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의 부모가 되기를 계획하다.
“저는 저를 위해, 또 제 아이들을 위해 그러한 선택을 했음을 알고 있어요.” 제니퍼는 자녀 셋 중 둘을 장애아로 둔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지 내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굳은 확신이 묻어 있었다.
“큰아들 라이언은 열여섯 살이에요. 아스퍼거 장애를 앓고 있죠. 아스퍼거 장애는 고기능 자폐증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에요. 양극성 장애와 ADD(주의력결핍장애)도 앓고 있죠. 양극성 장애는 십대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십대가 되면서부터 아이 기분이 극과 극을 오가기 시작했어요. ‘행복해요, 엄마.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요.’ 이러다가도 한 순간에 ‘난 저 깊은 지옥에 있어’라며 깊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걷잡을 수 없이 화를 내는 식이에요. 둘째 브래들리는 열한 살이에요. 그 녀석은 휠씬 증세가 심하지요. 전형적인 자폐아에, 시력마저 거의 잃었어요. 브래들리는 굉장히 희귀한 백피증(날 때부터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여 피부나 머리털, 눈동자색이 흐린 증상 - 옮긴이)을 앓고 있어요. 눈만 빼고는 다 희다고 보시면 돼요.”
제니퍼는 7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아스퍼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한두 가지 특정한 관심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 종종 ‘꼬마 교수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고 한다. 큰아이 라이언은 날씨와 정치에 관심이 많다. 라이언은 기상 정보를 알려주는 라디오를 몹시 좋아해서 지역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와는 날마다 전자 우편을 주고받는다. 그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정기적으로 전자 우편을 보내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도 한다.
“전 아들에게 늘 긍정적인 말을 해줘요. ‘너에게는 아무에게도 없는 능력이 있어’라고요. 만약 누가 시력 검사를 마지막으로 받은 게 언제냐고 물으면 대개는 ‘아마 작년일걸요’라고 대답하지요. 하지만 라이언은 ‘작년 5월 24일이에요’라고 대답해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라이언도 높낮이 없는 톤으로 말을 하고 사람들과 눈 맟추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또래 아이들과는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라이언을 상담치료사에게 데려간 일이 있었다.
“치료사 선생님이 라이언에게 친구가 있냐고 묻더군요. 라이언은 없다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있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고 다시 묻는데 역시 없다고 하더군요. 그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둘째 아들 브래들리는 쓸 줄 아는 말이 스무 개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까지도 대화는 ‘응’이나 ‘아니’ 정도가 전부였다. 브래들리는 가끔 수화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아이는 시력을 거의 잃었음을 알고 난 뒤 2년쯤 지나서 자폐아 진단을 받았다. “한꺼번에 주시면 체할까봐 조물주께서 제게 소화할 시간을 주신 것 같아요. 그 점이 늘 감사하지요.”
더 어렸을 때 브래들리는 사납게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서 뭐든 자주 머리로 들이받고는 했다.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때는 발작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예를 들어 같이 마트에 갔을 때 제니퍼가 앞으로 가다가 방향을 틀면 브래들리는 걷잡을 수 없이 화를 터트렸다. 아이가 화를 내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도의 남은 공간을 무조건 끝까지 같다가 역방향으로 되돌아오는 것뿐이었다. 또 브래들리가 함께 있을 때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을 수도 없었다. 브래들리에게 시동을 끄는 것은 곧 차에서 내리는 걸 뜻하기에 내리지 않고 앉아 있으면 발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형과 마찬가지로 브래들리도 남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브래들리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요. <반짝반짝 작은 별>이나 <미키 마우스 주제가>같은 노래를 한두 번 들려주면 바로 피아노로 칠 수 있어요.”
제니퍼는 두 아들이 장애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차마 울 수조차 없었노라고 했다. “한번 울면 그 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제니퍼, 하느님께 왜라고 물어본 적이 있나요?”
“아뇨, 한 번도 없어요. 까닭이 있으리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무언가, 아주 깊은 뜻이 있겠지요. 전 자폐증이란 게 뭔지 알아야 할 운명이었나 봐요. 고등학교에서 심리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자폐증 관련한 흑백 영상물을 보았는데, 무척 흥미가 가더군요. 대학에 들어와서 심리학 수업을 들었을 때는 자폐증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했지요. 자폐증을 다룬 <레인맨>이라는 영화가 나올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른 개봉하기만 기다렸고요. 브래들리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일이에요. 뭐랄까, 제 영혼이 무의식적으로 그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 미리 알고 있었나 봐요. 그 많은 것 중에서 하필 그런 데 관심이 갔던 걸 보면 . . .”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택했다는 말씀이세요? 이 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데요?”
“인내심이죠. 인내심을 한참 더 배워야 했어요. 아, 그리고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훌륭한 부모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온라인상의 부조모임이에요.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도 알고 모임도 알고 일도 알게 된 거죠.”
“제니퍼 자신과 관련해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전 늘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런 경험을 하면서 ‘야, 제니퍼, 넌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하고 다시 확인하게 되었어요. 단지 제가 엄마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제 마음이 아주 평온하다는 뜻에서요. 걱정을 달고 사는 우리 아버지는 늘 이렇게 물으시죠. ‘네가 죽으면 브래들리나 라이언은 어떻게 되는 거냐?’ 그럼 전 이렇게 대답해요. ‘아버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오늘뿐이잖아요.’ 대개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요.”
나는 제니퍼에게 스물세 살 되었다는 큰딸 사라에 대해 물었다. 사라는 막내와 많이 닮았고, 다른 식구들과 달리 둘만 금발이라고 했다. 또 태어난 날도 같다.
“사라가 두 남동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몰라요. 저는 세 아이 모두에게 골고루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정상’인 아이들은 아무래도 장애 아이들보다 관심을 덜 받게 되죠. 한번은 그래서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뇨, 화났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동생들에게 엄마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요.’”
곧 알게 되었지만 사라의 놀라우리만치 긍정적인 태도는 그녀의 전생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제니퍼는 자신이 두 아들에게 보인 관심 때문에 그 아이들이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브래들리는 일 년 전에 커다란 돌파구 하나를 지났다.
제니퍼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나 복스라고, 프로그램 된 대로 말이 나오는 기계가 있어요. 아이가 조르고 졸라 결국 사줬지요. 어느 날 아이가 운전을 하는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거예요. ‘물고기’라고 말하는 단추를 누르더군요. 그러더니 ‘먹이다’라는 말의 단추를 눌러요. 세상에, 이 아이가 지금 나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구나! 오늘밤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거예요. 전 사탕 가게에 간 아이처럼 신이 나 어쩔 줄을 몰랐지요. 지치는 줄도 모르고 이것저것 물어보았어요. ‘오늘 저녁에는 뭐 먹고 싶니?’ 아이는 ‘피자’를 눌렀어요. 정말이지 온전한 대화를 나눈 거예요!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웰컴투 지구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