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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2:12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에게 이방인은 거리끼는 존재였습니다. 보아도 못 본 척하던 부류, 투명인간처럼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살아왔습니다. 함께 식탁에 앉거나 말을 섞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바울을 이방인에게 보내신다는 것은 그의 세계에서는 땅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나니아를 통해 공동체가 함께 알도록 하시기도 하고,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알려주시기도 했지요.
To Paul, a Pharisee among Pharisees, Gentiles were distant beings. I have lived as if I did not exist, a class I had pretended I had not seen. I could not imagine sitting at a table or mixing words with him. Sending Paul to a stranger was the end of the earth in his world. God taught Paul his mission in a variety of ways. Through Anania, he made sure the community knew each other, and he also personally informed Paul when praying in th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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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모든 사람을 전도의 대상이라고 하시더니, 다음에는 멀리 이방인에게 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개인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 말씀만이 아니라 신비적인 환상으로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방인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바울의 간증 이야기입니다.
Once he said that everyone was an object of evangelism, then he told me more specifically that he was a distant stranger. Not just once, but many times, he was informed not only by individuals but also by communities, not just by words but by mystical illusions. Today's text is a testimony from Paul that he met God in front of the Jews who were trying to kill him and became a stranger apo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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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택해 그 뜻을 알게 했고, 의인을 보게 했으며, 또 그 음성을 듣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바울이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그 분의 올바른 뜻을 받들어 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바울이 그분을 만난 것은 그의 사도 적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Paul learned through Anania that God had chosen him to understand the meaning, to see the righteous, and to hear the voice. Knowing God's will means that we must correct the misunderstanding of God's will, which Paul has considered and acted subjectively so far. It also means that we must accept his right will. The righteous man is Jesus Christ, and Paul's meeting with him was very important to him as it served as his apostolic b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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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그 분의 음성을 들 음으로 인해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는 생생한 사명 자가 되었습니다.아나니아는 계속하여 바울에게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으라고 한 것은 세례와 죄 씻음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가 죄 씻음은 아니지만, 세례 의식이 죄 씻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시행될 때 죄 씻음의 효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Furthermore, by listening to his voice, he became a vivid missionary to prove to people that Jesus was Christ. Annania went on to ask Paul to call the Lord's name to be baptized and washed. Because baptism and sin-washing are closely related. Although baptism is not a sin-washing, when the baptism ceremony is performed in close connection with the sin-washing, the effect of the sin-washing occ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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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의 표현이며, 죄 사함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저지른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스데반 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돌을 던져 스데반을 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데반 죽이는 일에 찬성하였고 그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들의 옷을 지켰다는 점에서 그도 스데반의 살해 자였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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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바울은 그를 그렇게 재평가했습니다. 당시 주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 약 3년이 지난 뒤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그 동안 좌충우돌 아라비아와 다메섹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영적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For that reason, baptism is an expression of faith in Jesus Christ and a symbol of guilt. Paul's involvement in the killing of Sdevan was the biggest mistake he made. Paul did not kill Sdevan by throwing stones himself. But he was also the murderer of Sdeban, given that he was in favor of killing Sdeban and kept the clothes of those who participated in killing him. Paul called Sdeban the Lord's Wi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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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나타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워낙 열심이 특 심이었던 그인지라 그 열성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려고 온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말리셨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나타나셔서 그의 궤도를 수정하신 것입니다. 그 행동하는 믿음을 보신 이후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볼 뿐만 아니라 그 믿음대로 실천하는 것을 확인하시는 하나님 같습니다.
That's why he appeared in Jerusalem. He came to prove to the Jews in Jerusalem that Jesus Christ was the son of God because he was so passionate. But God stopped him. He appeared in prayer and modified his trajectory. It was after he saw the faith in action. In retrospect, God is like God who not only sees our faith but also confirms that he practic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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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과 뜻과 바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바로 그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빨리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계획이었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조정시킨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비록 불완전한 것이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나서는 자에게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Everyone who believes wants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But you can prevent God's will with your own plans, wishes, and wishes. God pointed out Paul's very point. He told me to get out of Jerusalem quickly. Because it was Paul's plan, not God's. You adjusted it according to your will. The problem is not that everyone does that. You do that only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even if it is incomplete, to those who come forward with a full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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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동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메섹으로 감(10-11)-아나니아의 치료(12-13)-사명을 받음(14-15)-세례를 받음(16)-주께 직접 받은 소명(17-19)-유대인들의 반응(20-23)-천부 장에게 항의(24-29)
나는 소명을 따라 살고 있는가? 티칭 포기는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가장 가 닿기 어려운 지평의 끝은 어디인가?
Paul's path is as follows: Gam (10-11), treatment of Anania (12-13), receiving an order (14-15)-receiving a baptism (16), calling directly received from the Lord (17-19), reaction of the Jews (20-23)- protesting against heaven (24-29)
Am I living by calling? Isn't teaching giving up saving?
What is the end of the horizon that is the hardest to reach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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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첫 변론(12-23)
a.아나니아와 만남:12-16
b.성전에서 본 환상:17-21
c.무리의 분노:22-23
로마 영내로 끌려간 바울(24-29)
a.심문 준비:24-25
b.바울의 로마 시민권: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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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따라(12a)
경건한 사람으로(12b)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12c)
칭찬을 듣는(12d)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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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13a)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13b)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1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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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이르되(14a)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14b)
너를 택하여(14c)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14d)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14e)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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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를 위하여(15a)
모든 사람 앞에서(15b)
네가 보고 들은 것에(15c)
증인이 되리라(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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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왜 주저하느냐(16a)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16b)
세례를 받고(16c)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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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내가(17a)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17b)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17c)
황홀한 중에(1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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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매(18a)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18b)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18c)
그들은(18d)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18e)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1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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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기를(19a)
주님 내가(19b)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19c)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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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20a)
피를 흘릴 때에(20b)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20c)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20d)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2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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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또 이르시되(21a)
떠나가라(21b)
내가 너를(21c)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2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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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하는 것까지(22a)
그들이 듣다가(22b)
소리 질러 이르되(22c)
이러한 자는(22d)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22e)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2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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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23a)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2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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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장이(24a)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24b)
그들이 무슨 일로(24c)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24d)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2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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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25a)
바울이 곁에 서 있는(25b)
백부장더러 이르되(25c)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25d)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25e)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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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이 듣고(26a)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26b)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26c)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2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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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27a)
네가 로마 시민이냐(27b)
내게 말하라(27c)
이르되 그러하다(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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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장이 대답하되(28a)
나는 돈을 많이 들여(28b)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28c)
바울이 이르되(28d)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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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하려던 사람들이(29a)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29b)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29c)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29d)
두려워하니라(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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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천부장은(30a)
유대인들이(30b)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30c)
진상을 알고자 하여(30d)
그 결박을 풀고(30e)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30f)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30g)
그들 앞에 세우니라(3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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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에게 사명을 세례를 받다_ to be baptized with mission by Anania_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보냄을 받다_ be sent away from the Jews to the Gentiles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다_ use Roman citizenship to get out of the wood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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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종노릇 하던 저를 변화 시키고 복음 전할 사명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향한 부르심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싶습니다. 욕심을 따라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유대교에 열심이던 바울을 부르시고 소명을 확인시키시기 위해 아나니아를 붙여주신 것처럼 제게도 다시 한 번 소명을 확인시켜 주시어 부디 제가 주님의 부름대로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Thank you for changing me and giving me the mission to preach the gospel. Lord, I want to know where the calling is for me. Do you want me to not waste my time doing this and that according to my greed? Just as the Lord called Paul, who was passionate in Judaism, and attached Anania to confirm his calling, please help me live according to the Lord's call.
2024.6.19.wed.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