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5월 4일 섬진강 제1지류인 보성강을 끝으로 클럽의 행사와 내성천 철인코스 답사로 한국의 아름다운 강줄기
이어가기를 쉬다가, 모처럼 한강 제 5지류인 달천을 기획하게 된다.컴을 켜고 달천을 보면서 강줄기 옆으로 뭐가 있는지
최대한 자료를 찾아두고 찾아볼곳과 그냥 지나쳐도 될곳을 미리 정한다.
대구에서 ktx 기차타고 대전역에 내려 대전역 앞에서 시내버스로 대전 복합 터미널에 도착한다.
속리산이 있는 보은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오려면 한시간 남짓 시간이 남아 몇가지 물품도 구입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보은으로 가는 시외 버스로 1시간 40분 걸려 속리산면에 도착한다.
국립공원 속리산 천왕봉 올라가는 가장 빠른길이 속리산면 도화리에서 오르면 약 1시간 가량 걸린다.법주사 방향에서
오르면 1시간 넘게 걸릴것 같고 지난날 정맥할때 홀로 올라간길 다시 기억을 더듬으며 올라가야 한다.
택시로 도화리까지 이동해서 마을 안으로 올라가는 임도길로 잠시 오른다.
멀리 속리산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고 50분정도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날짜 17년 6월 9-10일
한국의 아름다운강
국내 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한강은 조선시대 때부터 임금님이 계신곳으로 흐르는 특별한 강이다
그 한강을 이루는 100km 넘는 여섯개의 지류중에서(북한강.소양강.평창강.홍천강,달천.섬강) 다섯번째로 긴 강이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청주, 괴산 그리고 충주로 이어지는 달천 123km이다
달천은 국립공원 속리산 천왕봉 인근 비로봉에서 발원하여 남,서방향으로 흐르다가 보은군 내북면 성암리에서
흑천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한강이 흐르는 북쪽 방향으로 유유히 흘러 청주시 상당구를 지나,
어두울수록 빛이나는 반딧불의 아름다운 비행 지역인 괴산군 문광면 흑석리, 그리고 신립장군이 남한강에서 배수진을 친
탄금대 아래 충주시 칠금동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123km의 강이다.
그외 속리산에서 발원해서 동쪽으로 가는 물줄기로는 영강66km가 있으며 영강은 문경을 지나 낙동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속리산 천왕봉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구병산에서 흘러온물과 합류하여 옥천에서 금강과 합류하는 72km의
물줄기 보청천 있다
속리산은 남한 5대강중 낙동강, 금강, 한강으로 각각 물을 흘러보내는 강이며 이렇게 큰 3대강으로 직접 물을 흘려
보내는 강은 이곳이 유일하다
달천의 유래는 수달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달강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물맛이 너무 좋아 단냇물 이던것이 달랫물 그리고 달천으로 변천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달내강의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최고의 물로 꼽힌다.조선시대 학자 허백당 성현(成俔)은 '용재총화" 에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수가 으뜸이며 오대산 우통수가 두번째 속리산 삼타수가 세번째로 좋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도화리에서 잠시 오르면 대간길과 만나고 이곳에서 잠시 서서 시원한 바람을 느껴 본다.
한남금북 정맥 끝나고 두번다시 안온다고 하던 길이였지만 다시 섰을때 또 다시 한번 더 와야하는곳... 이런 생각만 해본다.
모처럼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를 올라 천왕봉에 도착하니 나이 지긋하신 老부부께서 먼저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계신다.
인증 부탁해서 한장 담아보고 그분들께도 한장 담아 드린다.
속리산 주능이 보이지만 오늘은 비로봉 까지만 가면 되니 짧을수록 몸도 마음도 급해진다.
천왕봉에서 왼편의 물은 모두 달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남한강 유역으로 흐르고,
오른편의 물은 상주를 거쳐 모두 낙동강 유역으로 흘러 보내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금강 유역으로 흘러보내는 三派水(한강.낙동강.금강)로 아낌없이 보내는곳
그리고 백두대간길이며, 한남 금북 정맥의 갈림길이다.
천왕봉에서 발아래 세상 구경하고 더워지기전에 많이 걸음해야 하기에 비로봉으로 찾아간다
석문을 지나고
비로봉의 암릉
비로봉 암릉
비로봉 암릉 구경하고 곧바로 빗물 꼭지점이라 생각되는곳을 파고드니 잡목이 너무 무성하여 하루 종일 걸릴것 같아
다시 왔던길 석문 방향으로 진행해서 좋은 등산로 인근에서 계곡으로 파고 들어 가기로 한다.
비로봉 아래 물이 조금씩 나오는곳
지금은 갈수기라 수량이 얼마 안된다.
이곳이 빗물 꼭지점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비로봉 아래서 물구경 했으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고 왔으니 잡목속은 그만두고 좋은 등산로따라 고속 비행을 한다.
두번째 만나는 석문을 지나고
계곡을 만나지만 수량은 미미하다.
목욕소
조선 7대왕 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의 번창기원을 위한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서 목옥을 하였다는곳이다.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없어졌다고 해서 목욕소라고 부른다.
세조의 왕위 찬탈은 다음번 평창강 할때 좀 쓰기로 하고
커다란 바위에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상수도 수원지
달천이 이곳에서 숨 고르기 하지만 ...
수량도 얼마 안되는 속리산 계곡구경 하다보니 대한불교 조계종 제 5교구 본사인 법주사에 도착한다.
신라 진흥왕 55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돌아올때 당나귀에 불경을 싣고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곳이다.
법주사 대웅보전- 쌍사자 석등- 팔상전- 범종각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 안내글
팔상전 과 사천왕 석등
바람이 불때마다 처마끝에 달아둔 물고기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그럴때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너무 좋다.
바람이 물고기를 움직이는 모습
보이지 않은 바람이 보이는 순간이며
결코 움직이지 못할것 같은 처마끝의 물고기가 움직이는 소리
금동 미륵대불과 팔상전
범종각의 사물(四物)
운판 목어 범종 법고
운판:공양시간을 알리는 소리
목어:수중계 중생을 소리로 구제하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범종:대중들을 소집하거나 시간을 알려주는 기구로 사용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 치는데 선종의 초조 마하가섭으로 부터 28대 달마까지를 상징하고
하늘의 28천과 육도윤회중의 5곳을 합한 33곳에 있는 모든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서 친다.
법고: 법을 전하는 북소리이며 번뇌와 해탈을 뜻한다.
쌍사자 석등
두마리의 사자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석등을 높이들고 벌서듯 서있다.
짤록한 허리와 두툼한 가슴 힘줄이 느껴지는 두종아리 근육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
부처님 계신곳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였고 부처님 사리를 모신곳을 적멸보궁이라 부른다
황제가 사는곳을 전(殿) 궁(宮) 이라 하는데 이 글자로만 봐도 부처님은 군왕과 같은 예우를 받았음을 알수 있다.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도 황금으로된 집을 소유할 수 없었고 99칸 이상의 건물을 증측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부처님을 모신곳은 예외로 두어 용,황금으로 치장 할 수 있었다.단청 역시 궁이나 부처님 계신곳 이외는 사용이 금물이었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대웅전을 높여 부르며 대웅보전에는
가운데 비로자나불
오른편에는 석가모니불
왼편에는 노사나불
이렇게 삼불을 모신다.잠시지만 법주사 경내 구경하고 본격적인 달천을 진행 하기로 한다.
법주사 앞으로 흐르는 달천
속리산 법주사 구경하고 나오니 속리산 산채 비빔밥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중으로 가야할 거리가 길어서 물과 아이스크림 몇개사서 곧바로 진행
속리산 터미널 인근의 인공 폭포
물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보은 속리 정이품송
정이품송 안내글
예전에는 이렇게 멋졌는데 나무도 나이가 들다보니 지금은 한쪽만 살아있다.
속리 천왕과 법주사 그리고 정이품송을 구경 했으니 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따라 산천 구경이나 하며
발품 파는게 내 일인듯하다.
전국적으로 비가 안오니 이곳 달천도 말라가고 있고 조금 있던 물도 제방 공사로 온통 흙탕물이다.
흙탕물속에서도 작은 피라미는 꿈을 꾼다.
오늘이나 내일은 분명 비가 올것이라고
그렇게 기대하며
연신 흙탕물속에서 거친 호흡을 한다.
바짝 말라버린 달천
그늘 없는곳이 부담이지만 이럴줄 알고 아이스크림 몇개 사들고 왔으니
물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푸른 갈대잎이 모든걸 가려두었다.
달천과 길가의 보리수 나무
보리수 나무에 열매가 주렁 주렁 달려있었지만 아직도 시퍼런게 먹을게 못되고
누군가 열매 수확을 위해서 심어 둔건지 몰라 눈요기만 하고 지난다.
속리산면 북암리 구암마을 구판장에 들러 원두막에 잠시 쉬었다 간다.
주인장은 어딜 가셨는지 빈 카스 맥주박스만 눈에 들어오니
오늘같이 더운날 맥주 한켄 생각난다.
북암리 마을주민 한분이 다슬기 잡는 모습
장애인이신것 같아 한참 서서 지켜보니 두팔로 더듬 거리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신다.
속리산 둘레길이라는데...
밤이되면 적막강산 속으로 빠져드는곳이다.
달천 용궁의 피라미 녀석들이 산다는 스레트 지붕
환경 오염이라 절대 버려서는 안되는 석면 제질의 스레트 지붕인데
지붕아래 사는 물고기 녀석들만 살판 난듯
속리산 둘레길을 알리는 이정표
원두막이 시원해 보인다.
만든이의 정성이 있으니 잠시 앉아서
산속은 그늘이라도 있지만 그늘없는 그늘을 찾아서 오다보니 보은군 산외면 마을앞의 경치좋은곳을 지난다.
물맑고 경치좋고
보은군 백석1교에서 본 풍경
그늘진곳으로 진행하니 바람좋고
좌측은 보은군 산외면 원평리
상원평교에서 본 유원지 모습
갈수기에 겨우 겨우 흐르던 물은 작은 보를 만나면서 멈추고 멈추다 보니 흐려지고 흐려지다 보니 더러워 진다.
고인물은 어김없이 흐려지거나 더러워지지만 작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간 물은 갈대 숲풀에 들어갔다가 다시 맑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물이 산을 담는가
아니면 산이 물을 담는가
서로가 넘을 수 없는 사이지만 서로를 곁에두고 흐른다.
산은 끊어질듯 끊어질듯 물을 피해서 흐르고
물은 흐르다가 산으로 막리면 기다릴줄 알고, 휘돌아 지나면 다시 흐르게 되어있다.
산외면 오대리 마을로 가는 신원오교 다리 위에서 본 달천과 다슬기 잡는 주민
물이 스스로 정화되어 지나는 갈대밭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갈대숲풀으로 지나면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산외면 길탕리 뒷내물교 다리위에서 본 풍경
이곳에서도 아주머니 한분이 다슬기 잡는 모습이 보인다.
보은군 내북면 봉황리 마을을 배경으로 한장
달천을 지나는 작은 잠수교 하나를 건너오니 반사경이 깨끗하게 달려있어 한장 찍고 지도를 보니 마을 이름이
봉황리 마을이다.달천과 흑천이 만나는 합수점인 봉황리 마을,달천이 이곳 마을부터 본격적으로 북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흐르게 되는곳이다.
뭔가 특별한 마을 이름인것 같아 봉황리 동네 안쪽으로 걸어가니 좁은 골목에 최근에 깔아둔 아스팔트가 좁은 골목에
깨끗하게 깔려있다.
그리고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니 느티나무가 하나 서있고 그 맞은편으로 청벽산인가 커다란 절벽에 철조망으로 쳐져있어
지나는 마을분께 마을 유래를 엿쭈어 보니 오래전 속구바위산에(청벽산) 재두루미 한쌍이 살아서 그새를 봉황이라
불러서 봉황마을이라 한다.
충북알프스 속리산 문장대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묘봉-활목고개-금단산-신선봉-주산 달천과 흑천이 만나는곳까지
도상거리 25km의 산길이 이곳 마을로 이어지는곳이며 보은군에서 충북 알프스를 활목 고개에서 끊을것이 아니라
흑천과 달천이 만나는 이곳 봉황마을까지 이어 왔더라면 하는생각을 해본다.
보은군에서 특허를 낸 충북 알프스 43,5km
활목고개 이후로 산줄기를 연결 한다면 보은군 내북면 달천과 흑천이 만나는 봉황마을(모래 마을)로 이어져야 할것이다.
기존의 거리 43,5km 할목고개 이후 봉황마을까지 18km
총 산행거리 61,5km 거리가 늘어난다.
보은군 내북면 봉황리 마을앞 거다란 절벽 구간을 지나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 마을을 지난다.
인풍정교 다리위에서 본 풍경
아무런 도구도 없이 물고기 잡는 두사람
인풍정교 다리에서 본 다슬기 잡는 분들
정맥길 좌구산에서 흘러온 감천이 달천에 합수되는 지점
이제부터 물은 많아진다.
청주시 옥화 9경중에서 가장 멋진 옥화 2경 용소가 보인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서 봐야지
달천 123km중에서 가장 아른다운 구간이라 할 수 있는곳이다.
이곳 용소에는 용이 살았는데 어느날 하늘로 승천 할라꼬 폼 잡는데 지나가던 여자가 보게되자 부정타서
용이 그대로 떨어져 이무기가 되었다고 하는곳이다.
성질 더러운 용으로 보인다.
옥화교에서 본 달천
옥화 9경중 두번째로 좋은 천경대
맑은 물이 거울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바로 옆의 옥화대 가보니 별로라서 그냥 나옴
옥하 9경 안내판
1번 청석굴은 달천에서 벗어나 있어 청석굴을 제외하고 2번부터 9번까지 모두 볼 수 있으나
금봉에서 금관숲으로 가는길은 물을 한번 건너야하기에 물 건너기에 부담이 되시는 분들은 도로따라 가야 한다.
옥화 9경중 금봉을 가 보려고 진행한다.
하지만 강을 한번 건너야 하는곳이다.
좋은길로 가면 돌아가더라도 물은 건너지 않고
비포장 임도길 옥화길로 진행한다.
닭사육장이지만 텅빈 사육장이다.
요즘 조류 독감으로 전국이 난리고 계란도 비싸서 못사먹을 지경이니.
잠수교을 건너 미원면 월룡리 금봉으로 가는길이다.
옥화 9경이라는 이곳구간 경치가 달천에서 으뜸이라 생각든다.
조용하게 걷기 좋은곳
금봉
바위 중간에 황금색을 하고 있는 모습
임도 끝지점에 닭사육장이 보이지만 석회가루를 뿌려두어 일반인은 접근금지라 ...
하는수 없이 아무곳을 택해 도강을 하기로 한다.
묵은 밭을 가로질러 달천을 보니 절벽이다
조심 조심해서...
다행이 내려온곳의 물이 깊지 않아 쉽게 건넌다.
지금까지 강을 하면서 다음지도 인공위성자료를 보고 물을 건널곳을 찾아 내려 오는데
거의 정확하다.
내려온 절벽길
금봉과 우측의 닭사육장
강을 건너오니 모심기를 한논이 인상적이다.
임도길로 꾸역꾸역 올라오니 작은 마을이 보이고 아스팔트 포장길로 내려온다.
멀리 마을은 독립운동가 신석구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신석구 선생께 인사를 드린다.
금관교에서 본 금관숲 방향
금관숲 사거리
계원리 방향으로
금관숲
숲속 저편에 어느 산악회에서 오신분들인지 음악 크게 틀어놓고 노래 부르고 야단이다.
이런 자리는 언른 벗어나는게 상책이라
옥화 9경중 가마소뿔
가마소뿔은 이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에 막 혼례를 치룬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신부의 가마가 흔들리다 그만 물 속에 빠져 죽었는데
이를 애통하던 신랑도 함께 뛰어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곳이다.
물 깊이도 얼마 안되는곳인데 ...
미원면 계원리로 가는길에 본 사과나무 가로수가 도로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어
사과가 빨갛게 익을 무렵인 늦가을에 오면 마치 과수원 중앙으로 지난듯한 기분이 들것 같다.
옥화 9경의 신선봉이 보인다.
해발 630미터의 이 봉우리에 옛날 신선들이 놀았다하여 신선봉으로 불리워 진다.
옥화 9경의 박대소가 자리하는곳인데
가족 단위로 오신분들이 텐트치고 고기 굽는 곳이라 카메라에 담지 못햇지만
수양버드나무 끝부분의 조그만 절벽이 박대소이다.
박대소교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이다.
강평교에서 본 건지산
잔잔한 물결 그물속에 산을 담아내고 있는 달천의 모습
저곳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이곳은 괴산군 청천면
해는 어느덧 미동산으로 넘어가고 이제부터 기나긴 밤이 찾아온다.
주간에 물을 몇번 건너 앞으로 야간에는 물을 건널곳이 없고
주간에 더워서 빨리 가지못한 걸음 야간에 시원할때 부지런히 가야할것 같다.
어느 마을 길가에 비박용 침낭을 펼치고 잠시 누웠다 가기로 한다.
모기가 극성이지만 침낭을 푹 덥어쓰고 자는둥 마는둥...
강가에 사는 모기란 녀석들의 텃새로 인해 침낭을 정리하고 다시 걸음한다.
하양계곡 삼거리에서 이른 새벽녁, 이곳 24시 편의점에서 몇가지 사서 준비하고 나오니
속리산 화양동 켐핑장 인근을 지나는데 아직도 잠 안자고 고기굽는 분들이 있다.
어둠속에서 달천과 화양계곡이 만나는곳에 작은 바위들 사이로 지나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이름모를 산새 울음소리가 처량한 밤을 이어준다.
괴산군 청천면 거봉리 거봉교에서 본 거봉마을
이곳 거봉교에서 달천이 잠시 숨고르기 하는 괴산호를 지나야 하는데 야간이고
간다고 한들 길이없어 더이상 들어가지 못하는곳이다.
괴산군 청천면 덕평리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을듯한 동네를 지나고
덕평 사거리를 지나 49번 지방도를 따른다 .흑석 삼거리를 지나면서 지긋한 오르길이 이어지는데 잠은 오고...
산막이 옛길이 자리하는 그마을인가 보다.
2차선 도로를 지나는데 교통량이 전혀없는 시골 2차선길에 반딧불이가 엄청 많이 날아 다닌다.
어릴적 보던 그 반딧불이가 너무 아름답게 비행하는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
한마리, 두마리 이렇게 세다 보다 보니 그숫자가 30마리 까지 늘어난다.
하늘아래 청정지역 괴산인것 같다.
치재 터널
지긋한 오름길을 지나 잠시 내림길이 좋은구간
괴산군 문광면을 지나면서 혹시나 편의점에 문을 열었나 살펴보니 아무것도 안보여
괴산읍으로 가서 몇가지 살까 생각하고
문광면에서 아무것도 못사고 지나왔는데
정작 이곳 괴산군에 들어와 몇가지 사려다가 필요한게 없어 그대로 진행한다.
아직 아침이 되려면 조금 남은 시간이지만 24시간 하는 국밥집도 안 보이고
괴산을 파고드는 동진천과 달천이 만나는곳 그곳에서 34번 국도 다리 아래로 지나 임도끝까지 가니
분뇨 처리장인지 암모니아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
하는수 없이 작은 개천에 제방 공사하는 흙길을 지나서 괴산읍 제월리 고산으로 향한다.
지나온 괴산군 방향
이제 어둠이 가고 날이 밝으니 사람사는 모습과 물이 흐르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산 9경중 이탄 유원지 제월대 올라가는 길을 놓치고 하는수 없이
괴산읍 검승리의 검승산의 절벽만 구경하게 된다.
배는 고프고 갈길은 멀고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더이상은 오지않고
가다보니 도로에는 비가 많이 온듯 축축하고 웅덩이에는 빗물이 고여있다.
빗님이 내앞으로만 내리며 지나간듯 한참 동안 빗물 고인 웅덩이만 밟게 된다.
이탄교에서 본 달천
이탄교를 지나면서 충민로라는 도로가 눈에 들어 온다.
충민로 혹시나 그분인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김시민 장군의 묘소가 있는 충민사
뜻하지 않게 김시민 장군을 찾아뵙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달천 건너편에 자리하는 김시민 장군의 사당과 묘소가 있는 곳이다.
충민사
이 곳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김시민 장군과 그의 숙부인 김제갑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측면2칸으로 선조 때 처음 세웠으며, 1978년에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김시민은 무장으로서, 자는 면오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선조1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이 되었으나,
병조에 건의한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 하였다.
선조 24년에 진주 판관이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목사로 승진하여 왜적을 격파하였다.
영남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금산에서 적을 물리치고,10월에 왜군 2만대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하자 3,800여 병력으로
6일간 공방전끝에 크게 무찔러 이기니 바로 인진왜란 3대 대첩중 진주대첩이며 이후에 김시민 장군은 39살에 병사한다.
선조37년에 선무공신의 호를 받았고, 뒤에 영의정과 상락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무이다.
김제갑은 문신으로 자는 순초 호는 의재이다. 명정8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좌랑을 거쳐 선조14년에 충청도관찰사
가 되었다. 임진왜란 떄 원주 목사로 영원산성에 들어가 적과 싸우다가 아들과 부인과 함께 순절하였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순이다.
이른시간이라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하는 수 없이 담장 넘어로 까치발로 서서 구경한다.
사당안 김시민 장군의 묘소에 큰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들어갈 수 없으니...
뜻하지 않게 이곳에 올 수 있음에 감사 드리며 약관 39세에 불혹(不惑)을 못 넘기고 병사한 장군을 그려 본다.
충민사 사당
충민사 가장 높은곳에 김시민 장군의 묘소
3천 800대 2만이라는 숫자를 극복하고 싸워 이긴 진주대첩
지난날 남강을 하면서 진주성 1차 2차싸움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는데
진주성 2차 싸움의 황 진 장군(황희 정승의 5대손) 묘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민공 황진 장군의 이치 대첩비
황진 장군은 이치전투에서 권율장군과 함께 큰공을 세우셨고
1593년 6월 28일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셨다.
황진 장군이 전사하지 않으셨다면 진주성 2차 싸움에서 6만의 민,관,군이 전멸 당하지 않으셨을듯
황진장군의 묘소는 섬진강과 요천이 만나는 인근의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 산7번지에 모셔져 있다.
사연 많은 진주성 싸움을 생각하고 아쉬움 마음을 달래며 충민사 뒷편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지나
괴산읍 능촌리 달천 제방둑에서 달천을 건너기로 한다.
능촌리에서 달천을 건너 괴산군 감물면 유창리로 간다.
물은 맑고 다슬기가 엄청 많이 보인다.
비가 한바탕 와서 그런지 수묵화 같은 안개가 자욱하고 운치있는 강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창리 마을에서 이어지는 지루한 임도길 빗방울이 소리없이 떨어지지만 옷을 적실 많큼 오지 않으니
달천 건너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절벽위에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감물면 이담리 마을을 지나지만 작은 구멍가게가 안보인다.
건너가야할 이담교
배는 고프고 물한병 남았는데 어디 가서 보충할지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 조곡교에서 본 지나온 강길
이곳부터 강길은 물을 한번 건너야 하는 구간이며 물 깊이를 모르니 걱정이다.
그렇다고 산을 돌아가면 괴산 ic까지 아스팔트길로 가서 수주 팔봉까지 가야한다.
물한번 건너면 될듯해서 강가로 진행
장연면 조곡 유원지라는데 아무것도 없다.
비포장 임도길...수랫길 수준이지만 강 풍경이 그런대로 좋은곳이다.
그리고 강가에 뽕나무가 많고 잘익은 오디가 많이 달려있어 당분 보충하는데 지장이 없다.
멀리 중부 내륙고속도로
지도를 보니 임도길이 고속도로 다리까지 이어진다.
고속도로 다리아래 임도길은 끊어지고 묵은 밭이 있어 잡목을 뚫고 진행
고속도로 다리아래
다행이 물 깊이가 깊지않아 쉽게 건넌다.
달천 모습
고속도로 다리 위로는 물깊이가 상당할것 같다.
저의 글을 보고 훗날 강길을 걷고자 하시는 분이 계시면
물 건너야 할곳 잘 정해서 건너셔야 하며
혼자보다 둘이서 진행하셔야 안전합니다.
내려온길
이곳에서 세수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 간다.
강건너기
혹시라도 물을 건너야 할곳이 있는데 물 깊이가 깊다면 배낭안에 든 검은비닐 봉지 몇개정도에 바람을 불어 놓고
바람이 빠지지 않게 묶은 배낭을 매고 건너면 물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약사리봉 아래 절벽
밤꽃향기 가득한 어느집 인근에서
충주시 대소원면 수주마을
이곳 팔봉교부터 4대강 국토종주 새재 자전거길이 합류한다.
이제부터 지도없이 땅바닥에 그려진 자전거 모양만 보고 가면 될듯
수주팔봉의 바위 암릉지대
일제때 농경지로 활용하기 위해 물길을 이곳으로 돌리려고 바위를 절단하였다가
해방이 되면서 중단 그리고 1963년도에 이렇게 끊어 놓음
국토 종주길 안내판
이제 남은 거리는 충주 탄금대까지 얼마되지 않고
오후에 금산까지 같이 가시기로한 미소 대장님께 연락을 드리니 아직 구미에서 충주로 출발전 이라고 하신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이곳 강가 매점에서 라면 두개 끓여 달라고 해서 점잖게 앉아 기다린다.
라면 물에 목욕하던날
니맛도 내맛도 없고 나무젓가락으로 국물을 몇번 휘 젓어 보다니 계란은 비싼 몸값이라고 냄비 바닥에 찰삭 달라붙어 있고
국물만 조금 마시고 일어선다.
라면 두개
다시 금비 같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사람구경 얼마 못했지만 이곳에 오니 자전거 타는 분들이 화이팅을 외쳐주고
민물고기를 못먹기에 그림의 떡이라
충주로 가는 노루목교
충주로 가는 우회도로가 생겨 지금은 차가 별로 다니지 않은 길이다 자전거족들만 신나서 달리는곳
가야할길
이제 충주시로 들어 온것 같은데
충주시 용관동 금계봉
드디어 멀리 달천이 한강에 합류되는 탄금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좌측으로 달천을 이루는 달천 북쪽 지맥(부용지맥)길이 남한강으로 달려가는듯 하고
우측으로는 백두대간길에서 이어지는 달천 동쪽 지맥(계명지맥)길이 탄금대로 향한다.
요도천과 용두교
달천을 감싸 안은 달천 북쪽 지맥길이 한남 금북길 보현산에서 갈라져 저곳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날머리를 배경으로 인증 담고
자전거 타는 분들이 많아 사진 부탁드리니
기분좋게 찍어 주신다.
합수지점인 탄금대교
한강 알림판
한강이라...
백두대간 삼수령에서 속리산-지리산까지 남쪽과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지체높은 양반님네 동네로 물이 흐르지만
삼수령에서 서쪽 그리고 속리산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임금님이 살던 곳으로 물이 흐른다.
물은 흐르는 방향에 따라 다르며, 아름다운 한강 길이는 낙동강에 비해 조금 짧지만 유역 면적으로는
낙동강 보다 더 크다.
이곳 달천은 백두대간,한남금북,달천 북 지맥(부용지맥) 달천 동 지맥(계명지맥)이 감싸 안은 123km의 강이며
보은군과 청정 지역인 괴산읍을 지나며 물은 조금씩 흐려지니, 괴산군청에서 달천에 대해서 조금만 더 신경쓰고
관리 한다면 전국 최고의 청정지역 반딧불이의 고향이 될듯하다.
달천이 한강으로 안기는곳에 신립장군과 우륵의 전설이 담긴 탄금대가 있는곳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험준한 조령을 버리고 이곳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은 신립장군과 8천 군사들.
한국형 산악전투를 무시하고 넓은 벌판에서 남한강을 뒤로하고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과 싸우다
장열하게 순절한 전적지이다.
지금까지 강을 다니면서 임진왜란때 왜군과 싸운곳을 여러곳 지났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곳은
1.진주성 2차싸움"군인3천,민병 3천,민간인 5만 대 일본군 9만명 조선인 전멸
2.황석산성 전투 (500대 2만 7천의 전투.조선군 전멸)
3,작원관 전투:(300대 1만8천 700명 전투,조선군 전멸)
한강 남쪽으로 흐르는 긴 강은 달천을 끝으로 14개 모두 끝나고 한강 북쪽의 강줄기 5개만 남겨 두고 있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늘이 그리운데 어찌 이어갈지 걱정이 앞선다.
달천 123km중 꼭 가봐야 할곳
1.속리산 법주사-정이품송
2.내북면 봉황리(모래마을)-금관숲 10km
3.괴산군 문광면 흑석리-옥석리 구간 (반딧불이 서식지)
.
첫댓글 속리산발원지인 달천 한시간에. 정상까지 후기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성질더러운 용도 가마소뿔이야기도 무더위. 항상 안산하시고. 홧팅!
어딜가나 성질 더러운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죠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
더운날 시원한 산행을 권해드리고 싶지만
딱히 방법이 없으니 꾹 참고 무더위을 즐겨 주십시요
내속리면에 고교동창 집이 있어서 가본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오랫만에 친구 생각을 해 봅니다.
달천이 한강의 지류라눈 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강 지류는 대부분 북쪽에서 남,서로 흐르지만 달천은 유일하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입니다.
다슬기가 아주 많은 강이고 그리고 반딧불이도 엄청 많은 청정지역이죠
다음달 포항지부로 꼭 놀러 오시기 바랍니다.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방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불교를 포함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함께 좋은 관광지도 둘러보시고.....
흐르는 강물처럼 강행기가 바다에 도착할때까지 유유히 흘러가기를 기원합니다.
아는게 없어 역사 공부,불교 공부를 틈틈히 하는데 산행기,강행기 쓸때 도움이 되네요
물이 끝나면 이제 바다를 보며 걸어야 할듯 합니다.
산과강.그리고 해안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열심히 그리도록 할게요
제 고향의 강줄기와 마을 지명이
나와서 감회가
새롭네요~
달천과 흑천이 만나는곳....
달천 123km중 에서 가장 아른다운 구간이라 할 수 있는 그곳이 저의 고향 마을이 있는곳 입니다..
사진으로 나마 고향 산천의 모습과 올갱이(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잡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달천과 흑천이 만나는 보은군 봉황리
물좋은 내북면 봉황리 마을앞 거대한 바위에 철조망으로 쳐진곳이 보이던데 그곳인가요
봉황리 마을부터 금관숲까지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곳인데
봉황교 다리위에 잠수교 하나있고 그옆에 커다란 반사경에서 사진을 한장 찍었지만
어딜간건지 없네요
지부장님의 고향 마을 참 좋아 보였답니다.
@배병만 네 ~~
맞아요
봉황리가 고향마을 입니다
비 많이 올땐 그 거대한 바위 상부에서
폭포가 쏟아지는데 그광경 또한
장관이지요..
많이는 볼수없고 제 기억으론
3번정도 본거 같습니다
@황금산(김진경) 정말 좋은데 사시네요
마을안으로 진행했을때 아스팔트가 곱게 깔려있었고
마을 중앙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던 걸로 기억 됩니다.
동네가 아주 깨끗해서 나이들어 이런데 집짓고 살면 딱 좋겠다 생각했던 마을 입니다.
그리고 마을앞 청벽산에 두루미 한쌍이 살았는데 이새를 봉황이라 불러서 그때부터 봉황리하고 했다고 어떤 할머니가 말씀하시던데....맞나요
봉황리 마을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보니 백두대간 속리산 문장대에서 이어져
괴산의 금단산-신선봉으로 이어져 봉황리 마을로 연결되고...
강행기에 쓰기에는 너무 길어서 ...빼먹었는데 지부장님 동네라니 다시 쓰겠습니다.
@배병만 마을 가운데로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요
마을 2/3통과 할쯤 오른쪽 위로
교회가 있는데 교회 뒷집이
부모님 계시는 집입니다
마을지명도 말씀하신 대로이고
거대한 바위산을 청벽산이라
부릅니다~~
@황금산(김진경) 강행기중 봉황 마을을 다시 적어 두었습니다.
제 사진 한장 첨부했는데 보시면 알듯한 사진인데 확인해 보시죠
깨끗한 심신으로 승천 할려고 했는데 여인 때문에 부정 탓네요.
나름 지조가 있는 용 입니다.^^
아닙니다. 성질 드러운 용이제
안동 반변천의 선어대에 나오는 용새끼하고는 다르게...
" 강의 시작은 인류 역사의 시작이자 문화의 시작이다." 라는 말이 있고,
역사는 강의 흐름과 더불어 이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방장님께서 기획하시고 걸음하신 한국의 5대강과 그 지류로 100km이상인 강줄기 탐사로 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계시는군요.
어느 풍수지리학자는 산을 뼈에, 강을 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나를 제대로 알려면 다른 하나도 알아야겠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수행중이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기획과 걸음으로 방장님께서는 통찰하시는 안목은 한층 높아지셨으리라 짐작됩니다.^^
풍경소리 그 앞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이 보이는 순간..." 이란 통찰(?)의 말씀을 하시고...^^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다녀온곳을 빠짐없이 읽어 보시는 수행중님
아직은 아무도 찾지않은 강이지만 언젠가는 후답자가 제가 거닐었던 이강을 지날테죠
선답이란 언제나 힘들지만 수행중님 같은분이 있어 외롭지만 그길을 걷게 됩니다.
바람을 보는법 이제 득도를 한것 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돌팔이 입니다.
캬~~~~수행중님두 도를 딱으시는 분이니 이기회에 빵장님캉 동행 하이소~~ㅋㅋ
달강 달랫물 달천 123km 1구간 1부 강행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용소 등 글과 사진 잘보고 나갑니다
감사드립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달천은 반딧불이와 다슬기가 많은 강으로 기억 될듯합니다.
언제나 힘찬 응원 보내드립니다.
달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때 가야국의 악사 우륵이 신라에 귀화하여
제자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던 곳이라하며 임란때 순절사 신립이 8천여명의 병사와함께 왜군을 맞아 싸운곳이기도하죠
많은자료 감사하구요 날머리에 장군께 막씨한잔 올리고오시죠 ㅎ
수고하신 글 그림 잘보고갑니다
저는 신립 장군을 좋아하지 않구요
지켜야 할곳에서 묵묵히 싸운분들을 좋아 합니다.
이번주 정맥길 비가 온다니 경사 났네요
얼씨구!~~
먼길 가실려면 아무것이나 잘 드셔야 할텐데여
아무리 맛없는 라면도 마찬기지
그런데 민물고기를 못 드시나봅니다요..ㅎㅎ
오줌도 드시는데 민물매운탕 쥑일텐데여..
수고 많으셨구요.
고운 흔적 정독하고 갑니다.
날더운날 달천 긴 물길찾아 땡볕에 다닌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라 강길
이어가기가 많이 어려울것도 같습니다
한여름은 피하시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요
강행기를 읽으면서 역사공부 잘 합니다
제가 머무는곳을 다녀 가셨군요
수고 마니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