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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영화 소개 스크랩 피에르 오그스트 르느와르
Vistar 추천 0 조회 232 10.02.27 04: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상주의의 선구자, 르느와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 ~ 1919)

 

견습 도기화가에서 출발한 프랑스 화가 르느와르는 쿠르베, 디아즈, 코로, 그리고 동료 학생인 모네, 바질르, 시슬레의 영향을 받았다.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했다.

 

밝은 색채의 혼합물을 보여 주고 술렁이는 인파에 쏟아지는 햇빛의 효과를 연구하는 인상화풍의 그림을 그리다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한 그는 여체를 관능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르노와르기 63세이던 1904년에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화가'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말년에는 심한 관절염에 의한 고통으로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자 붓을 팔에다 고정시키고 팔레트를 무릎 위에 놓고 그림을 그렸다.

 

특별관람석 1874년, 런던대학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던 르느와르 초기의 대표작이다. 짙은 연지색의 배경 앞에 화사한 옷차림의 남녀가 클로즈업 되어 있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검정색은 색채화가인 르느와르의 진가가 발휘된 작품으로 꼽힌다. 남성 모델은 르와르의 동생이며 여성은 직업 모델 니니이다.

 

뱃놀이에서의 점심 1881년,워싱턴, 필립스갤러리

 

여기에 모인 인물들은 대부분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왼쪽에 앉아 개와 놀고 있는 여인은 르느와르의 전속 모델 알린느 샤리고로 이 그림이 완성된 후 르느와르와 결혼을 했다. 그 맞은 편 오른 쪽에는 르느와르가 즐겨 그린 모델인 앙젤르가 보인다. 르느와르 인물화의 특징인 활기찬 인물의 동세와 우아함이 화면 가득하다.

 

피아노 앞의 두 소녀 1893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이 그림에서는 19세기 말엽 프랑스의 가정생활 환경을 상세하고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거칠거나 엄격함 등을 절제하고 색채를 엷고 부드럽게 온화한 황금빛등이 전형적인 르느와르적인 표현법이다

 

이레느 깡 단베르양의 초상

 

가슴을 조이고 있듯 긴장한 눈매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응시하고 있는 가련한 소녀상은 뭔지 모를 연민(憐憫)의 정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소녀상은 르노와르가 즐겨 다루는 소재의 하나이다. 놀란 토끼처럼 동그란 눈, 투명한 살결의 프로필은 유연한 붉은 자색의 머리칼에 감싸여 더욱 돋보인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의 한 가닥, 한 가닥은 르노와르 특유의 흐르는 듯한 붓놀림으로, 산만한 듯하면서 도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청결하고 감미로운 작품이다.

 

책읽는 여인 1874∼76년, 캔버스에 유채


젊은 시절의 르느와르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르느와르는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빛의 효과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화가는 거기서 다양하고 미묘한 색조들을 발견한다. 책에서 반사된 빛은 얼굴의 그림자를 투명하게 만들고 있으며, 머리는 마치 스스로 빛을 뿜는 것처럼 빛난다. 여인이 얼굴은 빛의 반영이 밝아 매혹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빠른 붓질로 턱의 형태가 나타나고, 괄호형의 곡선은 입술과 눈, 눈썹 등 화면의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붓의 터치는 어떤 곳에서는 물감을 두껍게 발라 놓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단순하게 씻어 내리며 자연스러운 필치를 보이고 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르느와르, 1876년, 캔버스에 유채

 

인상주의의 진정한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 당시의 무도회와 야외 술집의 즐거운 분위기를 잘 살린, 유쾌하고도 건강한 삶으로 흘러 넘치는 찬란한 작품이다.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자들의 탐구를 옥외의 밝은 빛 아래의 인물에 적용하여, 풍부한 색채의 반점들과 밝은 빛으로 진동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는 작품의 구성에 인물의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인상주의를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위대한 단계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다. 풍경 또는 정물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야와 영감의 폭을 넓혀 감으로써, 그는 프랑스 회화만이 아니라 전 세계 회화의 위대한 거장들 속에 자리잡게 된다.


1877년 제 3회 인상주의전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120호나 되는 대형 캔버스를 아틀리에에서 몽마르트의 무도장까지 매일 가지고 가서, 현장의 정경을 직접 묘사한 것이다. 나뭇잎을 헤치고 들어오는 햇빛의 순간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포착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는 작품이다. 같은 인상주의 계열의 화가이자 소장가였던 카이유보트가 프랑스 정부에 기증해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도시에서의 춤  르느와르, 1883년, 캔버스에 유채


<시골에서의 춤>과 짝을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시골에서의 춤>에 비하여 인물을 다소 멀리 잡았다. <시골에서의 춤>이 식사가 끝난 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면, <도시에서의 춤>은 두 남녀 모두 턱시도와 드레스, 흰 장갑에 이르기까지, 격식을 갖춰 차려 입었다. 시골 사람들에 반하여 도시 생활의 다소 인공적인 측면, 격식과 체면을 갖춘 생활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시골에서의 춤 1883년, 캔버스에 유채


이 작품은 <도시에서의 춤>과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부지발(Bougival)의 무도회>(1883)란 작품과 함께 시골 무도회의 정경을 담은 것이다.

<도시에서의 춤>의 시점이 보다 거리를 두고 있다면, 이 작품은 보다 가까운 시점에서 시골 사람들이 누리는 건강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즐거움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의 모델들의 신원에 대한 의견이 오랫동안 분분했었는데, 춤을 추고 있는 남자는 아마도 르누아르의 친구였던 폴이고 여자는 르누아르의 부인인 알린느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목욕하는 여인 

 

앉아있는 나부

 

어머니와 아이

 

누워있는 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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