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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1
돌아보면 제 리즈시절이었던 30대에는 투박한 통나무로 전원주택을 짓고 뜻 맞는
지체들이랑 쉐퍼 박사의 라브리 공동체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50대가 되고 보니
지금은 먹고 지낼만한 점포 하나 가지고 예에공 시다발이하면서 목장하나 잘 건사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개신교 목사들의 수도원 운동을 지지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In my 30s, when I was in my Leeds years, I was in the middle of a rough log, and
I was in the middle of a country house. I wanted to build a community of congenial
delays and Dr. Shepherd's Labry, but when I was in my fifties, Now, I want to make
sure that I have a good place to eat and have a ranch. However, it does not support
the monastic movement of Protestant pastors, so don't do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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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Eden동산에 살던 청춘남녀를 보니 먹고사는 문제가 다 해결된
사람들이 막연히 호기를 부리며 읊조린 유행가 가사일 뿐인 것 같습니다. Eden이나,
저 푸른 초원이나, 장소, 사랑하는 사람, 시간까지 세트가 똑 같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a hundred years with my beloved, building a picturesque house on that green meadow.
I would be happy if I could live." But I saw a young man and a young woman living in
Eden, and people who had solved the problem of eating and living in the village were
just saying, "I think I'd be happy. I think it's just a popular housework. Eden,
That green meadow, that place, that person you love, that set was the same until time,
but you weren't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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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다 그저 받았는데도 만족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내가 만든 Eden인들 만족하겠습니까?
인간이 뱀의 유혹에 빠짐으로 창조질서에 저주가 임하고 관계가 어긋났어요. 이 대목에서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느냐고 따질까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험(Test)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페이라스모스)입니다. 하지만 반응하는 사람에 따라 유혹(Temptation)이
될 수도 시련(Trial)으로 단단해질 수 도 있는 것 아닙니까?
Would you be satisfied with the Eden men I made, seeing that you were not satisfied
with everything you had just received? Human beings have been tempted by snakes,
and they have gone out of touch with the creative order. at this point Why does God
give man free will? As we know, testing is neutral in itself. But depending on the person
who responds, it could be temptationship. Can't Trial harde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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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신다는 차원에서 누구에게든 당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시험이 왔을 때 기도하라고 한 야고보 기자의 말인즉슨,
말씀을 되새김질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한 독점과
가혹함을 강조하는 뱀의 질문에 넘어간 것은 말씀의 회의로 보여 집니다.
The test itself is not a bad thing, it can be faced by anyone in the sense that God allows it.
It means yes. The wise man said to pray when the test came, which means,
Remember your words and follow God's will. But The question of the serpent emphasizing
God's monopoly on authority and harshness is not the same thing.
It appears to be a conference of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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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중립적인 것인데 내 안에 먹음직, 보암직한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시험은 유혹으로 직행합니다. 자신의 내재된 자원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내 맘대로 살겠다며 주제파악을 못하고 하는 독립선언이지요.
The test is neutral, but inside of me, it seems like it's eating, it's taking care of me.
So if you have a desire to be like God, the test goes straight to temptation.
I'm not aware of the limitations of my own resources, and I'm not willing to do it.
It's a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at says that it will live without breaking the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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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결과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핑계와 감추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현인들은
“내 탓이오(김 수환)”를 삶의 지표로 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떤 유혹을 받고
있는가? 돈, 자존심, 이성, 취미, 가족, 등등 낮 간지러워서 다 적을 수가 없습니다.
후~나 지금 떨고 있나?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The result of sin is fear. So because of their excuses and their hidden nature,
the wise men have a way of doing it. I don't know if you're looking at "I'm to blame"
as an indicator of life. What temptation am I under? money, pride, reason, hobbies,
family, etc I can't write it down because it's itchy during the day.
Whoo~ Am I shaking The sin began with doubt about the wor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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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의견으로 전락했고, 순종이 아니라 고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물이 자기 욕망의 눈에 “보기 좋은”
것을 탐하다가 하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기쁨 대신 두려움이 찾아왔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았지만(3:5) 눈이 밝아져 자기가 벗은 줄 알게 되었어요.
It was reduced to opinion, not to an order from God, and not obedience,
but to consideration. The creature that was "deeply good" in the eyes of God.
He turned away from God while coveting "good to see" in the eyes of his own desires.
As a result, fear came instead of joy, and I thought my eyes would brighten up and
become like God. (3:5) My eyes brightened and I knew that I was na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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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필요 없을 만큼 지혜로울 줄 알았지만, 하나님 없는 삶이 죽음인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창조를 일으키도록 허용하지 않는 삶의
결과는 늘 나의 말이 창조하는 세계를 만들지만, 그것은 타인을 파멸하는 창조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는 이웃과의 관계 파괴를 낳습니다.
I thought God would be wise enough not to need him, but life without him.
I just realized it was death. The word of God is to me to create a creation.
The consequences of a life that does not allow it to happen always create a world
that my words create, but it will only be a creation that destroys others. Destruction
of relations with God results in the destruction of relationships with neighb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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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떠나자 그들은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두려움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것은 여자를 창조한 하나님,
뱀을 창조한 하나님을 향한 비난일 뿐입니다. 뱀(사탄)을 의지한 인류는 이제 뱀이 창조한
세상에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여인은 어미의 역할을 고통 없이는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And when they leave in front of God, they turn their fear into a way that passes the buck.
I'm trying to escape. Men pass the buck to women and women to snakes. It's a woman.
It's just a rebuke to God who created the creation, to God who created the snake.
The human race, which relied on the snake, now pays for itself in the world it created.
You'll pay. A woman can't handle her mother's role without pain It won't be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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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는 또한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땅으로부터도 거절을 당하는 신세로
이어집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당했을 뿐만 아니라 땅의 저항으로 인해 이제 노동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대신에 좌절과 수고를 거친 후에야 그 대가를 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실하게 수고의 대가를 먹으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새 질서를 잘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은 물론 자연과도 회복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Destruction of the relationship with God is also not only about human relations,
but also from the earth. It leads to rejection. He was deported from the Garden of Eden.
And because of the resistance of the land, labor is now a joy and a pleasure.
Instead, it was only after frustration and hard work that made it pay. But I've been
working hard to get back to the dirt. When we take the new order well, we're going
to be able to restore it to nature as well as to God You can enjoy relationships.
하나님은 무화과 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 대신에(3;7)가죽 옷을 지어 인간에게 입히셨습니다.
훗날 동쪽으로 문이 난 성막(성전)을 통해, 더 나아가 친히 성전이 되어, 자신의 죽음으로
휘장을 찢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Instead of a skirt made of fig tree leaves, God made clothes of leather (3;7).
You've worn it on humans. Later, through the tabernacle of the east, the temple
was opened in person. on one's own death Through Jesus who has torn the curtain,
we will be able to boldly go on to God and enjoy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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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유혹을 받고 있는가?
나는 남을 공범자로 만들거나 내가 공범자가 되지는 않았는가?
요즘 부끄럽거나 두려운 일이 무엇인가?
What temptation am I under?
Did I make a person an accomplice or did I become an accomplice?
What are you ashamed of or afraid of these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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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1-7)
죄에 대한 하나님의 추궁(8-13)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14-21)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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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1a)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1b)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1c)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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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뱀에게 말하되(2a)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2b)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3a)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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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3c)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4a)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b)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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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눈이 밝아(5b)
하나님과 같이 되어(5c)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5d)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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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6b)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6c)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6d)
그도 먹은지라(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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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7a)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7b)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7c)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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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8b)
아담과 그 아내가(8c)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8d)
여호와 하나님이(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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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9b)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10a)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b)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1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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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11b)
아담이 가로되(12a)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12b)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1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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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었나이다(12d)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13a)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13b)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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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14a)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14b)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14c)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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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15a)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15b)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15c)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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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16a)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16b)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16d)
아담에게 이르시되(1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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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17b)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17c)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17d)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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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18b)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19a)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19b)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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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9d)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 하였으니(20a)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20b)
여호와 하나님이(2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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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21b)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c)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22a)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2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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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22c)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22d)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23a)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2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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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24a)
에덴동산 동편에(24b)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24c)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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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의심하다-하나님의 파괴 doubt a word - the destruction of God
책임을 전가하다-이웃 파괴 shift the blame on the neighborhood
땅이 저항하다-안식파괴 The ground resists-breaks the lining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시다 God begin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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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죄는 우리 안에 두려움과 수치심, 책임전가라는 비겁함을 주나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나누고 사람과의 관계까지 파괴합니다.
오주님, 금단의 유혹에 빠져 지낸 지난날을 회개합니다. 주께서 부르실 때
이실직고하고 죄를 끊어 가죽 옷을 입게 하옵소서.
Lord, sin is the cowardice of fear, shame, and responsibility in us.
It is Junai. It is not only the division between God and man, but also the
division between man and man. Destroy the relationship.
O Lord, I repent of my past years of being tempted to abstain. The Lord
I beg you to confess your sins and let me.
2020.1.5.sun.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