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원' 곰배령 거쳐 '금지된 공간' 점봉산까지
설악산 서북능선에 서면 눈앞으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거대한 능선. 한계령을 경계로 북쪽으로 가리봉 능선과 남쪽으로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조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점봉산 일대는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남한 처음으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지역. 2003~5년까지는 자연휴식년제에 묶여 출입이 금지됐고, 2006년부터는 생물자원 보전을 위해 산림청의 허가를 얻은 사람만 입산할 수 있다.
그나마 '천상의 화원' '비밀의 정원'이란 곰배령까지는 일주일에 딱 5일(월,화 휴무), 하루 200명의 탐방객을 허용하고 있어 갈증을 달랠 수 있을 뿐이다. 곰배령은 최근 각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뿐 아니라 TV드라마로도 제작돼 방영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게 된데다, 최근 몇년새 부쩍 늘어난 야생화를 찍는 사람들의 '출사(出寫) 성지'로도 꼽혀 매월 20일 이뤄지는 탐방객 예약 당일, 한달 방문객이 순식간에 마감된다. 요즘같은 곰배령 야생화가 한창 인 때 그것도 주말에, 200명 안에 들었다는 것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기분좋은 일이다.
뜻밖에도 곰배령을 거쳐 점봉산을 둘러볼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그동안 몇차례 점봉산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10여년전 겨울, 한계령 넘어 오색약수에서 출발해 주전골로 들어서 점봉산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준비 부실'을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었다. 2,3년 전에도 산림청 직원과 동행해 점봉산에 오를 기회가 있었는 데, 개인적이 사정으로 동참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모처럼 곰배령을 거쳐 점봉산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산림청의 허가를 얻은 월간 산, 환경전문가, 숲 해설가 등으로 이뤄진 팀 속에 '묻어' 가게된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며 이미 예정됐던 산행 약속도 펑크내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점봉산 생태관리센터~강선마을~곰배령~작은 점봉산~점봉산 정상~작은 점봉산~곰배령~강선마을~센터로 회귀하는 산행코스. 대략 6~7시간 정도 예상됐다.
곰배령 입구 생태관리센터에 도착, 입산허가증 표찰을 받아 목에 걸고 출발.

생태관리센터 옆 벽면은 곰배령 야생화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이번 산행에서 어떤 꽃들을 만날 수 있을까?

생태관리센터에서 강선마을로 이어지는 초입에 설치된 '산림유전자원 관찰원'.
지난해 7월 설치됐다.
관찰 데크를 따라 금낭화 등 53종의 자생식물과 희귀식물이 심어져 있다.
강선마을로 가는 길에 김아타(Attakim)가 설치한 커다란 캔버스가 보인다.
The Project ATTA.
자연이 그리는 그림 프로젝트(The Project-Drawing of Nature)가 진행중인 현장이다.

세계적인 도시들과 자연, 인류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전세계 50여곳에 빈 캔버스를 2년동안 설치, 그곳의 역사와 아이덴티티를 채집하는 중이라고.
캔버스가 설치된 장소는 인류 4대문명의 발생지와 뉴욕, 도쿄, 서울, 베이징, 파리, 런던 로마 등 30곳의 메트로폴리탄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히로시마 등 인류의 카르마(업보)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히말라야와 안데스 등 천혜의 자연과 이데올로기의 현장인 한국의 DMZ, 아마존과 시베리아,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작은 섬, 뉴멕시코의 산타페와 인디언보호구역, 깊은 숲 속과 바다 속, 땅속 등등, 80여 곳에 이같은 작품이 설치됐다고.
김아타는 "오직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 쓴다. 예술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위대한 자연의 법(法)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www.attakim.com/에서>
지난 2011년 초여름에 설치됐으니, 올 여름 과연 어떤 기발한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모처럼 금단의 구역을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 가볍다.
인간이란 '금지' 팻말이 걸리면, 뜬금없이 더욱 '접근'하고 싶어지니,
참 요상한 존재다.

4월의 끝물이지만,
곰배령은 초입부터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는 겨울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 야생화들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원시림을 뚫고 나온 맑은 계곡물도 봄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생태관리센터에서 한 30~40분쯤 걸으니, 곰배령 사람들이 사는 곳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강선마을이다.

'아랫집'이라는 팻말이 붙은 강선마을의 끝에서 두번째 집.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허용된 구간은 이집 바로 윗집까지.
산야초 효소에 막걸리 황태 부침개---.메뉴가 맘에 든다.
하산길에 들러야지~~.
'끝집'을 지나면 바로 수령 200년이 넘은 보호수목 '쪽버들나무'.
쪽버들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강선마을 사람들이 출입자들이 '표찰'을 달고 있는지 체크하는 감시초소가 나온다.
이제 본격적인 곰배령 산행길이다.

초입부터 원시림의 자태를 뽐낸다.



하루 200명만 탐방할 수 있는 행운을 잡은 탐뱅객들이 열심히 고개를 오르고 있다.
곰배령은 말 그대로 곰이 누운 것처럼 평탄한 길이다.
그 옛날 할머니들이 나물 보따리를 이고 넘었을 정도로 완만한 길.
가족 트레킹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설악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를 준다.

곰배령 정상 부근 깔딱고개는 아직도 눈밭.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선 어김없이 새싹들이 비집고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나가유~~.인제 그만 추워유~~"

생태관리센터를 출발해 한 1시간 반여쯤 지나 도착한 곰배령 정상(1164m)은 아직도 취침중.
수천평 거대한 고산초원지대가 전체가 잿빛이다.

잠시 숨을 돌린뒤,
산림대장군, 산림여장군 장승 사이로 난 발자욱을 따라 점봉산으로~.

곰배령 넘어 능선길 위엔 키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원시림임을 자랑한다.
잎을 모두 떨궈서 그렇치, 한 여름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겠다.



능선 길 곳곳에서 주목을 볼 수 있었다.
거친 비바람에 한껏 저항했음을 보여주는 자태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
앞으로 천년을 더 그 곳을 지키리~~.


점봉산 코 밑에서 안향기 숲해설가님의 해설을 들으며 잠시 휴식.
신갈나무에 앉아서, 할머니에게 들으니 "신갈나무는 그 잎을 짚신에 깔아 신었기 때문에 신갈나무라 했다"고 설명.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불과 20여분만 더 가면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조기만 넘으면 정상, 조기만 넘으면 정상~~"하다 보니,
"더 이상은 속을 수 없다"며
몇몇 일행이 정상 정복을 포기하는 바람에 나홀로 산행에 나섰다.
덕분에 정상 정복 인증샷은 함께 한 스틱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점봉산 정상에서 둘러보니, 병풍처럼 둘러쳐진 설악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왼쪽 끝에 잘린 산이 가리봉 능선, 그 뒤편으로 안산, 귀떼기청봉, 중청, 대청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흰 바위들이 한계령을 넘다 옆으로 보게되는 바위들.
반대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방태산 방향으로 진동계곡의 양양 양수발전소도 보인다.

하산길에 점봉산 정상을 뒤돌아 보니~

왼쪽 능선이 가리봉, 그 뒤가 안산 그 옆 뾰적한 봉우리가 귀떼기, 점봉산 오른쪽으로 중청, 대청이다.
곰배령과 점봉산.
더할데 없이 편안한 산이다.
우리나라 산림자원의 20%가 몰린 '자원의 보고'인만큼,
작은 생명체의 "나봐요!"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딛는 걸음마다 조심조심 하다보니,
어느새 6시간이 넘는 시간이 꿈결같이 지나가 버렸다.

초록선이 산행구간.
한계령풀꽃,홀아비바람꽃,꿩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