라보며
항상 앞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합장 조 경문 씨는 82년도 목표로 고성단협이 추진할 계획으로서 관내의 35개 전 부락에 비육우를 현재의 2,183두에서 4,200두로 확대하고, 답리작으로 마늘 200ha, 맥주 맥 19.3ha를 재배하며 이 지역이 농업기계화 시범단지로 선정됨에 따라 오는 82년까지 트렉터, 콤바인 등 모두 64대의 대형농기계를 확보하여 벼농사의 농기계 용역사업을 500ha로 확대하기로 하는 한편 관내 농가에는 경운기, 바인다 등 261대의 각종 농기계를 공급해서 농업기계화를 실현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35억 원의 자금을 조성하고 판매사업은 15억 원, 구매사업은 12억 원, 경영수지는 1억 7천여만 원으로 늘려갈 계획으로 있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1979 내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