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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
오늘 우리들은 이 본문 말씀을 네 번째로 접하게 됩니다. 일찍이 로마서 1장 16절, 17절 말씀은 로마서의 대 주제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을 풀어서 자세히 풀어서 전하는 것이 로마서 1장 18절 이하의 긴 설명인 것입니다. 이제 사도의 긴 설명 중에 첫 번째로 높은 큰 영적 봉우리가 바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로마서 3장 21절 이하의 설명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사도가 선언한 바 있음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첫 번째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 외에 완전한 하나님의 한 가지가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사도가 전하는 복음에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로마서 1장 17절에 이른 말과 같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친히 오셔서 그가 전하고 그가 행함으로 이루어놓으신 완전한 구원을 담은 복음에서만 이 의가 처음으로 완전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의를 담은 복음이 갑작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없고, 뜬금없이 하나님의 변덕스러운 결정으로 나타난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사도는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는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증거하는 이 복음은 구약 시대 모세와 선지자들이 일찍부터 미리 증거해오고 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율법에서도 장차 나타날 완전한 하나님의 의를 담은 복음의 출현을 예고하였고, 모세 이후로 하나님께서 계속 보내신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입으로, 글로써 복음의 시대가 나타날 것을 예고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우리 주님께서도 사도들 및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구약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시어 깨우쳐주셨고, 그 후 사도들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 언제나 기록된 구약 성경을 가지고 우리 구주 예수님의 복음 진리를 풀어서 증거하곤 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낙심하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깨우치실 때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한 예로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다윗이 그를 가르켜 이르되”(행 2:25)라고 하면서 시편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한 것처럼, 사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온전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담은 복음을 증거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본문 말씀 로마서 3장 22절에서는 이제 분명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이라고 선포하냐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진다고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른 길이 있느냐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외에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길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아무리 그가 “나는 하나님을 잘 믿습니다.” “나는 구약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실한 유대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세대주의라고 하는 이단적 가르침은 이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어오고 있는 유대주의 전통을 따르면서 구약 성경을 믿으면 그 신실하고 경건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인정합니다. 이방인들만이 복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요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구약 성경만 신실하게 믿으면 지금도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전도할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그토록 핍박받으면서 그 당시에 동족 구원을 위하여 애쓰기를, 자기는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서 애끓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이상한 태도입니까? 그들이 여전히 믿어오고 있던 유대인의 경건한 신앙만으로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을진대, 사도 바울이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은 저주를 받는다 해도 좋다고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기도할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오신 다음에 그들이 복음을 전혀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한 이래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만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지만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어떤 중대한 구원적 통로를 인정하면 괜찮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또 다른 위대한 선지자, 혹은 위대한 목자, 혹은 위대한 보혜사를 예수님 믿는 외에 함께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이슬람 신앙인들은 모하메드를 최후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믿고 그 선지자가 기록한 코란을 성경과 함께, 성경보다 더 위대한 경전으로 믿고 있는데, 그렇게 믿고 있는 이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안식교는 제임스 밀러라는 사람과 몇 명의 선지자들의 환상들을 근거로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했다가 실패하면서 여러 가지 헛된 주장으로 계속하여 이어오고 있는 이단인데, 이 안식교로부터 수많은 이단들이 발생해 오고 있습니다. 여호와증인도 러셀이라고 하는 사람이 안식교를 믿다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교리를 주장하는데, 그 중 거짓 교리 중 하나는 지옥은 없고 믿지 않고 죽은 자는 소멸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거짓 이단들이 나타나서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주의 주장들을 펼친 교주를 믿는데 그 중에 문선명을 따르는 통일교 이단이 있고 죽은 안상홍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 이단이 있고 현재 스스로 유일한 참 목자라고 주장하는 이만희를 따르는 신천지 이단 집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수님을 유일하게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교파는 다 잘못되었고 자기들의 집단만이 유일하게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현재 심상치 않게 퍼지고 있는 이단 중에 하나가 구원파입니다. 얼마 전 세월호 사고로 죽은 권신찬과 그 사위 유병언을 따르는 집단이 여전히 그 세력이 죽지 않고 있으며, 그와 다른 유파인 박옥수 파와 이요한 파 교회들이 여전히 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서는 이름난 대중 가수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JYP박진영이 구원파에 속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잡지사의 폭로가 뉴스에 떠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초대 교회 영지주의자들처럼 “한번의 영적인 깨달음”이 그의 구원을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고 하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받은 날을 거듭난 날이라고 기억하면서, 사람들에게 거듭난 날, 다시 태어난 날짜를 기억해야 한다고 전도할 때 묻곤 합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절대로 지옥 못간다고 하는 엄청난 구원의 확신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번에 잠깐 읽은 인터넷 뉴스에 보니까, 박진영 씨가 직접 인도한 성경 공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 잡지사의 기사에 나와 있는데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럼, 천국과 지옥이 사실인 거에요. 사람들은 안 보이니까 그냥 살아. 근데 나한테는 사실이에요. 제 이름이 박진영인 것보다 더 사실이에요. 컴~ 트루. 나는 지옥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됐어요. 가고 싶어도 못가요."
"진짜 거듭난 사람들은, 죽는 게 땡큐에요. 무서운 게 아니라 땡큐예요. 죽으면 어디 가는지 아니까. (중략) 그런데 왜 살아있냐? 죽고 나서 예수랑 만나잖아요. '진영아, 고생했다. 잘했다' 이 말 듣고 싶어서."
여기서 보면 미묘하게 구원파 사람들이 주장하는 요소가 담겨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구원파 사람들은 자기들은 지옥에 절대로 못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고 싶어도 못간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 속에서 그들은 율법 폐기론에 빠지게 되고 그리고 성화의 지속적인 노력, 자기 죄를 깨닫고 지속적으로 참회하는 애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진정한 겸손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완전한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죄인은 지옥가게 되니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구원파 논리에 의하면 절대 천국 못 가고 지옥 갈 사람 중에 확실한 사람이 누구냐면 사도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디모데전서 1:15 말씀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을 확인해보아도 사도 바울이 여기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였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현재형 동사로서 “나는 지금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사도로 수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기의 내적 본성 속에 죄의 강력한 영향이 살아 있고 타락의 본성이 남아 있음을 느끼면서 오직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구원받은 자라고 믿고 있으며, 성령을 힘입어서 날마다 그 본성과 맞서 싸우면서 더 거룩해지는 성화의 계단을 한걸음씩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파 이단들의 이 간교한 가르침에 결코 미혹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단번에 영원히 구원을 보증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이 구원파 이단의 가르침이 기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그러한 가르침을 전하는 미혹에 쉽게 넘어지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유일한 구원의 길 외에 다른 어떤 조건을 더하거나 사도적 복음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미혹의 가르침을 분별하여 단호하게 물리치고 이 분명한 신앙의 터 위에 굳게 서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의는 이 복음을 믿는 자라면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문명인이나 미개인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어떤 죄악된 삶을 살았던지,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졌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그 믿음을 고수하는 자는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오직 이 복음 진리를 진심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되는 것이니, 사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선행과 덕행과 공덕이 많이 쌓여서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받으니까 아무렇게나 행하면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원파 논리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영적 깨달음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번쩍 꿰뚫고 지나간 후에는 이제 더 이상 지옥은 자기들과 상관없고 천국은 당연히 얻는 자리이니까 이 땅에서 천국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서 마음껏 살아도 좋다고 윤리적 의식도 안 지키고 교만하게 아직도 죄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을 깔보면서 지옥 갈 사람들과 자기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영적 우월 의식, 특권 의식을 갖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영적 우월 의식을 유별나게 가지면서 세상 사람들을 깔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은혜받은 주의 백성이 되었다는 거룩한 자부심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우월의식을 절대 가져서는 안됩니다. 포용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참 신앙의 증거는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열매, 긍휼히 여기는 마음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닌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이 아닌 인간의 행함과 공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한편 강도는 살아온 내내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던 사람입니다. 많은 악을 저질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 몇 시간 동안에 곁에 함께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세히 지켜보면서 그의 심령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진실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진실한 기도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 때 우리 주님께서 그를 향하여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그 강도처럼 확실하게 구원의 보장을 받은 자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 강도의 회심과 그의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확증 선언은 구원은 주 예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면 충분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하여 오직 필요한 것은 주 예수에 대한 진실한 믿음뿐입니다. 할렐루야. 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진리에 굳게 서서 요동치 않고 끝까지 서 있다면, 넉넉히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이렇듯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행위와 공로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받을 수 있는 아무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24절에서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구원의 은총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값없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값없이”라는 말씀은 “거저, 무료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연고없이, 까닭없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유로 보면, 원수 노릇하던 타락한 인간들인데, 대적하며 죄만 지은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연고 없이, 까닭없이 의롭게 여겨주시고 구원해주셨으니 참으로 기이한 은총입니다. 또한 이 구원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아무 공로 없이, 거저 받은 은총이요 무료로 받은 은총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까닭 없이, 조건 없이, 아무런 수고 없이, 거저 받은 은총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얻은 구원, 우리가 얻게 된 하나님의 의가 공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놀라운 말씀이 24절 전반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죄인이요 죽어 마땅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대가가 지불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속전’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노예 시장에서 그 노예를 살 때 옛 주인에게 새 주인이 그 노예의 비싼 몸값을 다 지불하고 산다는 것이 속량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실 때, 죄와 저주와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이 놀라운 구원과 해방과 하나님 앞에 당당히 의롭게 여김을 받고 설 수 있는 자격을 무료로 공짜로 얻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그 그 몸값을 다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몸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죄 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같이 천하고 악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몸값으로 자기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내어주셨습니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완전히 결별하고 전혀 모르는 자, 죄 덩어리가 되었으니 가장 무서운 진노를 쏟을 자로 여기고 그에게 온갖 진노를 부으시고 내버리실 정도로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처절하게 외칠 정도로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값없이, 무료로 이 하나님의 의를 얻었지만 그 값비싼 대가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외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지불하셨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악하고 못난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세상의 모든 재물을 지불하여도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대신 희생한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온 세상 다 내 죄값을 지불하려고 희생한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값비싼 것이 우리 한 사람의 영혼의 목숨 값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악하고 어리석고 패역한 가치 없는 우리의 목숨을 건지려고 온 세상을 창조하신 자가 친히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값을 지불하여 죄의 노예의 자리에서, 저주와 죽음과 영벌의 자리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게 된 자가 예수 믿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를 깨달은 자는 자기의 영혼이 어떠한 대가를 지불되어 생명을 얻었는가를 깨닫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고, 구원받은 자기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되었는가를 깨닫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놀라운 구원을 얻은 것이 하나님의 자기 희생으로 얻어진 선물임을 아는 자는 더 이상 이 구원을 결코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이 구원을 지켜갑니다. 이 값비싼 은혜를 위하여 자기 삶을 다 팔아 사며 그것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얻는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입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다른 어떤 헛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믿음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 뵐 때까지 굳건하게 살아갑시다. 견고하게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항상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여러분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