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종 총무원장상
그림자 상
산소호흡기 고통 정근으로 달래 금강경 사구게 내 처지 대변한 듯
나는 11대 종손인 아버지의 4남 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3대 독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새벽기도 공덕으로 할머니 연세 50이 가까워서야 태어나셨고 15살 가을 동갑 신부를 맞이했다.
그러던 1996년 5월 21일 새벽.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누워 하루에도 몇 번씩 영안실로 내려가는 유체를 본다. 생과 사의 간이역. 이곳에서 좋아지는 것은 신기하게도 귀뿐이다. 보호자와 의료진의 발자국 소리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니 말이다.
나는 코에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입으로는 물 한 모금도 넘길 기력이 없어 하루에 한 번씩 코에 관을 넣어 연명하게 되었다. 이런 악조건에서 보름이 지나니 정신이 포기 쪽으로 바뀌었다. 건강할 때는 참회기도 반야심경이 끝나야 하루를 접었는데…
다행히 습이 있어서일까 아파오는 고통보다 더 크게 관세음보살을 찾으면서 이겨 나갔다. 이 무렵 칠흑 속 한줄기 빛은 뜻밖에 금강경 사구게였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명법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어다.’
지금 내 처지를 이렇게도 절실하게 말씀해 놓으셨단 말인가. 막상 저승을 받아들이고 이승을 관조하니 제일 먼저 열심히 공부하지 못함이 후회스러웠다. 불법이 좋아 야간불교대학 2년을 다니며 포교사고시 1회 합격하고도 전법을 실행하지 못한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중환자실에서 이승을 떠나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마치 현실인 줄 알았다. 그 꿈은 너무 생생하고 지금도 그 감촉이 남아있다.
이승의 다리를 건너니 이승에 두고 온 사람은 아지랑이처럼 작은 물방울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동굴이 보였다. 동시에 문이 내려지고 무엇인가 밟은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뜨니 동굴 속의 새벽이었다. 이후 저승사자의 안내로 흑암바다를 날아서 가까이 가니 보석으로 지어진 극락전이 공중에 떠 있는데 난간이 없는 곳에 나를 내려놓는다.
금으로 된 마루는 뜻밖에 따스한 안방의 온도처럼 느껴 지고 소나기 온 뒤처럼 청정한 공기가 느껴졌다. 연분홍기둥과 샛노란 난간에서 빛이 멀리서는 불덩어리로 보였지만 막상 연분홍 기둥을 두 팔로 안아보니 따스했다. 아름다운 색채 맑은 공기 넓은 공간 구석에 누워 쉬어 볼 생각으로 기둥을 잡으려는데 누군가 “너의 자리는 여기에 없다”고 발로 허리를 차버린다.
그리고 눈을 뜨니 몸의 고통이 다시 느껴지는 중환자실이다. 그러나 신비스럽게도 산소호흡기 없이도 코로 청정한 공기가 들어오고 체온계는 40도를 훨씬 넘나드는데도 내 몸은 얼음골에 누워 있는 듯 너무 추웠는데 따스한 저승에서의 감촉이 현실에서도 전해졌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 중환자실 빈 공간에서 서서히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며칠 후 병실로 올라왔다. (계속) 장원각성(광주시 서구 농성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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