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마음의 신호등
남상선 / 수필가
엄마가 초등 1학년생 아들 손목을 잡고 바삐 걷고 있다. 재촉하는 걸음으로 보아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건너야 할 횡단보도 신호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초등 1학년생은 파란 신호를 기다리려는 낌새로 보였다. 허나, 엄마는 급한데 바보같이 서 있다며 아들 손을 낚아채기라도 하듯 손을 잡아끌며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 엄마, 안 돼, 빨간 불이잖아! ”
하니 엄마 하는 말이
“ 아무도 없으니 괜찮아! ”
하고 아들 손을 잡아끌고 빨간 신호인데도 용감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었다.
신호도, 질서도, 법도, 어른이 먼저 지키는 수범을 보여야 할 텐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는 신호를 지키려는 꼬마를 나무라는 거였다. 이런 엄마한테서 과연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신호를 지키는 것은 준법정신이고 양심이다. 허나, 엄마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티끌만큼도 받는 게 없이 교통 법규를 어기고 있었다.
신호를 지키는 것은 단순한 게 아니다. 이게 준법의 첫걸음이고 신호를 지킴으로써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집 엄마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도로가 있고 그를 건너는 신호등이 있다. 이 엄마처럼 신호를 지키지 않고, 운전자가 신호를 무시한다면 과연 우리의 안전과 사회 질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보는 눈이 없다 해서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마음의 신호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심 색약이나 양심 색맹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 꺼지지 않는 마음의 신호등 ’
이의 작동 불량은 양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작동 불량의 정도에 따라 양심 색약이 될 수도 있고 양심 색맹도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끄럽게 살아서는 안 되지만 양심 색약이나 양심 색맹으로 부끄럽게 살아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마음의 신호등에 문제가 있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종종 있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타인과 사회에까지 공해를 끼치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양심에 문제가 있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가슴 따뜻하게 사람냄새 풍기며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허나 일부 < 마음의 신호등 > 즉, 양심에 문제가 있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마음 무거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사업가나 상인이나 공무원이나 기업가, 정치가, 권력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니, 제발 기우(杞憂) 같은 얘기라면 얼마나 좋으랴.
양심과 준법성 얘기를 하다 보니 친구가 보내준 카톡 자료 중 이리복검(李离伏劍)이란 고사가 떠올랐다.
이리복검(李离伏劍)은 사마천의 사기 순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진(晉)나라의 사법관으로 이리(李離)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이 십여 년 전에 판결한 재판 기록을 보다가 누군가의 거짓말을 듣고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을 판결하여 그 사람을 죽게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사법부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셈이었다. 그러자 이리는 자신을 옥에 가두게 하고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당시 통치자였던 문공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건 이리의 잘못이 아니라 이리 밑에 있는 실무를 담당한 부하의 잘못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이리는 이렇게 말했다.
“ 신은 담당 부서의 장관으로서 관리에게 직위를 양보하지 않았고, 많은 녹봉을 받으면서 부하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판결을 잘못 내려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죄를 부하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문공은 그런 논리라면 너를 사법관으로 기용한 나한테도 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이리를 용서했지만 이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법관에게는 법도가 있습니다. 법을 잘못 적용하면 자신이 그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 판단하여 남을 죽이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신이 이러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것으로 믿고 사법관으로 삼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짓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호위병의 칼에 엎어져 스스로 자결하여 사형을 대신했다. 그래서 이리복검(李离伏劍) 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 현세에도 고사에 나오는 이리와 같은 법관이, 아니, 정치가가, 국회의원이, 행정관이, 많이 나와 국태민안(國泰民安)으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입법, 사법, 행정에 종사하는 고위관직 종사자들이 이리복검(李离伏劍)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미래에 청신호가 들어오게 각기 그 역할을 다해야겠다.
우리는 갈 길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가야 할 길이 창창하다.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가야할 인생길인 것이다.
그 길이 가까워도 멀어도 평생 걸어야 할 길이다. 가는 길의 원근을 따질 것 없이 안전하게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심을 지키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을 탈 없이 하기 위해서는 걸을 수 있는 옷차림이나 신는 신발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
또 건전한 마음가짐도 돼 있어야 한다. 신는 신발이 좋은 구두나 운동화를 신었어도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면 가는 길이 순탄하지 못하다.
교통이 빈번한 대로애서 신호를 지키지 않는 양심이라면 평생 걸어야 할 창창한 인생길을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예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는 양심 불량에 안하무인의 태도로 사는 세인들이 종종 있다.
법 알기를 우습게 생각하고 제 멋대로 하는 세인들이라면 그 비운의 미래를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양심 색약이나 양심 색맹은 크고 작은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로 이어 질 수가 있다.
그 피해는 자신도, 타인도, 국민도, 사회도, 국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일개인의 양심 색맹이 가져오는 결과는 엄청난 파장이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
우리는 노예가 돼서는 안 되지만 양심한테는 그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양심이 없이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야생동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양심 색맹인 야생 동물로 살 것인가 ?
아니면, < 마음의 신호등 >을 지키는 만물의 영장으로 살 것인가 ?
우리는 < 마음의 신호등 >에 색약이나 색맹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 꺼지지 않는 마음의 신호등 ’
우리는 몸에 맞는 옷만 찾을 게 아니라
한평생 입고 살 < 양심의 옷 > 을 찾아야 한다.
첫댓글 공감합니다 그리고 심란한 현 시국에 나라 살림 하는
사람들 꼭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드네요 항상 좋은글
날로 날로 일취월장 하시는 모습 보여 주셔서
귀감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올곧은 성품이 배어 나오는 글이네요.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를 알면서도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편이주의로 또 또 실리를 좇아 간혹 마음의 신호등을 간과하곤 하지요.
그러므로 이렇게 좋은 글로 환기해 주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정표를 제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무더위를 잘 이기시고 자주 좋은 글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