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돌풍이 거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뤘다는 소식에 개봉 전부터 논란의 중심이 됐지만 지난 18일 보란듯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논란을 부지불식간에 잠재웠다. 이같은 기록은 개봉한지 33일 만에 이룬 것이다.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1위 ‘아바타’와 1231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보다 6일 앞선 속도다. 여기에 설날 연휴 때까지 별다른 경쟁작이 없어 역대 최고 성적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영화 ‘변호인’ 돌풍의 중심에는 최재원 위더스필름(주) 대표가 있다. 주변의 반대와 우려에도 뚝심 있게 밀고 간 그가 있었기에 현재의 영광이 가능한 것이었다. 현재 한국사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변호인’ 제작자 최 대표를 지난 15일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불자’다.
최 대표는 자신이 불자라는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주변에 항상 자랑을 하고 다닌다고 밝힌다. 신재호 기자 |
1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작을 생산한 제작사라서 떠오른 선입견은 단박에 무너졌다. 거대한 건물 전체를 차지하고, 휘황찬란한 사무실에서 높다란 ‘회장님’ 의자에서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신사동에 있는 것만 빼고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는 직원이 몇 명 없었고, 대표 사무실은 문도 따로 없었다. 미닫이 커튼 정도만이 대표와 직원 사이를 나누는 유일한 차단막이었다.
대표 사무실 또한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나리오나 두꺼운 자료집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그나마 벽에 붙은 ‘변호인’ 포스터만이 이곳이 영화와 관련 있는 곳임을 알게 했다. 그럴듯한 명패도 없이 어느 행사에 참석했을 때 받은 듯한, 이름 석자 써 있는 조악한 명찰만이 책상머리에 간당간당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최재원 대표는 반갑게 맞이했다.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의외의 환대에 놀라자 최 대표는 “평소 주변에 불교 자랑을 많이 하고 다녀서 인터뷰 의뢰가 오자마자 직원들이 먼저 해야 한다고 권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요청 당시에도 그는 직접 전화를 받아 자신을 “불자”라고 소개할 정도로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미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으로 생각하고 소감을 물었다. 이때 이미 주말쯤에는 1000만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라고 선뜻 꺼냈다.
“감사할 따름이다. 불교신문을 만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히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개봉할 즈음 이렇게 환경이 맞춰진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고, 철도 파업이 일어나고, 천주교 불교 등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하는 등 영화하는 입장에서는 호재를 맞았다. 게다가 관객들까지 몰려주니 이런 여건들이 조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허공의 힘이라고 생각됐다. 나는 불자이니 당연히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유난히 ‘동사섭(同事攝)’을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영화의 제작 과정이 한 사람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하는 만큼, 그 의미를 남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는 ‘동사섭’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영화계에서 최 대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 대표가 제작에 참여한 50여 편의 영화 중 꼽은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과정에서 스텝들이 일심단결해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피어난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최 대표는 부처님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불자다.
불자로서의 소신은 영화 ‘변호인’에도 반영됐다. 극중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가 기도를 하며 염주를 굴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최 대표의 요청에 의해 삽입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욕심 내지 않았다. 불자로서의 소신과 제작자로서의 소심함이 결합된 장면이 바로 이 기도하는 신이다.
지난 18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
최 대표의 불교 인연을 태어날 때부터 시작됐다. 대대로 집안이 불교를 믿어왔다. 하지만 여느 불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오신날에 절에 가는 정도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불문(佛門)에 들어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 전인 2004년, 증권회사에서 잘 나가던 그는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수십 억 자산가로서 승승장구 하다가 이른바 ‘쪽박’을 차게 됐다.
괴로워하던 그를 이끈 것은 아내였다. 어느 날 무작정 절에 가자고 독촉하던 아내는 충북 영동의 한 사찰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스님들을 조우하게 됐다. 최 대표는 인생의 최대 고비에서 절에 가서 하룻밤을 잤고, 정말 잘 잤다고 했다. ‘포스’가 남달랐던 스님들과 인연으로 불교에 입문한 그는 그 후 10년을 한결 같이 주말마다 사찰에 가는 신행생활을 했다.
하동 상운사가 그곳이다. 토굴이라고 설명한 그는 이곳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주말이면 반드시 달려갔다. 최 대표가 가지 못한 때는 해외에 체류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뿐이었다.
최 대표는 광제스님의 유발상좌다. 광제스님은 서옹스님의 맏상좌로 최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으로 추대됐던 스님이다. 광제스님의 상좌 은봉스님도 최 대표의 스승이다. 두 스님은 최 대표의 지금을 이끌어준 인생의 스승이자 멘토다.
스승들은 최 대표에게 내려놓는 법을 가르쳤고, 하심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웠다. 그렇게 불자가 된 최 대표에게 광제스님은 ‘화엄’이라는 법명을 내려줬다.
“어차피 출가할 놈도 아니니 네가 사는 세상에서 부처님의 화장세계(華藏世界)를 만들어보라는 의미로 주신 것이라 말씀하셨다. 원력세계에 살면서 기왕에 욕심을 내려면 크게 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최 대표는 절에 가는 것을 ‘올라간다’, 집에 가는 것을 ‘내려간다’고 표현했다. 딱 스님들의 마인드다. 일반 사람이 서울로 향하는 것을 올라간다고 하고 지방으로 가는 것을 내려간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언젠가 (절을) 내려가는데 스님이 뒤통수에 대고 ‘화엄아, 사내새끼가 죽기 전에 하루라도 남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셨다. 뒤통수를 크게 가격 당한 느낌이었다.”
돈이 생기면 유흥비로 탕진하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인생의 성공이라 여겼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영화 ‘변호인’도 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발로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았던 자신은 지금 어디 있는지 반조하고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반성 혹은 죄값”을 치르고자 만든 것이 이번 영화다.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제작자로서 차기 작품에 대한 고민도 클 터. 하지만 최 대표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영화 제작판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후배들에게 이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그는 “영화가 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000만 관객이라는 결과를 갖고 온 경험을 살려 좀 더 신념에 찬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기본적으로 불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최 대표에게 불교는 편안함이었다. 현대인들에게 이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편안함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 10년은 내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이런 인연을 많이 만들어 현대인들이 의식을 쉬고 에너지를 얻어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재충전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주변에 회향하고 싶다는 원력을 품고 있었다.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최 대표는 손사레를 쳤다. “감히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는 같은 불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을 보면서 부처님의 가피라고 여겼듯이, 신심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분명 허공의 힘은 존재합니다. 이를 부정하지 말고 나를 낮추고 하심 할수록 가피가 미친다는 것은 분명하니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_()_
한번 보고 싶네요.
저도 못 보았는데...
재가불자의 본보기가 될듯한 삶의 자세 아닌가 싶습니다.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