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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위 수행의 성위(聖位)와 경계의 함의
(1) 건혜지(乾慧地)
욕애(欲愛)의 생각이 이미 말라버려 6근이 외부경계의 물욕과 서로 짝이 되어 합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유한한 남은 생애는 기질이 이미 변화해서 더 이상 업습(業習)을 계속 발생시키지 않는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이 두 가지 집착심[執心]이 비고 밝아서 어둡지 않으며[虛明不昧], 청명함이 몸에 있는[清明在躬] 지혜이다. 수행을 점점 오래오래 하다보면 지혜의 성능이 밝고 원만하여 시방세계를 비춘다. 단지 그 지혜가 지혜만 있을 뿐 아직은 자성 대정(大定)의 공덕을 발생시키지 못하므로 건혜지(乾慧地)라고 한다.
(2) 10신(十信)
① 신심주(信心住)
건혜지 중에서 욕습(欲習)만 처음 말랐고 아직 진여 자성의 법의 흐름[法流]과는 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처음 얻은 마른 지혜만 있는 마음으로써, 마음의 생각 생각마다 가운데서 마치 화살마다 과녁에 적중하듯이 법성의 흐름으로 흘러들어가 점점 진심으로 하여금 원만하고 미묘함[圓妙]을 열어 펼치게 한다. 이로부터 진심이 묘하고 원만한[妙圓] 경계 속에서, 새롭게 지극히 진실하고 절묘한 지견을 발생하여, 진심은 원래 영원히 존재하면서 불변임[常住不變]을 증득하고 진실한 신심을 깊이 갖춘다. 온갖 망상이 자연히 다 소멸하여 남음이 없고, 완전히 중도(中道)의 순진(純眞) 속에서 행하는 것을 신심주라고 한다.
② 염심주(念心住)
진실한 신심을 증득하여 온갖 것을 분명하게 알고 모두에 원만히 통달하고 자재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안과 밖 그리고 중간 세 곳이 더 이상 장애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과거 미래 무수한 겁의 시간 속에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았던 온갖 습기가 모두 한 생각 사이에 목전에 나타나 이를 자연히 기억하여 잊지 않은 것을 염심주라고 한다.
③ 정진심(精進心)
진심은 영묘하면서 원만하고, 진정(真精)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무시이래의 습기를 모두 일체(一體)의 정명(精明) 묘용으로 융화시킨다. 이러한 정명으로써만 다시 진보를 추구하여 진정(真淨)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정진심이라고 한다.
④ 혜심주(慧心住)
진심의 정명이 현전하고 온갖 행위[作爲]에서 순수하게 지혜인 것을 혜심주라고 한다.
⑤ 정심주(定心住)
지혜 광명의 경계를 집지(執持)하여 몸과 마음 안팎이 두루 고요하고 맑다[寂湛]. 적정(寂靜)하고 영묘한 가운데 있음이 마치 멈춘 물 맑은 파도와 같으면서 항상 선정이 응결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심주라고 한다.
⑥ 불퇴심(不退心)
정(定)의 경계 속에서 청정한 광명이 나타난다. 정의 경계의 광명으로부터 자성으로 깊이 들어가 진보만 있고 물러남이 없는 것을 불퇴심이라고 한다.
⑦ 호법심(護法心)
이 마음이 경안(輕安)하고 태연한 경계 속에 들어가 한결같이 보호 유지하면서 잃지 않고, 시방세계 부처들의 기분(氣分)과 서로 교접하는 것을 호법심이라고 한다.
⑧ 회향심(回向心)
진심이 고요히 비추는[寂照] 각명(覺明) 경계를 보호 유지하여 묘유(妙有)의 힘을 생겨나게 할 수 있고, 부처의 자비의 광명을 회광반조(迴光反照)할 수 있다. 부처의 경계 속으로 전향하여 편안히 머무름이 마치 한 쌍의 밝은 겨울이 광명이 서로 비추고 그 속의 묘한 그림자가 서로 겹겹이 비추어 들어옴과 같은 것을 회향심이라고 한다.
⑨ 계심주(戒心住)
마음 광명이 면밀하게 되돌아가 부처의 항상 응결된 무상묘정(無上妙淨)의 힘을 얻는다. 무위(無爲)의 경계 속에 안주하여 영원히 잃지 않는 것을 계심주라고 한다.
⑩ 원심주(願心住)
자재하고 무애한 계심(戒心) 경계 속에 머무르면서 시방세계를 유희할 수 있으며 가는 것이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을 원심주라고 한다.
(3) 10주(十住)
① 발심주(發心住)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진실한 법문으로써 이상의 10심(十心)을 일으키면, 진심의 정령[心精]에 빛이 발생하면서 앞에서 열거한 10심의 작용이 서로 교섭하여 들어가 유일한 진심으로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발심주라고 한다.
② 치지주(治地住)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밝고 깨끗한 경계가 마치 깨끗한 유리 속에서 안에 들어있는 제련된 금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앞서 나타났던 묘한 마음이 언제 어디서나 묘하고 밝은[妙明] 심지(心地) 중에 행하는 것을 치지주라고 한다.
③ 수행주(修行住)
발심과 치지(治地)와 관련된 모든 지견이 명료하면서 시방세계에 두루 노닐 때 모두 장애에 걸림이 없는 것을 수행주라고 한다.
④ 생귀주(生貴住)
행함이 부처와 같고 부처의 기분을 느낀다. 이는 마치 중음신(中陰身)처럼 환생할 부모를 자유롭게 얻어 서로 감응하여 부처의 종성에 들 수 있음을 생귀주라고 한다.
⑤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이미 어느 때나 도에 마음을 노닐게 할 수 있음이 마치 사람의 몸을 얻어 태(胎)에 든 것과 같으며, 이미 몸소 부처의 법통을 받은 것과 같다. 이로부터 더욱 수행함이 태아가 사람의 형태를 완성함과 같은 것을 방편구족주라고 한다.
⑥ 정심주(正心住)
다시 더 나아가 형태와 얼굴이 부처와 같고 도심(道心)도 부처와 서로 같은 것을 정심주라고 한다.
⑦ 불퇴주(不退住)
몸과 마음이 원만하고 밝음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날마다 증장하는 것을 불퇴주라고 한다.
⑧ 동진주(童真住)
여기서 더욱 증진하여 부처가 갖추고 있는 열 가지 몸[十身]을 일시에 다 갖추게 되는 것을 동진주라고 한다.
⑨ 법왕자주(法王子住)
점점 사람의 형태가 완전히 성장하여 세상에 출태(出胎)하여 몸소 부처의 법을 얻은 자녀가 되는 것을 법왕자주라고 한다.
⑩ 관정주(灌頂住)
이미 자라서 어른이 되었음이 나라의 태자가 성년이 된 뒤에 장차 왕위를 계승하고 관정(灌頂)을 얻는 것을 관정주라고 한다.
(이상의 생귀주로부터 관정주까지는 입태하여 사람이 되는 것에 비유로 하고 있는데, 수행공력 효과[功用] 면에서 확실히 실재적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실상實相으로 여겨 실유實有 경계로 굳게 집착하는데, 사실 해를 끼치고 잘못을 끼침이 적지 않다. 이 가운데 묘용은 증득을 해야 비로소 안다. 공空과 유有가 모두 융화하고 지혜와 자비를 함께 운용하는 실제의 이지理地에서야 이를 이해하고 깨닫는다).
(4) 10행(十行)
① 환희행(歡喜行)
이미 부처의 법자가 되고나면 무량한 여래의 묘덕(妙德)을 갖추고 있다. 시방세계에서 온갖 면에 있어 중생에게 합당하게 따르고[隨順] 인연을 따라서 제도하는 것을 환희행이라고 한다.
② 요익행(饒益行)
온갖 중생을 위하여 복리(福利) 짓기를 잘 하는 것을 요익행이라고 한다.
③ 무진한행(無嗔恨行)
자기가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남도 깨닫게 하되, 만나게 되는 온갖 번뇌에 대하여 거부함이 없음을 무진한행이라고 한다.
④ 무진행(無盡行)
미래의 무궁한 시간 속에서 어떤 종류의 중생으로 태어나되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음을 무진행이라고 한다.
⑤ 이치란행(離癡亂行)
온갖 법문을 연역(演繹)하거나 종합하되 언제나 틀림이 없음을 이치란행이라고 한다.
⑥ 선현행(善現行)
온갖 것의 근본이 동일한 법성 가운데서 갖가지 다른 차이의 작용을 드러내고, 또 차이가 나는 현상마다에서도 그 근본의 같은 곳을 볼 수 있음을 선현행이라고 한다.
⑦ 무착행(無著行)
더 나아가 시방허공계의 모든 미진 속의 어떤 한 알갱이의 먼지 속에서도 또 하나의 시방세계를 출현시킬 수 있다. 이처럼 상호 변화시켜 나타내되 티끌을 나타내든 세계를 나타내든 서로가 장애에 머무르지 않는 것을 무착행이라고 한다.
⑧ 존중행(尊重行)
갖가지 현재의 하는 행위들은 중생을 미혹과 괴로움에서 구해내어 그로 하여금 해탈하여 피안(彼岸)의 제일위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것을 존중행이라고 한다.
⑨ 선법행(善法行)
이와 같이 원융 통달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들의 의궤와 법칙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을 선법행이라고 한다.
⑩ 진실행(真實行)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은 갖가지 순서와 경계는 하나하나가 모두 청정한 무루 가운데에서의 행위[行業]이다. 모두 하나의 진실한[一眞] 무위 자성 가운데서의 본연의 드러남인데, 이를 진실행이라고 한다.
(5) 10회향(十回向)
①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이 사람이 만약 이미 신통묘용을 충분히 얻어서 불사(佛事)를 성취하고 절대적으로 순결하고 정진(精真)하며, 남아있는 허물을 모두 떠났다면, 당연히 온갖 중생을 미혹과 괴로움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그러나 자기는 또 마음속에서 남을 제도할 수 있다거나 혹은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제도했다는 관념과 현상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 무위의 마음을 모두 열반[圓寂]의 길로 되돌리는 것을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이라고 한다.
② 불괴회향(不壞回向)
비워서 무너뜨릴[空壞] 수 있는 모든 것은 비워서 무너뜨리고, 멀리 떠날 수 있는 것은 멀리 떠나되, 무너뜨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다는 관념[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불괴회향이라고 한다.
③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回向)
자성 본각의 체가 고요히 나타나고, 각성이 부처의 정각과 같음을 등일체불회향이라고 한다.
④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回向)
진심이 지정하여[至精] 광명을 내고 심지가 부처의 심지와 같은 것을 지일체처회향이라고 한다.
⑤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回向)
만유세계와 진여 자성이 서로 교섭하여 들어갈 수 있되 조금도 걸림이 없는 것을 무진공덕장회향이라고 한다.
⑥ 수순평등선근회향(隨順平等善根回向)
부처와 중생의 평등한 성지(性地) 가운데 있으면서 각각 다른 청정한 인(因)을 발생하고, 이 인을 의지하여 그 묘용을 발휘하여 열반의 도과(道果)를 취하는 것을 수순평등선근회향이라고 한다.
⑦ 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隨順等觀一切眾生回向)
진실한 도의 뿌리가 이미 성취되고 시방세계 속의 중생이 모두 나의 본성의 동체(同體)라고 본다. 자성이 비록 이미 원만하게 성취되었지만 아울러 어떠한 중생도 번뇌와 미혹에서 구해낼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이라고 한다.
⑧ 진여상회향(真如相回向)
온갖 법 그대로와 하나이면서, 온갖 현상을 떠났다[即一切法, 離一切相]. 그대로와 하나도 아니요 떠나지도 않으며, 또한 떠났으면서 또한 그대로와 하나임[不即不離, 亦離亦即] 중에서 두 가지에 모두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진여상회향이라고 한다.
⑨ 무박해탈회향(無縛解脫回向)
진심이 여여(如如)한 경계를 얻어 시방세계의 온갖 것에 걸림이 없는 것을 무박해탈회향이라고 한다.
⑩ 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回向)
본래 자성의 묘덕이 원만히 성취되어서 이른바 법계의 변제(邊際)와 수량 관념도 소멸한 것을 법계무량회향이라고 한다.
이상이 바로 심성수행 과정 중에서 세운 41위의 청정한 심지 경계의 함의이다. 그 다음으로 네 가지의 미묘하고 원만한 가행(加行)을 성취해야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행이란 이상의 심성을 닦고 다스리는 심지법문을 겨냥하여 한 말이다. 왜냐하면 41위의 수행 순서는 대부분이 심성 경계를 가리키면서 그것을 명칭화 하여 순서를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는 이미 지극히 고명한 경계를 얻었지만 행지의 공부 면에서는 그 공용(功用)에 주의해야한다. 이러한 공부의 공용 경계를 4가행이라고 한다. 4가행도 심성법칙으로 여겨본다면 절실함을 잃은 것 같다. 그러므로 다음은 이 체험에 바탕들 두고 4가행의 묘용을 말한다)
(6) 4가행(四加行)
① 난지(暖地)
이미 부처와 같은 각성(覺性) 묘용을 얻고, 자기 심지 상에서 공부를 하는데,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나지 못함이,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취하는 것과 같다. 불빛이 비록 아직 타 일어나지 않았지만 따듯한 기운이 이미 흘러 퍼지는 것을 난지라고 한다.
② 정지(頂地)
자기 심지 상에서 이미 성취함이 부처의 행하는 바와 밟아가는 바와 마찬가지이다. 이 기질이 남아있는 진색(塵色)의 생리의 몸에 대하여 겉모습이야 그것을 의지한 듯하지만, 사실 내면에서는 꼭 그것에 의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몸은 비록 위로 허공에 이어져서 허공에 들어가 있지만, 아래는 여전히 장애들이 있어서 완전히 떠날 수 없는 것을 정지라고 한다.
③ 인지(忍地)
마음 그대로 곧 부처이고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이미 진심이 둘 아닌[真心不二] 절대적인 진리의 실제의 경계를 증득하여, 이 마음이 불도(佛道)와 같을 뿐만 아니라 중도불이(中道不二)의 묘용을 잘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일을 참고 있는 사람이 마음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참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의미가 크게 있는 것 같은데, 이를 인지라고 한다.
④ 세제일지(世第一地)
온갖 경계와 명칭 수량이 완전히 소멸했고 미혹했다할 것도 없고 깨달았다할 것도 없다. 미혹과 깨달음은 양변의 상대적인 명사(名辭)와 작용인데, 이제는 모두 아직 깨닫기 이전의 과거의 군더더기 말이 됐다. 오직 불이(不二)의 중도의 제일의제 중에서 행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상관없는 명사(名辭)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세제일지라고 한다.
(7) 10지(十地)
① 환희지(歡喜地)
대보리(大菩提: 무상정지정각無上正知正覺) 가운데서 잘 통달하고 각심(覺心)이 이미 진여 자성을 통달하여 부처의 경계를 다 이해할 수 있음을 환희지라고 한다.
② 이구지(離垢地)
모든 세간 출세간 제법(諸法)의 차이의 성능은 모두 그 근원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나중에 그 동일한 성(性)조차도 소멸하여 머물지 않는 것을 이구지라고 한다.
③ 발광지(發光地)
내심의 청정함이 극점에 이르고 자성 광명이 발생하는 것을 발광지라고 한다.
④ 염혜지(焰慧地)
자성 광명이 극점에 달하고 정각(正覺)이 원만한 것을 염혜지라고 한다.
⑤ 난승지(難勝地)
온갖 제법[一切諸法]의 같고 다름을 다 얻을 수 없는 것을 난승지라고 한다.
⑥ 현전지(現前地)
무위의 진여자성이 자연히 청정하고 밝은 묘덕을 드러낸 것을 현전지라고 한다.
⑦ 원행지(遠行地)
진여자성의 변제(邊際)를 다한 것을 원행지라고 한다.
⑧ 부동지(不動地)
일심(一心) 진여가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것을 부동지라고 한다.
⑨ 선혜지(善慧地)
진여심(真如心)의 묘용을 일으키는 것을 선혜지라고 한다.
⑩ 법운지(法雲地)
보살도를 닦아 익히는 과정에서 여기서부터는 닦아 익히는 공부[功用]를 다 마치고 공덕이 이미 원만해졌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불법을 닦아 익히는 정위(正位)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자비의 그늘 묘한 구름이 열반의 바다를 덮는 것을 법운지라고 한다.
(이상으로 대승보살도를 닦아 익히는 55위 순서가 끝났다).
등각(等覺)
범부 경계로부터 본원(本元)으로 돌아가 자성진여를 증득하고자한다면, 반드시 생사 바다중의 망상의 흐름을 역전시켜야 한다. 만약 어떤 수행자가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따라 행하여 정각의 성해(性海)에 도달하여 모든 부처님들의 법성과 서로 교섭하면, 등각의 위라 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보리정각과 서로 동등하게 된다.
묘각(妙覺)
등각에 도달한 뒤에 각성이 비로소 금강유심(金剛喻心) 중의 대정(大定)을 얻는다. 최초의 건혜지로부터 이와 같은 겹겹의 단수와 복수 이 둘을 합한 숫자인 12종의 계위를 거치면서 수행해야 비로소 묘각을 다하여 무상도(無上道)를 이룬다.
(예컨대 매 위마다 단수가 되는데 더하면 10위가 된다. 10위는 5위의 2수 복수다. 이것이 일중단복一重單複이다. 중생의 세계에는 시간인 3위가 있고 공간인 4위가 있는데 34 43해서 곱하여 12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계는 6근 6진이 형성되며 통틀어서 12근진根塵이라고 한다. 만약 본원으로 되돌아가는 도를 닦아도 역시 12근진에 의지하여 닦아야 한다. 이것이 제이중단복第二重單複이다. 건혜지로부터 난지ㆍ정지ㆍ인지ㆍ세제일지ㆍ등각ㆍ묘각에 이르기까지 일곱 개 단위에다 10지 등 55위의 5수를 더하면 7과 5를 서로 더해 12를 얻는다. 이것이 제삼중단복第三重單複이다. 천수天數는 5고 지수地數도 5로서, 천지의 수가 50하고 또 5인데, 그 용用에는 49가 있다. 5는 1에서 10에 이르기까지의 중간 숫자로서 10과 교차되며 순행하여 추단연역推斷演繹하면 무궁한 숫자에 이르고 거스르면 다시 1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불도 수행에서는 55위를 세우는데, 이것이 제사중단복第四重單複이다. 형이하의 유수有數는 모두 1에서 시작한다. 십백천만억 그리고 무량한 숫자에 이르기까지 역시 모두 1위일 뿐이다. 형이상의 숫자도 1로부터 거꾸로 돌이킨다. 1로 되돌아가면 형이상의 불가지不可知의 숫자로 나아간다. 동서고금에 동서양의 성인과 범부는 명수名數 이치에 대하여 서로 다르지 않는데, 정말 불가사의한 지극한 이치이다. 이 속의 묘한 이치는 무궁하며 이로부터 관통하면 불법 명수의 이치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상 말한 갖가지 지위는 모두 금강 같은 불변의 지혜로써 관찰한 것이다. 세간 사물은 모두 꿈같고, 허깨비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고, 거울 속의 꽃과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허공 꽃 같고, 신기루 같고, 파초와 같음을 인식한다. 관찰하여 또렷이 인식하고서 사마타(奢摩他: 지정止定의 경계) 속에서 모든 부처님들이 가르친 비파사나(毗婆舍那: 혜관慧觀)로써 서로 함께 융합하고 함께 운용하여[雙融雙運]하여 청정하게 이를 수증하되, 점차 깊이 들어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는 순서상으로부터 이 숫자를 세운다. 그러나 모두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점차 증진 방법으로써 55위의 진정한 보리정각의 길을 닦아야 한다. 만약 이에 의지하여 관을 닦는다면 정관(正觀)이라고 하고, 다른 관을 하면 사관(邪觀)이라고 한다.
(이상은 남회근 선생 『능엄경대의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