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김정은 어디에 있나
원산항에서 북쪽으로 4km쯤 올라온 바닷가 작은 항구, 김정은의 전용별장 602 특각(초대소: 영빈관)이 있는 곳.
두 대의 고무보트 위에 6명씩 나뉘어 탄 괴한들은 몸을 더 낮추고, 잽싸게 노를 저어 작은 강의 하류를 지나 김정은의 애완 요트 `프린세스 95MY`가 정박해 있는 항구의 북쪽으로 접근해간다.
해변의 넓은 백사장 뒤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죽 늘어서 있다.
요트가 정박해있는 항구의 북쪽 해안으로 상륙한 괴한들은 고무보트를 모래사장 위로 끌어올리자마자 신속하게 모래밭을 가로질러 소나무 숲으로 숨어든다.
모래사장과 소나무 숲의 경계지점에 3명의 괴한이 남아서, 남쪽 항구를 향해 기관총의 쌍각 받침대를 설치하고 엎드린다.
기관총은 놀랍게도 한국군의 제식 장비인 K-3 경량 기관총이다. 유효사거리가 800m이고 최대발사속도가 분당 700발이 넘으면서 중량은 6.8kg밖에 안 되는 경기관총이다.
두 명은 납작 엎드려 기관총 방아쇠를 잡은 사수와 연발 탄창을 끼워 손으로 받쳐 든 조수를 이루고, 나머지 한 명은 무릎 쏴 자세로 높게 앉아 멀리 남쪽 항구를 살핀다.
이 괴한이 들고 있는 소총도 한국군의 표준화 개인장비인 K-2 자동소총이다. 괴한은 접어두었던 개머리판을 펼쳐서 어깨에 밀착한 채 남쪽을 향해 경계를 선다.
해안에서 떨어지긴 해도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데도 이들은 말없이 손짓으로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3명은 타고 온 모터보트를 지키면서 남쪽 항구에서 올라올지도 모를 경비병의 출몰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시커먼 복장에 검은 복면까지 뒤집어쓴 데다 모두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해서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숲속으로 들어간 9명은 3명씩 조를 이루어 익숙하게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비스듬한 야산 자락을 타고 오른다. 아마도 이곳 지형을 다른 모의시험장소에서 충분히 숙지하고 온 게 틀림없다.
조금 올라가자 저만치 200여 미터 앞에 경비병 숙소로 보이는 건물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이 김정은 602 특각의 지상 경계는 602 연락소가 맡고 있고, 해상 경계는 1022 연락소가 담당한다.
통상 대남 및 대일 공작 담당 기관으로 사용되는 연락소는 최정예 전투 요원들을 갖고 있지만, 정규군 특수부대의 상륙을 저지할 정도의 능력은 거의 없다.
최정예 전투 요원들이라고 해봐야 요즘은 김정은의 요트를 관리하거나 특각 내부를 훔쳐보는 사람들 잡는 등의 가병(家兵) 노릇만 하다 보니, 거의 민간인 수준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괴한들은 몸을 낮추고 사방을 경계하더니 인기척이 없자 앞장선 조장의 수신호에 따라 다시 경비병 숙소인 송도원 야영소 제1동과 식당 건물을 향해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100여 미터를 오르자 왼쪽 강 건너 저 멀리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김정은의 특각이 나무숲 사이로 어른거린다.
아마 오늘 밤에 김정은이 군 간부 장성들이나 측근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런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이런 침투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경비원들이 모두 특각으로 갔는지 경비병 야영소 철조망 울타리에 보초 서는 병사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남쪽 특각에서 다리를 건너 이어진 보행길이 끝난 경비병 숙소 입구 초소 50여 미터 앞에서 괴한들이 멈춰 섰다.
이 들 중 3명이 나무 둥지에 은폐하여 왼쪽 특각 방향으로 경계를 서고, 나머지 6명은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경비병 숙소 건물의 입구 초소로 신속히 접근해간다.
잠시 후 초소 안에서 AK-47 소총을 안고 졸고 있던 경비병 한 명은, 목이 옆으로 꺾인 채 입가에 거품을 물고 의자에 그대로 앉아있다.
소리도 없이 능숙하게 야영소 제1동 출입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선 괴한 6명은 건물 1층에 있던 예비 조 3명의 경비병도 단도를 던져 찍소리 없이 간단히 처치해 버린다.
K-2 소총을 든 4명은 건물 내부를 구석구석 뒤지며 잔여 인원이 없는지 살핀다.
그 사이 두 명의 괴한은 남쪽 창가로 다가가 창틈으로 특각 방향을 내다본다.
창문은 밖에서 판자로 죄다 가려져 있어서 특각 건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되어있다.
아마 평상시에 경비병들이 특각에서 파티 벌이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모양이다.
두 괴한은 비좁은 판자 틈 사이에 길쭉한 총구를 집어넣고 자세를 잡는다. 강 건너 저 멀리 대낮처럼 환한 특각 건물의 멋진 위용이 빤히 바라다보인다.
이들이 소지한 총은 놀랍게도 한국군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K-14 저격용 소총이다.
K-14 저격소총은 90m 거리에서 지름 2.5cm 원 안의 표적을 정확히 맞혀 명중시키는 소총이다.
소총 몸체 위에는 최대 4 배율까지 관측이 가능한 야간 조준경도 달려있다. 한국산이면서 유효사거리는 800m나 되고 중량은 5.5kg밖에 나가지 않아, 해외에 수출까지 된 저격용 소총이다.
이 경비병 숙소에서 강 건너 특각 건물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다.
조준경을 사용한다면 특각 건물의 베란다나 창문가에 서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정 조준하여 맞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괴한들은 설마 남한에서 김정은을 제거하기 위해 침투시킨 소위 `참수 부대`란 말인가?
아니면, 혹시 미국에서 파견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 (Navy SEALs)이 한국 정부의 동의도 없이 작전을 벌이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일부러 한국군 표준 장비를 휴대하고 침투한 것인가?
*** ***
송도원 경비병 야영소 남쪽 다리 건너 200m 지점에 있는 김정은의 602 특각 2층 대연회장.
인민군복에 견장의 별이 4개인 대장에서부터 3개인 상장, 2개인 중장, 1개인 소장까지 수십 명이 원탁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민복을 입은 민간인 신분은 몇 명 안 되는 거로 보아 군단장 이하 요직에 있는 군 간부들을 모아서 무슨 축하 파티라도 벌이려는 모양이다.
“이거이 새로 보급될 병사들 간식이란 말입네까? 보리 주먹밥 아입네까?”
“그렇다네요. 이번에 햇보리로 만든 거인디, 앞으로 병사들 주식에도 보리를 많이 섞여서 멕이라고 한답네다.”
“쌀밥도 찰기도 없는 중국산 쌀을 보급해서 밥맛 없다고 불평불만이 많은디, 보리밥을 멕이면 병사들이 제대로 따르갔시오?”
“미 제국주의 간나 새끼들 경제제재 바람에 쌀값이 일 킬로에 5천 원까지 올랐지 않소? 쌀도 귀한 데다 맛이 좋은 황해도 재령 쌀은 고위층에서 먹어야 하고, 집단농장에서 재배한 나머지 우리 쌀은 중국에 내다 팔아서 외화 벌어야 하니까니, 보리밥이라도 먹고 참아야지 어쩌 겄소?”
“그래도, 이건 좀… “
말을 하려던 별 3개 상장이 가까이 다가오는 인민복 차림의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문다.
“여~ 동지들! 잘들 지냈소? 그래, 햇보리 간식 맛이 어떻소?”
“예, 위원장 동지께서 하사한 보리 간식이 아주 맛이 좋습네다! 림광일 상장께서는 안녕하십네까?”
림광일 상장? 그는 얼마 전까지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작전총국장으로 있던 인물이다.
그는 바로 작전국장으로 있던 작년 8월에 서부전선 연천지역 DMZ 철책선에 목함 지뢰를 매설해서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사고 지점은 북한 GP(비무장지대 소초)에서 남쪽으로 930m, 군사분계선 MDL로부터 남쪽으로 440m, 우리 군 GOP(일반전초)로부터 북쪽으로 2km 지점이었다.
그 사고로 우리 부사관 두 명이 발목이 절단되는 상처를 입었고, 대응으로 우리 군이 철책선에서 대북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군이 남쪽으로 직사화기와 고사포를 발사했었다.
우리 군도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155mm 자주포로 대응사격을 가하여 위기가 조성되었었다.
결국 북한에서 군 최고 실력자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 부장인 김양건을 내려 보냈고, 판문점에서 우리 측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만나 무박 4일간의 협의 끝에 8-25 남북합의를 극적으로 타결한 그 사건이다.
김정은은 금년 1월에 림광일이 소속한 작전국을 작전총국으로 격상시키고 림광일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에 임명했었다.
기존의 작전국장은 우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총참모부 소속이고 제1부총참모부장 자리는 군사훈련과 대남작전 등을 총지휘하는 핵심 요직으로 군 서열 4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노동당 7차 전당대회에서 림광일이 인민복 차림으로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이 확인됨으로써, 한때 처형설이 나돌았던 리영길이 림광일 대신 총참모부 작전총국장에 임명된 것이 아닌지, 우리 측 정보부서에서도 짐작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 괴한들은 우리 부사관들 두 명을 부상시키며 목함 지뢰 도발의 만행을 저지른 이 림광일을 처치하러 온 것인가?
지금은 작전총국장 직위에서도 물러나 있고 다른 직책의 발령 대기상태인 림광일이 이런 위험한 작전을 벌일 만큼 중요한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위원장 동지는 오늘 참석을 안 하십네까?”
“아니요. 참석하십니다. 지금 평양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끝나면 곧바로 오실 겁니다.”
“위원장 동지께서 피양서 원산 갈마 비행장까지 오셔서 승용차로 갈아타고 오시려면 한 시간은 더 걸리지요? 많이 힘들겠습네다!”
이 김정은의 602 특각에 처음 와보는 상장이 제 딴에 짐작해서 김정은이 그런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자기네들을 위무해주러 오는 것에 대해 찬양을 하는 것 같다.
“아, 아니요. 갈마 비행장을 들러서 오시지 않고, 여기 특각 뒤에 새로 만든 전용 비행장으로 바로 오실 겁니다.”
“아, 그렇습네까? 언제 전용 비행장을 닦았구먼요!”
“하하, 갈마 비행장을 경유하면 위원장 동지의 동선이 너무 다 드러나서 위험하지요. 아직도 어떤 정신 나간 불순분자 새끼들이 엉뚱한 짓거리 할지도 모르지 않소? 하하. 평양에서 Mi-38 헬기를 타고 오시면 30분도 채 안 걸립니다. 금방 오실 겁니다.”
예전 김정일의 집권 때는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차역을 폭파한 사건도 있었다.
“아, 러시아 국방부가 내후년부터나 군에 보급한다는 그 최신형 Mi-38 헬기를 푸틴 대통령이 우리 위원장 동지에게 선물이라도 한 모양입네다?”
“그렇소! 작년 말에 그 헬기는 이미 공인시험에서 인정을 받았고, 푸틴 대통령이 특별히 제작한 한 대를 우리 위원장 동지에게 우정의 표시로 선물하신 겁니다. 성능이 아주 좋아서 위원장 동지께서 매우 만족해하십니다. 하하.”
러시아가 개발한 Mi-38 헬기는 최대속도 320km로 운용 고도는 5,900m이며 한번 주유로 920km를 비행할 수 있다.
전투 상황에서도 각종 화물과 증원군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크기로, 첨단 전자전 장비와 미사일 방어체계까지 탑재되어 있다.
오늘 김정은이가 그 헬기를 타고 괴한들이 침투해서 저격 준비를 마치고 있는 이곳에 곧 도착할 거란 얘기다.
이 2층 대연회장은 북쪽 경비병 초소에서 빤히 보이는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