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de Ricci,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피렌체(Firenze)에서 태어나 알레산드라(Alessandr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숙모가 수녀로 있는 집 근처의 베네딕토회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성녀 카타리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집안일뿐만 아니라 수녀원에서 배운 대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실천해나갔다. 특히 그녀의 생애를 관통하게 될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심을 키워나갔다. 부자 청년과 결혼을 권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결국 토스카나 지방 프라토(Prato)에 있는 도미니코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수녀원에 입회하여 엄격한 수련을 받은 그녀는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이름을 따서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그녀는 입회 초기에 큰 병을 앓았는데 그 고통마저도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한 은총의 시련으로 받아들였다. 완덕을 향한 모범적 생활로 존경을 받은 그녀는 젊어서부터 수녀원의 수련장과 원장직을 맡아 훌륭히 수행하였다. 장상의 직분을 사임한 후에도 성녀 카타리나는 놀라운 신앙 체험을 한 인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매 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탈혼 상태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때 그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성녀 카타리나의 영향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 지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늘 겸손함을 간직하고자 노력했던 성녀 카타리나는 교회의 개혁 운동에도 최선을 다해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그리고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1590년 2월 2일 수녀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46년 6월 29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병자들의 수호자인 리치의 성녀 카타리나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선종일이 아닌 2월 13일에 기념해왔는데, 1971년 전례력을 개혁하면서 선종일인 2월 2일로 변경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2월 2일 목록에서 성녀 카타리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도미니코회에서는 그날이 주님 봉헌 축일과 겹치는 관계로 2월 4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굿뉴스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