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古木 을 바라보며
유병덕
2015harrison@naver.com
시간이 주어지면 산사를 찾는다. 처가에서 이포나루를 건너면 내가 좋아하는 산사가 바로 지척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여 놓고 장인을 모시고 산사를 찾았다. 산사에 들어서니 은행잎이 떨어져 마치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대웅전 처마에 걸린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심금을 파고든다.
가을이 너무 짧다. 늦가을 차가운 삭풍에 바닥에 누운 낙엽들이 어디론가 떠나려한다. 이젠 가을을 놓아주어야 할 때인가 보다. 마음속으로 초가을, 참- 가을, 늦가을로 나누어놓고 지낸다. 초가을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보면 뿌듯하다. 한여름 작렬한 태양의 열기를 이겨내고 먹구름 속의 천둥과 번개를 버텨낸 보람을 느낀다. 참- 가을은 국화 향기의 그윽함을 맡아보려고 들숨을 쉬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지나간다. 늦가을이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 스산한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마음이 정처 없이 길을 나선다.
산방에서 장인과 찻잔을 앞에 놓고 묵언 수행 중이다. 장인이 따끈한 차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문을 연다.
“저 고목 나이가 얼마나 됐을까?”
산사 한가운데 오벨리스크처럼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고목나무다. 더는 솟아오를 곳이 없는 나뭇가지 위에 구름이 걸터앉았다. 고목은 고단했던 날들을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려는 노인처럼 보인다. 눈으로 어림잡아 보기엔 수백 년은 된 듯하다. 진작 고목에 관해 알아두었더라면 쉽게 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신라 최후의 임금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에 들어가던 길에 용문사에 들러 심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고 하니 아니란다. 신라 때 고승 의상대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서 고목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천년이 넘게 기나긴 세월을 이겨낸 고목의 위용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이 백 년을 산다 해도 열 배가 넘다니 놀라울 뿐이다. 인생 백세 시대라지만 백수를 누리는 이가 얼마나 될까. 현직에서 노인의 날에 백수 어르신 몇 분을 모시고 행사에 참석했었다. 당시 백세를 맞이한 어르신이 전국에 1천명 남짓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에 등재된 숫자다. 망백의 장인과 함께 한다는 것이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부모님 때문에 난처해했다. 주말이면 내외가 반찬과 과일을 챙겨 뵈러 다녔는데 지난주에는 다녀오더니 식구에게 미안하단다. 갑자기 아버지가 아내를 몰라보고 옆에 있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더란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장인께 감사한다. 지난밤에는 장인이 화투 놀이를 청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끝나지 않자 처남들이 패잔병처럼 먼저 드러누웠다. 장인은 여전히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밤을 새웠다. 장모께서 사위 잠자게 그만하라고 다그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욱 감사한 것은 장인의 총기聰氣다. 늘 카랑카랑하고 정확한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나라 최초로 벼슬한 나무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보은군 속리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 무엇이든 당당한 장인 앞에 주눅이 들어 말끝을 흐렸다. 장인은 박사가 그것도 모르냐고 헛똑똑이라 나무란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은행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종께서 정삼품에 해당하는 당상관이라는 높은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무슨 연유로 벼슬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온 나무의 명성을 일찌감치 잘 알고 벼슬을 내린듯하다. 은행나무 고목은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내린 세조(수양대군)보다 훨씬 앞선 일이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년을 살아왔으니 나무에 얽힌 일화도 엄청나다. 일제 침략이 시작되기 전 일명 정미의병 항쟁 때, 일본군은 의병의 집결 장소라는 이유로 용문사에 불을 질렀다. 절과 인근 숲이 모두 불에 탔지만, 은행나무만 오롯이 버텨냈다. 찾아오는 이들이 고목을 보며 ‘천왕 목’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거다. 고목에 얽혀 전해오는 숱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장인의 삶의 역사와 오버랩 된다.
장인은 일제 치하에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농사짓던 문전옥답을 빼앗기고 일본인의 종살이 신세로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었다. 해방의 기쁨도 꿈처럼 사라지고, 약관의 나이에 가정을 이루며 한국동란을 마주했다.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조당수로 채우며 근근이 살아냈다. 먹구름 속에 천둥과 번개 치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 낸 것이다. 장인은 고목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아왔다. 은행나무고목이 천년세월 용문사 앞마당을 지키듯 장인은 한가정의중심에서 가족을 보듬고 있다. 고목이 되어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 아직까지 아들딸을 살피고 있다. 가을이면 무 배추를 뽑아놓고 김장하러 오기를 기다린다. 텃밭에 참깨를 심어 기름을 짜고 논두렁에 서리태를 심어 자식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고목가지에 걸터앉은 구름처럼 손자 손녀가 올라앉아 있다. 손주가 오면 용돈을 쥐여 주려 무더운 비닐하우스 속에서 일하고 있다.
구두를 닦으면 하루가 기분이 좋고, 목욕을 하면 일주일이 가볍다. 아침에 장인을 모시고 동네 단골 사우나에 갔다. 이발을 하면 한 달 동안 기분이 좋을듯하여 이발사에게 장인을 부탁했다. 이발사는 장인을 보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이 그대로라며 칭찬이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기고 등을 밀어보니 이발사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다. 피부가 갓 회갑지난 나보다 탄탄하다.
용문사 은행나무 고목이 하루아침에 자란 게 아니다. 고목은 천년이란 기나긴 격동의 세월을 치열하게 담금질하고 내공을 쌓았다. 오늘따라 장인에게서 천년고목보다 더 짙은 묵묵한 향기가 느껴진다.
오늘도 멀리서 빈다. 장인이 천년고목처럼 건강하게 백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