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당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임경업장군을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사람이 바로 청나라 간첩질을 한 김자점이란 사람이다. 임경업과 김자점과의 악연은 조부때부터 얽혀 졌다.
임경업의 아버지는 원주 관아에서 형리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한눈에 보기에도 무고하게 보이는 한 젊은이가 살인죄로 관아에 붙잡혀 왔다.
틀림없이 무고임을 확신한 임경업장군의 아버지는 그 백성을 몰래 풀어주고 멀리 도망가서 살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임경업장군의 집에 낯선 스님이 찾아 들어 임경업장군의 아버지를 만나도록 청하는 것이였다. 임경업장군의 아버지가 의아해 하며 누구나고 물으니까 그 때서야 몇 년 전에 원주 관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 후로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다고 하였다. 스님은 그때의 일을 고맙게 생각하며 은공을 되갚아 주겠다고 하며 묘자리를 잡아주겠다고 하였다. 마침 임경업장군의 할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여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고 같이 산에가서 명당 자리를 정하였다.
스님은 이곳에 묘를 쓰되 묘를 쓰기 전까지 부친의 관속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로 관을 열어보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로부터 몇일 지나지 않아 임경업장군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초상을 치르는 중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밤이면 관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스님의 간곡한 경고를 무시하고 관뚜껑을 열어보고 말았다. 그리고 기겁을 할 뻔 하였다. 부친의 시신 위에서 손가락 만한 아이들이 검을 들고 맹렬하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임경업 장군의 아버지가 관을 닫을려고 할 때 두 아이중 두 눈이 시뻘건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아이의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는 듯한 한이 배어 있는 눈빛이였다.
임경업장군의 아버지가 묘를 쓴지 며칠이 지나서 였다. 막 봉분이 선 그 무덤 주변에 풍수가 몇몇이 나타나 임경업 장군의 할아버지의 묘를 보고 혀를 차며 말하였다. “바로 저 자리이거늘 어찌하면 좋단 말이요, 하는 수 없지 않겠소? 도리는 아니지만 바로 옆자리에다 쓰는 수 밖에......”
이리하여 임경업장군의 할아버지 바로 옆자리에 들어선 묘는 바로 김자점의 할아버지였다.
이것은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김자점과 임경업장군 사이에 얽힌 악연을 드려내주는 구전이다.
임경업(1594-1646)장군은 이조 인조때의 장군으로 본관은 평택으로 충주에서 판서 임정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용맹하여 1618년 문과에 급제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을 세워1등공신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때 청군을 물리치기 위해 난공불락의 의주산성을 지키려 하였으나 도원수 김자점이 청나라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미리 겁을 먹고 의주산성을 버리고 동쪽으로 백리나 떨어진 자모산성으로 옮기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천혜의 요새를 청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김자점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 임경업은 그 후 명나라와 내통하여 청나라에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일이 탄로되어 명나라로 도피하였다. 명이 청에 함락되자 청나라는 임경업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다. 이 때 본국에서는 심기원(沈器遠)이 회은군(인조때의 왕족)덕인(德仁)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일어나 임경업이 여기 관련되었다는 제보가 있어 본국으로 송환 조사하였으나 무고였음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그러나 반대파인 김자점의 모함으로 결국 피살되고 말았다.
한편 김자점(1588-1651)은 인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구안동 김씨 김질(金질)- 1456년 사육신을 고발하여 공신이 된사람의 5대손이다. 우 계 성혼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이귀 등과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고 낙흥부원군에 봉군되고 영의정에 이르렸다. 그 의 손자 김세룡이 인조 후궁 조귀인의 딸 효명옹주와 결혼시키고 세력을 잡아 조정을 문란시켜 파면되었다.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여 김상헌 등의 제현만을 가까이 하자 이를 질시하여 효종이 청나라를 치러한다는 사실을 청나라에 밀고하니 청나라 군사가 국경까지 와서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돌아 갔다. 이에 조정에서는 김자점을 역모로 처형하였던 인물이다.
(임경업 장군의 묘소 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충북 충주시 풍동에 있음)
첫댓글 임경업전이라는 한글소설< 소설이 아니라 실화 전기인 듯>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속리산에는 겨업대라는 곳이 있는데 초임때 그 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지. 그때 임경업장군을 나는 흠모했었지. 억울한 죽음의 뒤에는 바로 김자점같은 모사꾼이 있었구만 , 개우쳐 줘서 야천이 고맙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