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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따라 옹기종기 초가지붕 그윽한 삶 |
순천 낙안읍성 고샅길 조선 태조6년 왜구침략에 맞서 |
입력시간 : 2012. 09.07.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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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이 우람하고 누각이 고풍스럽다. 초가집도 정겹다. 그 사이로 휘어지는 고샅길이 구불구불하다. 돌담엔 햇살이 가득하다. 돌담이 모나지도, 높지도 않다. 그 위로 하늘이 파랗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결도 달콤하다.
그 길을 따라 뉘엿뉘엿 걷는다. 돌담을 타고 오른 넝쿨이 온통 초록빛을 머금었다. 그 넝쿨에 수세미가 매달려 있다.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걸렸다. 켜켜이 쌓인 초가지붕에선 마른 짚 냄새가 묻어난다. 토방과 마루도 정겹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집 안마당도 한가롭다. 오래 전 고향집 같다.
돌담 옆으로 물레방아 도는 모습이 고즈넉하다. 선조들의 그윽한 숨결이 배어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진다. 쉼 없이 도는 물레방아 앞에서 발길이 오래 머문다. 햇살에 비친 물방울이 눈부시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따라 연못가를 돌고 있다.
'삼베 짜는 집'이 보인다. 다사로운 햇살에 마당이 고슬고슬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내다보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길쌈을 하고 있다. 횡재다.
인사를 건네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할머니(이옥례·77)가 "들어오라" 하신다.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앉았다. 방안이 비좁다. 네댓 평 정도 돼 보였다. 방안에 살림도구가 널브러져 있다. 텔레비전도 있다. 방의 절반을 베틀이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의 손발은 여전히 부산하다. 날줄에 씨줄을 넣고 조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힘드시겠어요. 벌이는 좀 되세요?"
"벌이는 무슨…. 안 팔려. 옛날에는 쪼깨라도 팔렸는디, 지금은 안 팔려. 하나도…."
"이렇게 베를 짜서 얼마씩 파는데요?"
"한 마루에 예전엔 30만원도 허고 25만원도 했는디, 지금은 20만원 받을 때도 있고 못받을 때도 있고 그래."
할머니가 얘기하는 '한 마루'는 20자다. 손때 묻은 자의 크기는 대략 60㎝ 정도였다. 할머니는 알아주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아서 일이 힘들다고 했다.
"팔려야 하고 잡제, 안 팔린 게 재미도 없어. 벌이가 안 된께 젊은 사람덜도 배울라고 안 허고…."
하지만 할머니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배운 게 이거(길쌈)뿐"이라고. 10살 넘어서부터 베를 짜기 시작해 지금까지 베를 짜며 농사도 짓고 있단다.
"워쩨, 배운 것이 이것 뿐인디. 할 수 있는 디까지는 해야제. 낼이라도 아프믄 못헌께 할 수 있을 때 해야제."
깊게 파인 할머니의 주름골이 더 깊어 보였다.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마을풍경이 조선시대 같다. 사극 촬영장 같기도 하다. 실제 사극을 많이 찍었다. 드라마 '대장금'과 '장길산', '왕건', '어사 박문수'를 여기서 찍었다. 영화 '춘향뎐'과 '취화선', '태백산맥'도 이곳 배경을 활용했다.
그렇다고 마을이 민속촌이나 향토박물관은 아니다.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용 집도 아니다. 안동 하회마을 같은 양반마을도 아니다. 우리 민초들이 살아왔던 옛 모습 그대로다.
낙안읍성은 조선태조 6년(1397년) 토성으로 쌓았다. 왜구의 침략에 맞서려는 방어용이었다.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주도했다. 이후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해 현재의 석성으로 고쳤다. 인조 4년(1626년)이었다.
성곽의 높이가 4m 정도 된다. 너비도 3∼4m로 넓다. 총길이 1410m로 모두 이어져 있다. 동내ㆍ남내ㆍ서내 등 3개 마을을 감싸고 있다. 성곽이 높지만 길이 넓어 누구라도 부담 없이 돌아볼 수 있다.
성 안엔 120세대 288명이 살고 있다. 집은 툇마루와 부엌, 토방을 갖추고 있다. 마을에 대장간과 장터, 서당, 우물터도 있다. 고을 수령의 숙소였던 내아와 손님을 맞던 객사도 오롯하다. 관가도 옛 모습 그대로다.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있다. 주말과 휴일에 펼쳐지는 역사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나각과 나발소리에 이어 여섯 번의 북이 울렸다. 수문군의 신원 확인이 이뤄진 직후였다. 이어 부신을 맞춰보는 합부의식이 진행됐다. '부신'은 나뭇조각에 글자를 적고 도장을 찍은 뒤 두 조각을 낸 것이다. 따로 지니고 있다가 서로 맞춰보며 증거로 삼았다.
부신 확인이 끝나자 수문장의 권한을 상징하는 순장패 인계의식이 이어졌다. 다시 나각과 나발소리에 이어 북이 세 번 울리고 성문의 열쇠가 들어 있는 열쇠함이 전달됐다. 교대를 끝낸 수문군은 읍성 주위를 순찰하는 순라의식에 들어갔다.
색다른 볼거리였다. 성내 볼거리는 또 있었다. 옥사와 형틀체험은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다. 소달구지를 타보는 것도 즐거워했다. 쇠를 달궈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의 풀무질도 아이들을 유혹한다. 마을 노인들이 새끼를 꼬고, 이것으로 짚신과 맷방석을 짜는 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언제라도 편안한 마을이다. 재미난 볼거리를 선사하는 마을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 좋은 고샅길이고, 성곽길이다.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 길
낙안읍성 민속마을 고샅길 걷기는 동문(낙풍루)에서 시작한다. 동문에서 객사, 동헌, 내아, 낙민루를 거쳐 서문까지 갔다가 성곽을 따라 동문으로 돌아오는 게 일반적이다. 성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성곽 일주를 따로 해보는 것도 좋다. 2∼3시간이면 거뜬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호남고속국도 승주나들목으로 나가 서평삼거리에서 857번지방도를 타고 죽학·금산·성북삼거리를 차례로 지나면 된다. 서해안고속국도 죽림나들목에서 연결되는 목포-광양간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벌교나들목으로 나가 봉림교삼거리를 건너도 된다. 읍성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오후 6시30분 이후엔 받지 않는다.
먹을 곳
성내에 토속음식을 파는 난전이 4곳 있다. 백반과 보리밥, 비빔밥, 국밥, 칼국수 등을 판다. 두부김치, 녹두빈대떡, 파전, 도토리묵, 더덕무침, 꼬막도 취급한다. 동동주는 기본이다. 성밖에선 고향보리밥(☎754-3419), 선비촌회관(☎754-2525), 녹수산장(☎754-6504)이 소문 나 있다.
묵을 곳
성내에 민박집이 많다. 겉모습은 초가형태지만 방안은 모두 현대식으로 고쳐져 있다. 큰샘민박(☎011-417-9063), 이방집민박(☎010-3627-6632), 민속민박(☎010-3642-2766), 실집민박(☎010-2052-5722), 물레방아처갓집(☎010-5554-2968)이 깔끔하다.
가볼 곳
동문과 주차장 사이에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있다.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이었던 고 한창기 선생의 소장 문화재를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금전산 금둔사도 있다. 납월매로 해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절집이다. 옛 절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고찰 선암사도 멀지 않다. 숲길이 아름답다. 문화재가 많은 절집이다. 해우소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도 멀지 않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도 지척이다.
문의
낙안읍성 민속마을 관리사무소 ☎061-749-3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