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새롭게 시작한 루틴이 있다. 하루에 셋 이상의 수학 문제 풀기이다. 그날 공부한 문제를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 인증 하는데 그 모임의 리더는 우연히 알게 된 블로그 이웃이다. 수학학원 원장인 그는 어른의 수학 공부 모임도 이끈다. 모임의 참여자는 각자 하고 싶은 과정을 선택하는데 초등 수학부터 고등 모의고사까지 제각기 다른 진도로 매일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이 모임에 참여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둔지 7년이 넘어가자 고등과정에 자신이 없어졌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느끼는 몰입감을 이어가고 싶어서이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유명 학원 입학 테스트를 대비한 단기 과외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학원 입학 테스트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시험 범위인 수학(상)을 단기간에 정리해줄 역량도 되지 않아서 난처했다.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입학 테스트는 심화 문제가 다수 출제될 게 분명하고 고등 심화가 몇 시간 수업 듣는다고 해결이 될까 싶어 자신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거절을 했지만 거듭 부탁하여 결국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날부터 나의 수학 공부는 다시 시작 되었다.
2시간 수업을 위해 2시간의 수업 준비가 필요했다. 하루에 꼬박 4시간을 수학과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3주가 퍽 만족스러웠고 정서적으로도 편안했다. 수학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자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들렸다. 가끔 답지를 펼쳐보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지만 그 외에 어떤 잡생각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끙끙대다가 끄덕이다가 아하!라고 외친다. 문제에 주어진 조건도 얼마나 명쾌한가. 현실 세계는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있고 심지어 내가 파악도 하지 못한 변수들이 사건을 일으킨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수습도 어렵다. 그런 현실과 달리 수학 문제 속 깔끔한 세상은 안 될 거 같아도 결국 풀리게 되어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게 있다.
수학 문제를 들여다보는 게 외면 또는 회귀일 수도 있다. 어려운 현실의 문제에서 도망쳐 내가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수학이라는 세계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정적인 느낌도 들지만 수학 문제를 풀며 몰입하는 시간은 명상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우리는 평소에 딴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어제 일 또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다가 내일과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힘들다. 길을 걸으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끊임없이 생각한다. 두 달간 걷기 명상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은 걸을 때 오로지 발바닥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천천히 걸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걷다 보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발바닥의 감각을 예민하게 인지하게 되는데 왼발 오른발이 균형을 옮겨가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느꼈다. 걸을 수 있다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러자 걸을 수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한 마음이 솟아났다.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던,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잡생각에서 벗어나 무엇엔가 몰입하는 시간은 매우 유익하다. 누군가에게는 달리기, 그림 그리기, 뜨개질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다.
어떤 날은 문제를 풀 기분이 아닌 날도 있다. 그럴지라도 아니 그럴수록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들여다본다. 어느새 고요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