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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6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회귀본능! 부활 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본문 : 마가복음 16장 11절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새번역>
만약 제비에게 이 능력이 없었다면 결코 흥부에게 복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새끼 제비를 마음씩 착한 흥부가 구해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정도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비의 이 능력이 흥부전을 더욱 재밌게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해 10월에서 11월이 되면 바로 이 능력 때문에 무려 2만km를 헤엄쳐 다시 남태천 집으로 돌아오는 ‘연어’가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오는 코스가 아니라 거센 물결을 완전히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정말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영상으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ntjAp4Njd5Q)
그래서일까요? 가수 강산에씨가 열창하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란 곡을 들어보면 저절로 저 연어들처럼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이라는 곳에 가면 바로 이 능력을 가진 동물로 인해 세워진 ‘돌아온 백구상’이 있습니다. 바로 백구라는 진돗개가 1993년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약 300km 거리를 되돌아 자신의 주인이었던 박복단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인해 이 백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상입니다. 역시나 백구도 이 능력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비도, 연어도, 진돗개도 가지고 있는 이 능력을 바로 ‘귀소본능, 회귀본능’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돌아가는 습성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귀소본능, 회귀본능을 가진 동물, 곤충 등이 있지만 사실 대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회귀본능 일타강사 ‘인간’입니다. 사람이야말로 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습성을 가장 빠르게, 자세히, 구체적으로, 계획적으로 실천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에게 있는 귀소본능을 이야기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 대사로도 유명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저는 이 말이야말로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존재이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배워도, 겪어도, 느껴도 달라지지 않는 존재, 어쩌면 그 존재의 대표가 인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자기의 귀소본능과 회귀본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저는 이랬어요!’ 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대체 그 원래는 언제, 어디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떨까요?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귀소 본능이 긍정적인 의미일까요? 부정적인 의미일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원래 있던 자리는 어디일까요? 특별히 부활 주일 이후 우리의 지난 한 주간을 돌이켜 보면 더없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그래도 양심상 ‘거룩’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순절에 대한 강조를 시작합니다. 너무도 하고 싶지 않지만 ‘금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MZ세대들에겐 ‘디지털 금식’이 ‘금식’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차라리 밥을 안 먹지 어떻게 스마트폰을 끊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디지털 금식’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셔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으려고 합니다. 안되면 오디오성경이라도 설거지나 빨래 등등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두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훨씬 더 많은 찬양을 찾아 듣곤 합니다. 그렇게 종려주일을 보내고 고난주간이 오면 ‘최고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고난주간 특별 기도회라도 참석하고 나면 부활 주일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 그렇게 길고 길었던 사순절이 부활주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이젠 정말 부활의 증인으로 살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마치 40일간 엄청난 행사를 치른 듯 피곤과 피로가 몰려옵니다. 육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영적인 피로감’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0초 만에, 40분 만에 사순절 전의 나로, 늘 그래왔던 나로, 늘 그래왔던 내 습관으로 회귀합니다. 마치 그 때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는 것과,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11절, 새번역>
부활 이후의 제자들 역시 귀소본능, 회귀본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직접 만난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처음 자리, ‘불신앙’과 ‘불신’의 자리로 이미 돌아간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다 포기하고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돌려 다시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되돌아가서 알렸으나,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16장 13절, 새번역>
둘 이상의 증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의 원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물거품으로 끝나버린 현재를 그저 원망하기 바빴고,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이 없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정말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향으로 향하는 두 제자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열한제자에게도 나타나십니다.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6장 14절, 새번역>
솔직히 정말 음식 먹는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마가복음의 기록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들의 스승이,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었는데, 그리고 삼일이 지나자 무덤은 비어졌는데, 시체를 자신들이 훔쳐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두 사람 이상이 증언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원래 하던 대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정말 사람은 원래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봅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이 제자들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마저 삼켜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덜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대 그들은 늘 그래왔듯이 덜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예수님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을 반드시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모두 걸려서 넘어질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27~28절, 새번역>
그 때 베드로와 제자들이 뭐라고 답을 한 줄 아십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모두도 그렇게 말하였다. <마가복음 14장 31절, 새번역>
물론 그 식사 자리의 분위기만큼은 무거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갈릴리로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욱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직접 나타나신 것입니다. 정말 실로 오랜만에 베드로를 꾸짖으신 이후로 꾸짖으셨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따끔하지만 사랑으로 다시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질책하시면서 다시 귀소본능, 회귀본능으로 제자리로 돌아가지 말고, 부활 이후의 완전히 새로워진 삶을 살라고 사명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결코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죽었기에,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소망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마가복음 16장 15절, 새번역>
다시금,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라고 제자들의 제자리를 찾게 해 주십니다. 인간으로서의 회귀 본능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회귀 본능을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사명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활 이 후의 첫 자리가 되어야 하고, 이제는 이 첫 자리를 기억하여 언제나 회귀하더라도 여기 이 자리, 하나님이 계신 자리, 말씀이 있는 자리, 사명이 있는 자리로 귀소하고 회귀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후 ‘All New’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본능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본향은 부활 이 후로는 이제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돌아가야 할 곳은 무덤에 묻힐 땅이 아니라 영원히 거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새번역>
이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한 생명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점입니다. 부활 이 후 하나님 나라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 후 이젠 가장 중요한 자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언제나 이 자리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입니다. 너무도 중요하고, 가장 강력한 기초의 자리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왜 한 주의 시작이 주일인지 아십니까? 모든 것이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로부터 시작하여 다시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런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다. <누가복음 24장 52~53절, 새번역>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 1장 14절, 새번역>
다시 불신앙의 자리, 불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드실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오면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있었던 사람은 500명이었지만,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이들은 120명밖에 없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도 그 380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방심하지 않도록, 승천을 직접 보았음에도 떠나간 380명이 되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를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활주일 이 후 우리의 귀소 본능이 원래 있던 불신앙과 불신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말씀과 기도와 예배로 고정되기 위하여 한 가지 구체적인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기찬말 3분’입니다. ‘귀찮말’ 아닙니다. ‘기찬말’입니다. ‘기찬말 3분’은 풀어서 기도 3분, 찬양 3분, 말씀 3장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 3분’은 아침, 점심, 저녁 각 1분 동안의 기도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침은 자신을 위해, 점심은 가족을 위해, 저녁은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딱 1분만 기도하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간에 구애 받지는 않으시되 가능하면 1분 이상은 기도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 3분’은 하루 중 원하는 시간에 한 곡의 찬양을 듣는 것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예배 때 드려지는 워십곡 보다는 개인이 만든 CCM곡들을 찾아서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배 때 드려지는 워십곡은 우리 ‘Revive Worship Team’에서 고민하시고 멋진 곡들로 고백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CCM은 길면 4분, 짧으면 3분이 조금 안 되는 곡들이 많습니다. 하루에 한 곡씩 찬양을 들으며 그 찬양이 주는 그대로의 묵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찬양을 알게 되는 발견의 기쁨도 누리시길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3장은 말 그대로 하루에 말씀 3장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 잘 읽지 않았던 성경 위주로 말씀 3장을 제안합니다. 아침에는 신명기, 점심에는 소 예언서, 저녁에는 바울서신입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읽기가 어려우시면 어플을 이용해 오디오성경으로 들으셔도 좋습니다. 특별히 저녁에 바울서신 같은 경우에는 저희 교회 유투브에 있는 ‘아빠가 읽어주는 말씀이어용’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기도 3분, 찬양 3분, 말씀 3분해서 ‘기찬말 3분’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기운이 가득 차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할 지 잘 모르시겠다면 내일부터 이 제안에 따라 한 번 진행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부활 주일 이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귀소본능, 회귀본능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가장 원초적이었던 자리로 이미 데리고 가셨습니까? 불신앙과 불신의 자리로 회귀한 나를 보면서 스스로 구제불능이라고 답답해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변화의 자리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부터의 시작입니까? 말씀과 기도와 예배란 기초의 자리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했던 제자들처럼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그저 1년에 한 번 있는 사순절이, 고난주간이, 부활 주일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진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다시 복음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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