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을 위한 알기 쉬운 기독교 (34)
2012. 5. 3. 18:19
섹스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은?
■ 기독교에서는 섹스를 죄악시하거나 불결하게 생각합니까
■ 기독교 전통 중에 남녀의 성적 사랑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 요즈음처럼 성적으로 개방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性은 인간의 행복과 번성 위해 허락하신 선물향락 수단 되면 창조질서 파괴하고 인생 불행
성과 사랑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다.
한 마디로 성(性)과 사랑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며, 피조물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곤충이나 동물들 역시 성욕본능이 있기 때문에 종족이 번성합니다. 여왕벌과 일벌이 교미하는 장면을 보세요. 수컷 벌은 여왕을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가서 교미 한 번하고 죽어버립니다. 섹스 한 번에 목숨을 거는 거지요. 곤충 중에 사마귀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컷 사마귀와 암컷 사마귀가 교미할 때 암사마귀는 교미하고 있는 수컷을 머리에서부터 먹어 치웁니다.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섹스라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유일회적 사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참으로 신비하고 성스러운 생의 법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곤충이나 동물뿐만 아니고, 사람에게도 성이란 참으로 신비하고 중요한 생의 법칙입니다.
한자로 '性'자는 마음심(心)변에 생명을 뜻하는 날생(生)자를 합성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성이 인간 생명과 삶의 중심이라는 뜻이겠지요.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암컷과 수컷으로 창조하셨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철이 들면서 제 짝을 찾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짝을 찾은 남녀는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졌고, 사랑하는 방법으로는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고, 애무도 하고, 종국에는 성교까지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성교를 해야 한다면, 이 세상 인구는 몇 세기 못가서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성행위를 단순히 자녀생산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녀의 사랑의 표현으로 사용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말은 '성교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창 4:1)에서 '동침한다'(Yada)라는 말과 마리아가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눅 1:34)라는 말에서 '안다'(ginoskein)는 말은 그 어원이 같습니다. 즉, 성교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충분히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뜻이지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성관계를 맺으려면, 이 정도의 사랑과 인격적 신뢰와 책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법칙 안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지어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신성한 법칙 안에서 성관계를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결혼은 상대방을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이라는 지순한 사랑의 고백을 전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 2:24∼25). 아담이 자기 아내를 향하여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것, 그리고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이 '남(他者)'이 아닌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방정식이 남녀의 사랑의 방정식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는 절대 섹스를 죄악시하거나 불결하게 생각하는 금욕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아가서(雅歌書)는 남녀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형으로 미화하고 있고, 예언서들은 하나님과 선민의 관계를 부부간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남녀의 결혼을 축복하시고 이혼을 금하셨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섹스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과 번성을 위해 허락하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초기 기독교 사상에 육체와 물질을 죄악시하던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사상이 침투해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기독교 사상이 아닌 이단사상으로 정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전통에서 금욕주의가 발전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영성훈련을 위한 삶의 절제를 위해서이지 결코 성을 죄악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경계선은 있습니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섹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요즈음의 성개방 풍조하고는 거리가 먼 케케묵은 가르침이라고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성서의 가르침은 아무리 세상풍조가 바뀐다 해도 변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법칙을 무시한 성관계, 즉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인 성관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합니다.
그러한 성관계는 당사자들의 인격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쉽게 환멸과 미움의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이 그의 인격과 분리되어 그 자체가 향락의 수단이 될 때, 인간은 성으로부터 소외되고, 비인간화되며, 결국 성행위라는 것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축복의 선물로 허락하신 성을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아름답고 복되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120503181909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