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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07회차-깃대봉-백운산 종주 이야기, | 일시:2020년 12월 06(일요) 기록: 한문희총대장, 자유인24기 백두대간종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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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주봉 영취산1075.6m(靈鷲山), 금남호남정맥 분기봉으로 진안 조약봉에서 북으로 금남정맥을 南으로 호남정맥을 일으킨다..
> <백두24>- 제07회 깃대봉-백운산 종주 스토리, 백두대간 제07회차 구시봉-영취산~백운산구간 기록실, ☞일시: 2020년 12월 06일(일요), 기록: 한문희총대장 外 30명 ☞대간숲길: 육십령-구시봉-민령-북바위산-덕운봉-영취산-백운산-중고개재-지지리 백운계곡 ☞도상:16.5km, 7시간소요, ♣특이사항: 날씨 맑음, -07:15분, 양재역 출발, -09:35분, 전북 덕유산IC진출, -10:15분, 육십령695m 도착, -10:25분, 들머리 육십령에서 산행시작 -10:55분, 이정표 육십령1.9km+깃대봉 1.0km, -11:05분, 샘터, -11:17분, 깃대봉 현: 구시봉1014.8m, -11:50분, 민령, -12:10~40분, 북바위 가기 전 안부에서 점심, -12:55분, 북바위봉, -13:32분, 산죽지대, -14:14분, 덕운봉 (민령 4.2km) -15:26분, 영취산 1075.6m, -16:35분, 백운산 1278.6m -17:15분, 중고개재 -17:40분, 지지리 백운계곡, 종료, 지지계곡(전북 장수 번암면 지지리169-2 삼거리정유장), -김진희+임은영 알바로 30분 늦어짐, 제대로 찾아옴, 수고, 장거리산행에 수고들 많았습니다. 알바로 2분 여성대원들 초조하고 불안해지는데 의연하게 대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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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靈鷲山>-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한 백두대간의 독수리산 - 01, >
육십령(六十嶺) 백두대간의 고개, 소재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주요한 고개로 도계표시가 서 있다. 높이는 734m이다. ♠명칭 유래: 신라 때부터 요해지(要害地)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 이상의 무리를 지어서 고개를 넘어야 도둑떼를 피할 수 있다거나 재몬당까지 60여 굽이가 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다. 삼국시대에는 나제국경(羅濟國境)의 요새지로서 성터와 봉화대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인근 덕유산 봉우리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되어 등극할 때 제단을 설치하였다는 유적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육십현(六十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육복치(六卜峙)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소백산맥의 남덕유산(1,507m)과 그 남쪽의 백운산(1,279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고개의 동사면은 지천을 거쳐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南江)의 최상류 계곡과 통하고, 서사면은 평지천을 거쳐 명덕천으로 연결되어 금강의 최상류 계곡과 이어진다. 이들 양 사면을 흐르는 하천은 많은 침식분지를 만들어 동쪽에 함양ㆍ안의ㆍ도천(道川) 등의 산간분지와, 서쪽에 장계(長溪)ㆍ명덕(明德) 등의 산간분지를 형성하였다. ♠형성 및 변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구간에는 육십령 외에도 지경령(地境嶺)ㆍ월암령(月巖嶺)ㆍ팔량치(八良峙)와 같은 많은 고개가 있어 예로부터 소백산맥의 장애를 극복하여 왔으나, 그 중에서도 육십령은 신라 때부터 개통된 지 오래된 고개이다. 과거에 육십령은 조령(643m), 죽령(689m), 팔량치(513m) 등과 함께 소백산맥을 잇는 영남 지방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현황: 따라서 육십령은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북부지역과, 진안을 거쳐 전주에 이르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26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진주간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육십령터널이 만들어졌고, 익산∼포항을 잇는 고속도로도 일부 준공되어 인근 장계면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출처: 한민족대백과사전- |
이곳 육십령에서 들머리한다. 10:25분 출발,
깃대봉 1km 지점에 위치한 샘터입니다.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습니다.
깃대봉입니다. 현재는 구시봉 1014.8m의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년전만 하여도 스텐레스 정상판이 있었습니다.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전경입니다. 할미봉 뒷켠으로 장수덕유(서봉)와 남덕유산의 위용을 보십시오,
대덕산에서 분기한 수도지맥입니다. 금원산-거망산-황석산 뒤편에 기백산의 웅장함이 거창땅입니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대곡저수지입니다 이곳에 의기 주논개의 사당이 있습니다.
북바위산입니다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이곳에서 북을울렸다 합니다.
민령-북바위지나면 약2km에 산죽능선입니다. 이곳 산죽은 키가 키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백운산(白雲山1278.6m)과 영취산(靈鷲山1075.6m) 위치: 백두대간 주능선 주봉우리, 전북 장수군 장계면/ 경남 함양군 서상면, 주요: 백두대간의 주맥, 금남호남정맥 분기봉, (금남호남+금남+호남 3정맥) 개요: 백운산은 구름이 걸쳐있는 산으로 함양 서상과 장수번암의 진산으로 매우 호쾌한 능선을 지니고 있다. 영취산은 장수 장계의 영산으로 신령스럽다. 독수리 같다 하였다. 이곳에서 호남 땅을 적시는 섬진강과 금강의 북쪽 울타리 구실을 하는 금남정맥과 동쪽으로 발원하는 낙동강(남강)이 발원하는 3파수 역할을 한다.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북한의 요지들을 경유 금강산에 이르고 남한의 설악-오대-태백-월악-속리-덕유산에 이르고 육십령에 내려앉아다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포효하는 영취산과 백운산이다. 백두대간은 남원 땅에 잠시 내려서 다시금 지리산을 들어 올린다. 덕유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지덕구간의 핵심봉우리인 셈이다. 영취산 영상에는 대형 표지석, 표지판, 삼각점이 있다. 영취산과 백운산에서 조망은 북으로 형제처럼 장수덕유와 남덕유가 동편으로 거창의 황석산과 기백산, 거망산이 손안에 들어오고 서편으로 이웃인 장안산이 남쪽으로 지리산 영봉들이 조망된다.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산자분수령의 원칙으로(물은 산을 넘을수 없고 산은 물을 가른다) 무룡고개에 내려서며 장안산을 거슬러 호남과 충청도 땅을 아우른다. 우리땅 우리 산줄기 구석구석 맥들이 물길을 가르며 산맥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소중한 우리 산하 우리가 보호하고 사랑합시다. -자유인 한문희- |
주논개(朱論介) 1574년~1593년, 의기, 전북도 시도기념물 제46호 논개 생가와 유물유적지,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933번지에 있는 해방 이후 의암 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유적지. 백두대간 육십령에서 깃대봉(구시봉1014.8m)~영취산1075.6m 산줄기 서쪽아래 대곡저수지가 있는 대곡리 마을에 유적지가 있다.(장수IC 12km지점) 개요: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정식 명칭은 의암사(義巖祠)다. 논개의 본관은 신안으로 현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천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최경회(崔慶會) 장군이 경상병사로 진주성에 들어갔다가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전사하자,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의암사(논개사당)는 1954년 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하였고, 논개 영정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다. 당시의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1960년대 후반기부터 추진된 성역화사업은 1973년에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정화사업에 착수하였다.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했고 삼문(三門)과 담장을 설치하였다.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주논개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하였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지냈다. 1968년부터는 이날을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계속하고 있다. 1981년 4월 1일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고 설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 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였다. 주흥에 도취된 왜장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당시 논개의 나이는 19세였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며, 예문관으로부터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 사액 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5년 장수에 사당을 지어 "의암사"라 명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며 매년 음력 9월 3일 주(朱)논개제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치러진다. |
>> 수고들 하셨습니다. > 백두대간 24기종주대 한 걸음~ 나아가는 백두대간 먼~ 그길을 황소걸음으로 걸어가리라 우리들의 아낌과 사랑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누이 형제되어 날머리에 앉으리라! >
♬(너랑나랑>- 꿈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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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
아무나 알바 못하죠~~??ㅎㅎㅎ
모든 대원분들께 염려와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ㅠㅠ
30분동안 많을걸 깨우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흔히들 알바는 산행의 꽃이라고는 하지만, 다행히도 두 여전사님의 기지로 무사히 합류하여 다행이었어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처음 산행길에서 산행중 앞사람과 뒤사람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