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브랜드는 미분쟁 다이아몬드와 재활용 금속만 사용합니다”
필자가 뉴욕의 소매상들을 인터뷰하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대목이다. 주얼리를 판매할 때 디자인이나 품질 이상으로 친환경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이런 특징이 세일즈 포인트로 먹힌다는 사실은 소비자인 뉴요커의 윤리 의식 자체가 어느 반열에 올라와 있음을 반증한다.
인권과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에서 출발하여 자연친화적인 콘셉트를 지향하는 것을 주얼리에서의 “녹색의 바람(Going Green)”이라고 한다. 녹색은 본래 파릇파릇한 봄이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산림을 상징하는 색상이지만 오늘날에는 색상을 뛰어 넘어 새로운 삶, 특히 자연친화 콘셉트를 지칭한다.자연물 모티브의 디자인에서부터 미분쟁 스톤, 재활용 금속을 모두 아우르는 캠페인이자 지속되고 있는 뉴욕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녹색 디자이너들은 오가닉한 불투명 스톤과 내추럴 형태에 가까운 소재를 선호한다.
장미석 원석을 반지 모양으로 깎아낸 후,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18K 골드띠로 악센트를 준 뉴욕의 디자이너 카라 로스(Kara Ross)의 반지는 원석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한 고잉 그린의 대표적인 예다. 또 화산암 원석으로 만든 팔찌와 반지는 삭막하고 거친 행성의 표면에 별빛 장식으로 포인트를 주어 태양계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를 표현한다. 하찮아 보이는 소재에 다이아몬드와 18K 골드 장식으로 고급스러움까지 부여하였다.
일본산 민물양식 진주인 비와(Biwa)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플라워 모티브 목걸이와 팔찌는 바로크 진주의 특성인 자연스러운 형태를 활용하여 신비롭고도 절제된 화려함을 표현하였다. 양식진주는 금속 채굴에 비해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이 훨씬 적고 낭비 자원이 없어 친환경 보석으로 분류된다.
또 다른 뉴욕의 디자이너 딘 해리스(Dean Harris)의 제품에서도 고잉 그린을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주얼리에서 잘 쓰지 않는 규화목을 사용한 펜던트는 땅속과 나무의 구리 성분이 나무를 녹색으로 변화시켜 4만년 이상 화석의 형태로 보존된 것이다. 유기질 재료를 활용하는 것은 곧 인간의 내재된 본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려낸다는 디자이너의 철학을 담고 있으며, 펜던트를 감싸는 부드러운 덩굴 실루엣의 18K 골드 와이어는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 룩이다.
화이트 쿼츠에서 자연 발생된 그린 투어멀린을 비드처럼 연결한 목걸이도 주목할 만하다. 투박하게 잘려진 사각형의 화이트 쿼츠 조각은 제각각 불규칙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투어멀린의 흔적도 군데군데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옐로 다이아몬드와 브라운 다이아몬드 원석을 수줍게 맺힌 꽃봉오리처럼 매달아 놓은 귀걸이도 딘 해리스의 대표작이다. 18K 골드 와이어를 겹겹이 후프 모양으로 구부려 리스 장식과 비슷하게 꾸민 이 제품은 와이어 끝을 자연스럽게 빼내어 귀걸이 침으로 쓰이도록 한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흔히 상품가치가 없다고 지나칠 법한 원석의 조각들을 고급스럽고 개성 있게 활용한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뉴욕의 나탈리 프리고(Natalie Frigo)는 디자인의 영감을 얻는 단계에서부터 녹색의 바람을 지향하며 이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세우려는 목표를 가졌다. 그녀는 반드시 재활용 금속과 원산지가 밝혀진 미분쟁 다이아몬드만 사용한다. 작은 금반지 하나를 만들기 위한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물질은 땅속, 공기, 물 속으로 침투하여 결국 우리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재활용 금속이나 새로 채굴된 금속은 사실상 거의 같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너무 쉽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뉴욕의 많은 주얼러들이 환경과 인권, 사회적 영향 및 지역사회에 초점을 맞춘 경영을 해나가고 있다. 녹색의 바람을 타고 온 주얼리는 도발적이거나 시선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연의 질감이 살아있는 에코 감성의 스타일은 건강미 넘치는 녹색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자연과 인권보호에 대한 뉴요커의 인식이 고조되면서 녹색의 바람은 트렌드에서 이제는 필수 테마로 자리매김하는 듯 하다. 아직 우리에겐 요원해 보이지만 언젠가 한번쯤 던져볼 가치가 있는 화두라는 생각이다.
출처 : 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