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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밭의 잡초
병원 침상에 누웠다. 섬광처럼 튀는 파란빛을 받아낼 재간이 없어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사마귀와 검은 점들이 노린내를 풍기며 찌직 찌직 타고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음인지, 마음 밭을 잘못 가꾸었는지 얼굴에 잡초는 비 온 뒤 대순처럼 쑥쑥 돋아났다. 점을 빼러간다는 대뜸 뱉어내는 아내의 목소리다. "환갑 넘은 나이에 주제 파악하소. 아무리 소제해도 청소 빨 받겠습니까."라고 힐난한다. "신언서판도 모르나? 당신 호강시키려면 이 공장, 저 공장 여러 사람 상대해야 하거늘. 볼품없는 외모에 혐오감마저 준대서야."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막상 시술실에 들어서니 더럭 겁부터 났다. 불가루 휘날리며 지져대는 따가움을 참아낼 수 있을까.
나의 점 빼기는 사춘기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반의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사용하고 남은 건전지의 진득한 고체가 약의 원료였다. 뾰족한 침으로 점 주위를 자극하고 화학성분의 약을 살짝 바른다. 딱지가 곱게 떨어지면 성공이다. 가끔 치료가 잘못되어 깊게 팬 자리가 흉터로 변할 때도 있다. 친구 하나는 콧등에 웅덩이 같은 흔적이 남아있다. 만날 때마다 그것을 화두로 추억을 되씹는다.
두 번째 점 빼기는 소위 간호사 출신이라는 돌팔이에게 얼굴을 맡겼다.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불법 시술을 하던 터라 마룻바닥이 곧 시술대였다. 전원을 꽂고, 조수가 팔다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짓누른다. 완전히 전기고문이다. 용접기 처럼 생긴 흉물이 목적물에 불통을 튀긴다. 따끔따끔한 아픔을 어금니 사이로 물었다. 인두로 사육신을 닦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마치 똥파리가 배설물을 질펀하게 갈겨 놓은 것처럼 검은 똥이 얼굴을 칠갑했다. 딱지가 속살까지 걸고넘어져 천연두 꼴 나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한다. 왠만해서서는 잡초는 생명줄을 놓지 않는다. 잔뿌리에서 쉴 새 없이 돋아난다. 잡풀이 쉴새없이 지표를 뚫듯 잡티는 살가죽을 줄기차게 뚫는다. 이번만큼은 제초제를 확실하게 뿌리리라. 병원 입구는 시골 장터처럼 북새통이다. 요즘 가장 호황을 누리는 병원이 성형·피부과라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처럼 오래된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 대하기가 계면쩍었다. 행여나 아는 사람 만날까 봐 가져간 책에 눈동자를 고정해버렸다.
내 차례다. 눈 아래 눈물점 두 개를 포함하여 여기저기 손 볼 곳을 정하였다. 과녁을 향하여 날아오는 레이저 화살은 목표물에 정확히 박히며 꼬리를 떤다. '파르르 찌직'. 돈 되는 소리인지 신명이 잡혔나 보다. "눈물점 야무지게 뽑아주소." 주술처럼 뇌까렸다. 캐어낸 점의 숫자가 정확하게 일곱 개다. 오른쪽 뺨에 네 개, 왼쪽 뺨에 세 개, 콧등을 넘어 연결선을 그어보니 그대로 북두칠성 좌표다.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자미원에 위치한 북두성을 솎아내었으니 신성시 여겨왔던 빛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 셈이다. 눈물 사마귀를 보낸 것은 아깝지 않았지만, 조물주가 내린 복점도 있었을 터인데……. 순간의 선택이 백 년을 좌우한다는 말을 잊었는지, 진중치 못한 행동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부터 일반인들까지 얼굴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항간에 유행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감히 훼손치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 하지 않았는가. 공자의 말씀도 흘러간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그렇게 아끼며 살가와했던 피부를 늘어졌다는 이유로 가위로 잘라 휴지통에 팽개친다. 주름을 펴는 보톡스 시술이며, 이상한 물질을 유방과 입술을에 잡아넣는 세상이다. 부작용이 있어 사회절 물의를 일으킨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도 덩달아 이 대열에 참여하고 있으니....그런 처지에 성현의 말씀을 일성거리는 것은 모순의 극치다.
스무 살까지의 얼굴은 모름지기 부모님이 물려준 선물이라 하였다. 그 뒤의 얼굴은 화장으로 가꿈이 아니라, 안으로 살피고 닦은 결정結晶이 자연스레 밖으로 피어날 때 진정한 참모습이 아닐까. 앞으로는 수술대에 오르는 주책 떠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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