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 시래기
조 인 숙
매일 끼니때가 돌아오고 요즘같이 사흘에 한 번씩 한파가 올 때면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이 그리워진다. 평생 어머니가 만든 밥상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이름 그대로 건강 밥상이었다. 그중 시래기를 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겨 해 주셨다. 어머니만의 시래기 요리로 만든 국과 김치가 있다.
예전에는 거칠고 질겨서 외면당하고 홀대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그 영양과 효능이 알려지면서 건강식으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시래기 효능이 궁금해 찾아보니, 무에 많이 들어있는 식이섬유는 위와 장에 머물며 포만감을 주어 비만을 예방하고 혈당을 낮춰준다고 한다. 뼈 건강과 혈관질환 예방, 변비 개선,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김장하고 나면 말린 무청 시래기를 슬슬 손질할 때가 다가온다. 시골에서는 온전히 자란 무에서 툭 잘라낸 무청을 굴비 두름처럼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햇빛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리고, 얼고 녹기를 반복하다 마르면 시래기가 된다. 이 시래기를 다시 푹푹 오래도록 삶아서 찬물에 우려내어 무청에 있는 힘줄을 없애면 부들부들해진 시래기를 먹을 수 있다. 그래야 맛있어진다.
무청 시래기는 서리 내리기 전에 만들면 누렇게 뜨고 삶아도 잘 무르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된서리를 맞은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래기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된장과도 궁합이 잘 맞다. 가을철에 잘 말린 무청 시래기는 추운 한겨울을 버텨낼 양식이었다.
시골집 뒤뜰에는 시래기 삶는 양은 솥이 걸려 있다. 어머니는 가스 불 아끼느라 솥을 걸어놓고 장작불로 장을 달이거나 나물을 삶았다. 시래기 삶는 쿰쿰한 냄새가 대문 밖에서 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래기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다.
지금, 먹을 것은 풍족해졌지만, 입맛이 없을 때면 어머니가 해 주신 시래기 콩가루 된장국만 한 게 없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말린 시래기를 푹 삶아 잘게 썰어 된장과 고춧가루, 마늘, 육수를 부어 그 위에 날 콩가루를 숭숭 위에 얹어내면 끝이다. 다른 반찬 없이 시래기 된장국 하나로 밥 한 공기를 거뜬하게 비울 수 있다.
시래기 콩가루 된장국이 마른 시래기로 조리를 한다면, 생무청을 바로 잘라 삭힌 무청 김치가 있다. 어머니가 몸이 쇠약해지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드시지 못할 때 무청 김치를 드시고 싶어 하셨다. 늘 해 주신 것만 먹던 자식들은 배워서 무청 김치를 담가 보자 했지만, 어머니는 자식이 해 주는 무청 김치를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몇 년은 잊었던 그 무청 김치가 생각났다. 어머니만의 무청 김치 담그는 법은 찾아봐도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더 간절했다. 어머니 손맛을 가장 닮은 언니가 알아냈다며 연락이 왔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시작부터 완성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려 무청 김치 담그기에 성공했다.
아버지도 그 맛이 그리우셨던지 무청 김치 얘기에 실한 것으로 무청을 한껏 구해주셨다, 일부는 삶아 얼려 놓고, 더 실한 것 들은 무청 김치를 만들기로 했다.
물에 무청을 3일 동안 담가 깨끗이 씻은 후 무와 같이 잘게 썰어 소금을 켜켜이 넣어둔다. 누름돌을 위에 놓고 다시 3일을 삭혀서 먹는다. 소금으로 삭힐 때 고춧가루도 소량 넣는다. 보리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깔끔하니 맛있고, 찬 바람 불 때 잘 띄운 청국장과 같이 먹으면 입안 가득 풍미가 밴다. 시골집에 들를 때 아버지에게도 가져가야겠다.
한동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기억조차 떠올리기 힘들었지만, 시래기는 어머니를 향한 따스한 돌아보기다. 삶이 맛있는 것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찮은 무청이 시래기가 되기까지 숱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 내야 한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도종환, 「시래기」)
시래기는 내게 추억을 달랠 때, 한 번씩 식탁에 오르기 위해 찬 서리 눈도 견뎌낸 존재다. 찬 바람 견디며 따뜻한 한 끼를 마련해준 시래기, 필요 없다고 버려진 때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견디는 힘을 보여준 시래기가 겨울바람을 뚫고 기억의 맛으로 돌아왔다. 베란다 한켠에 익어가는 추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