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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방에서
전국에서 밥맛이 가장 좋기로 이름난 이천 골 양지마을에 심흥원이란 의원이 한약국을 개업을 하면서 용하다는 소문이 나게 되자 환자들이 몰려들어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그는 천성이 착하고 돈을 벌면서도 허투루 쓰지를 않고 수입의 일부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고 돈이 모이면 농토를 구입해서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알뜰하게 살림도 하지만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게 되고 약국 댁을 선비 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나이 30이 가깝도록 아이가 없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약방은 그래서 혹시 부인에게 어떤 병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진단을 해 보았으나 뚜렷한 이상이나 병 징후는 발견이 되지를 않아서 불임해소에 대한 약을 계속해서 부인에게 먹였지만 별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약방을 한다는 사람이 자녀 하나 제대로 낳지를 못하느냐며 쑥덕거리는 것 같아서 은근히 애가 타기도 하였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같이 어렵사리 아들 하나를 낳게 되니 그제야 부부는 얼굴을 펴고 다닐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귀하게 아들이 태어나다 보니 부부도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귀동자를 위해서 동네잔치를 벌려야 한다면서 날을 받아 돼지를 잡고 잔치를 열어주는 것이었으니 약방은 그것이 고마워서 동네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고 간에 금전적으로 필요한 액수를 내놓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 듯 서당엘 다니게 되자 이웃의 어르신네들이 아이를 만나게 되면 약방집 도령 나왔는가 하고는 모두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서로 안아보기도 하면서 자기들도 이렇게 예쁜 아들을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고 들 하였다.
약방 부부는 이렇게 아들이 온 동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것을 대견해 하며 아이가 원하면 무엇이건 간에 그의 욕구를 다 들어 주게 되었고 아이는 세상이 모두가 자기 것인 양 배포도 커지고 제멋대로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자라다 보니 아이는 공부는 뒷전이고 소년기를 벗어나자 불량소년들과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들이 찾은 곳은 으슥한 술집들이 몰려 있는 뒷골목이었다.
아이는 이렇게 술친구를 사귀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허랑방탕하게 되었다.
게다가 날마다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노름판으로 거기에 한번 빠지게 되면 헤어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는 돈만 오고 가는 것이 아니고 그 노름판을 붙여주는 모리 꾼이 따라다녔고 판이 끝나면 몰려가는 곳이 술집이었다.
술집마다에는 내노라 미모를 자랑하는 기생들이 수두룩하고 손님들 중에 돈 푼께나 있고 여자를 밝히는 남정네들은 마음에 드는 기생을 차지하려고 밤낮으로 쫓아다니다 서로 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몰란절에 자기 재산이 탕진되는 것은 잊고 있었다.
심의원은 아들이 술집과 노름판에 빠져 있는 것을 진작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대단하게 생각지를 않았던 것이니 남자라는 것이 한때는 그럴 수도 있고 차츰 나이가 들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만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에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때부터는 걱정을 하게 되고 장가를 들이면 나아지겠지 하고는 부인에게 마땅한 규수를 속히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마침 산 너머 음지마을에 잘 자라는 규수가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중에도 예의가 바르고 동네에서도 모범규수로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해서 서둘러서 짝을 맺어 준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장가를 들이면 나아지려니 하였지만 아버지의 생각대로 나아지기는커녕 장가든지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 불화를 일으키는가 하면 이따금씩 손찌검까지 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밤에 며느리가 자다 말고 속옷 바람으로 시부모님의 침실에까지 쫓겨 나오기까지 하였으니 신랑이 술이 취해 들어와서는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이튿날 아들을 불러 앉히고는 이제는 나이도 차츰 들어가니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자 그때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서를 하더니 얼마 후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약방은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속이 상하긴 하였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겠지 낙관을 하고 있던 중에 어떻게 며느리가 손자 하나를 낳게 되자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는 손자를 얻은 양 날마다 손자를 안고 다니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중에 아들이 술집에서 돌아오더니 다음날 일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한 이틀 앓아누웠다가는 멀쩡하게 일어났는데 며칠이 지나도 낫지를 않자 아버지가 며느리를 불러서는 아들의 상태를 물어보니 며칠 전에 친구 생일날 돼지고기를 술안주로 먹고 와서 밤새도록 설사를 하고 토하는 것이 낫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날 아버지는 아들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진맥을 하였는데 한참동안 계시던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번지는 것이었다.
“ 지금 네 속이 말이 아니구나. 도랑에 비유한다면 무더운 여름 하지 때처럼 밭곡식이 타들어갈 정도로 가물이 들었는데 마른 천둥번개만 치는 꼴이다. 그러니 약을 먹어도 한 달 이상을 먹어야 하니 앞으로 술이라는 것은 입에 대지 않는 게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애비가 부탁을 한다면 네 안을 잘 다스려야 한다. 시집오자 시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누워 있으니 혼자서 안팎일을 다 맡아 가지고 하느라 얼마나 고달프겠느냐. 농사일도 그렇지 어디 에미가 할 일이냐. “
아버지는 지금까지 아들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씀을 하시지 않은 것은 다 젊어서 한때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 후 약을 지어서 먹였으나 약발을 몸에서 받아들이지를 않는지 얼굴은 반쪽이 되어 가면서 도무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색시가 정성을 다해서 달인 약사발을 방으로 가져가면 신랑은 소리만 버럭 질렀다.
“ 아무리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으니 고만 가져 오란 말이야.”
신랑이 약을 먹은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었지만 약의 효력은 나타나지를 않고 오히려 약을 먹고 나서는 아침에 먹은 죽까지 토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님 큰일 났어요. 약을 먹는 대로 다 토하고 있으니 어쩜 좋아요.”
시아버지는 아들이 약을 먹고 토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먹구름이 흘러가듯이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서 오냐오냐 너무 귀엽게 키우다 보니 버르장머리가 없이 자라고 일찍부터 기생방에 재미를 들인 것이 인간을 망가트리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후회막급이던 중에 어느 날 아들이 자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혼수상태로 빠지고 그런지 며칠 만에 아주 명줄을 놓고 말았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아들이 죽게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쩔 줄을 모르고 식음을 전폐하다 싶이 하니 철모르는 며느리인들 얼마나 답답하고 슬프겠는가.
그렇게 신랑이 일찍 갈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를 않았는데 이제 과부가 되었으니 이일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신랑이 불쌍하고 부모님을 모실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신랑이 주정을 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하면 어머니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다고만 말씀하셨다.
“네 남편네가 바람을 심히 부린다지만 그러나 어떻게 하니. 참을 수 있으면 참아야지. 남자들이란 젊어서 한때는 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너의 시아버지도 젊어서는 얼마나 나의 속을 끓였는지 아느냐. 지금도 내가 그때의 말을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기침만 몇 번 하면서 피한단다. 너라고 그런 꼴을 보면 남편 보기가 싫겠지만 참아야 한다. 얼마 안 있어 돌아올게야.”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참을 때까지 참았는데 돌아올 것이라던 신랑은 돌아오기는커녕 따른 길로 가고 말았으니 색시의 눈에서는 눈물만이 아니라 가슴 속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심 의원은 아들이 명을 달리 하자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이 다 무너진 듯이 한동안은 말을 잃었으나 손자 하나 만이라도 잘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정신을 차리기로 하였다.
아들이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뜻밖에도 아들 때문에 만날 상심을 하던 할멈이 이듬해 봄에 아들의 뒤를 따라 갔는가 하면 손자마저 밤중에 경기를 하다가 할머니 뒤를 따라간 것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약방 댁이었으나 아들이 술 때문에 병을 얻어 죽고 어머니 또한 속이 상해 돌아가시는가 하면 금야옥야 기르던 손자마자 죽게 되자 모두가 어떻게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면서 함께 애통해 하였다.
이리 되다 보니 며느리는 한때 세상이 다 귀찮아지고 신랑의 뒤를 따르고도 싶었지만 자기마저 죽는다면 시아버님을 모실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러지도 못하게 되니 자고 깨면 눈물만 나오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시중들어 드리랴 농사일 참견하랴 여러 가지 신경을 쓰다 보니 저녁을 먹고 나면 너무도 고단하여 그대로 쓸어져 자는 때가 많았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젊은 것이 혼자 된 것이 안차라워서 개가를 권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였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은 그럴 수도 없었다.
시아버지는 그 후에 며느리를 더욱 극진히 사랑하고 그가 원하면 무엇이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시아버지의 일과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쉬실 날이 없었는데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약방을 찾는 환자들이 매일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용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병은 잘 고치시던 시아버지가 어느 날 아침을 자시고 나서 몇 번인가 뒷간을 자주 가시는 것을 며느리가 보게 되었는데 시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감지한 것이다.
“ 아버님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며칠 전부터 안색이 좋지를 않으신 것 같아서요.”
“ 글쎄다 언제부턴가 속이 좋지를 않은가 싶었는데 괜찮겠지.”
“ 아버님. 그럼 약을 좀 지어 주시지요. 얼른 약을 대려서 잡수셔야 낳으실 테니까요.”
“ 아니다 .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한참 있다가 다시 뒷간엘 가시더니 나오시지를 않는 것이어서 며느리는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시지를 않아서 며느리가 가만히 뒷간 근방엘 갔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며느리는 그래서 밭에서 일을 하는 머슴인 박무원이를 부른 것이다.
“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셔요.”
“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까 뒷간엘 가셨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시지를 않아서 걱정이 되어서 그러니 한번 살펴보게나.”
“ 뭘 그런 일까지 걱정을 하셔요. 잠시 후면 나오실 거예요.”
“ 그게 아니라도 그러네. 어서 가서 문을 열어봐."
박무원이가 마님의 말을 듣고 뒷간 문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할아버지가 문 앞에 엎어져 있었던 것이다.
“ 할아버지. 웬일이셔요. 네."
박무원이는 할아버지를 안고는 급하게 사랑방으로 모셨는데 다행이도 할아버지의 맥박은 뛰고 있었다. 며느리가 급하게 꿀물을 타가지고 와서는 수저로 입에 흘려 드리니 한참 후에 눈을 번히 뜨시는 것이었다.
“ 아버님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를 않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떼셨다.
“ 아가 .내가 너 엄마를 만나고 왔단다. 꿈결같이 만났는데 글쎄 아무 말도 하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왜 아무 말도 하지를 않느냐고 했더니 그냥 돌아서가고 말았다. 얼마나 섭섭한지. “
“ 그러셨어요. 아버님이 어머님을 너무 그리워하셔서 그렇겠지요.”
아버님이 그날 쓰러지신 것은 어지러운 바람에 그러셨다고 하였는데 며칠 후에는 정상으로 진지도 잘 잡수시는 것이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차츰 기력이 떨어지고 활동하시는 것도 전보다는 굼떠지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며느리는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부엌일을 하는 월순 이로 하여금 밥만 하지 말고 가끔씩 할아버지께 자주 감주도 드리고 물도 떠다가 드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한편으로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집안의 일을 다 감당하다 보니 한시도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걱정이 덜 된 것은 머슴인 박무원이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 다른 집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성실하고 약방 댁의 그 많은 농사를 꾀부리지 않고 잘 가꾸어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록 머슴을 살지만 포부가 남달리 컸으며 매년 새경을 받게 되면 저축을 하여 고향에다 논밭전지를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머슴살이는 10년만 하고 장가를 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듯이 박무원은 시키는 일은 곧잘 하고 포부도 원대했지만 이따금씩 술을 먹은 다음에는 실수를 많이 하였다.
한번은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밤이 늦어도 오지를 않아서 마님이 걱정을 하였는데 그 내막은 친한 친구와 어울리다 보니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자고 왔다는 것이다.
그의 친구 엄종화는 아버지가 땅꾼으로 뱀 장사를 하였는데 그의 집에를 가면 어머니가 여러 가지 뱀술을 병에다가 담가 놓고 팔기도 하고 박무원이 가면 힘이 들 때에는 뱀술이 약이라면서 실컷 먹으라는 바람에 먹다보면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엄종화는 박무원을 만날 때 마다 그가 부럽다며 머슴을 바꿔서 해보자고까지 농담을 하였다.
“세상에 너는 참으로 팔자가 늘어진 놈이여. 비록 머슴 일을 하는 몸이지만 날마다 천사와 같은 미녀를 모시고 사니 얼마나 재수가 좋으냔 말이여.”
“ 얘. 너 말 조심해. 우리 마님을 천사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농담을 해도 그런 말을 하면 못써야. 잘못하면 내가 그 집에서 쫓겨 나와야 해.”
“ 참 너도 그렇게 재주가 메주냐. 쫓겨 나오지 않을 방도를 써야지 이 멍청아.”
“ 얘 그게 무슨 말이야.”
“ 너 그것을 정말 몰라서 묻는 게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이 오르고 내린다는 말도 못 들었어. 네가 말만 잘 하면 아니 그것보다도 마님을 잘 구워삶기만 한다면 너는 죽은 신랑의 대신을 할 수도 있단 말이여. 그러니 오늘부터 마님을 꼬실 궁리를 해보란 말이여. 알았냐.”
집으로 돌아오던 박무원은 엄종화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마님을 꼬셔 보라는 말에는 얼굴이 닳아 올랐다.
‘ 그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야. 그 자식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야.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들 마님은 마님이고 머슴은 머슴인 게야. 감히 날더러 마님을 꼬셔보라니 참. 아무리 술김에 한 말이라도 말을 골라서 해야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냔 말이여.’
그런데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 보니 어제 엄종화가 한 말에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니 자신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였던 것이니 그것은 마님을 볼 때마다 저렇게 아름다운 색시를 부인으로 맞은 신랑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아침에 박무원이 늦게 일어나자 월순이가 와서는 왜 날마다 늦게 일어나느냐면서 마님이 술을 너무 먹지 말라고 걱정을 하셨다는 것이다.
박무원은 그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가급적 술을 사리긴 하였지만 엄종화네 집에 가기만 하면 자고 오는 것이 풀풀 하였다.
사실 마님이 월순이로 하여금 머슴에게 술을 많이 먹지 말라고 이르긴 하였으나 그의 입장을 생각하니 그를 이해할 만도 한 것이 진종일 논밭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 밥이나 먹고 잠을 잔다는 것은 젊은 그에게는 큰 고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면서도 또 한편 생각을 하니 자기는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 그는 지금 시아버님만 의지해서 마치 밤하늘을 향하여 외롭게 날아가고 있는 외기러기처럼 독수공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젊은 과부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그냥만 놔두셨어도 어쩌면 고용복 오빠와 결혼을 해서 지금쯤 아들딸 낳고 잘 살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나오느니 한숨이고 저녁마다 흘리느니 눈물뿐이었다.
어떤 때에는 밤마다 하도 잠이 오지를 않자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에 담 밖에 있는 귀룽나무 밑에 가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거나 캄캄한 그믐밤이면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하였다.
그날도 마음이 울적해서 늘 가던 귀룽나무 밑의 숲속에 앉아서 지나간 이일 저 일을 생각을 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출 가전까지 고용복 오빠와 함께 지나던 일들이 엊그제의 일처럼 떠오르고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때 고용복 오빠는 집의 머슴으로 일을 하였는데 향순 이가 오빠를 잘 따른 것은 봄이면 쑥이며 냉이 씀바귀와 같은 나물을 캐러 다닐 때 쫓아다니고 꽃이 피면 산과들로 다니면서 꽃구경을 시켜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개울가에서 버들피리를 만들어서 불게 하였는데 그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를 않았다.
오빠는 손재주가 많아서 나무뿌리 같은 것으로 짐승 중에도 사자며 호랑이는 물론 개 노루토끼 고란이 산양 외에도 새 종류로서는 공작새 황새 비둘기 까치 까마귀 꿩 꾀꼬리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향순 이는 오빠가 지닌 재주에 푹 빠져서 자기도 배우고 싶어져서 시간이 나면 오빠네 방엘 들어갔는데 오빠가 그 집의 머슴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를 않았다.
향순 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밤마다 오빠에 대한 꿈을 자주 꾸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오빠의 손을 맞잡고 강가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오빠가 지게뿔에다가 진달래를 꽂고 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다.
꿈을 깨고 나면 한참동안이나 눈을 감은 채 오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날마다 오빠를 따라다니고 싶어졌는데 한번은 오빠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해서 따라 간 것이다.
산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산새들이 지저귀는가하면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빠는 바위 아래로 내려서더니 나뭇잎을 오므리려 가지고는 물을 받아서 주는데 마셔 보니 속이 다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었다.
오빠는 물을 떠주더니 이번에는 연붉게 피어있는 물안개 꽃을 꺾으면서 “ 이 꽃이 향순 이 얼굴처럼 꽤 예쁜데.” 하더니 “나도 이다음에 너처럼 예쁜 색시한테 장가 한번 갈 수가 있을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향순이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 오빠 내가 색시노릇 해불까 ” 하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는 오빠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이때만 해도 고용복은 향순이를 친 동생처럼 생각을 하였고 그가 원하면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그날은 오빠가 강가에 나가서 붕어를 잡아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얼마쯤 가던 오빠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 향순아 서울구경 시켜 줄까” 하는 것이었다.
“ 뭔 서울 구경은.”
오빠는 바로 향순이를 돌려 새우더니 양손으로 귀 밑 머리를 잡더니 번쩍 들어 올리면서 “서울이 보이나 잘 봐.”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향순이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보아도 서울이라는 곳은 보이지를 않았다.
" 서울이 안 보이는데 . “
향순이가 소리를 지르자 오빠는 향순이를 내려놓으면서 씨익 웃더니 “그게 서울구경이야.” 하면서 그를 감싸 안는데 오빠의 몸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오빠의 품에 안기다 보니 기분이 묘해지고 떨어지고 싶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 날 개울가로 나오시던 엄마가 둘이 한데 붙어 있는 모습을 보시게 되었고 그제야 엄마는 깜짝 놀라신 것이다.
만일 이런 소문이 동네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향순이도 그렇지만 과부엄마의 체면이 서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엄마는 그날로 딸을 어서 시집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서둘러서 딸의 혼처를 구하던 중에 마침 약방 도령을 장가를 보낸다는 소리를 듣고는 매파를 넣어서 급하게 결혼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시집을 보내기 전에 엄마는 향순이를 불러서는 딱 한 말씀을 하셨다.
“ 모든 것은 팔자려니 하고 살거라. 사람들이 팔자를 고친다고 들 하지만 그 팔자가 어디로 가겠니. 더구나 아무리 세상이 개명이 되어 간다고 해도 한집의 머슴에게 혹시 네가 시집을 가게 된다면 개가 다 웃을 일이고 그리 되면 이 엄마의 체면이 무엇이 되겠니. 네가 머슴에게 시집을 가야 할 팔자는 아닐 것이야. 그러니 이번에 출가하게 되면 그 집의 귀신이 될 지언정 다시는 친정집에 올 생각도 하지를 말거라 .”
엄마의 감쪽같은 계략에 의해서 부득불 시집을 가게 되었지만 그렇게 빨리 고용복 오빠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를 못하였는데 억지로 등 떠밀려서 이렇게 오고 만 것이다.
그때 저쪽에서 어떤 사람들이 중얼거리며 오는 사람이 있어서 으슥한 곳으로 몸을 피해서 앉아 있자니 그들은 하필 며느리가 앉아 있던 귀룽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위에 걸터앉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월순이와 박무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이다.
“ 네가 뭔데 잔소리냐. 마님이 아무소리도 안하시는데 말이야.”
“ 너. 너무 마님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엊그제도 내가 술 많이 먹지 말라고 하였지만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술만 퍼마시니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니.”
“네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아냐.”
“왜 그것을 몰라 마님은 너의 일 거수 일 수족인가 뭐 일 투족이라나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하였어. 그러니 정신 좀 똑똑히 차리란 말이야. 그리고 네가 장가 이야기를 하였다면서.”
“ 난 장가간다. 소리를 한배가 없는데.”
“ 언젠가 술을 마시고 마님께 장가 들여 달라고 했다면서 그것도 잊어버렸단 말이야.”
“ 내가 그런 소릴 하였다고. 사실 장가를 갈려면 마님처럼 예쁘다면 모를까 .”
“ 어마마. 별 소리를 다 듣겠네. 그럼 마님을 좋아한다는 말이야 .”
“ 그래. 나마님을 좋아한다. 마님이 얼마나 예쁘시냐. 마님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때도 많단 말이야.”
사실 박무원이 이 집의 머슴으로 들어온 것은 작은 마님이 시집을 오기 두해 전의 일이었다. 워낙 농사일이 많아서 힘이 든 때도 많았지만 할머니는 일만 죽도록 시키기만 하였는데 작은 마님이 시집을 오면서부터는 일꾼들에게 참참이 간식도 주고 명절이 되면 새로 바지저고리를 맞추어 주기도 하여 그의 인품에 감동이 되고 있는 참인데 뜻밖에도 할머니와 신랑이 한꺼번에 돌아가시게 되자 작은 마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결에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었지만 그 말을 월순에게 알려 줄 수는 없었다.
“큰 일 났네. 어떻가지.”
“ 무어가 큰일이 나.”
" 너 때문에 사람 하나가 금방 죽게 생겼으니 말이야. “
“ 야. 누가 죽는단 말이야.”
“ 그것을 꼭 집어 말해야 아냐. 난 몰라 아앙.”
“ 너 왜 갑자기 그러냐. 어디가 아파서 그러냐. 응.”
“ 이 바보. 천치 같은.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해. 아앙.”
“ 사람이 말을 해놓고는 울기만 하다니. 그 이유를 밝혀야지.”
“ 너 지금 한말 내가 마님한테 다 이를 테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
“ 뭐라고. 아니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아. 아까 한말 취소할게 그리고 사실은 말이야 . “
“ 사실이 어떤데.”
“ 헤헤 사실은 말이야. 마님을 좋아하고 싶긴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난 솔직히 얘기해서 누구를 쬐꼼은 더 좋아하고 있단 말이야.”
“ 그 누구가 누군데 왜 김치깍두기 항아리에 버무려 넣듯이 얼버무리는 거야.
월순이와 박무원이가 가까워진 것은 지난해 5월 단옷날 무렵이었다.
그날 월순이는 마을에서 그네뛰기대회를 연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나가보고 싶었으나 그네 줄을 잡아보지도 못한 주제에 나갈 수가 없자 박무원에게 그네 뛰는 요령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박무원은 월순이를 느티나무 가지에 매어 있는 그네줄 밑으로 데리고 가서 그네 줄을 잡는 방법과 땅에서 줄을 붙잡고 발로 공구는 데서부터 차고 나가는 것 까지 자세히 알려 주자 월순이는 밤마다 그네를 밀어 달라고 하더니 차츰 차츰 치마꼬리가 하늘로 뻗치도록 그네를 잘 타는 가운데 처녀 총각이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이다.
마침내 그네 대횟날 월순이는 여러 선수들을 제치고 일등을 하였으니 둘은 그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 남이 다 자는 사이에 귀룽나무 밑에 가서 막걸리를 나눠 먹고 손목까지 잡게 된 것이다.
원래 월순이는 조실부모하여 의지가지없는 고아였는데 약방할머니가 불쌍하다고 데려다가 키우셨고 내내 약방 댁의 딸처럼 이집에서 한식구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머슴들의 밥을 만날 차려다 주게 되고 상머슴인 박무원이 좋아하는 음식이며 그의 성질까지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할머니는 그때마다 사랑방의 머슴에게 술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래서 술상을 차려 가지고 방엘 들어가려고 방문을 두드리면 그때마다 박무원은 웬 잠을 그렇게 잘도 자는지 깨지를 않아서 윗목에다가 상을 놓고 나오는 때가 많았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서 잠이 들면 묶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는 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안된 때도 있었다.
월순이는 방에 들어갔다가 어떤 때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옷을 넣어두는 장롱까지도 들춰 보았는데 그때마다 특이하게 남자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얼른 코를 쥐고 나온 때도 있었다.
남자들이 제대로 빨래를 해 입지를 않아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측은하기도 하여 다음에 들어오면 빨랫감을 모조리 찾아서 빨아다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 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그렇게 시냇물 흘러내려가듯이 잘 지껄이냐.”
“ 내가 잘 지껄인다고. 네가 언제 그렇게 나를 본적이나 있냐.”
“ 그것을 말로 해야 하니.”
“ 그게 무슨 소리니.”
“ 너 정말 그렇게 사람을 몰라 보느냐구.”
“ 내가 너를 모를 리가 있냐.”
“ 너 밤중에 자는 모습을 내가 한번 본적이 있지.”
“어머나 내가자는 모습을 보다니 거짓말 말아.”
“ 얼마 전 꿈에 너를 보았는데 글쎄 네가 나한테 안기려 하기에 내가 쫓겨 갔지 뭐냐.”
“ 내가 너한테 안기려 하였다고 아이고 망측해라.”
“ 네가 평소에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가 아니냐. 사실 너는 얼굴은 보통이지만 너의 궁둥이는 정말 매력이 있거든. 궁둥이가 잘 생기면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하던데 만일 네가 나한테 시집을 오게 되면 아들딸 합쳐서 열 명만 낳아주면 좋겠다.”
“ 아이를 열 명씩이나 낳으라고. 햐 !누구를 잡으려고 작정을 하는 모양이지. 그리고 그 애들이 무얼 해 먹고 사냐.”
“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면 제 요는 다 타고 난다 하시더라.”
” 너 말하는 것을 보니 밥상에 고기반찬 올라가긴 다 틀렸다. “
“고기를 암만 먹으면 뭘 해 .힘 쓸데도 없는데.”
“ 왜 힘 쓸데가 없어. 남자의 힘이라는 게 볏가마니를 척척 들어 올리거나 산에서 나무 한 짐을 거뜬히 지고 내려 올 때 쓰는 것 아니냐.”
“ 얘. 너야말로 참말로 어린 애로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바보란 말이야.”
“ 남자들은 훅닥하면 힘 이야기를 하더라만 여자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
“ 네가 한 2년쯤 있으면 그때는 남자의 힘을 어디다 쓰는지 알게 될지도 몰라.”
“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냐. 마님께서 어제 저녁에 나를 부르시더니 며칠 후에 골 마을을 다녀오라고 하시던데.”
“ 왜 거기를 보내시는데 . 너 거기 가게 되면 하루 자고 오냐,”
“ 골 마을 할머니가 몸이 아프시다고 해서 날 보고 진지를 해드리다 오라고 하였으니까 병이 나실 때 까지 있을지도 몰라.”
“ 그럼 한동안 보지를 못하겠구나. 네가 보고 싶어서 어떻거냐.”
“ 내가 보고 싶다고 그게 진정이란 말이야.”
마님은 거기까지 들었을 때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박무원이가 월순이를 좋아한다고.’ 문득 박무원이 타작을 한 뒤에 쌀가마니를 메고 창고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유심히 보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 저런 건장한 사내라면 밤일도 잘 하겠지!’
신랑이 날마다 술을 먹고 들어오던 때라 그의 마음은 늘 외로움을 느끼던 때였다. 며느리는 박무원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소스라쳐 놀라기도 하였다.
박무원은 월순이의 뜻밖의 말을 듣자 금방 그가 없다면 마님이 밥을 차려 주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묘한 느낌이 오는가 하면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으니 엄종화를 만난 다음부터 부쩍 마님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과부인 마님이야말로 이 댁에서는 귀한 며느님이지만 시아버님만 모시는 괴로움과 눈물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인가.
박무원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님의 외로움을 덜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엄종화의 말은 여자의 외로움을 해소시킬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남여의 사랑이라고 하였던 것이니 그로서는 그것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엄종화를 자주 만나면서부터는 마음이 차츰 변하는 것이었으니 밤마다 잠을 자려면 마님의 풍만하진 않지만 개미허리처럼 가느다란 허리를 한번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동산에 둥근달이 떠오를 때처럼 마님의 모습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신분으로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남녀로서 생각을 한다면 마님이야말로 외롭기 그지없는 불쌍한 수절 과부인 것이다.
자고 깨면 시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시는 것이 며느리로서 할 도리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신랑이 간 후에 독수공방의 외로움은 점점 그의 심신을 괴롭히고 있었지만 날만 새면 다시 일어나서 시아버님의 세끼 진지를 해 올리는 것까지도 월순이에게 시키지를 않았다.
“ 마님. 할아버지 진지상은 제가 올릴 테니 부엌에 나오시지 마세요.”
월순이는 그럴 적마다 부엌의 일을 전적으로 자기에게 맡기라고 하였지만 좀처럼 마님은 듣지를 않았다.
" 아니다. 너는 일꾼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신경을 쓰거라 . “
마님은 한 결같이 아침 점심 저녁상 까지 참견을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마님이 월순이를 조용히 부르시는 것이다.
“ 부르셨어요, 마님.”
“ 그래. 내일부터는 네가 할아버지 상까지 함께 보거라. 내가 요즘에는 허리가 아파서 상을 들기가 거북스러워서 그런다.”
” 그것 보세요. 제가 어련히 알아서 모실 텐데요. “
마님은 그 말씀만 하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월순이의 말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니 신랑 생각이 갑자기 나는 것이다.
진작 신랑에 대해서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것인데 시어머니 바람에 너무 마음을 놓은 것이 결국은 신랑의 단도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이 신랑의 앞날을 망치는 결과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분하긴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신랑을 여의고 나서 한동안은 일도 손에 걸리지를 않았지만 자기가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월순이는 늘 하는 대로 빨래걸이 함지를 이고 개울에 나가서 빨래를 한 다음 앞마당 바지랑대에 빨래를 널려고 하는데 팔이 모자라자 박무원이에게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것이어서 사랑방으로 가다 생각을 하니 박무원이 방금 전까지 두엄을 내던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도로 돌아서서 빨래를 널다가 보니 다 해진 속옷이 손에 집히는데 그것은 박무원의 등걸잠뱅이었다.
문득 박무원이 언젠가 저녁에 일을 하고 나서 웃통을 벗고 땀을 씻던 모습이 떠올랐다.
팔뚝에 툭툭 붉어진 근육이며 쭉 뻗은 어께죽지 그리고 겨드랑에 검게 나 있는 털을 보다가 못 볼 것을 본 양 눈을 다른 데로 돌렸었다.
남자들을 왜 저렇게 겨드랑에 털이 많이 났지 하다가 자신의 거시기에도 털이 난 생각을 하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그날도 월순이는 할아버지 진지를 차려드리고는 부엌 설거지를 하는 중인데 갑자기 마님이 불으시는 것이다.
“ 마님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계신가요.”
" 그게 아니고 내일 아침에 일찍 골 마을 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 진지를 해드리도록 하여라. 더 있다가 보내려고 하였는데 할머니가 많이 편치 않으시다니 당분간 가서 있어야 하겠다. “
마님의 말씀을 들은 월순이는 골 마을에 가기가 싫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골 마을로 가게 되면 박무원이와 자주 만날 수도 없게 되니 그것이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 왜 마님의 마음이 갑자기 변하셨지.”
월순이를 골 마을 할머니 댁에 보내고 나서 며느리는 시아버지 저녁을 차려드리자 시아버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밥을 한 술 뜨시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방에 가서 누우시겠다고 하신다. 벌써 여러 날 째 진지를 드시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이날 박무원은 한나절에 나무를 한 짐을 해다 놓고 엄종화를 만나러 갔는데 전날 할 말이 있으니 다음 날 저녁때 만나자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박무원이 무슨 일로 불렀느냐고 하자 엄마가 새로 술을 항아리에서 꺼내셨다면서 맛을 보기위해서 불렀다며 술상을 차려서 얼마를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정신이 어찔어찔하였다.
“ 야. 너 사람 죽이려고 이런 독한 술을 먹으라고 부른 거냐.”
“ 왜 싫으냐. 그럼 먹지 말고 집에나 가지 그래 .내가 너를 부를 때에는 다 소용이 있어서 부른 것이다. 맨 정신으로는 네가 도저히 내가 말한 대로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나게 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니 이 약술을 마신 후에 내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으란 말이야 알겠냐."
“ 그게 무슨 말인데 그러냐.”
그러자 엄종화는 박무원의 귀를 바짝 잡아 다녀서는 귓속말을 하였다. “
엄종화의 말을 듣던 박무원의 눈이 점점 휘둥구래지면서 벌겋던 얼굴이 더욱 흥분을 감추지못하는 것이다.
“ …………… ?"
“ 몇 번을 말을 해도 이리 못 알아들으니 하이고 내 팔자야.”
엄종화는 이날 박무원에게 두엄간에서 모이를 찾던 수탉이 이웃에서 수탉이 놀러 오게 되면 어떻게 하는지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 야.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아냐.”
“ 닭의 세계에서 수탉의 고유 권한은 암탉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영역에 낯선 수탉이라도 접근하면 피터지게 싸워서 승부를 가린다네. 뿐인가 낯이 선 햇병아리 중에 궁둥이가 반반하게 약이 오르는 암탉을 발견하게 되면 꼬리를 치켜세우며 쏜살같이 달려가서는 머리털을 물고 늘어지고 기어코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야.”
엄종화의 말 중에 닭의 예를 들었지만 마님을 한번 후려 보라는 말은 그에게는 너무도 낯선 말이고 뭐가 무언지 종잡을 수 없어 취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서산머리에는 이미 해가 걸려 있었다.
마님은 다시 저녁상을 차려서는 사랑을 향하여 밥상을 가져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다른 날 같으면 얼른 대답을 하고 상을 가져갈 텐데 한참 떨어진 머슴방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박무원이 어둑어둑할 때에 사랑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 같은데 혹시 또 술이 취해서 자는 것은 아닌가 하고는 사랑방문 앞에 가서 문을 열려다가는 말았다.
지금까지 마님이 머슴방을 넘나 본 것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고 무슨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으면 월순이가 다 알아서 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없다 보니 아쉬워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돌아서려다가 아무래도 사랑방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하여 다시 문 앞으로 가니 무슨 잘못을 한 사람처럼 공연히 가슴이 후당당 뛰는 것이다.
그래서 한 발자국을 돌아서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궁금증이 풀리지를 않아서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나 알아보려고 들여다보았으나 조그만 들창만 달린 방안은 너무도 어두워 방안의 사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님은 내친 김에 가만히 손을 더듬다가 이불깃이 만 지켜 소스라쳐 놀라 뒤로 물러서던 찬라였다.
박무원은 술이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서 잠시 눕는다는 것이 깜박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인기척이 있어 눈을 뜨고 보니 향숫내가 물씬 풍기는 여인이 방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된 거이다.
월순이가 할머니네 집으로 간 다음에 집에는 마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그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이 그를 이불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문득 엄종화의 얼굴이 떠올랐고 마님을 보통 여자로 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 일은 저질러야 하고 시작이 반이라는 것을 명심하란 말이야. 알았어.’
박무원은 코끝으로 스며드는 향수 내를 맡는 순간 온몸에 불이 나고 있어 앞뒤가릴 것도 없이 잠뱅이 가달을 훑어 내리면서 낚아챈 여인의 고쟁이를 벗겨 내리고는 말을 타듯이 올라 탄 것이다.
지금까지 박무원이 자는 방은 꺼칠한 갈자리가 깔리고 방바닥은 웅툴붕툴 고르지를 않아서 잠을 잘 때마다 등뼈의 한쪽이 불편하였는데 이날만은 그런 것은 전혀 감지할 수조차 없었다. 박무원의 몸은 어느 결에 여름장마에 소나기 쏟아지듯이 등줄기에서 땀이 쏟아져 내리고 언덕을 기어오르다 미끄러지듯이 몸뚱이는 자꾸만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만 있었다.
속담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있고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온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박무원을 두고 한 소리 같기도 하였다.
박무원은 비록 머슴살이를 하지만 약삭빠르고 일 잘하고 손재주가 많아서 호미고 괭이고 간에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한번은 마님이 부엌의 칼자루가 빠지자 박무원을 불렀는데 그는 마구간 시렁에서 칼자루로 만들어 놓은 물푸레나무를 가져오더니 시뻘겋게 달궈진 칼의 뾰족한 끝을 나무도막에다가 박아 넣는데 귀신처럼 자루를 해놓는 것이다.
마님이 생각을 하니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그의 탁월한 재주에 놀라 얼른 꿀물 한 대접을 타다가 주면서 물어본 말이 있다.
“ 앞으로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 좀 해 보거라.”
“ 머슴 놈이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요,”
마님이 생각을 하니 자기는 언제부턴가 박무원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물동이에 금이 가면 실 샘이 터져 나오듯이 마님의 몸에서도 어느새 갈 샘이 터진 듯 땀이 솟는 것이었으니 아! 너무도 오래간만에 남자를 대하게 된 마님으로서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새아씨 때부터 아기를 낳을 때까지도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과 몸을 대본 일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대보름날 황닥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온 몸이 녹아나기는 처음 있는 일로 잠까지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의 모습이 잠시 안개처럼 나타나다가 살아진다.
“ 네가 머슴에게 시집을 갈 팔자라면 이 어미는 너를 낳지도 않았을 거야.”
초승달이 서산으로 기울어진지 꽤 오래 되었지만 머슴의 방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