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대전성모병원 장례식장 경당
우리는 76세(1942년생)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품에 안기려고 준비하는 배재동 대건안드레아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내일 본당에 혼인 미사가 미리 잡혀 있는 관계로 이곳 장례식장에서 입관 예절을 끝내고 바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본당에 새 성전이 마련된 것을 기뻐하며 주일 미사에 함께 하셨던 걸 생각하면 장례 미사를 성전에서 함께하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 제가 본당에 부임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교우들의 면면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주일마다 2분이 함께 손잡고 미사에 오시는 모습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제겐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교적을 보니 이 집안의 신앙은 배우자 박공희 세실리아 자매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매님은 1991년 부활절에 대사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같은 해 성탄절에 중학생이던 두 따님이 도마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편 고인은 1999년 성탄절에 정림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과 2005년에 온 가족이 견진성사를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그 어떤 세상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작고 여린 한 여인의 믿음이 가족의 평화와 화목을 이루어낸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8월 초에 입원한 남편을 위해 세실리아 자매님은 제일 먼저 병자성사를 청하셨습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러 병원을 오가면서 저는 자매님이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지극정성으로 모시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50일 가량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하신 자매님의 건강이 염려스럽습니다. 여러분도 이 미사를 봉헌하며 고인과 함께 자매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형제님은 일찍부터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로 하느님께 나아갈 준비를 마치셨고 큰 따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쩌면 한국교회의 으뜸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형제님이 순교자성월에 선종하신 것도 하느님의 섭리일지 모릅니다.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표정이 밝아지셔서 제가 다음에 또 찾아뵙기로 하고 헤어졌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고인을 떠나보내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병원에 모시고 지낸 시간들이 이별을 준비하는 완충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도 다녀오셨다고 하니 유가족들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게 되겠죠. 또한 우리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목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살아있는 우리의 몫은 고인을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고인이 유가족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 신앙의 유산임을 기억한다면 자주 기도를 바치면서 보답해야겠습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바치는 기도가 서로의 일치와 유대감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러니 혹여나 살아있는 동안 고인과의 관계 안에서 풀지 못한 매듭이 있다면 이 시간에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풀고 좋은 것들만 간직하십시오. 고인이 육신의 고통 속에서 체득한 십자가의 신비가 구원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말이죠. 일상 속에서 고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위로와 힘을 얻고 기도 안에서 이루는 일치 속에서 용기를 내십시오.
저도 유가족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바치는 기도 속에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생활하겠습니다.
주님! 배재동 대건안드레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대건안드레아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첫댓글 주님 대건 안드레아 형제님께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유가족분들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