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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모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산․경남 모임) |
회의자료 |
일 시 : 2012.12.3 (월) 18:30 장 소 : 사무실 회의실 카페명 : 다음(Daum) → 박정모 | |
전화 : 051) 302-8801 팩스 : 051) 302-8803 | |||
∙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모금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
∙ 회비∙찬조금 계좌번호 - 부산은행 031-12-065269-9 정분옥 | ||
박정희는 독재자이다~ 그러나 그 독재는 국가와 국민과 민족을 위한 독재였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꿈은 '복지사회 실현'이었다. |
1. 경과보고
가. 11월 월례회의 (2012. 11.5 (월) 18:30)
◦ 주요내용 - 영상물 방영(좌익운동권 출신 김중태씨의 올바른 말)
- 정병호 상임고문의 당면한 정치현안 비평
- 새로오신 회원 : 강영숙∙강춘석∙김순자∙김영식∙남선자∙남용수∙박정순∙안상정∙
양복숙∙이귀복∙이옥순∙전현주∙정순영∙지순호∙최준호 이사(15명)
- 참석내빈
• 김 찬 식 - 박해모 중앙회장, 유)환영금속 대표
• 최 영 숙 - 박해모 중앙여성 회장
금 액 |
내신 분 | |
700,000 |
1 |
정분옥 회장 |
300,000 |
1 |
정병호 상임고문 |
150,000 |
2 |
김동선 부회장, 범우스님 |
100,000 |
3 |
노명숙부회장∙심외자∙이규화 이사 |
50,000 |
3 |
최치호 청년위원장, 우옥자 여성위원장, 나영화 이사 |
30,000 |
2 |
배일부 자문위원, 서옥원 이사 |
20,000 |
2 |
이종호∙ 최상거 이사 |
◦ 물품 주신 분 - 정분옥 회장 : 과일 (감홍시 3box)
◦ 회의자료 설명 및 자료제공
- 정수장학회의 진실 및 정수장학회 관련 대응논리
- 박정희의 10월유신으로 대한민국이 더욱 성장했다
- 박정희 같은 위대한 결단을 보고싶다.
- 19代 국회에 反국가단체 및 利敵(이적)단체 출신이 19명
- 탈북 대학생 눈에비친 '아슬아슬한 나라 대한민국'
나. 여성위원회 11월 월례회의 - 2012. 11.12 (월) 12:00, 다이아몬드 호텔 1층
다. 양산시지부 11월 월례회의 - 2012. 11. 12 (월) 18:30, 남강영양돌솥밥 (양산 북부동)
라. 박정희대통령 제95주년 탄신제 - 별첨 4페이지
마. 거제시지부 11월 월례회의 2012. 11. 16 (금) 18:30, 해미락 횟집(고현동)
- 1 -
2. 박정희 대통령 숭모전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 모금현황
수 입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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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출 부 | |||||||||||||||||||||||||||||||||||||||||||||||||||||||||||||||||||||||||||||
과 목 |
금 액 |
과 목 |
금 액 | ||||||||||||||||||||||||||||||||||||||||||||||||||||||||||||||||||||||||||||
기 금 |
32,550,000 |
- |
- | ||||||||||||||||||||||||||||||||||||||||||||||||||||||||||||||||||||||||||||
이 자 |
1,909,103 | ||||||||||||||||||||||||||||||||||||||||||||||||||||||||||||||||||||||||||||||
계 |
34,459,103 |
계 |
- | ||||||||||||||||||||||||||||||||||||||||||||||||||||||||||||||||||||||||||||
※ 31,697,019원 정기예금 - 만기 : 2013. 3. 6 (1년정기예금이자 : 933,276원 발생)
|
- 2 -
3. 동전 모으기에 동참하신 분 : 32명
계 : 모금액 579,710 + 이자 746= 580,456 참여 : 34명 | ||||||||
내신 분 |
금 액 |
|
내신 분 |
금 액 |
|
내신 분 |
금 액 | |
정분옥 회장 정병호 상임고문 김상훈 고문 박영수 고문 김점수 중앙위원 강순자 부회장 노명숙 부회장 박외숙 부회장 손찬이 부회장 추종구 부회장 구맹회 이사 권희동 이사 김상섭 이사 문필선 이사 박영수 이사 박한수 이사 변종길 이사 손연자 이사 윤상수 이사 이차희 이사 장복녀 이사 진혜정 이사 남기영 양산회장 천숙희 해운대회장 정기환 거창회장 신천팔 거창국장 성남태 진해회장 김재곤 사무처장 우옥자 여성위원장 박옥희 여성위감사 이현주 재무국장 김도원 여성부장 이찬일 청년위원 전용기 홍보부장 |
93,200 1,460 2,120 8,580 77,590 2,140 84,130 27,810 12,380 8,000 31,440 160 760 9,000 4,300 15,040 5,440 19,490 1,600 990 1,250 17,930 8,370 8,770 22,400 19,800 4,150 2,000 33,980 19,000 7,050 4,240 17,750 7,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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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4. 박정희대통령 제95주년 탄신기념 숭모제
• 일 시 : 2012. 11.14(수) 10:00
• 장 소 : 구미생가 박정희 공원(구미시 상모동)
- 부산출발 1.2호차 : 07시 교보생명앞 (연산동)
- 양산출발 3호차 : 07시30분 양산공설운동장앞
- 거창출발 4호차 : 08시 거창군 향군회관 앞
- 거제시 지부 : 개별참여
※ 행사 참석후 청도 와인터널, 새마을운동 발상지 관람
• 우리모임의 준비물 및 역할: 뺏지(두 분 사진수록 단추형 버튼)- 3000개 달아드리기
구 분 |
성 명 |
|
구 분 |
성 명 | |
상임고문 |
정병호 |
여성위원회 |
우옥자,김민희,곽복수,강윤옥,권나경, 김정희,박춘화,이재선,조수자,최민정, 한은순,홍금자 | ||
회 장 |
정분옥 |
부서장 |
김재곤,이현주,함희분,신상섭 | ||
자문위원 |
배일부, 이화자 |
연제구 |
임원 |
박상식,이종광,김도형,박춘덕,김연도 송소순,임송녀 | |
부 회 장 |
금상철,김동선,박외숙,이장호,추종구 |
이사 |
19명 | ||
이 사 |
김영아,김종석,문필선,박상종,박순희, 박옥선,박용덕,박정순,성경주,심순자, 심외자,이경자,이영숙,조순옥,주원창 하영오,한춘자
|
양산시 |
남기영 회장, 박영수 고문, 안상호 자문위원 이호형 국장 외 38명
| ||
거창군 |
정기환 회장, 신천팔 사무국장 외 38명 |
수입부 |
|
지출부 | ||||
과목 |
금액 |
내역 |
과목 |
금액 |
내역 | |
참가비 찬조금
|
1,110,000 1,670,000 700,000 200,000 100,000 100,000 100,000 100,000 100,000 100,000 50,000 50,000 50,000 20,000 |
12명 정분옥 회장 거창군지부(회장 정기환) 배일부 자문위원 김점수 중앙위원 김동선 부회장 노명숙 부회장 박선이 사업부장 나영화 이사 정병호 상임고문 박외숙 부회장 이장호 부회장 잡수입 |
버스임차 기사수고비 감식초 과일 주류 외 식대 식대 꽃바구니 떡 생수 등 현수막
|
700,000 100,000 300,000 300,000 160,000 150,000 125,000 100,000 80,000 75,000 60,000
|
1대 버스2대분 버스4대분 술, 간식 등 김밥. 국 등(아침) 주먹밥, 국 등(점심) 추모관 설치 (2개) 버스 4대분 생수, 안주 등 행사장 설치
| |
지출계 |
2,150,000 | |||||
행사이익 |
630,000 | |||||
계 |
2,780,000 |
|
계 |
2,780,000 |
-4-
박정희 대통령 어록
• 우리는 역사상 강대국이 되어본 일이 없었지만 민족중흥의 시대에 사는 오늘의 우리 세대가 확고한 신념으로 줄기찬 노력을 앞으로 10년만 더 계속해 나가면 우리나라도 모든 면에 세계 최강의 대열에 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 1978. 10. 1 국군의 날 유시에서
• 나를 확대한것이 즉 우리 국가입니다. 우리민족이라고 할때의 우리도 역시 마찬 가지 입니다. 우리 민족이라는 것은 나를 확대한 대아(大我)인 것입니다.
- 1970. 1. 9 연두 기자회견 중에서
•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서 평생소원이 있다면, 우리세대에 우리의 조국을 근대화
해서 선진열강과 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 1964. 8. 3 국방대학원 유시에서
• 국가가 잘 되는 것은 내가 잘 되는 것이며 국가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하고 봉사를
하는 것은 크게 따지면 내 개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 1970. 1. 9 연두 기자회견 중에서
• 개발도상국에서의 정치초점은 경제건설이며, 민주주의도 경제건설의 토양위에서
자랄 수 있다
- 1968. 1. 1 신년사에서
•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 여러분들에게 경제에 관한 하나의 중요한 선언
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공업은 이제 바야흐로 '중화학 공업시대' 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 중화학 공업 육성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 공업화 정책'을
선언 하는 바입니다.
- 1972. 1. 11 연두 기자회견 에서
•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유구(悠久)히 이어져온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 하나의 역사를 보다 명예로운 것으로 만들 책임이 있고, 또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
• 자고로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을 가진 국가로서 융성하지 않은 국가가
없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한 공무원을 가진 정부로서 실패한 정부를 보지못했다.
• 60만 대군을 가진 우리가 4만명의 미군에 의존한다면 창피한 일이다.
- 1977년 미국대통령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자주국방을 강조하면서
<이형군 (前 경향신문 편집국장) 청와대출입기자의 비망록 에서>
•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5-
• 거짓과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가 이 나라 사회안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한
우리에게는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다하더라도 복지사회는 건설 될 수 없다고 나는 단정합니다.
- 1965. 1. 16 연두교서에서
• '안된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못하는 사람이다. '될수있다, 할수있다' 는
자신과 의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 1971. 1. 11 연두기자회견에서
•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융성했던 국민은 국토를 소중히 가꾸었으며, 그것을
번영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 1979. 10. 26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치사에서
•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때, 우리는 서슴치 않고 "조국근대화의 신앙(信仰)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 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하자.
- 1967. 1. 17 연두교서에서
• 정신적인 근대화가 병행되지 않는 근대화라는 것은 참다운 근대화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건전한 국민도의(國民道義)와 사회윤리(社會倫理)가
확립되고, 그 기반위에 물질적인 건설이 이루어져야만 이것이 참다운 근대화인
것이다.
- 1970. 1. 9 연두기자회견에서
• 평화통일의 첫 길이라고 하는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공산 집단으로 하여금 무력적화통일 야욕을 완전히 포기하게 하는것이다. 또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이 전쟁도발을
하더라도 충분히 전쟁을 억제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을 배양하고 우리의 안보체제 를 더욱 공고히 해야 되겠다.
- 1971. 1. 11 연두기자회견에서
• 통일은 결국 국내외적인 조건의 성숙과 더불어 이에 대비하는 우리의 주체적인
힘의 배양에 의해서만 이룩된다.
우리자체의 내실을 키워야 하고, 객관적인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우리가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이전에는 통일이
안된다... 거기에 대비하여 우리는 지금부터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하겠다.
- 1972. 1. 11 연두기자회견에서
• 우리가 진정한 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와 계발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 1978. 6. 3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식 치사에서
-6-
세계가 바라보는 박정희
•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관유/ 싱가포르 수상
•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 그 모델은 박정희 성장 모델
※ 선부론 : 잘하는사람을 더 잘하게 밀어 주는 것, 더 잘하는 사람이 더 못하는
사람을 이끌어 가는 것.
1992. 1월 중국의 등샤오핑(등소평)은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한국을 배우라"고 했으며, 그 핵심은 새마을 정신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성장모델이다.
•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 미국/ 뉴욕 타임스
• 중국의 덩샤오핑 등은 세계유례 없는 한국의 연10% 급성장,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흥(중국인민공화국 정책과학연구원 회장)
• 나는 박정희 대통령만 없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다고 생각해서 그 분이 서거
했을때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前
대통령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당시 운동권이 가장 반대하던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장 잘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현충사나 행주산성 같은 민족의 기본정신이 깃든 곳에 가보면 박 前대통령의
행적이 많이 남아있다. 굉장한 일을 한 것 같다.
- 김문수(경기도 지사, 25년 노동운동가) 09. 9.28 중앙일보와의 대담 中에서
저서 : '나는일류국가에 목마르다' 中에서
• 박정희는 우리같은 사람(정치적 반대자)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국민 3,000만명을 못 살게 했다.
• 박정희는 나같은사람 4,000명 에겐 못살게 괴롭혔지만, 국민 4,000만명 에겐
잘 살게 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 백기완 (사회주의 운동가, 정치가, 소설가, 前 통일문제 연구소장)
•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 운동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꾸었고, 경제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 김형아(호주국립大교수, 1974년유신체제를 비판하며 호주로 떠난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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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前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 김정일(북한주석) 1999년 정주영(현대그룹회장)과의 대화 中
•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 2006. 11. 11 에즈라 보겔 (美 하버드대 교수)
•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라.
- 푸틴 러시아 대통령
• 경제발전 토대 없이 민주주의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필리핀은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까닭에 아직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진입
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남아 여러 국가들도 경제적으로 뒤쳐져 빈곤속에 권위주의
독재 체제에 묶여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 을 일궈냄으로서 대한민국이
민주화로 매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준 것이다.
그가 주도한 산업화가 없었고, 아직도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그 많은 후진국들처럼 민주주의를 구가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 시무르 립셋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 나는 전라도에서 컸기 때문에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중국이 오늘날 잘 살게 된 것도 우리보다 박정희를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급성장 하고 있다. 중국도, 싱가포르 이광요도 박정희 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다. 뭐! 인권문제 가지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본
생계가 보장되어야 인권을 논 할 수 있는 거다.
남조선에서 보릿고개를 없애준 사람! 그게 바로 박정희다.
- 2009. 6. 3 인요한 (John Alderman Linton) : 세브란스병원국제진료센터 소장
• 유신독재에 격렬하게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박정희 통치
아래서는 국가안위가 흔들리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는 그랬다. 지금은 불안(이후 대통령들은 불안) 하며 결단의 리더쉽
이 없다. 좌파세력들의 난동에 속수무책인 것이 이 정부의 지지도 하락요인이다.
- 2009. 3. 5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세종문화회관 강연에서
• 대통령 박정희는 1961~1979 에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국가에서 산업능력을
가진 국가로 형성했다.
- 독일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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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 1만㎞ 돌아... 우간다서 다시 꽃피는 새마을 운동
2년전 한국서 연수한 주민 귀국한 뒤 새마을회 조직 4개월간 마을길 3㎞ 넓히고 공동농장 만들어 소득증대 "다른지역서 배우러 와요"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5시간을 걸려 도착한
포트포털주의 부산자 마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맨발의 20여명 주민이 곡괭이와 낫으로 풀더미를 헤치며 마을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이들이 입고 있는 복장, 새마을운동의 '새싹' 로고가 새겨진 녹색조끼였다. 한국에서 70년대 보던 녹색의 새마을운동 복장을 1만여㎞나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40여년의 시차를 두고 만난 셈이다. 주민 카발리사 테디(42∙ 여)씨는 "매주 3일씩 하루에 3시간가량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한다"며 4개월만에 3㎞의 도로를 넓혔다." 고 했다.
이 마을의 면장격인 쿠에암보 프랑시스(53)씨는 "우간다에서 이처럼 마을길을 넓힌곳은 우리 마을이 유일해 다른 지역의 관료들이 견학하러 많이 온다"고 했다.
길이 넓어지면서 이 마을의 바나나∙고구마등 농산물을 차를 이용해 팔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20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새마을운동 바람이 분 것은 2010년 한국에서 9박10일간의 새마을 교육을 받고 온 이 마을 출신 바로지(40∙부동산 임대업)씨가 "한국에서 배운 새마을 운동을 고향에서 펴보이겠다"고 다짐하면서다. 이 마을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마을 주민 100여명 으로 새마을회를 조직하고, 자비로 새마을 조끼를 만들어나눠 주었다. 마을 길 닦는 작업과 함께 흙벽돌공장 사업을 시작했다. 인력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2만여장의 벽돌을 만들어 번돈을 종잣돈으로 마을금고를 만들었다. 2%라는 싼 이자율로 주민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싼 이자로 돈을 빌려줘 주민에게 새마을운동에 대한 참여의욕과 공동체의식을 높여주었다."고 말했다. 바나나∙고구마∙감자∙콩 등을 심는 마을공동농장 4곳도 만들었다.
새마을회원들은 매일 이 농장들에서 돌아가며 일한다. 여기서 번돈은 이들의 저금통장에 입금되고, 수익의 5%는 마을기금으로 조성된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우간다의 농촌마을을 바꾸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에 3,400만명의
인구가 있는 우간다는 1인당GDP가 1200달러에 불과한 아프리카 최빈국중의 하나다. 2009년
우간다에 새마을운동이 소개된뒤 새마을 시범마을이 세워진 곳은 수도 캄팔라 인근의 6개 마을
이다. 이들은 '새마을운동'을 'SMU(새마을운동영어약칭) 로 부르며 빈곤탈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
부산자 마을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키보아 마을도 대표적인 새마을시범 마을이다. 공동농장
에서 수확한 콩을 비닐 포장해 도시에 내다 판다. 비닐 포장에는 새마을 로고가 붙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새마을하우스'다. 돌위에 식기를 놓고 음식을 만들던 집집마다 한국식 부뚜막 아궁이
를 만들어 솥을걸게 만들었다. 이 마을지도자 조세프(25)씨는 "한국에서 새마을교육을 받을때 본
부뚜막 사진을 그대로 본떴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박종대(53)주 우간다 한국대사 대리는 "새마
을 운동이 열기를 띠게 된것은 한국에서 새마을교육을 받은 이들이 헌신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이재창 한국 새마을중앙회 회장은 지난 19일 우간다의 명문국립대인 마케레레대
를 방문 "새마을운동은 우간다와 한국이 만나는 연결고리"라며 중국은 대량의 경제지원으로
아프리카에 파고들고 있지만, 우리는 경제발전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새마을운동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과 나누려고 한다" 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 2012. 10. 27~ 28 조선일보 토일섹션(우간다- 김동섭 기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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