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크 루박의 선교사 이야기는 포항 성결 교회의 필 독서이다.
프랑크 루박의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한 고민에 대하여 의외의 해결점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서에 기록된 14장의 말씀을 보면, 물위에 걸어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믿음의 상태에 있을 때와 잠시 시선이 세상으로 향할 때 일어나는 영적 상태를 성경의 기록에서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실족 상태에서 물에 빠지고 마는 베드로의 믿음. 그 믿음의 실제를 바라보면서 주님과의 교제는 끊임없는 시선과 집중에 대한 말씀이다.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프랑크 루박의 이야기는 그의 실체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는 자신을 통하여 주님께 향한 자신의 영적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집중의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동행이 주님에게만 집중도는 채널의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다면 주님과의 관계는 모든 것이 정리 되어질 것이며 오직 주님에게 집중되는 삶의 실제가 시작 될 것이다.
프랑크 루박의 선교사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가 되어 미국 우표에 당당히 프랑크 루박의 선교사의 모습이 기록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프랑크 루박 선교사는 매일 주님과의 실제를 통해 기록되어진 자신의 영적인 시간들을 보게 된다.
그러한 성령과의 시간들을 통한 자신의 하루가 영적인 삶으로 향한 주님과의 영적일기를 기록하며 행함에 대한 나눔을 가지는 실제의 시간을 경험하며 함께 나누어 보자.
성경의 예언과 말씀에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재림의 시간일 것이다. 도적같이 오는 주님의 재림. 그 시간은 도적이 오는 시간과 동일하가도 기록 되어져 있다. 도둑질하는 도적이 오는 시간을 알리고 오는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 하시려는 사람은 주님의 부활이 예고되어져 미리 알고 기다리지 않는다. 언제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시간을 비유로 나타내신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심사는 주님이 언제 오시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아니다. 주님과의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삶을 통하여 기록으로 보는 실제가 아니라 낮선 주님의 모습이 아닌 실체적인 사귐이 있는 더욱 더 친밀한 만남이 되어질 것이다.
날마다 입술로 고백드리는 당신의 허상이 아니라, 매일 주님만을 생각하는 영적인 상태와, 주님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다시한번 재고하여야 하며 혹시 그 모습이 허상이 아닌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감시하며 살아가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영적일기를 쓴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느끼며 성화되어져 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 안의 주님에게 집중하다 보면 주님과의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 질 것이며 주님과의 실제적인 교제를 통한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대하여 삶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비전을 가지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삶 자체가 실제가 되어진다는 사실은 과히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 예화를 들어 본다.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의 이야기이다. 대영제국의 국왕에서 일개 평민으로 돌아가는 에드워드 8 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에 대한 확신이며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혼녀 심슨이라는 미국인 여자를 사랑하면서 영국의 국왕이라는 세상의 가장 귀하고 큰 명예와 권력과 그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미국인 이혼녀를 사랑하기 위해 대영제국의 권력을 내려 놓게 만든 에드워드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슨의 회고록을 통해서 본 그의 글을 보면 슬픔과 고난이 있을 때 마다, 심슨은 에드워드의 사랑에 대한 진솔한 것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난은 에드워드의 희생에 대하여 짜증이 낼 수도 없었고 그의 사랑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감사의 날로 채워져 갔다고 한다.
모든 권력을 포기한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 정도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최고의 사랑에 비유 할 수 있을 까?
하늘의 왕관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교 할 수 있을까?.
심슨의 고백이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고백 이었다면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고백은 어떻게 표현 되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의 고백이 주님을 바라보는 십자가의 실제가 아닐까?
프랭크 루박이 매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분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매일 영적인 일기를 통해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교회내에서 모임방을 통한 주님과의 영적인 나눔을 계속 되어져 나눔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나눔의 시간을 통해 영적인 상황이 변해 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아니면 우리는 영적인 방황을 하게 된다.
존 웨슬리의 일기를 보면 그의 영적인 상태를 고백하고 있다. 체험적인 믿음을 구하는 존 웨슬리의 영적 승리를 우리는 수 많은 책들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일기를 통해 우리는 영적 승리를 쟁취할 것이 분명 할 것이다. 그때 능력이 차고 넘치는 기쁨을 느끼며 체험되어지는 자신으 영성을보게 될 것이다.
영성 일기는 강의 상류를 향해 역류하는 물줄기를 헤치며 노를 젓는 것 처럼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될 때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사고로 차고 넘칠 것이다. 주님께서 왕 되심을 인정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자. 그런 당신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인디언 원주민속에서 한 선교사님이 격은 글을 보면 인디언드이 사냥을 할 때. 지나가는 동물들을 휘파람 소리로 동물을 그 자리에 멈추게 하는 기술을 가진 것을 보면서 그 휘파람 소리에 달려가는 것을 잊고 잠시 서는 사슴을 사냥하는 기술을 보았다고 한다. 세상은 영적인 길로 달려가는 우리를 마귀들의휘파람 소리에 반응하는 미련한 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주님과의 교감이 끊어진 영적인 상태를 마귀는 그냥 있을리 없다. 세상은 인디언의 휘파람 소리처럼 마귀의 속삭임인줄으 모르고 속고사는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구원의 확신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자. 올 한해도 나와 주님과의 동행을 영적인 일기를 통해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를 인격적으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살아가는 귀한 영적인 승리를 하는 나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감격의 시간들도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올 한해는 놀라운 간증이 흘러 넘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영성 일기가 우리를 더욱 성장 시킬 것이다. 함께 영성일기를 써 봅시다. 주님과의 민감한 만남을 원하는 당신의 실제를 기대하면서...영성 일기를 쓰다.
나의 iPad에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