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것, 임금
공계진 사)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시화노동정책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노동정책을 생산하는 곳이다. 연구소의 연구과제는 대개 년초에 정해진다. 노사관계와 관련된 것이 연구소의 주요 연구과제이지만, 2024년의 연구에는 그와 관련없어 보이는 식당 실태조사가 포함되었다. 연구소가 시화공단 공동식당들의 실태를 조사하기로 한 이유는 시화공단 내 공동식당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여, 시흥시에 정책 제안을 하기 위함이다. 이 정책 제안의 목적은 식사의 질을 개선하여, 그 식당을 이용하는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밥이 최고라고 영양가 높고, 맛도 좋은 밥을 먹고 일해야 건강을 잃지 않을 것이며, 일의 능률(생산성)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는 설문조사를 한 후 그것을 분석하여, 정책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된 설문조사. 공동식당 앞에다 좌판을 설치하고 설문조사를 진행하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공동식당의 사장들이다. ‘식당 실태조사’라는 배너를 보고, 혹 자신들의 문제를 파악하여,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걱정부터 한다. 그러나 식당 지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사라는, 필자나 연구소 연구위원들의 설명에 안심해 하며 음료수를 갖다 주기도 한다. 식당 실태조사이기 때문에 식당에 대한 것이 설문 조사의 주요 항목이지만, 임금별 교차분석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파악하는 항목도 있다. 설문에 응해 쉽고, 빠르게 체크하던 노동자들이 이 임금을 적는 난에 가면 멈칫댄다. 어떤 분들은 망설이다가 적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난을 비워두고 넘어간다. 그래서 설문을 안내하는 필자와 연구원들은 ‘자세히 적기 싫으시면 대략이라도 적어주셔요. 그래야 분석할 수 있거든요’라며 적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면 대개는 자신의 임금을 대략이라도 적는다. 그런데 소수의 어떤 분은 끝까지 임금 난을 비워 둔다. 이럴 경우 필자는 그 난에 ‘거부’라고 메모해 둔다. 공난으로 놓아두면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읽힐 수 있는데, ‘거부’도 분명한 의사 표현이라서, 분석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의 임금을 흔쾌히 밝히려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임금 난을 비우는 주된 이유는 창피함 때문이다. 설문에 응한 노동자들 중 임금 난을 비우는 분들의 연령대를 슬쩍 보니 대개 고령층인데, 이들의 경우 자신의 낮은 임금에 대해 자괴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는 듯했다. 내일 모레면 퇴직할 나이인데, 자신의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을 조금 벗어난 수준이니 자신의 임금을 밝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들 노동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자세히 적어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는다. 다만, 분석을 위해 필요하니 대략이나마 적어달라고 부탁한다.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은 통계청의 조사에도 나타난다. 연구소는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 원자료를 활용해 매년 ‘시흥시 임금노동자 및 비정규 실태조사’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한다. 그 내용 중에 울산, 경주 등 타지역 노동자의 임금과 비교하는 항목이 있는데, 시흥시 임금노동자들의 임금은 비교 대상 지역의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낮다. 그 분석이 시화공단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시흥시 임금노동자들의 절대다수가 시화공단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화공단노동자들의 임금이 타지역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늘 안타까움을 느낀다. 요즈음 배추 한 포기에 15,000, 20,000원 한다고 한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이 말은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령층 노동자들의 임금은 이 시화공단에서는 그리 높지 않다. 시급이 배추 한포기 가격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숨기려 한다. 한시간 일해봤자 배추 한포기 사기 힘든 자신의 임금을 밝히고 싶은 노동자들은 없을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