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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향소(鄕所)를 설치하고 향임(鄕任)을 둔 것은 수령을 중히 생각해서였다. 수령이란 임금의 나랏일에 대한 걱정을 나누어 어떤 지역의 사람을 다스리는 자이다. 그러나 수령은 임기가 정해져 있어 늘 바뀌고 있다. 늘 새사람이라는 것은 일을 함에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비록 백성의 일에 뜻을 둔다하여도 먼 곳까지 상세히 살필 겨를이 없다.
유향소는 조선 초기에 향촌에 설치한 수령 자문 기구였다. 고려 시대 향리들은 지방 행정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누르고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새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해, 속현을 없애고 모든 군현마다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임기가 정해진 지방관이 토착 세력인 향리를 통제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유향소를 설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향촌에 사는 양반들이야말로 지방관을 도와 향리들을 규찰할 적임자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유향소 양반들이 자칫 지방관마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향소가 설치와 폐지를 되풀이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각 읍별로 서울에 연락을 맡은 경재소(京在所)를 두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