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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모퉁이에서 공부하는 미학연구 청강생 입니다. ^^
잼나게 읽고있는 책입니다.
대진대 철학과김성환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들었다는군요.
웹상에서 공짜로 얻게되어 대학노트로 빵빵 뚫어 만들었는데
이제 다시 웹상으로 돌아가는게 좋을것 같아서요 -ㅣ-;;
첨부합니다
제9장 시나위의 문화 비평 록과 아도르노
김지현
1. 민주화 항쟁의 불길에 동승한 젊음의 폭발
방문을 활짝 열고 노래를 불러보니
어느새 졸음마저 사라져 버렸네
크게 라디오를 켜고 함께 따라해요
크게 라디오를 켜고 함께 노래해요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다. 신중현의 맏아들 신대철이 1983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결성한 시나위가 1986년에 발표한 우리 나라 최초의 헤비 메탈 앨범에 실린 노래다.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2000년에 들어서야 017 핸드폰 광고와 영화 “동감”의 주제가로 뜬 임재범이다.
신중현도 록 음악인이지만 팬들이 가만히 앉아서 박수를 치는 감상 태도에 만족한 세대였다. 그러나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앉아서 듣는 노래가 아니라 서서 들으며 손을 흔들고 따라 부르는 노래다. 그래서 그런지 후렴 부분도 쉽고 흥겹다.
시나위 1집이 나온 1986년은 전두환 군사 정권 아래서 우리 국민이 민주화 항쟁의 불길을 활활 태운 시기였다. 대학가와 시내 곳곳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았고, 서울역 광장에 수십만 명의 대학생과 시민이 모여 외쳤다. ‘군부 독재 타도!’ ‘반미!’ ‘직선제 개헌!’ 전두환은 박정희 유신 정권의 유산인 유정회 회원들이 잠실 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한 ‘체육관 대통령’이었다. 군사 정권과 민주화 항쟁과 록 음악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신대철의 말이다.
“80년대는 문화적 고갈의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젊은이들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했을 때 가장 강력하고 격렬하게 할 수 있는 게 록 음악이었다.”
군사 정권과 민주 국민의 대결은 정치 문제에 집중하고 문화를 메마른 빈 땅으로 팽개쳐 놓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에게도 정권의 광기와 혼란은 모르는 새 스트레스를 주고 기성 세대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낳는다. 따라서 록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강력하고 격렬한 젊음도 만일 군사 정권의 억압과 민주 시민의 저항이 없었다면 쉽게 폭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저항성과 화염성이 강한 록 음악은 민주화 항쟁의 불길에 동승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백두산?부활?들국화?시나위 등이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헤비 메탈은 우리 나라 대중에게는 말조차 낯설고 매우 전문적인 음악이며, 일부 매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나위의 첫 앨범은 비록 그 시절의 여건과 관행 때문에 단 사흘 만에 녹음을 마쳤지만, 우리말 헤비 메탈도 어색하지 않게 들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나위의 헤비 메탈은 대중에게 억눌린 기분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통쾌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시나위는 순우리말이고 남도 무악에서 사용하는 즉흥 연주를 가리킨다. 본래 1970년대에 크게 유행한 영국과 미국의 헤비 메탈도 시각 요소가 강했지만, 시나위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앨범보다 라이브 공연을 고집했고 즉흥 연주와 무대 매너가 뛰어났다. 게다가 순우리말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마 신중현의 영향이 컸겠지만 록 음악을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산표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도 있어 보인다.
시나위는 신대철이 예나 지금이나 리더지만 보컬을 맡은 얼굴 마담 바꾸기로 유명하다. 창단 때 보컬은 주준석이었으나 군대 가서 죽었고, 그 뒤 김종서, 1집은 임재범, 2집은 다시 김종서, 3집은 김성헌, 4집은 또다시 김종서, 5집은 손성훈, 6?7집은 김바다가 맡았고, 2000년부터는 김용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자주 바뀌었을까? 아마 숨은 뜻도 없지 않겠지만 모든 멤버가 제각기 개성이 강했고 그래서 불화도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서가 이렇게 자주 이름이 나오는 게 흥미롭지만, 신대철은 시나위 탈퇴 후 김종서의 행보에 대해서는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고 냉담하게 잘라 말한다. 김종서는 시나위 4집 때 베이스를 맡은 서태지와 함께 탈퇴했다.
2.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 비판
테오도르 아도르노(Th. Adorno)는 20세기 사상가 중에서 음악에 가장 밝은 인물이다. 어머니가 성악가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소리의 세계를 익혔으며,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철학?사회학?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음악학도 파고들었다. 청년 시절부터 음악 평론을 썼고, 12음계 기법을 창시한 현대 음악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 Schonberg)를 일생 동안 존경했다. 살아 있을 때 ??신음악의 철학??을 펴냈고, 죽은 뒤에는 ??예술 이론??도 나왔다.
“모차르트를 재즈로 편곡할 때 편곡자는 모차르트 곡이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어려울 경우 또는 별 이유 없이도 멜로디를 다르게 바꾼다. … 베토벤의 간단한 미뉴에트 같은 진지한 음악의 한 부분을 연주하는 재즈 음악가는 부지불식간에 곡을 축약하고는 정상적인 박자를 지켜 줄 것을 요청받으면 거만한 미소를 보낸다.”
대중 음악에 대한 아도르노의 견해는 고전 음악과 비교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고전 음악은 한 곡을 이해하기 위해 그 곡 전체를 들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중 음악은 한 곡 전체가 각 부분을 이해하는 데 별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청중은 각 부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도르노의 눈으로 보면 모든 대중 음악이 선사하는 쾌감은 심오하지 않고 표면적이며, 청중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표준화된 리듬에 순종하는 노예다.
대중 음악인이 들으면 열받을 소리뿐이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제시한 ‘문화 산업’에 대한 선구적 견해는 특히 시나위의 음악과 통하는 부분도 있다.
아도르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함께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서양 자본주의 문명을 마르크스의 눈으로 비판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창시자며, 1947년에 현대 문화를 비판한 고전 ??계몽의 변증법??을 함께 펴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 산업이 제공하는 재미는 일의 연장일 뿐이다. 문화 산업은 저녁 때 직장을 떠난 후 다음 날 아침 정확하게 일터로 복귀할 때까지 사람들의 감각을 낮 동안 하는 노동 과정의 연장선 위에 묶어 둔다. TV?영화?음반?오락 등 문화 산업은 대중에게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채워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마치 엿가락 늘어나듯 질질 끄는 연속극처럼 그 약속의 이행을 계속 유보하거나 결국 벗어나고 싶은 일상 생활을 찬양함으로써 대중을 기만한다.
또 문화를 획일적으로 상품화하는 문화 산업의 포위 속에서 대중은 ‘언제나 똑같은 것’을 선택하는 자유인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문화 상품의 소비로 개성을 추구한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젊은 처녀가 의무적인 데이트를 수락하고 끝내는 방식, 전화를 받을 때나 가장 친밀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억양, 대화에서의 단어 선택 등 … 내면 생활 전체는 자기 자신을 성공에 적합한 장치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장치는 깊숙이 충동에서 드러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문화 산업이 제시하는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반응들조차 스스로에게까지 철저하게 사물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유한 개성이라는 이념도 극도로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개성이란 번쩍이는 하얀 치아나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 또는 감정이 없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문화 산업의 선전이 승리했다는 것과, 소비자들은 문화 상품을 꿰뚫어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동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는 이미 아도르노가 겨냥한 대중 문화의 시대를 넘어서 사이버 문화 시대로 들어섰다. 이젠 문화 상품도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패턴에서 벗어나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구찌 가방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진품을 원하고 가짜라도 들어야 덜 부끄러운 우리 현실에서는 반세기 전에 아도르노가 한 말이 아직도 효력을 지니고 있다.
‘사물화’란 죽은 사물이 살아 있는 것을 지배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저마다 생생하게 움직여야 할 충동조차 유행 상품에 길들어 있다면 개성은 더 이상 개인의 독특한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없다. 개성은 설사 있더라도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면 신분 증명서에 찍힌 지문의 차이 정도에 지나지 않고, 시나위의 노랫말을 빌면 “대한민국 사람은 주민등록증” 번호나 다른 사이비 개성일 뿐이다.
3. 시나위의 대중 문화 비판
어제 나는 은퇴했었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 눈물을 흘렸었지
나의 연극(너를 위한 무대) 너는 관객(나를 위한 성공)
나의 연출(너를 위한 이별) 너의 동의
멋진 말들로 연설을 했었지
젖은 눈으로 기다림을 약속하면서
슬픈 연극은 끝났어 나를 보내야만 해
너희들의 슬픔이면 나에겐 힘이 돼
기다림에 지칠 때면 다시 돌아올꺼야
너희들의 눈앞으로 오늘 난 영웅이 되었지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며 눈물 흘릴테지
신대철이 작사 작곡하고 1997년 발표한 6집에 실은 “은퇴 선언”이다. 10대를 겨냥해 급조한 댄스 그룹들이 장삿속으로 은퇴와 컴백을 되풀이하는 대중 음악 풍토를 비판한 노래다. 이 노래는 한때 방송 과정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기자 회견 장면의 배경 화면으로 나가는 바람에 서태지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특히 노랫말의 마지막 “눈물 흘릴테지”에서 “테지” 부분을 한참 뜸을 들이며 불러 더욱 서태지를 겨냥한 노래가 아니냐는 문의가 빗발쳤으며, 시나위의 라이브 공연에서 베이스를 맡은 멤버는 서태지 팬들이 던진 식혜 깡통에 맞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신대철은 특정인을 겨냥한 노래가 아니라 유행처럼 번지는 은퇴 연극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해명하면서 진정한 가수에게 은퇴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서태지든 댄스 음악인이든 넓게 보면 모두 시나위와 같은 대중 음악인인데 동업자를 비판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또 남에 대한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철저한 자기 비판부터 선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자기 비판의 산물이 뚜렷한 자의식이다.
신대철은 대중 음악인으로서 자의식이 비교적 확실해 보인다. “음악을 함으로써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는 신대철의 말은 과장이고 자찬이라고 냉소를 보낼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투철한 직업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직업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가지는 것이며 다른 능력이 없어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또 언제나 좋아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신대철이 대중 음악이면서도 대중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한 록 음악, 그것도 헤비 메탈을 시도한 까닭은 정말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작용했을 테지만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비록 5집에서 얼터너티브 록으로 변신, TV 출연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나위가 지금까지 적어도 록 음악을 고집하고 있는 모습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대철의 동업자 비판은 결코 가벼운 것으로 볼 수 없다. 고전 음악에 비해 대중 음악을 불신하는 아도르노의 눈으로 보면 시나위의 헤비 메탈도 별것 아니고, 더욱이 시나위의 동업자 비판은 도토리 키재기다.
그러나 문화 산업이 대중을 기만한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은 시나위의 “은퇴 선언” 속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 팬들이 기다림에 지칠 때 다시 돌아오려고 은퇴를 연출하는 대중 음악계의 풍토는 스타를 숭배하고 모방하는 사이비 개성을 이용하여 문화 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수많은 장치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길가는 어린애도 이런 사실을 알고 따라서 별로 흥미롭지 않은 폭로일 뿐이라는 주장은 시나위의 “은퇴 선언”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없다. 다 알면서도 선뜻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중요하다. 마치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권이 ‘군사 정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마찬가지였듯이. “은퇴 선언”은 시나위가 은퇴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자의식의 소리다.
4. 소외된 인생들을 위해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만들었고, 이 학파는 서유럽 마르크스주의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서 휴머니즘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휴머니즘의 핵심은 인간 소외에 관한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인간 소외 중에서도 주로 노동자의 소외 현상에 주목했다.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그래서 일은 보람있는 게 아니라 지겹고, 또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짐승처럼 먹고사는 걸 버는 수단에 지나지 않고, 갈수록 남들과의 경쟁만 치열해진다. 이러한 현상이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의 소외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소외 이론은 소외 현상을 노동자에게만 제한하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으로 확대한다. 20세기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조직의 규모가 커지는 게 특징이다. 관료 조직?재벌 기업에 속한 사람은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기가 그 조직에서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또 조금만 철이 들면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서로 물리적 거리는 짧아졌지만 심리적 거리는 훨씬 멀어졌다.
관료 조직이든 재벌 기업이든 아파트든 사람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정작 주인인 사람은 그 속에서 나사 부품 하나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사람이 만든 것이 사람을 지배하는 현상이 현대 사회의 소외 현상이다.
대중 문화, 특히 대중 음악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은 거의 모든 사람의 소외를 낳은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의 일부다. 현대 사회는 상품을 신으로 숭배하면서 죽은 사물이 산 사람을 지배하는 소외를 낳고, 문화 산업은 그 첨병이다. 현대 사회 비판이 문화 산업 비판에 앞선다.
앞뒤를 가릴 수는 없지만 시나위의 음악도 동업자 비판과 함께 사회 비판을 많이 담고 있다. 1980년대 헤비 메탈에 비해 얼터너티브 록으로 전환한 5?6집과 사이키델릭 록을 구사한 7집이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얼터너티브 록은 커트 코베인(K. Cobain)의 너바나(Nirvana)가 상징하고, 사이키델릭 록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최고 스타 지미 헨드릭스(J. Hendrix)가 대표한다. 모두 서양에서 록 음악의 저항 정신을 이어받은 적자들이다.
매를 드는 사람 너는 말하지
고갤 높이 들고 나를 향해서
너는 길들여질거야 아주 쉽게
하루 이틀 사흘 무감감해질거야
그래(그래) 나는 매맞는 아이들과 함께
그래(그래) 내게 고통을 주는 네게 따르지
시나위의 5집에 실린 “매맞는 아이”다. 학교 폭력?가정 폭력을 거의 직설법으로 다루고, 이런 폭력에 무디어져 가는 사회도 비판한 노래다. 순순히 길들어 가는 학생들의 심정을 절망으로 노래했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 대들기보다는 목숨과 졸업장을 구하려고 비굴해지고 갈수록 비참한 심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도 소외다.
말뿐인 주둥이 이젠 그만 닥쳐라
합리화에 중독된 씨발 새끼들
개야 짖어라 인간의 짖음이 들리지 않도록 개야 짖어라
차라리 시체와 대화를 하겠다
말 많은 인생들 잘나빠진 주둥이
서로를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아
요란한 세상에 지쳤어 지쳤어
잘나빠진 주둥이는 너의 모순을 크게 밝힌다 개야 짖어라
7집에 실린 “개야 짖어라”다. 이 노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하는 인간들을 비판한다. 이런 모습이야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특히 정치권에서 서로 잘났다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미루고 싸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인간들의 말을 듣느니 차라리 개 짖는 소리가 듣기 좋단다.
7집은 ??psychedelos??라는 앨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사이키델로스는 ‘마음을 본다’는 뜻의 라틴어다. 미국에서 1960년대 중후반 지미 헨드릭스가 대표한 사이키델릭 록은 비록 약물에 크게 의존했으나,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열어 보려 한다는 것은 마음이 뭔가에 의해 닫혀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마음을 닫았을까? 1960년대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베트남 전쟁 등 기성 사회 질서가 마음을 여는 것을 방해했고, 1990년대 한국에서도 온갖 사회 부조리와 인간 소외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못난 모습을 사회 구조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개 짖는 소리보다 못한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모든 잘못이 사람 탓이고 따라서 사람의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은 관제 언론이 즐겨 쓰는 논법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역시 언론은 내 편이야’ 하고 정치계와 경제계의 거물들이 속으로 손뼉친다.
어머니 날 용서해 주세요
당신의 사랑을 저버렸어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요
역시 7집에 실린 “유서”다. 철학에서 소외는 오래 전부터 주목받았고, 인간 소외 사상은 이미 구닥다리 이론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외 현상은 아직 뿌리가 깊고 튼튼해서 좀처럼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새 버전이 계속 나오고 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는 학생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고등학생들, 동성동본 때문에 혼인 신고를 못하는 연인들, 불편한 몸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는 마음들도 모두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체계가 있지만, 이 구조와 체계도 모두 나와 남의 관계가 만드는 것이다. 사회가 소외를 낳는다는 말은 나와 남의 낯설고 비열한 관계가 소외를 낳는다는 말과 같다.
이런 비인간적 관계를 고발하는 일은 록 음악의 전통에 속한다. 교사나 정치가가 이런 고발을 하면 듣는 학생이나 국민이 짜증을 내지만, 대중 음악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 있다. 록 음악은 이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 문화의 역사에서 20세기 들어서야 처음으로 음악이, 그것도 대중 음악이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외된 인생들을 위한 음악은 시나위만이 아니라 진정한 록 음악을 꿈꾼다면 아무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자랑스럽고 부러운 전통이다.
<참고 문헌>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김유동?주경식?이상훈 옮김, 문예, 1995).
?박준흠,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교보문고, 1999.
?칼 마르크스, ?188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권, 박종철 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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