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3월인가? 직장에 가게되었다 2월 졸업하고 난 무대미술을 하고 싶었다 마침 Tbc테레비존(kbs2tv) 방송국이 생기며 많은 젊은이들을 뽑았다 배제고등학교에 가서 1000명이 훨씬 넘는 지원자들과 필기 시험을보고 2차는 신세계에서 실기시험으로 자막에 나가는 작은 그림과 대형 (무대용?) 그림을 안료로 그렸다 둘다 합격 서울미대 들어간 고교친구 세명과 함께였으나 나만 면접을 보게 되었다 어머님은 서울대 떨어져 자존심 상하셨는데 나만 붙어 무척 좋아하시며 업어 주셨다 면접만 남았다 소공동 신사옥에서 면접은 실무진과 중역들로 두곳에서 봤다 형부에게 말씀드리니 얘기해 주겠다 하셨는데 그날 내 뒤에 있던 여자는 필기때도 실기때도 못보던 사람 지금으로 말하면 낙하산이다
면접에서 떨어졌다 점수는 좋다했는데 비서 하겠냐 했을때 무대미술 하러왔다고 해선가 머리 희끗한분이 힘들텐데..하신다 작품할때 마다 밤새워 했었기에 괜찮다고 했는데.. 적합치 않았는지 학교에 가서 교수님께 말씀 드리니 세종문화회관(시민회관)에 아는 사람있긴한데 연예계 사람들하고 만나게되니 안 좋다고 하셨다(그때는 인식이 그랬었다) 후에 알았는데 형부가 얘기 안하셨다네.. 형부는 미안하셨는지 명동에 작은 3층 건물인 건설회사에 얘기해 주셨다 처음엔 책상4개 있는 1층 건축부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2층 비서실 남자가 자기가 잠깐 갔다 올때가 있으니 이 자리에 잠시만 앉아있어 달라더니 몇일이 되도 안 온다 왜 안 오냐니 3층에서 할일이 안 끝났다고 하며 몇일만 있어 달라한다 옆자리 전무님께 물으니 비서를 뽑고 있는 중이라 하신다 여러개 있는 전화 받을줄도 모르고, 모르니 사장한테 말 듣고 몇달이 됬는데도 비서는 안 오고...
어느날 회사 가려 나왔다가 서울역으로갔다 역 건너편 다방에 앉아 차 한잔 마시는데 껌파는 아저씨가 얼마에 사주면 담에 돈벌어 갚겠다한다 거짓말인줄 알면서 한통샀다 옆 과자점에 가 과자 빵 조금 사고 한바퀴도는(이름은 잊었다) 열차를 탔다 어디에 갈까? 어디서 내릴까? 벽제. 여기서 안 내리면 신촌이 금방될것같아 내렸다 역에서 나와 그냥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 길가에 앉아 빵, 과자 먹고. 다시 걷다 앉아 있는데 군복입은 사람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논둑길을 걸어 오고 있었다 나도 그가 걷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가 나 있는 곳을 보더니 방향을 틀어 내게로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그를 아는 사람같이 경사가 급한데 잘 올라오나 지켜보았다 올라오며 쳐다 보았다 모자아래로 잠간 본 얼굴은 검지않고 하얗고 고왔다 올라와 한 말은 어렴풋하다 어떻게 여기 왔어요 했던것 같다 길가에 앉아 회사 간다하고 여기 왔다고 한것같다 그도 군대에서 케익 먹던중 미군이 한국인이라고 앞에 있는 케익을 발로 뭉게 화가 나 나왔다고 했다 몇 마디 말을 나누다 그 당시 나의 화두인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요 기름 한방울도 안 나오고 했더니 그는'내가 다 해결해 줄께' 했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흡사 엄마가 자식에게 하는 말 같이..어린나이에.. 가능하진 않다해도 몇마디 더 하다 나즈막한 앞산 푸른. 잔디 깔린곳으로 저기가서 앉아 이야기하자해 논길을 가로질러 가다 작은 고랑, 그는 펄쩍 뛰어 건너고 난 빠질것 같아 망서리니 손을 내놓는다 조금전 만난 그였는데 난 오랜친구같이 스스럼없이 그가 내준 손을 잡고 건너 언덕푸른 잔디위에 그가 벗어 깔아 준 파카에 앉아 이런저런(기억이 희미해) 이야기 하는데 관리인이 이곳에 앉으면 안된다해 역으로 가는길. 얕은 초가지붕에 빨간고추 널어 놓은 것을 보며 걸었다 역에 오니 뿌연 저녁안개로 작은 시골역사는 희미하게 보이고 철길도 가까이만 보였다 약간 무서웠으나 태연하게 의자에 앉았다 몇분후 그가 기차가 언제 올지 모르니 버스타고 가자해 버스길 따라 오다 사람으로 꽉 찬. 만원버스에 올랐다 그가 탔나 뒤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틈에 끼어 내게 가까이 오려 애쓰는 모습 불광동에 와 많이 내려 자리잡고 앉으려니 갈아 타야된다해 시청가는 버스로 갈아 타고 나란히 앉아 그가 주는 버스표를 받고 시청에서 내리니 각종 종이가 수북히 발에 채였다 존슨 대통령이 막 지나갔나보다 명동으로 와 삼오정?에서 그가 사준 불고기를 아무 생각도 없이 먹고 회사앞을 지날때(그에게 내가 다니는 회사라고 그때 알려 주었더라면..) 그가 손을 펴 보라더니 500원? 인가 동전을 쥐어 주며 '이거 잘 간직해요' 한다 청계천을 지나는데 폭죽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폭죽이 하늘 높이 터지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축복해 주는 거예요'했다 어떻게 이런 달콤한 말을 했을까 처음 만난 여자에게 반나절을 함께 했을뿐인데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았나 그 나이에 난 그땐 그가 내게 한 말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줄도 달콤한줄도 몰랐다
50년이 훨씬 넘어 60년이 되가는 80인 이 나이에 너무나도 뒤 늦게 느꼈고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으로 몇일째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 워워~ 종로 2가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집 가는 버스가 왔다 '우리집 가는거에요 저 갈께요' 버스에 올라 떠나는 내게. 집 전화번호를 크게 알려. 주는데 다 못 알아 들었다 일요일 12시에 만나자 한곳 내가 그를 만나도 될까 고민하다 그래도 만나야지.. 1시간이나 늦었다 군복입은 그는 없었다 (그때 시간 맞춰갔더라면..) 이름도.. 나이도.. 사는곳도.. 얼굴조차도.. (선한 눈과 부드러운 선, 맑은 얼굴???) 그저 카츄사 군복입은 모습만이..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그와 나. 그가 내게 해 준 따뜻한 말들 만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는 그렇게 따뜻한 말을 들어 본. 적이.....없기에.... 다신 못 만났기에.........
아득한 옛 일 혹 꿈속에서의 일은 아니였는지..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마라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고 그리운 사람도 갖지마라 그리운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