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
敎育의 目標는 獨立하는 成人
어른들의 過度한 干涉과 介入, 未來 世代의 力量 빼앗는 行爲
나는 敎育의 多樣한 定義 中에 ‘아이를 社會 안에서 機能할 수 있는 獨立된 成人으로 길러내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學習이 어려운 아이들도 혼자서 工夫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會社의 비전도 여기에서 始作됐다. 大部分의 父母들은 別걱정 없이 아이가 職業을 가진 成人이 될 것을 期待하겠지만, 障礙가 있는 아이들의 境遇에는 ‘成人期에 獨立할 수 있는 機能을 갖추기’가 무엇보다도 重要한 目標이다. 스스로 옷을 입기, 飮食을 準備해서 먹기, 길을 찾아가기. 그러나 아이가 하는 것이 영 不安하고 성에 차지 않으니 繼續해서 손을 대게 된다. 날씨에 맞는 옷을 골라주고, 옷 끝을 잡아당겨서 매무새를 만져준다. 飮食을 準備해주고, 宿題를 했는지 묻고 結果를 봐준다. 여름을 맞아 外部 活動을 爲한 支援 書類를 作成하다가 “혼자서 ○○를 할 수 있나요?”라는 質問 앞에서 멈칫했다. (3)
障礙가 있는 사람을 爲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社會的 企業 ‘베어베터’의 入社 條件은 ‘혼자서 大衆交通을 타고 出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할지에 對한 助言을 求하자, 이진희 베어베터 이진희 代表는 “아이가 혼자서 試圖하고 失敗할 機會를 주세요”라고 對答하고는 父母가 繼續 도와주고 代身해줬기 때문에 成人이 돼서도 아주 簡單한 問題도 혼자서 解決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父母들은 아이가 失敗하는 것을 참고 보는 訓鍊이 必要하다”는 말에 感銘을 받고 꼭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아이가 혼자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3)
父母가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決定해준 結果로 아이가 혼자서 問題를 解決해 본 經驗이 없이 어른이 되는 것은 障礙가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이가 未熟한 狀態에서 스스로 배우는 時間을 참고 지켜보지 못하는 것은 어떤 父母들이나 비슷하다. 子女의 大學入試나 經歷에 過度하게 介入한 高位官僚와 政治人들의 뉴스가 지치지도 않고 新聞 紙上을 裝飾한다. 美國에서는 2019年에 入試 컨설턴트가 數億원을 받고 名門大學의 入學 書類를 捏造한 스캔들이 크게 터져 한창 裁判이 進行 中이다. 비슷한 時期에 出刊된 『엘리트 世襲: 中産層 解體와 엘리트 破滅을 加速하는 能力 爲主 社會의 陷穽』(대니얼 마코비츠)이라는 冊은 敎育 成果를 基盤으로 한 能力主義가 旣得權層의 아이들을 過度한 學習과 不安으로 내몰고, 公敎育을 받는 中産層의 正常的인 成就를 妨害함으로써 社會 兩極化를 부추기고 모두를 不幸하게 만든다고 指摘한다. (12)
最近에 잘 갖춰진履歷書를 갖고 있지만 自己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젊은이들을 往往 만난다. 잘 準備된 答辯을 하지만 追加 質問에는 答을 잘 못 하거나, 코딩 試驗에서 答案을 베껴서 提出하는 境遇, 課題를 준 以後에도 仔細한 指示를 마냥 기다리는 境遇들을 만난다. 充分한 도움을 받지 못해서 可能性을 다 發揮하지 못하는 아이들만큼이나, 똑똑하게 태어나 工夫도 熱心히 했으나 정작 社會를 살아가기 爲해 必要한 力量을 갖추지 못한 채 成人이 된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다. (3)
“아이가 혼자서 試圖하고 失敗할 機會를 주세요.” 어느 時代에나 適用될 만한 賢明한 助言이지만 父母가 쉽게 할 수 있는 決心이 아니다. 아이들 數보다도 더 많은 大學이 있다는데, 失敗를 容納하지 않는 熾烈한 競爭은 改善될 幾微를 보이지 않는다. 過度한 私敎育에 同意하지 않아도 適當한 線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成人들에게는 勤勞基準法이 週當 勞動時間 制限이나 休息時間 等을 保障하지만, 하루도 쉬지 못하고 學業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人權과 休息을 保護하는 어떤 裝置도 마련돼 있지 않다. (2)
大學 入試에 創意的으로 介入한 社會 指導層들의 이야기가 連日 報道되면서 公正性에 對한 疑問과 剝奪感은 깊어진다. 現在의 시스템은 어른들이 未來 世代의 삶에 지나치게 介入하는 것을 放置하고 있다. 올해의 入試制度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다음에는 저쪽에서 또 이쪽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充分치 않을 것이다. 어른들의 干涉이 未來 世代를 無力하게 만들고 敎育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뼈아프게 反省할 時間이다. 敎育의 本質이 무엇인지, 다음 世代가 키워야 할 力量이 무엇일지, 아이들이 혼자서 試圖하고 失敗할 機會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介入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欲望을 어떻게 막아낼지를 苦悶하고 解決策을 마련하는 일이 너무나 時急하지 않은가. (4)
【 中央 】 2022. 5. 11. [이수인의 敎育벤처] 이수인 에누마 代表
國漢混用變換 : 前任中大附屬初等學校長 李点榮 - 國漢混用文普及會
出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